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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21화 (1,109/1,404)

#1120화 신의 흔적 (13)

위압감보다는 기괴함이 더 도드라지는 합성 석상들이 이제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지 거의 대부분 녀석들이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여섯 개의 붉은 눈과 쭉 찢어진 입.

그리고 네 장의 일그러진 날개가 녀석들의 등 뒤로 거칠게 펼쳐졌다.

그 날개들 역시도 뭔가의 재료들을 짜깁기한 듯 여기저기 기워져 있는 모습이었고.

자세히 녀석들의 몸을 살펴보니 신체들 역시도 하나의 매끄러운 몸을 가진 놈들이 없었다.

하나같이 각기 다른 파트들을 가져다 이어붙인 모습이랄까.

그렇게 녀석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하자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 같은 부위들이 서로 삐걱거리며 역시 소름 돋는 비명을 질러왔다.

제일 선두에 있던 전사 형이 타이탄 라지 쉴드를 앞으로 내밀면서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무슨 공포 영화냐…….”

그동안 봐왔던 몬스터들이 거대해서 두려움이 있을지언정 지금처럼 기괴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이곳을 만든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꽤 악취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옆에 있던 맥크라이가 갑자기 손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응?

그 떨림이 우리에게 전달될 정도라 고개를 돌리자 경악한 듯한 맥크라이의 표정이 보는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맥크라이 장로님?”

“어……?”

“정신 차리시죠?”

“험. 그렇지.”

뭔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이 크게 흔들리는 걸 봐서는 아마 저 『 합성된 타락 천사의 잔해 』가 꽤 문제가 있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전에 드워프들이 이 고대 헤르마늄 샤이닝 템플에 들어왔다가 다 죽어 나갔다고 했던가.

그러면 저런 두려워하는 눈빛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름만 샤이닝 템플이지.

저 녀석들만 보면 그냥 공포 체험 사원이 아닌가 싶었다.

“장로님은 물러나 있으시죠.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에 맥크라이의 몸이 잠시 움찔했다가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응?

저건 같이 싸우겠다는 뜻이려나?

생각보다 의지가 있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맥크라이가 전혀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게…… 내가 아는 녀석들이 아니야.”

“네?”

이건 또 무슨 뜻이지?

“저건…… 그때 봤던 석상과는 달라.”

“달라요?”

“그래. 우리가 본 녀석들이 절대 저렇지 않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재중이 형 역시도 눈을 살짝 찡그리고는 말했다.

“뭔가 틀어진 모양인데.”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멀쩡하게 있던 석상들이 다른 녀석들로 교체됐다고?

“원래는 어땠는데요?”

“그땐 그냥 천사 같은 형상을 한 석상일 뿐이었어. 지금 같은 괴물들이 아니라.”

맥크라이가 천사라고 딱 집어서 말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런 형태였을 것이다.

결코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도 어떻게 보면 천사와 비슷한 형상을 가지고는 있으니.

한숨을 푹 쉬고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난이도가 올라간 것 같죠?”

“아니. 원래가 이 녀석들이었던 거겠지. 드워프들이 들어왔을 때는 천사 형상만으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으니 딱히 변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라면.

맥크라이가 상정한 난이도보다 지금이 월등히 높을 거라는 뜻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바로 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요?”

“어, 저 녀석들. 변하고 난 뒤의 네임이 나한테도 완전히 빨갛게 보여.”

그 말에 나 역시 안색이 굳어졌다.

재중이 형의 레벨은 우리 중에 가장 높았다.

유저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재중이 형이 보기에도 빨갛게 보인다는 건.

현 유저들 최고 레벨 대와도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일 테다.

“정확히는 산정 못 하겠지만. 아마도 최소 700대 이상이겠어.”

“어지간한 던전은 이름도 못 내밀겠네요.”

바로 전사 형에게 외쳤다.

“전사 형. 조심해요. 최소 레벨 700 정도예요.”

그러자 곧장 답이 들려왔다.

긴장한 목소리가 가득한.

“휴. 역시 이거 잘못된 거였지?”

이미 전사 형도 알고 있었던 듯했다.

지금 난이도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의 천사 석상이 동시에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아무리 발뭉이 베르탈륨으로 만들어져 있고 타이탄 풀 플레이트가 버텨준다고 하더라도.

레벨 차이는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쪽수는 더 그렇고.

무엇보다.

저 석상들이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더 문제였다.

만약 일반 몬스터라면 레벨 차이를 어떻게든 극복해 볼 수 있겠지만.

저 녀석들이 엘리트급이나 그 위에 챔피언급 정도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저 녀석들 네임드는 아니겠죠?”

“설마. 저렇게 많은 녀석들이 다 네임드면 바로 관 짜야지.”

그나마 이건 다행이려나.

“형, 퇴로는요?”

“왔던 길밖에 없어.”

형 말대로 우리가 여기로 넘어왔던 통로가 갈 수 있는 유일한 퇴로였다.

맥크라이도 딱히 다른 답을 하진 않았으니.

“챠밍하고 막내별은 발이 느리니 바로 통로 쪽으로 가요. 나르샤 누나하고 소녀는 혹시나 둘에게 붙는 녀석들을 떼어내 주고요.”

그 말이 끝나자 모두가 신속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튀는 방향으로 진행을 바꾼 것이다.

이 녀석들에게 쫓기느니 그냥 에센시아 제국 기사와 다시 마주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넓은 사원 내에서는 모두를 지켜가면서 싸울 수가 없었다.

전사 형도 처음의 전진과 달리 지금은 서서히 뒤쪽으로 몸을 빼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석상 녀석들이 급하게 우리를 쫓진 않는 다 정도이려나.

그런데 뒤쪽에서 이쁜소녀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퇴로가 막혔어요!”

“뭐?”

“우리가 왔던 통로. 지금 막혀 있어요.”

그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동시에 뒤쪽으로 돌아갔다가 통로가 막혀 있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정면의 천사 석상들로 모아졌다.

“쳇, 녀석들이 왜 바로 안 쫓나 했더니…….”

“뒤가 막혔으니 안 쫓은 모양이네요.”

전사 형이 뒤로 후퇴하는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따라붙기만 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저것들 여기서 못 잡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거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맥크라이 역시 마찬가지였고.

“전사! 앞쪽으로 들어오는 녀석들 어떻게든 막아 봐. 이쪽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볼 테니.”

“갑니다!”

대답과 함께 전사 형이 다시 앞쪽으로 전진했다.

이 이상 후퇴하면 녀석들이 바로 우리를 건너뛰고 뒤를 칠 수도 있는 거리라.

“챠밍. 네 스태프로 쓸 수 있는 최대로 강한 걸 준비해 봐.”

“네!”

“소녀는 나하고 각각 사이드를 막는다. 튀어나오는 녀석들 어떻게든 끊어야 해.”

“네!”

“나르샤는 소녀가 커버 못 하는 곳을 도와. 그리고 막내별은 모든 힐을 전사에게 집중해. 다른 쪽은 쳐다보지도 마. 전사가 못 버티면 어차피 모두 죽는다.”

“맡겨 둬!”

“알았어요!”

그런데 재중이 형이 내게는 따로 오더를 주지 않았다.

“형? 전 왜 빠져요?”

“뺄 리가 있나. 넌 챠밍하고 같은 포지션에 서.”

“네?”

“어차피 레벨 차이가 커서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도 않을 거야. 네 무기가 아무리 좋고 계속 크리티컬을 터트린다고 해도 말이지.”

“그럼?”

“넌 딱 한 방만 준비해. 네가 가진 패 중에서는 유일하게 통할 거다. 우리가 가진 패 중에서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맥크라이도 앞에 섰다.

“나도 돕겠네.”

“음, 그럼 장로님은 이 녀석들이 공격당하지 않게 보호해 주시죠.”

그러면서 나와 챠밍을 가리켰다.

“알겠다. 내 이름을 걸고 버텨 내지.”

드워프 장로라면 어느 정도 전투력은 가지고 있을 터.

잠시라도 시간을 벌어줄 정도면 된다.

우리가 포지션을 이동하는 동안 전사 형 쪽에서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면의 몇 녀석들만 전사 형에게 붙더니 나머지 녀석들의 시선이 전부 우리 쪽으로 쏠렸다.

시뻘건 눈들이 죄다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리자 전사 형의 표정이 확 굳었다.

“이 새끼들이 어딜 가?!”

곧 전사 형이 마왕의 무구인 발뭉을 높게 치켜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발뭉의 검신을 바닥으로 강하게 내려찍었다.

【 다크 배틀 필드! 】

쿠구구궁!!

순간 전사 형 주변으로 원형의 파장이 퍼져 나가더니 동시에 그 파장을 따라 강렬한 검은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일대를 전부 어둠으로 잠식해 갔다.

그리고 전사 형을 무시하고 우리에게 달려오려던 모든 석상들을 뭔가의 압력으로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저건 흡사 마왕들이 쓰던 압박 결계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대천사들도 비슷한 결계를 쓰기도 했다.

그런 마왕과 대천사의 고유 압박 스킬을.

지금 전사 형이 앞에서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어어어!”

강렬한 기운이 잡고 놓아주지 않자 석상들이 모두 힘겹게 발을 떼다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렇게 시커먼 결계가 저 많은 녀석들을 죄다 찍어 눌렀다.

“흐흐. 이거 마왕의 무기 맞네.”

의기양양한 목소리와 달리 전사 형의 신체 곳곳에서 마치 터져 나가듯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압도적인 스킬이지만.

그만큼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높은 모양이었다.

전사 형의 몸 전체에서 물약이 계속 소비되는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젠장! 이거 체력 너무 먹잖아!”

그러자 뒤쪽에서 막내별이 가진 모든 힐을 쏟아내면서 전사 형의 체력을 보조해 주었다.

“오래는 못 버텨요!”

막내별도 이전보다 힐량이 월등히 높아졌지만 전사 형의 체력이 워낙 빠르게 빠지다 보니 제국에서 지원해 준 회복력 높은 물약까지 같이 소모하는데도 간당간당해 보였다.

조금이라도 균형이 깨지면 전사 형이 쓰러지든 막내별이 쓰러지든 문제가 생길 터다.

“우리도 시작하자.”

“네!”

결국 핵심은 나와 챠밍이다.

저 녀석들을 상성에서 먹고 들어갈 수 있는 무기를 가진.

거기다 광역으로 녀석들을 칠 수 있을 만한 패를 들고 있는 것 역시 우리뿐이다.

챠밍이 아이셔스 스태프를 정면으로 치켜들고 뭔가를 준비하는 동안.

나 역시 라페르나를 꺼내들었다.

【 웨폰 카피! 】

그리고는 두 개의 라페르나를 만들어 내고는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 대천사의 가호! 】

화아악!!

내 뒤로 확 펼쳐지는 광휘의 날개들을 본 맥크라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건……! 대천사의……!”

“음. 모르는 척해 주시죠.”

내가 대천사의 가호를 쓸 수 있는 걸 천사들이 알게 되는 건 꽤 귀찮아지는 일이라.

눈치가 있는지 맥크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사원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폐쇄된 지하에서 써도 되는지 조금 불안한 감이 있지만.

어차피 이게 안 되면 여기서 다 죽는다.

동시에 한 가지 시스템 창도 열었다.

《 기여도를 소모해 『 용사 후보 특전 Lv.1 』을 『 용사 후보 특전 Lv.2 』로 성장시키겠습니까? 》

“그래.”

YES를 선택하자 바로 기여도가 빠져나가며 레벨이 올라갔다.

《 『 용사 후보 특전 Lv.2 』로 변경됩니다. 》

혹시나 기여도를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아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아끼다 평생 쓸 일이 없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라.

그리고 다시 시스템 창에 손을 올렸다.

“기여도 전부 소모.”

그렇게 시스템 창이 계속 울리는 걸 보고는 하나의 스킬을 추가로 시전했다.

【 용사 후보 전용 오러! 】

대천사의 가호에 용사 후보 오러라…….

과연 얼마나 위력이 나오나.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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