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0화 황실 비밀 던전 (7)
처음에 르아 카르테는 영웅들 중 한 사람의 검이라고 알고 있었다.
성마전쟁에서 활약했던 영웅을 기리는 검 중에 하나.
실제 크루아 대륙의 원 역사에서도 그렇게 나와 있었고 그간 만났던 NPC들 대다수도 르아 카르테를 영웅의 검으로 불렀다.
시간이 지나 그 르아 카르테가 정령신의 무구라는 걸 알게 된 건 순전히 금속의 정령 덕분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외에는 정령신의 무구라는 걸 아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레오나 에센시아가 정령신의 무구를 언급했다.
아마 시점이 과거라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내가 르아 카르테를 얻었던 시점과 지금의 시대는 완전히 시간대가 다르니까.
현재에서 르아 카르테가 있었다면 당연히 과거 시대에도 르아 카르테가 존재할 것이다.
딱 한 자루밖에 없을 그 르아 카르테가.
<주호> 전에 에센시아 제국을 방문했을 때 느껴졌던 울림이 이것 때문이었을까요?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르아 카르테의 대략적인 울림으로 봐서는 제국성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불멸> 아, 네가 그랬었지. 제국성 지하 어딘가에 르아 카르테의 원래 주인이 있을 거라고.
<주호> 네, 그래서 그 주인을 찾으려고 했던 거고요.
에센시아 황실에 파고들기에 좋은 다리랄까.
당시에는 영웅이 될 레온 브라이더만큼 확실한 카드가 없었으니.
뭐 지금에 와서야 이미 레오나 에센시아라는 황녀와 손을 잡은 상태라.
미래의 영웅이 될 통곡의 벽인 비에른 백작 역시도 마찬가지.
에센시아 제국 황제를 직접 만나기도 했고.
카샤스 대공이라는 영웅도 옆에 있었다.
단순히 황실에 파고들 요량이라면 인맥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지금 와서 반드시 레온 브라이더를 그런 이유 때문에 찾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이젠 그냥 순수한 호기심 정도랄까.
기회가 되면 한 번쯤 봤으면 좋겠다는 정도?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과거의 주인은 어떤 식으로 르아 카르테를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레오나 에센시아의 말만 들어보면.
르아 카르테가 제국성의 비밀 던전에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것도 주인이 없는 상태로.
<주호> 르아 카르테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불멸> 그래. 그게 주인이 없는 상태일 줄은 몰랐지만. 에센시아 제국성의 비밀 던전에 있을 검이 제 발 달려 어디로 도망간 게 아니라면야. 있지도 않는 물건을 찾겠다고 레오나 에센시아가 이 순간에 저 말을 꺼냈을 리도 없었고.
다른 말로 지금 시점은 영웅이 될 레온 브라이더가 르아 카르테를 얻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라는 거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그 르아 카르테가 있을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갈 거라는 점이다.
원래 공략을 했어야 할 레온 브라이더보다 훨씬 이르게.
<불멸> 이거 참…… 이렇게 되면 역사가 개판으로 꼬이겠는데.
<주호> 하아. 그러게요.
영웅의 검을 든 레온 브라이더는 앞으로 영웅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것도 크루아 대륙에서 일어나는 성마대전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참여도가 높았다.
어지간한 중요한 전쟁에서는 거의 빼놓지 않고 레온 브라이더가 등장하니까.
반대로 말하면…….
레온 브라이더가 빠지게 되면.
그런 전쟁들의 결과가 다 삐걱이면서 바뀌게 될 수도 있었다.
처음에야 한두 번의 잘못됨이겠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전체 전쟁의 판도가 뒤집어질 것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불멸> 어차피 성마대전에서는 인간 쪽이 지잖아. 영웅 하나 없어지면…… 아마 좀 더 빨리 망하겠지.
<주호> 망하는 건 똑같다는 건가요?
<불멸> 시점의 차이랄까. 레온 브라이더가 있었다고 성마대전을 이긴 건 또 아니잖아.
<주호> 그럼 이대로 진행해요?
<불멸> 별수 있나. 들어갔다가 르아 카르테를 발견했는데 그냥 놔두고 올래? 나중에 진짜 영웅인 레온 브라이더가 가지고 가라고?
<주호> 으음…….
이건 고민이 된다.
아마도 그대로 두고 온다면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레온 브라이더가 비밀 황실 던전을 공략하고 르아 카르테를 가져갈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영웅이 될 테고.
반대로 우리가 르아 카르테를 들고 나오면?
그렇게 된다면 그냥 영웅 하나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거기다 원래의 역사 역시 개판으로 엎어질 거고.
잘못하면 종잡을 수 없는 흐름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원 역사가 뒤틀릴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는데 레오나 에센시아가 날 불렀다.
“주호 왕자?”
“아, 불렀나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정령신의 무구를 언급한 레오나 에센시아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름 레오나 에센시아도 자신의 비밀을 밝힌 셈이라.
대충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흐음. 영웅 목숨 하나 날아가는 생각요.”
“네?”
“아, 별것 아니에요.”
<주호> 형, 레오나 에센시아가 정령신의 무구를 그냥 두고 보진 않겠죠?
<불멸> 어, 같이 들어가면 무조건 얻으려고 할 거다. 애초에 목적도 그거 같으니까.
우리끼리 들어가면 선택지라도 있지.
레오나 에센시아가 같이 들어가면 그런 선택지마저 없어지게 된다.
혹 르아 카르테를 발견했을 때 레오나 에센시아를 말리게 되면 서로 칼부림까지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15 황실 기사단이 따라 들어가는 마당에.
지금에서라도 황실 기사단을 물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제국 황제가 자신의 기사단을 지원이랍시고 끼워 넣는 것도 배제하진 못한다.
그렇게 되면 완전 개판이 되는 거지.
공약은 둘째 치고 안에서 목숨 걱정 먼저 해야 한다.
그것도 아군일 녀석들에게서.
<주호> 아예 공략 안 하는 방법은요?
<불멸>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다만 몇 가지는 묻어야 해.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완전히 공략을 해버리는 경우.
제국 황제가 내 목을 따려고 노력할 것이다.
뭐 그때야 타이탄을 움직일 방법을 알려주면 그만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제국 황제가 내 목숨을 노리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순 없었다.
레오나 에센시아 말대로 비밀을 아는 사람이 적은 걸 좋아한다고 하니.
뭔 짓이든 못할까.
반대로 아예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타아탄에 들어가는 특수 정령석과 아크 드래곤의 심장에 대한 궁금증도 그대로 묻혀 버릴 수 있었다.
궁금증이냐.
실리냐의 문제이려나.
들어가지 않는다면 잃을 게 없긴 한데.
또 얻을 게 하나도 없기도 했다.
그와 달리 일단 들어가면 두 가지의 궁금증을 해결할 확률에 르아 카르테가 딸려 온다라…….
제국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타이탄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크 드래곤은 또 이야기가 다르다.
『 불완전한 키메라 아크 드래곤 하트 』
-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령의 기운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작 키메라 제작서가 있어도.
이놈의 아크 드래곤 하트는 현재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성마대전 중후반까지도 공략이 안 되는 아크 드래곤을 건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시점에서 아크 드래곤이 잡히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아마 다시 잡으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한 일일 테다.
제국 황제가 호구도 아니고.
솔직히 르아 카르테야 이미 한 자루 있기 때문에 여분으로 하나 더 준비한다고 치면 그것도 의미가 있긴 할 텐데.
어차피 죽으면 날아가는 건 매한가지라.
거기다 복사가 가능한 내게는 크게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얻으면 좋고.
아니라도 딱히 상관없는.
딱 그 정도.
무엇보다 두 자루를 얻는 게 가능한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한 시대에 하나만 존재하는 물건이니까.
뭐 이건 가져보면 아는 일이려나.
생각이 정리되자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물었다.
“황녀는 정령신을 어떻게 아는 거죠?”
“황실에 고대로 내려오는 문헌에 있어요.”
“그렇다는 건…… 황제도 알고 있다는 건가요?”
“네, 하지만 정령신의 무구에 대해서는 모를 거예요. 봉인된 문서에만 나오는 내용이라서.”
“봉인이 특별한가 보네요.”
“가문의 비밀이에요.”
“제가 황제에게 말하면 어쩌려고요?”
“그럼 황제가 주호 왕자의 목부터 베고 보겠죠.”
“비밀의 대가가 비싸네요. 목숨 값이라.”
“네, 황제는 그런 사람이에요. 그리고는 비밀 던전을 어떻게든 공략하려고 들겠죠.”
제국 황제를 보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저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려고 한다.
현재도 강하지만.
더 강해질 길이 있다고 하면 그걸 하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중간에 거슬리는 녀석들이 있다면 싹 치우고서라도.
그런데 원래 얻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 레오나 에센시아가 르아 카르테를 얻게 되면 역사가 어떻게 되려나…….
레온 브라이더의 자리를 5황녀가 대신할 수도 없을 텐데.
단순히 르아 카르테 하나 얻었다고 영웅이 될 것 같으면 일이 너무 쉽지.
초기의 르아 카르테는 그냥 깡통 검이다.
속이 비어 있는.
그걸 채울 만한 능력이 있어야 르아 카르테도 빛을 발한다.
“혹시 정령신의 무구를 얻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만약 호기심이나 장식품 정도로 얻으려는 생각이라면 지금쯤 말리는 편이 나을 지도.
어떤 연구 목적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질문을 하자 우리 팀들도 모두 궁금한지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유는…… 지금 주호 왕자에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 레오나 에센시아와의 친밀도가 너무 낮습니다. 》
《 해당 질문에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
시스템이 안 된다는 걸 보면 아무리 말을 돌려서 해도 못 듣는 내용일 것이다.
힌트 정도야 얻을 수 있겠지만.
괜히 여기서 더 파고 들어봐야 역효과만 날 터.
“그런가요. 때가 되면 말해 주세요.”
“네.”
아마 정령신의 무구 정도는 손에 들어와야 대답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레오나 에센시아는 모르겠지만.
르아 카르테만 있으면 타이탄을 움직일 방법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걸 노리고 하는 거라면.
정답이긴 한데 말이지.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치를 보아하니 거기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수도 있고.
일단 여기서는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었다.
“혹시 정령신의 무구가 비밀 던전을 완전히 공략해야 얻을 수 있다면요?”
“아, 그건…….”
“정령신의 무구가 쉽게 구해질 거라면야 벌써 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아직 비밀 던전 안에 있는 거겠죠. 다른 황자들과 황녀들이 모두 실패한 던전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령신의 무구로 칭해지는 물건이 그냥 비밀 던전 어딘가에 툭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던전의 마지막 단계 혹은 그보다 더 깊은 비밀 장소라던가.
그것도 아님 어떤 네임드를 잡아야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한마디로 그렇게 공략이 끝난 다음에 정령신의 무구를 얻는다고 해도.
제국 황제가 목을 노릴 거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쉽게 볼 일은 아닌 거지.
한마디로 공략을 실컷 도와줘 봐야 내 목숨 위험한 건 똑같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 팀 모두의 목숨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할 이유가 있느냐를 물어보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황제는 모를 거예요.”
“그걸 확신해요?”
“네. 사실 제겐 완전히 공략하지 않고도 정령신의 무구를 얻을 방법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