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화 성마대전의 시작 (9)
무려 2000명이나 선택한 로가슈 왕국에 대해 대부분의 유저들은 미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아서 이야기했었다.
애초에 이 대륙에 위치하지도 않은 나라를 고른다는 게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힘든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유저들의 선택은.
다른 유저들의 비웃음을 그대로 다시 비웃기라도 하듯.
정말 최상의 선택지가 되어 버렸다.
- 야야! 여기가 에센시아 제국이래!
- 진짜 여기 에센시아 제국임?
- ㅇㅇ. 로가슈 왕국 고르면 제국에서 시작함. 우리 길드 사람들도 전부 여기 왔음.
- 완전 미쳤네.
- 크크크크.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주호가 괜히 로가슈 왕국 한 거 아니라니까?
- 와, 진짜 주호 하나 보고 온 보람이 있네.
- 로가슈 왕국 만세다!
이건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 유저들의 환호였다.
그리고 이번엔 이 어이없는 상황에 벙찐 다른 유저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 이게 말이 되냐?
- 맞아. 에센시아 제국은 선택도 안 되던데.
- 무슨 수로 에센시아 제국에서 시작하는 거야?
- 그냥 로가슈 왕국 선택만 하면 무조건 가는 거임?
- 아마 그런 듯?
- 헐. 로가슈 왕국은 대박 터졌네.
- 설마 로가슈 왕국이 에센시아 제국의 동맹쯤 되는 건가? 아님 설명이 안 되는데.
- 와, 부럽다. 난 저기 산골짜기 왕국에서 시작하는데…….
-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로가슈 왕국 선택할걸.
- 이미 늦음.
- 시작부터 제국이면 한참 앞서나가겠네. 퀘스트든 사냥터든 다 좋을 거 아냐.
이 뜻밖의 결과에 부러워하는 유저들의 반응이 퍼지고 퍼져서 이젠 올라오는 글마다 로가슈 왕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대박이 터진 셈이라.
- 야, 다들 에센시아 제국 무기점 와 봐라. 장비 장난 아니다.
- 방어구도 상점표인데 완전 좋음.
- ㅇㅇ. 원래 세계랑 비교도 안 되게 좋은데?
- 여기 퀘스트도 많다. 좀만 돌아다니면 주변에 퀘스트 잔뜩 줌.
- 나도 뜸. 제국 복구하는 걸 도와주면 에센시아 제국 기여도 준데.
- 거기다 여기 기여도 있으면 장비도 바꿔준다네.
- 그럼 퀘스트부터 열심히 해야겠다.
- 근데 여기 전쟁이라도 났었냐? 제국이 왜 이렇게 엉망이지?
- 성벽 무너져 있고 난리도 아니다.
- 맞아. 시가지로 들어가 보면 건물들 싹 녹았는데?
재중이 형이 전체 말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로가슈 왕국 소속 유저들은 시작할 곳이 없으니. 아예 왕자인 네가 있는 장소로 소환이 된 거겠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일단 로가슈 왕국은 땅이 없다.
성도 없고.
이건 유저들이 소환될 만한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 멀리 대륙에서 시작되는가 했는데.
아마 지금 상황을 봐서는 이전 대륙 쪽은 성마대전에서는 딱히 적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소환이고.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귀환지 등록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우리야 이미 성마대전이 시작하기 전에 에센시아 제국에 등록을 마쳤지만.
이들은 또 모르는 일이라.
이미 로가슈 왕국 소속으로 되어있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로가슈 왕국 소속이라 안 받아줄까 봐?”
“뭐, 그런 것도 있죠.”
“그 정도는 해줄걸? 아님 애초에 이곳으로 시작하게 하진 않았을 테니.”
“그럴까요?”
“정 안 되면 네가 나가서 땅 하나 만들고. 저 애들 다 부랑자 만들 수는 없으니.”
부랑자라.
확실히 귀환할 곳이 없으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전에 죽어 버리면 귀환이고 뭐고 없긴 하겠다만.”
“하긴 그렇긴 하네요.”
애초에 성마대전은 한 번 죽으면 그대로 아웃이었다.
외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우에야 귀환지가 필요하겠지만.
죽으면 귀환지고 뭐고 아무 의미가 없었다.
“자, 쟤들 걱정은 접어두고. 안 되면 알아서 하겠지. 왕자라고 다 챙겨줄 생각은 아니겠지?”
재중이 형의 그 말에 나 역시 웃음을 보였다.
“설마요. 당장 제 코가 석 자인데요.”
사실 우리도 에센시아 제국에 얹혀사는 셈이라.
그때 전사 형이 농담으로 한 마디를 꺼냈다.
“이게 바로 나라 없는 설움인가……!”
전사 형의 말에 옆에서 챠밍과 이쁜소녀가 같이 웃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로가슈 왕국의 공주네.
확인은 못 했지만.
둘의 상태창을 열어보면 분명히 로가슈 왕국 공주라고 표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로가슈 왕국 제1 왕자.
사실 왕이 없는 이상 내가 이 왕국의 최고 권위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이런 시스템이 뜨는 거겠지.
《 로가슈 왕국 관리 시스템 》
“형, 저한테 로가슈 왕국 관리 시스템이 떠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흥미를 보였다.
“그래? 내 쪽은 안 뜨는데?”
재중이 형이 곧장 챠밍과 이쁜소녀를 바라보자 둘 다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 안 떠요.”
“저도요.”
“흐음. 그럼 주호한테만 이 시스템이 뜬다는 건데.”
그런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아마도 제가 로가슈 왕국의 왕인가 봐요.”
“하긴 왕도 없으니 네가 왕을 해도 아무 이상이 없겠지.”
나는 관리 시스템을 쭉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점 시스템하고 거의 유사하네요. 그리고 예전에 신성 제국 제넨샤하고는 몇 가지만 빼면 완전히 같아요.”
왕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조금 오래 지나긴 했지만 이미 신성 제국 제넨샤에서 황제를 해먹은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그리 힘이 들진 않았다.
“그럼 적응한다고 시간 보낼 필요는 없겠네.”
“네. 벌써 거의 다 살펴봤어요. 좀 다른 점이라면…… 동맹국하고 적대국이 바로 나오네요.”
“그래?”
“좀 이상한 건. 에센시아 제국에서 동맹국 신청이 들어와 있어요. 일단은 준 동맹국이긴 한데.”
“호오. 그렇단 말이지? 준 동맹국이면 언제든지 깰 수 있는 동맹쯤 되는 거려나?”
이건 재중이 형도 좀 놀란 듯했다.
확실히 아직 우리가 정식으로 에센시아 제국과 동맹 관계를 맺은 건 아니었기에.
그러다 재중이 형이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황제가 동맹으로 인정한 모양이네. 전에 대담이 황제하고 왕이 만나는 자리나 다름없었으니.”
어떻게 보면 저 말이 유일한 단서이기는 했다.
이건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가 날 정상적인 왕으로 인정한다는 뜻과 같았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런 준 동맹국 신청이 하나 더 존재했다.
“타란 제국도 일단은 준 동맹국 신청을 했어요.”
“큭, 카샤스 대공은 너무 노골적인데?”
카샤스 대공과도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적은 없지만.
준 동맹국을 신청했다는 건 우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정식 동맹 과정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카샤스 대공은 우리에게 원하는 게 명확했으니.
이쪽의 의도는 의심해 볼 필요가 없었다.
재중이 형도 크게 신경 쓰진 않는 듯했고.
“준 동맹국 정도는 맺어도 되겠지. 정식 동맹을 하기에는 아직 우리가 가진 세력도 없고.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 유저들 2000명이 있기는 한데 말이야.”
“당장 전력이라고 보긴 어렵겠죠.”
말이 좋아 로가슈 왕국 소속이지.
그냥 자기들 할 일을 하는 유저들일 뿐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라도 로가슈 왕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는.
당장 에센시아 제국에서 받아준다고 하면.
두 손을 벌리고 소속을 바꿀 유저들이 상당수이지 않을까.
“우리가 줄 기여도도 없고. 문제가 생기면 딱히 붙어 있을 이유는 없지.”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 돌아다니기만 해도 수많은 퀘스트를 뿌려 기여도를 쥐여 주는 중이었다.
로가슈 왕국과는 달리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국가지.
잠시 생각을 한 뒤 손을 올려 관리 시스템을 눌렀다.
《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준 동맹국 신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 타란 제국 대공에게 준 동맹국 신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대공쯤 되면 황제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도 있는 듯했다.
곧 둘 다 허락을 하자 바로 동맹국 시스템에 두 나라가 등록됐다.
《 로가슈 왕국 동맹국 목록 》
- 에센시아 제국 (준 동맹국)
- 타란 제국 (준 동맹국)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동맹국이 둘이나 늘었네요.”
“그것도 제국으로만 말이지.”
누가 이 목록을 보면 두 눈을 비비면서 잘못 봤나 할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영토도 없는 왕국의 동맹이 왕국도 아닌 죄다 제국밖에 없으니까.
“동맹은 됐고. 유저들 관리 시스템은 어때?”
“특별히 문제될 건 없어 보여요.”
2000명의 유저들이 쭉 목록에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일일이 확인을 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이쪽은 목록을 닫아둔 상황이었다.
“로가슈 왕국을 엎어 버리려고 들어온 놈도 분명히 있을 거다.”
“절 죽이고 로가슈 왕국을 차지하려고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목록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간 낭비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날 만날 수 있을 때나 성립하는 일이라.
애초에 난 로가슈 왕국의 유저들을 굳이 찾아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에센시아 제국 내에 있는 이상은.
아마 특별히 손을 쓰지 않아도 당분간은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 유저들이 잘못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멀리 나가서 죽는 것까지 내가 관리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냥 숫자상으로만 2000명을 유지하고 있으면 된다.
그 숫자가 의미가 없어질 때까지만.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사장님은요?”
“아, 지금쯤 열심히 길 찾아서 오고 계실걸?”
“그런데 여기 들어올 순 있어요?”
현재 우린 황녀궁에 있으니까.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말했다.
“앞에서 모시고 와. 아마 혼자선 궁 안에는 못 들어올 거야.”
그렇게 전사 형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을 데리고 황녀궁으로 돌아왔다.
“어휴, 여긴 왜 이렇게 무너져 있냐.”
“누추하지만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구나.”
“안에서는요.”
둘 다 마주 보며 웃고는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길드원들 전부 다 로가슈 왕국으로 넣으셨죠?”
“그래. 모험이기는 했는데. 다행히 잘 먹혔구나.”
이번 일로 수혜를 본 건 최강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전사 형이 날 보면서 말했다.
“아, 그리고 네가 볼 사람들이 더 있는데?”
“누구요?”
“보면 반가울 사람들.”
그리고 황녀궁의 한쪽 벽 뒤로 몇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에요.”
“언제쯤 보나 했어요.”
그곳에는 달 길드 길마인 스칼렛이 미소와 함께 서 있었고.
옆은 치맥 길드의 이슬두잔도 반가운 표정을 하고 날 바라봤다.
“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이군요.”
설마하니 이들도 로가슈 왕국을 선택했을 줄은…….
복귀를 하고는 이번이 처음 보는 자리였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덤덤해서 이상한 기분도 들었고.
“나도 있어요.”
그리고 뒤에서 엔느도 모습을 드러냈다.
길드 마크가 없는 상태로.
아마 미르 길드에서는 나온 거려나……?
다소 볼멘 표정을 지은 엔느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말했다.
“복귀하면 바로 찾을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할 뻔.”
“아…… 그건.”
엔느와 달리 스칼렛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슬두잔은 좀 아쉽다는 표정 정도인가?
스칼렛이 먼저 나서서 대신 말해 주었다.
“우리도 우리 대로 바빴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된답니다.”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슬두잔도 괜찮다는 듯 말했다.
“그간 카이저님께 사정은 다 들었어요.”
그 말에 사장님을 보자 사장님이 바로 웃어 보이셨다.
“네가 신경 쓸까 봐 내가 알아서 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사장님이 다 부른 거예요?”
“그래. 이제 성마대전을 치러야 하니까. 모두가 필요할 거야.”
그런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전에. 다들 레벨이 어떻게 돼요?”
“레벨?”
“네, 안 그래도 이번에 들어갈 곳이 있거든요. 거기가 좀 센 곳이라.”
레오나 에센시아의 기사단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불안한 감이 있었는데.
때마침 좋은 전력이 생겼다.
“에센시아 제국의 황실 비밀 던전. 여길 우리가 독점으로 따냈어요.”
뜻밖의 말에 스칼렛과 이슬두잔, 엔느 모두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다들 들어가서 사냥 좀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