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9화 성마대전의 시작 (7)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에 잠시 멍하니 접속 가능 국가의 목록을 바라보기만 했다.
- 에센시아 제국 ( 선택 불가 )
- 타란 제국 ( 선택 불가 )
- 베르마 제국 ( 선택 불가 )
- 요하스 성국 ( 선택 불가 )
- 에일 왕국 ( 1527 / 2000 )
- 르바탄 공국 ( 1235 / 2000 )
- 바밀 왕국 ( 1552 / 2000 )
- 로엔 왕국 ( 1413 / 2000 )
- 헤멘 왕국 ( 1274 / 2000 )
- 오르가 왕국 ( 1614 / 2000 )
- 크록스 왕국 ( 1298 / 2000 )
- 테난 공국 ( 1367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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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시아 왕국 ( 1824 / 2000 )
- 로가슈 왕국 ( 1439 / 2000 )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맞는 수치인가?
시간이 더 지나 무려 1400명이 넘는 유저들이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 것을 확인한 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니.
대체 로가슈 왕국에 뭘 받아먹을 게 있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한 거지?
나조차도 모르는 걸 다른 유저들이 알고 있을 리는 만무하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건 답이 없었다.
영토조차 없고 가진 자원도 하나도 없는 국가를 선택한다?
이건 거의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유저가 140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면 바로 2000명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승세도 가파랐고.
물론 다른 왕국들을 선택한 유저들의 숫자가 적은 건 절대 아니었다.
대부분의 왕국들 역시도 천 명대가 넘어가는 유저들이 선택을 하면서 충분히 숫자를 채워가는 중이었다.
개중에 좀 더 인기가 있는 몇몇 왕국들에서는 이미 거의 2000명에 가깝게 자리를 차지했다.
특수한 아이템 혹은 유적 등이 존재하는 왕국은 당연히 인기가 좋았다.
거기다 예상과 달리 전방에 가까울수록 유저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 같았다.
대부분의 최전선 쪽 왕국들이 먼저 숫자가 채워지고 있었으니까.
이건 아직 한 번이라도 죽으면 바로 성마대전에서 탈락한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았다.
만약 처음부터 알려주었다면 오히려 후방에 있는 왕국들의 선호도가 높았을 테니까.
아이템이나 유적을 떠나서 말이지.
그리고 각 제국과 성국에 가까운 왕국들 역시도 예상대로 선호도가 높아 보였다.
이들은 말 그대로 왕국으로 시작해 바로 제국으로 갈아타려고 진로를 정한 유저들일 것이다.
실제 이동 거리를 고려해 보면 너무 먼 왕국들은 제국으로 가는데만 며칠씩 걸릴 테니까.
남들은 다 앞서나가는데 이동만 하다가 볼일 다 볼 생각이 아니라면야…….
가급적이면 제국에 가까운 왕국이 선택하기에 좋았다.
그런 몇몇 왕국들은 이미 정해진 인원이 꽉 차서 빨간불이 들어와 버렸다.
- 아놔. 늦었다.
- 뭐가 이렇게 빨리 차는 거야?
- 보고 선택할 여유도 없잖아.
- 쯧쯧. 그러니까 미리 준비했어야지.
- 이미 알짜 왕국들은 다 찬 듯.
- 이러면 후방 왕국밖에 없는데…….
- 휴. 좀 일찍 고르는 건데 실수했네.
- 제국은 좀 안 열어줌?
-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제국 열어 주려나?
- 맞아. 2000명은 너무 적잖아.
- 에이 나라가 70개가 넘는데 그렇게 적은 숫자도 아님.
- 끝까지 선택 못 한 사람은 그럼 나가리임?
- 어디 필드 한구석에서 시작하겠지 그럼.
- 휴. 어디라도 빨리 골라야겠다.
글쎄.
누가 실수일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기도 하고.
전방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닐 테니까.
실제 최전방에 가까운 왕국 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하는 왕국들이 반드시 나온다.
아이템에 눈이 혹해서 고른 유저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그들은 곧 난민이 되거나 죽어서 성마대전에서 탈락하게 될 것이다.
그중 몇몇 유저들이 로가슈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길래 궁금해서 열어 봤는데.
내용을 보고는 그만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말았다.
- 야, 로가슈 왕국 왜케 인원이 많냐?
- 그러게. 누구야 로가슈 왕국 고른 놈들?
- 여기 지도에 영토도 안 나오지 않음?
- ㅇㅇ. 아예 없음.
- 그런데 로가슈 왕국 고른 새끼들은 뭔 깡이냐?
- 고를 왕국이 없어서 고른 거 아냐?
- 아직 다른 데 고를 곳 많을 텐데.
- 일부러 고른 게 맞는 듯.
- 잘못하다가 다른 대륙에서 시작하는 거 아님?
- 와, 그러면 앞이 깜깜하다. 배 타고 넘어와야 하는 거네.
- ㅋㅋㅋㅋ. 아마 성마대전 끝나면 도착할 듯.
- 아놔. 또라이들 많네.
- 땅도 없어. 자원도 없어. 아이템도 없고. 대체 뭘 보고 고른 거지?
- 딱 하나 있잖아.
- 뭐?
- 주호. 여기서 시작했잖아.
- 그거 하나 믿고 시작하기는 좀 아니지 않나?
- 에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주호가 총 맞았다고 로가슈 왕국으로 했겠음? 뭔가 있다니까?
- 그러게. 주호가 하는 것치고 잘 안 되는 건 못 본 듯.
- 나중에 봐라. 미리 주호 코인 타야 떡상 한다니까?
- 와. 진짜 로가슈 왕국의 모든 게 다 말이 안 되는데. 주호 하나 집어넣고 나니 말이 되는 것 같은데?
- 크크, 나중에 봐라. 대박 터질 거다.
“하…… 설마 나 때문에 골랐다고?”
다시 현기증이 나려는 걸 버텨 내자 어이없어서 실소가 났다.
나야 중간에 사칭 좀 한다고 제일 안 걸릴 것 같은 로가슈 왕국을 들이민 건데.
그게 하다 보니 내가 선택한 중요한 국가가 되어 버린 상황이라…….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만한 일이었다.
이건 뭐 다 같이 죽자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저들이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저들을 신경 쓸 만큼 내 상황이 녹록하지도 않고.
당장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숫자가 차는 걸 기다리고 있자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재중> 로가슈 왕국 인원 봤냐? 대박인데?
<승호> 네,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에요.
<재중> 크큭. 어느 미친놈들이 골랐는지 몰라도. 아주 썩은 동아줄을 잡았어.
재중이 형조차도 로가슈 왕국을 썩은 동아줄에 빗댈 정도다.
정말 아무것도 해먹을 게 없는 이름뿐인 나라니까.
앞으로 지원 하나 없을 로가슈 왕국 난민들에게 미리 사과부터 해야 하려나.
<승호> 대체 운영자들은 뭘 원하고 이런 거죠?
<재중> 흐음. 재밌게 한번 치고받아 봐라?
<승호> 썩 즐겁진 않겠네요.
당장 유저들끼리 칼질 해봐야 마왕군 좋은 일만 해주는 거라.
오히려 유저들이 이곳저곳 왕국을 먹고 난 뒤 후방에서 난장판을 치게 되면 그때부터는 진짜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걸 원해서 로가슈 왕국을 시스템에 넣었다면.
만든 놈도 정상적이진 않겠는데.
<재중> 로가슈 왕국 유저들. 어떻게 할 거냐? 만약 모으려고 하면 네가 구심점이 될 순 있어.
<승호> 흐음. 글쎄요. 고민 중이에요. 왕국도 없는 판에 모아서 어쩔까 싶기도 하고요.
<재중> 그럼 어디 땅이라도 하나 사야 하려나?
<승호> 로가슈 왕국을 진짜로 세우게요?
<재중> 나쁘진 않지. 시스템이 그렇잖아.
재중이 형 말대로 시스템이 보장하는 왕국이다.
유저들도 하기 따라서 진짜 왕국을 가질 수도 있는 노릇이고.
땅만 있다면 말이지.
거기다 성도 세우고 성벽도 올리고.
꽤나 돈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는 작업일 것이다.
이전에 거점을 만들 듯이.
왕국도 세우면 그만이었다.
때마침 왕자라는 좋은 직위도 있고.
문제는 적당한 땅이 없다.
잠시 한숨을 쉬고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승호> 알다시피 괜찮은 땅은 다 주인이 있어요.
크루아 대륙에는 무려 70개가 넘는 국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도 전부 서로의 국경선을 마주한 채로.
아주 빡빡하게.
각 나라의 영토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이라면.
누군가의 깃발이 반드시 올라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승호> 어디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성을 세울 생각이 아니라면…….
내가 말을 아끼자 재중이 형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재중> 다른 나라의 영토를 뺏어야겠지.
<승호> 한참 성마대전이 일어나고 있는데 타국의 영토를 뺏겠다고 전쟁을 벌이면 좋아할 곳이 하나도 없을 걸요?
잘못하면 진짜 같은 인간군들에게 다굴을 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건 아마 괘씸죄 정도가 되려나.
서로 연합해서 마왕군을 막아내도 모자랄 판에 뒤통수를 치는 일이라.
한마디로 지금 당장은 하고 싶어도 쉽게 로가슈 왕국을 세울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재중>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승호> 네?
<재중> 마음 놓고 뺏어도 되는 곳이 있잖아.
<승호> 그런 곳이 있을 리가…….
그러다 머리에 스쳐 지나가듯 생각들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런 곳이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영토를 늘리면 늘릴수록 환영받을 것이다.
<재중> 너도 알겠지?
<승호> 네. 아예 최전선의 마왕군 영토를 뺏자는 거잖아요.
<재중> 빙고. 꽤 재밌겠지 않아?
<승호> 엄청 어렵고 재밌겠죠.
한참 최전선에서 천사 진영과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마왕군의 영토를 뺏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천사와 마왕군 양쪽에서 가지고 있는 자원.
베르탈륨과 헤르마늄 광산.
이걸 차지하려면.
결국 그 땅따먹기에서 이겨먹어야 한다.
거기다 그 영토를 유지할 병력도 있어야 하고.
우리가 계속 머물며 그 광산들을 지킬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
누군가는.
이 일을 대신 해주어야겠지.
그리고 그런 일을 해줄 사람들은…….
<승호>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도움을 받겠는데요.
<재중>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가서 보고. 그래도 쪽수는 있으니까 해볼 만은 할 거야.
아까는 로가슈 왕국을 선택한 유저들을 보고 골치가 아팠는데.
그 많은 유저들의 숫자가 갑자기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그 숫자만큼의 NPC를 고용해야 했다면…….
휴.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네.
반면에 유저들은 다르다.
유지비라 할 수 있는 건.
꼭 돈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지불해도 충분히 되는 일이라.
<승호> 어떻게 보면 귀중한 병력이네요.
<재중> 그래. 쉽게 구할 수 없는 병력이지.
그때 마침 로가슈 왕국의 선택 인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재중> 휘유~! 기어코 다 찼네.
- 로가슈 왕국 ( 2000 / 2000 )
이로써 로가슈 왕국은 더 이상 인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초기 선택 인원일 뿐이었다.
단순히 2000명으로 끝날지도 않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 나라를 선택한 수많은 유저들의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마대전이라…….
이러면 그럭저럭 해볼 만은 하겠는데?
바로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주호> 유저들에게 미션을 좀 줘야겠어요.
시작은 너희들이 했지만.
그 끝은 내 방식대로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