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7화 성마대전의 시작 (5)
이거 말이 되는 건가?
과거 성마대전의 원 역사에서는 로가슈 왕국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는 했는데 등장하기에는 거리상으로 너무 멀다고 해야 하나?
크루아 대륙에서 배타고 남쪽으로 한참 나가야 존재하는 다른 작은 대륙인데다가.
애초에 로가슈 왕국은 크루아 대륙으로 넘어오기 전에 거치는 일종의 적응을 위한 장소나 다름 없었다.
본 역사와 섞이는 건 아주 나중에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 로가슈 왕국이…….
지금 공지사항에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유저들이 선택 가능한 나라의 목록에.
『 인간 진영 성마대전 참전국 목록. 』
- 에센시아 제국
- 타란 제국
- 베르마 제국
- 요하스 성국
《 해당 국가는 일정 조건을 달성해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 에일 왕국.
- 르바탄 공국.
- 바밀 왕국.
- 로엔 왕국.
- 헤멘 왕국.
.
.
.
- 가르시아 왕국.
- 로가슈 왕국.
총 73개국.
일단 유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나라의 목록은.
제국 세 곳에.
성국까지.
거기다 왕국은 거의 70여 개에 육박할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
개중 몇 곳은 원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나라들이기도 했고.
우리도 처음 이름을 들어보는, 전혀 모르는 왕국도 꽤 보였다.
문제는…….
당장 선택할 수 없는 제국이나 성국 같은 게 아니라.
로가슈 왕국.
아니.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은하에게 말했다.
<승호> 로가슈 왕국? 내가 아는 그 왕국 맞아?
<은하> 네, 오빠. 맞는 것 같아요. 국가별 부가설명이 로가슈 왕국의 특징하고 완전히 같더라고요.
<승호> 하.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거지? 운영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본래라면 로가슈 왕국은 선택 가능하면 안 되는 국가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그 로가슈 왕국을 사칭하고 있는 중이라서.
그것도 난 왕자 놀이를 하는 중인데.
이 와중에 유저들이 선택 가능한 목록에 로가슈 왕국이 들어가면 상황이 꽤나 복잡하게 된다.
<은하> 괜찮을까요?
<승호> 아직은 모르겠어. 일단 안에 들어가 봐야 확실히 알 거 같긴 한데…….
<은하> 아직 접속은 안 돼요.
<승호> 그래? 당장 확인해 보려고 해도 확인할 수가 없겠네.
<은하> 아까 재중이 오빠한테 연락 와서 알아본다고는 했어요.
<승호> 음. 형이라면 뭐라도 알아내겠지.
일단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만약에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승호> 여차하며 에센시아 제국 버리고 튀자.
<은하> 오빠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승호> 사실 선택지가 없어.
<은하> 네, 정체 들통나면 우리가 위험하잖아요. 그럼 타란 제국으로 가는 거예요?
<승호> 으음. 다른 곳도 꽤 존재하기는 하는데…….
당장 공지사항에 미리 올라온 선택 가능한 제국이나 성국, 왕국 목록만 해도 한가득이었다.
꼭 어떤 나라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없긴 한데.
그래도 이왕이면 타란 제국이 낫지 않을까.
화련도 그쪽에서 귀족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란 제국의 대공인 카샤스 대공도 있으니까.
<은하> 카샤스 대공은 사칭한 걸 넘어가 줄까요?
<승호> 으음. 모르지. 정 안 되면 아크 드래곤 잔해라도 좀 넘겨주던가.
이건 일종의 뇌물이다.
타란 제국에 정착하기 위한.
만약 이것도 없었다면 카샤스 대공과 다시 얼굴 맞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승호> 그런데 선택 불가능한 나라는 왜 저런 거야?
<은하> 아, 성마대전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해요. 원래 세상에서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면 가능하다는데…… 아직 공개는 안 됐어요.
하긴.
우리는 마왕 바이카르의 마왕성을 통해서 성마대전에 진입했었다.
그렇게 해서 에센시아 제국 근처에 떨어질 수 있었고.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성마대전이라는 무대에 처음 입장했을 때의 조건에 따라 선택 위치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승호> 원래 세상에서 마왕하고 친구 정도는 먹어줘야 제국과 같은 나라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혹 마족을 죽이거나. 아니면 귀족 작위가 있어도 될 테고. 특별한 공적을 세워도 가능할지도.
조건이야 생각해 보면 너무 많았다.
그게 뭐가 되느냐의 문제지.
<은하> 그럼 아마 대부분의 유저들은 왕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승호> 흠. 시작점이 다르다는 거려나.
성마대전에서 제국과 왕국은 실상 어마어마하다고 할 정도로 그 격차가 심했다.
당장 영웅 타이틀이나 용사 후보 같은 타이틀만 해도 그 개수부터 한참이나 차이가 나지 않던가.
그 숫자만큼이나 그들 사이의 국력에서 차이가 난다는 뜻이 된다.
초기엔 제국을 기반으로 삼느냐 왕국을 기반으로 삼느냐는 시작점부터가 한참 차이난다는 거겠지.
뭐 어느 장소에 떨어지든 자기가 잘하면 어떻게든 뚫고 올라오겠지만.
앞으로 일어난 성마대전을 고려해 보면.
제국 쪽에서 시작하는 편이 훨씬 이득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저 타이틀은.
왕국에서는 정말 숫자가 적다.
유저들이 따려고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뭐 그건 제국도 마찬가지긴 한데.
비교적 제국에서는 공적을 세울 기회가 더 많을 테니까.
언제든지 버려지는 패로 써질 수 있는 왕국보다는.
아무래도 제국 쪽이 조건이 훨씬 좋다.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크루아 대륙의 원 역사에서도 왕국들은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박살난다.
마왕군에게.
당연히 그 왕국 안에 포함되어 있다가는 이렇다할 공적을 세워보기도 전에 죽어버릴 확률이 높았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왕국을 버리고 나와도 되겠지만.
그사이 세워놓은 해당 왕국의 공적들 역시도 다 포기한다는 뜻이 될 테니까.
애초에 처음부터 제국에서 공적을 쌓으면 되는걸.
성마대전이 진행하다 보면.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오게 될 것이다.
<은하> 다들 왕국에서 시작해서 제국으로 넘어오려고 하겠어요.
<승호> 아무래도 그렇겠지?
은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승호> 우리야 시작점이 에센시아 제국이니 신경 쓸 것 없지만.
<은하> 그런데 그 제국에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죠.
<승호> 하아. 그게 문제지.
운영자들이 이상한 저 왕국 추가 덕분에 우리만 곤란하게 되어 버렸다.
<은하> 우리가 손을 떼면 레오나 에센시아 건도 끝나겠어요.
<승호> 별수 있나. 당장 제국 황제가 목에 칼을 들이밀지 않으면 다행인 판에 5황녀는 물 건너가는 거지.
레오나 에센시아를 황제로 만들어주면 다 해결되는 일이지만.
당장 그 길은 멀고도 먼 일이라.
황제가 죽지 않고서야…….
<승호> 근데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언제 죽는다 했지?
<은하> 얼마 안 남았을 걸요?
<승호> 아직은 멀쩡하던데. 역시 황자나 황녀 중에 하나가 죽이려는 거려나…….
아마도 무력으로 죽이지 못하니 독을 쓴 것 같은데.
<은하> 황제를 우리가 살려주면 공적이 되지 않을까요?
<승호> 독을 미리 알려주자고?
<은하> 네, 그럼…….
<승호> 아쉽게도 그건 무리야. 황제가 믿지도 않을 테고. 우리 정체가 들통 나는 순간 바로 친밀도가 바닥칠 거라서.
<은하> 아, 맞다. 그렇죠.
이놈의 로스트 스카이의 NPC들은 친밀도가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똑같은 말을 해도 친밀도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이라.
당장 황제 앞에서 독 이야기만 꺼내도 감옥에 갇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독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수가 아니라는 거다.
<은하> 전에 썼으면요?
<승호> 그럼 황제가 죽지 않으니까 5황녀를 황제로 만들 수 없겠지.
여러모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선택이긴 하다.
지금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일단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유저들이 로가슈 왕국을 선택하는 쪽이었다.
그때 은하가 내게 한 가지 내용을 전달했다.
<은하> 아, 오빠가 더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로가슈 왕국 부가설명 한 번 눌러봐요.
<승호> 응? 이게 더 보여지는 게 있어?
그러면서 공지사항에서 로가슈 왕국을 눌러보자 바로 세부 정보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세부 설명을 보자마자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승호> 이거. 난리 나겠는데…….
『 인간 진영 성마대전 참전국 목록. 』
- 로가슈 왕국.
대륙의 위치나 세력 같은 건 어차피 이미 지나쳐온 유저들이 너무 잘 아니까 넘어가더라도.
그다음 설명들이 문제였다.
『 왕국 주요 인물. 』
- 제1왕자 주호.
순간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운영자들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승호> 이거 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정말 왕자잖아?
<은하>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승호> 이러면 사칭이 아니게 되는데…….
운영자가 직접 올려주었다면 아예 로가슈 왕국을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아니, 그런데.
진짜 NPC도 아닌 날 왕자로 만들었다고?
대체 이 녀석들 뭐하는 생각인 거지?
그때 은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은하> 혹시 오빠…… 유저들도 왕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아닐까요?
<승호> 응? 방금 뭐라고?
<은하> 그러니까 유저들도 하기에 따라 왕국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싶어요.
<승호> 흐음…….
확실히 은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내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승호> 그러니까 왕위를 원하면 쟁취하라 이건가?
<은하> 네, 유저들은 정보가 많잖아요. 특히 몇몇 왕국에 대해서는 조사하기에 따라 엄청난 정보가 쌓일 걸요?
이건 우리도 당장 제국의 정보를 모아봤으니 잘 알겠다.
에센시아 제국만 해도 과거의 흔적들을 긁어모으면 꽤 그럴듯한 정보들이 모이게 된다.
왕족들의 상황이라던가.
귀족들마다의 성향, 세력비.
혹은 나라의 경제 상태.
위험도.
보유하고 있는 세력 등등.
거기다 특수한 아이템과 스킬 같은 경우도 그렇고.
유저들 하기에 따라 잘만 이용하면 정말 왕국을 뒤집어엎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리는 유저들의 세력이 크면 클수록.
더 그렇게 하긴 수월할 테고.
뭐 당장에야 적응해야 해서 이를 드러내진 않겠지만.
성마대전이 한참 진행되고 있으면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지만 않는다면.
정말 왕국 하나 꿀꺽하는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잘하면…….
제국까지도 가능할 테고.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당장 나만 해도 레오나 에센시아를 데리고 에센시아 제국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 지금까지 실행에 옮기는 중이기도 했고.
다른 유저들이 비슷하게 하지 말라는 법은 절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유저들도 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승호> 앞으로 꽤 피곤해지겠는데?
<은하> 역시 그렇겠죠? 유저들이 끼어들면 역사가 많이 바뀔 거예요.
<승호> 흠. 그 정도를 한참 넘어갈 걸? 당장 마왕군이 아니라 유저들끼리 서로 목에 칼을 들이밀 수도 있어.
<은하> 그럼 성마대전이 정말 엉망이 되겠어요.
모두 합심해서 힘을 모아도 이길까 말까인데.
지금은 이미 개판을 칠 예정이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은하> 우리한테도 그럴까요?
<승호> 아, 유저들?
<은하> 왕위를 차지하기에는 제일 쉬운 길이잖아요.
은하 말대로 어떻게 보면 제일 만만한 왕국이 될 지도 모른다.
유저가 왕자인 왕국이라…….
그런 은하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
<승호> 한 번 덤벼보라지.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