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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12화 (1,100/1,404)

#1111화 신의 흔적 (4)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신이나 마신 같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건 확실했다.

제국의 예산을 무리해서 끌어다 쓸 정도로.

그리고 그런 제국 황제가 노리고 있는 물건들 중에 무려 두 가지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

이걸 알면 과연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라.

<불멸> 확실히 제국 황제라면 널 노리는 게 가장 빠르겠지.

재중이 형도 이 사실에는 부정을 하지 않았다.

굳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크 드래곤 같은 존재들을 사냥하는 것보다는 내 쪽이 훨씬 접근하기 수월할 테니까.

<주호> 제국 황제 앞에서 르아 카르테를 쓰지 않길 잘했네요.

아크 드래곤을 잡을 당시 좀 과도할 정도로 꺼내놓긴 했는데.

어차피 그땐 제국 황제가 없었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테고.

그럼 이 이후부터가 문제인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주호> 차라리 에센시아 제국을 뜨는 게 나을까요?

<불멸> 흐음. 그것도 한 방법이겠지. 제국 황제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그럴 일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당장 전투라도 일어나서 내가 르아 카르테나 테르타로스를 꺼내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에센시아 제국 내에 있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쓸 수 있는 무기는.

대천사의 무기인 라페르나와 마검 정도이려나…….

뭐 라페르나는 이미 레오나 에센시아와 맥크라이가 봤으니 그렇다 치고.

마검은 꺼내면 또 설명할 일이 늘어나게 된다.

휴.

무기들이 하나같이 난해한 것들만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라…….

<불멸> 그래도 여기서 얻을 건 다 얻어야 하니까 최대한 버텨 보는 수밖에.

<주호> 네. 그래야겠죠.

에센시아 제국을 포기하고 가기에는 이곳에서 얻을 것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 구축해 놓은 영웅으로서의 위치도 있었고.

만약 다른 제국이나 성국에서 시작한다면 이 정도의 호감도를 얻어낼 수는 없을 터.

무엇보다 타이탄에 대한 기술은 에센시아 제국이 다른 곳보다 앞서 있을 것이다.

제국 황제가 투자를 꽤 했으니까.

최소한 타이탄 정도는 어떻게 해야…….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챠밍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내 팔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뭔가 생각이 있는 눈치로.

<챠밍> 오빠, 제국 황제가 왜 이렇게 서두를까요?

<주호>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챠밍>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되어서요. 분명히 제국의 한 해 예산의 절반을 가져다가 이 연구들에 쓴다고 하던데…… 너무 과도한 것 같지 않아요?

<주호> 흐음. 확실히 좀 과하긴 하지.

만약 내가 에센시아 제국 황제라면 소유한 제국이 파탄 날 정도로 예산을 쓰진 않을 터였다.

실제로 원래 시대에서 교황이 되었을 때에도 휘청거릴 만큼 무리하게 운영하진 않았으니.

혹시나 그렇게 했으면 신성 제국이 채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런 무리한 자금 운영을 제국 황제가 하고 있는 중이다.

당장 제국이 무너질지도 모를 수준으로.

그런 챠밍의 말을 듣자마자 내 상황과 엮어서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주호> 황제가 급하다는 거려나?

내 추측에 챠밍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챠밍> 아마도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국 황제가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주호> 여유가 없다라……. 반대로 말하면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흐음.

굳이 위험한 길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제국 황제가 급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성마대전……?

아냐.

이건 일단 아니다.

당장은 베르마 제국이 최전선에서 버텨주고 있고 아직 요하스 성국이나 에센시아 제국, 타란 제국은 제대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바로 턱 밑까지 칼이 들어온 상황이라면 또 모를까.

전시 상황이긴 해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무리수를 둘 정도로 위협이 되진 않을 터다.

본인이 거느린 황자와 황녀들, 영웅들도 꽤 다수 존재하니까.

그 자신도 영웅의 최상단에 올라가 있고.

상위 마왕 정도가 직접 와서 행패를 부리지 않는 이상은 에센시아 제국이 바로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전력 면에서는 딱히 무리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데…….

고개를 돌려 맥크라이를 바라보았다.

맥크라이의 말대로 제국 황제가 신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이제껏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크루아 대륙의 역사상에 딱히 나온 것도 없고.

우리 시대 역시도 마찬가지.

불확실성이 훨씬 높은 일이라는 거지.

아니.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헤르마늄과 베르탈륨 광산을 들쑤시고 신의 흔적이나 마신의 파편을 찾아낸다고 해도 당장 제국 황제 본인이 신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 증거로 나 역시 두 개의 검을 이미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 그런 퀘스트조차 뜨지 않았다.

뭐 나중에 퀘스트가 더 진행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제국 황제에게는 뜬구름 잡는 일이 될지도.

그런데도 이렇게 무리를 한다라…….

챠밍이 뭔가 생각이 있는지 내게 말했다.

<챠밍> 혹시 제국 황제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주호> 건강?

<챠밍> 본인이 곧 죽을 위기라던가 할 수 있잖아요.

그 말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호> 전에 봤을 때는 딱히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는데? 아마 네가 제국 황제를 봤으면 나랑 같은 말을 했을걸?

솔직히 너무 건강해 보여서 이상할 정도였지.

원 역사에서는 분명히 죽는다고 했는데.

너무 멀쩡해서 놀랐다고 해야 하나.

<챠밍> 음. 그런 이건 아닌가 봐요.

<주호> 아니. 잠깐…… 네 말이 아주 아닌 건 또 아닌 것 같고.

<챠밍> 네? 무슨 말이에요?

분명히 챠밍이 생각하기에 지금 상황이 꽤 무리가 가는 상황인 모양이었다.

나나 재중이 형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그냥 넘겼던 건.

역시 황제가 너무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황제가 실제로는 상태가 안 좋다면?

<주호> 혹시…… 이미 황제가 어떤 독에 상당히 당해 있는 상태라면 어떨까?

<챠밍> 아…… 그럴 수도 있겠어요.

<주호> 내 앞에서는 멀쩡하긴 했는데. 영웅의 최상단에 있다면 그 정도는 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솔직히 제국 황제를 본 것도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만 봤었다.

당시 너무 폭발적인 기세를 뿜어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너무 많기도 하고.

굳이 제국 황제가 아크 드래곤이 쳐들어왔을 때 자리를 비운 점이라던가.

그때야 5황녀에 대한 시험이라 생각했었지만.

정말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직접 나설 수 없는 몸 상태였다면?

혹 아크 드래곤과의 전투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만약 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에센시아 제국이라는 큰 판돈을 걸고 한 번쯤 도박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같으면 예산을 거의 다 끌어다 쓰는 방법으로.

신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도.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일 것이다.

곧 본인이 죽을 위기라고 판단했다면.

아직은 추측뿐이지만.

챠밍이 던져준 의문이 꼬리를 물고 물어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갔다.

곧 재중이 형에 이 사실을 말해 주자 재중이 형도 꽤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멸> 그러니까 제국 황제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

<주호> 네, 원 역사와 같이 되는 거죠.

<불멸> 흐음. 확실히 일리는 있어. 우린 실제로 이 당시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까. 제국 황제가 죽었다는 말만 있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오지도 않고.

재중이 형 말이 맞다.

당장 우리가 이 성마대전 시대에 오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

이를테면.

황실 비밀 연구소라던가 정령석 던전.

헤르마늄, 베르탈륨 광산 같은 것들.

그리고 타이탄과 천사들의 관계라던가.

거의 대부분이 직접 겪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원 역사라는 건.

진짜 몇 개 남지 않은 흔적일 뿐인 거다.

그것도 중요한 부분이 쥐가 치즈를 파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죄다 파여져 사라진 역사랄까.

그 남은 역사 역시도 서술하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다시 가공되거나 생략, 혹은 왜곡되는 역사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제대로 조사를 하더라도.

역사 하나만 믿고 덤볐다가는 딱 죽기 좋다는 말이다.

제국 황제 역시도 죽기는 죽지만.

언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전혀 모르니까.

그럼에도 그간 겪은 일들과 상황을 유추해 보면.

적어도 황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배팅해볼 만했다.

문제는…….

그 제국 황제가 죽기 전까지 얼마나 난장판을 칠지 모른다는 점인데.

당장도 저렇게 나오는데 말이지.

그 와중에 잘못 휘말리면 돌이킬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내일 죽을 녀석이 뒷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결국 뒷일은 여기 있는 레오나 에센시아나 맥크라이 같은 녀석들의 몫이다.

내가 빤히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마주보면서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아뇨. 그냥 황녀님에게 고생길이 열렸다 싶어서요.”

정말 제국 황제가 이 상황에서 죽으면.

당장 레오나 에센시아는 1황자, 3황자, 2황녀와 전면전이 될 테니까.

저들을 꺾고 황위에 오르든가.

죽든가.

둘 중에 하나지.

다른 황자나 황녀들은 결코 레오나 에센시아를 살려 두진 않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오히려 제국 황제가 바람막이 정도는 되어 준다고 해야 하나?

“이걸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모르겠네요.”

“네?”

“아뇨. 그냥 해본 소리에요.”

정말 제국 황제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다면.

적어도 제국 황제가 죽기 전까지는.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확실한 패를 쥐여줘야 한다.

아니면 최악의 상황에 타란 제국 같은 곳으로 망명시킨다든가.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당장 제국 황제가 휙 하고 죽어 버리진 않을 것 같고.

“휴. 살아 있으면 방해고. 죽어서도 방해라.”

내 혼잣말에 레오나 에센시아와 맥크라이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그런 게 있어요.”

댁들 제국 황제 말이지.

살아 있으면 날 방해하지 싶고.

죽어서도 역시 방해하지 싶어서 한 말이었다.

여러모로 귀찮은 양반이랄까.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일단은 제국 황제가 경쟁자가 되겠네요.

신의 흔적이나 마신의 파편을 구해서.

신이 된다던가.

마신이 된다단가 하는 건.

딱히 내가 구상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제국 황제가 이곳에 목을 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분명히 나와 제국 황제가 가는 길이 겹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가진 나와.

그걸 소유하기 위해 가진 걸 죄다 걸고 있는 제국 황제라…….

어떻게든 한 번은 부딪히게 되려나.

결국은 한쪽이 먼저 차지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아무래도 늦게 차지하는 쪽이 죽는 그림밖에는 그려지지 않으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곧 결심하고는 말을 꺼냈다.

“신이라…… 제가 한 번 만나 볼까요?”

그게 신이 되었든.

마신이 되었든.

정령신이 되었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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