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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90화 (1,078/1,404)

#1089화 황실 비밀 던전 (6)

원 역사에는 황실 비밀 던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 던전이 존재한다는 정보만 존재할 뿐.

다른 말로 우리는 그 던전에서 무슨 몬스터가 나오며 무슨 아이템이 나오는지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추측이야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그 추측 중에 하나.

그간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보인 묘한 반응들과.

레오나 에센시아의 동행.

미완성의 비정상적인 타이탄.

이런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봤을 때.

나올만한 결론은 하나로 모여진다.

우리는 모르고 원 역사에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아이템.

혹은 어떤 재료.

“타이탄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아이템. 황실 비밀 던전 안에 있는 것 맞죠?”

내 물음에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어깨가 살짝이나마 흔들리는 게 보였다.

곧바로 자세를 잡아 원래대로 돌아갔어도 확실히 동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레오나 에센시아가 백기를 든 듯 짧은 한숨과 함께 말을 돌렸다.

“로가슈 왕국에는 인재가 많은가 봐요. 다른 왕국들은 그렇지 않던데.”

얼핏 다른 말을 한 것 같지만.

확실히 인정했다.

황실 비밀 던전 안에 뭔가가 있음을.

“칭찬이라면 고맙게 받도록 하죠.”

그 순간 레오나 에센시아의 태도가 아까의 차가운 느낌과 비슷하게 다시 바뀌었다.

“지나치게 똑똑한 게 문제라면 문제죠. 황제는 자기 머리 위에서 노는 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말투가 바뀌었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눈짓하자 재중이 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아마도 이게 본 모습인가 보네. 레오나 에센시아의.

<주호> 네.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하네요.

이전이 정제된 군인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보다는 더 날카롭고 잘 버려진 하나의 예리한 칼날을 보는 듯한 기운을 풍겼다.

<불멸> 그간 봤던 모습은 잊는 게 낫겠어.

<주호> 연기는 끝났다는 건가요?

<불멸> 아마도? 그리고 방금 황제에게 존칭도 하지 않았다.

<주호> 저도 들었어요.

제국 황제를 만났을 때 철저히 존칭을 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냥 황제를 황제라고만 불렀다.

이건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황제가 짜준 판 위에서 놀아야 만족한다는 겁니까?”

“특히 지금의 황제는 더 그렇죠.”

흐음.

이것 봐라…….

이제는 대놓고 황제를 그냥 부르고 있었다.

“황제가 사이가 그다지 좋진 않으신가 봅니다.”

“나쁘진 않지만. 좋다고 볼 수도 없겠죠.”

이전에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부분은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는데.

일단 레오나 에센시아는 그다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마리오네트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제국 황제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려나.

그러다가 레오나 에센시아가 내게 속삭이듯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그것도 완전히 뜻밖의 말을.

“황실 비밀 던전. 혹시 주호 왕자가 할 수 있더라도 완전히 공략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게 무슨…….”

“방금 본인 입으로 답을 말한 것 같은데.”

마치 똑똑한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거라는 듯 말하는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

반짝이는 은발이 바람에 스치듯 흐르자 그 속에서 나를 살피는 그녀의 묘한 눈빛이 보였다.

흥미?

기대감?

뭐 그런 종류의 느낌이려나?

“5황녀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까?”

“네.”

일단 황실 비밀 던전을 공략하자고 한 건 내쪽이고.

5황녀는 제국 황제가 밀어 넣은 사람이다.

황실 비밀 던전 안에는 타이탄을 움직일 무언가가 있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바로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이거…….

정말 제국 황제에게 놀아나고 있던 중이었나?

“제국 황제는 황실 비밀 던전이 공략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겠군요.”

“이해하시겠죠?”

황제의 그 느긋한 태도와 표정.

그게 어디서 나온 건지 대충 알겠다.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한쪽은 제가 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길이었군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아요. 주호 왕자는.”

그러더니 레오나 에센시아가 차가운 눈빛을 하고는 경고하듯 말했다.

“황실 비밀 던전의 공략이 끝나고 나면. 주호 왕자는 제국 황제에게 바로 죽을 거예요.”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의 말에 우리 팀 모두 깜짝 놀란 듯 나와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고 챠밍도 눈치챈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이겠죠?”

“여기 똑똑한 분이 한 분 더 계시네요. 소개가?”

“로가슈 왕국의 챠밍 공주…… 예요.”

공주라는 말을 하면서 조금 부끄러운지 챠밍의 볼이 살짝 빨갛게 변했다.

“아. 왕족이군요. 실례했어요.”

그러더니 우리 팀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담고는 안타깝다는 듯 말을 더 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아마 다 죽겠죠. 황실 비밀 던전의 공략이 끝난다면요.”

“타이탄의 가동 방법 때문인가요?”

챠밍이 묻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덕분에 타이탄의 효용도 확실히 봤으니까.”

그간 제멋대로 움직이는 타이탄 때문에 골치라고 했었지.

그런데 그런 타이탄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쓸모가 있어지는지 이번 방어전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당연히 제국 황제도 그 광경을 지켜봤을 테고.

“타이탄의 가동 방법을 아는 건 황제 자신뿐이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레오나 에센시아가 맞다는 듯 대답했다.

“황제는 비밀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무언가라면 더욱더.”

“주호 왕자가 그런 존재라는 말이겠네요.”

“정확하게는 비밀을 아는 자가 더 없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자 이번에는 레오나 에센시아가 슬쩍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로 에센시아 제국 시민들이 주호 왕자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어요.”

“그런가요.”

“네, 병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귀족들까지도요. 제국 황제가 지켜내지 못한 제국을 지켜냈다 정도면 되겠네요.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영웅은 항상 환영받으니까.”

그렇게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레오나 에센시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만한 능력도 있고요. 가진 말들의 시험도 겸해서.”

확실히 아크 드래곤을 잡지는 못해도.

제국에서 몰아내는 정도는 어떻게든 하지 않았을까.

마왕급의 존재라는 건 그 정도 힘은 가지고 있을 테니.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가 끼어든 거네요.”

“그것도 아크 드래곤을 잡아 버리기까지 했죠.”

“제국 황제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판이겠군요.”

좀 전에 분명히 레오나 에센시아가 말했었다.

제국 황제는 자기가 만든 판 위에서 노는 걸 원한다고.

그 말을 다시 뒤집어 보면.

내가 그 판을 죄다 엎어 버렸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원치 않는 판에.

공적 역시 싹 다 가져갔다.

거기다 타이탄까지.

<불멸> 레오나 에센시아의 말이 맞다면 스스로 목을 죄고 있었던 거네.

<주호> 아마도요.

딱히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황제와 그렇게 사이가 좋아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어차피 그런 의도라면 제국 황제가 날 죽이려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공략하지 않는 편이 조금 더 오래 살겠죠. 아직까지는 그 방법을 아는 이가 주호 왕자밖에 없으니까요. 적어도 주호 왕자에게 그 방법을 듣기 전까지 죽이진 못할 거예요.”

“억지로 입을 열려면?”

“그렇게 하실 건가요?”

“아뇨. 전혀.”

어차피 죽을 위기가 되면 그냥 에센시아 제국을 뒤로 하고 튀면 그만이다.

빠져 나갈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고.

비장의 수 정도는 늘 가지고 있으니까.

거기다 타란 제국에 한 발 걸쳐놓기도 했으니 일은 더 쉬울 터.

아.

그리고 보니 레오나 에센시아는 카샤스 대공이 몰래 따라 들어갈 거라는 걸 아직 모르고 있지?

이건 제국 황제도 마찬가지고.

뭐 일단 이쪽은 내가 패를 하나 더 쥐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여차하면 써먹을 수 있는.

솔직히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적절한 보상만 내어준다면 타이탄을 움직이게 해주고는 그대로 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이건 순전히 제국 황제가 나를 로가슈 왕국의 왕자라고만 생각해서 나온 오해의 결과였다.

유저인 난 보상만 확실하면 그 정도는 내어주어도 큰 상관이 없었다.

죽을 생각은 없지만.

죽는다고 딱히 아는 정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아니면 어차피 타이탄은 움직이지 못한다.

금속의 정령이 없으니까.

이걸 이야기 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한데.

아직까지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챠밍이 다시 나섰다.

“그렇다는 건…… 본인이 감시자라는 말이겠네요. 던전 공략이 끝났을 때 마지막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난 똑똑한 사람이 좋더라.”

맞다는 말이네.

“네, 맞아요. 난 제국 황제가 여러분에게 붙여둔 감시자입니다. 더불어 던전의 비밀을 캐올 명령도 하달 받았고요.”

그 말을 듣고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자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바로 물었다.

“혹시 상황이 위험해지면…… 절 구해오는 것도 포함입니까?”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레오나 에센시아는 감시자의 역할이자.

보호 역할도 겸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본 레오나 에센시아는.

분명히 강했다.

생각 이상으로.

그런 황녀를 그냥 감시자 정도로만 쓰진 않았을 터.

굳이 감시자를 하려면 다른 이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15 황실 기사단이라던가.

“네, 비밀을 캐기도 전에 죽어 버리면 곤란하잖아요. 무엇보다 목숨을 구해 줬다는 생색내기도 좋고요. 목숨 정도라면 타이탄의 가동 비밀과 교환하기에는 나쁜 조건도 아니겠죠.”

위험한 곳에 보내 살려 주고는 타이탄의 비밀과 교환한다라…….

전부 황제가 판을 짜두었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황실 비밀 던전을 들어가겠다고 한 순간부터.

자신이 이익을 최대한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온갖 혜택을 주며 의심을 희석시키기까지 했고.

“황제가 입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네요.”

아마 우리가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부터 속으로는 신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몇 가지 말을 더 해주었다.

“기사단은 최대한 제 명에 따라 주호 왕자를 지키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죽게 내버려둔다는 겁니까?”

“대부분 그렇게 되겠죠.”

“만약 죽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란 말로 들리는데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이건 마지막 공략이 끝난다면.

같이 싸우던 15 황실 기사단이 곧장 칼을 거꾸로 쥔다는 뜻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을 죽이기 위해.

“좀 더 오래 살려면 공략하지 말하는 말이 헛말은 아니군요.”

“잘 알아들으셨으니 다행이에요.”

레오나 에센시아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음, 주호 왕자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고 해두죠?”

그러자 옆에서 재중이 형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본인의 위험부담을 감수할 정도로? 그렇게 순진하신 분은 아닐 듯합니다만.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시죠.”

“똑똑한 분이 많네요.”

마치 속을 들켰다는 듯 재중이 형을 보고 짧게 웃은 레오나 에센시아가 곧 자신의 다른 속을 내보였다.

“황제 뜻대로 일이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은 작은 발악이라고 해두죠?”

그런데 재중이 형은 여전히 코웃음 쳤다.

이번 역시도 어림없다는 듯.

“그럴 의도만 있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겁니다. 그럼 이번엔 진짜를 말해 보시죠.”

“아…… 정말 너무 똑똑하네요. 주호 왕자 측근들은.”

그러더니 졌다는 듯 레오나 에센시아가 곧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꺼냈다.

“사실 저도 황실 비밀 던전에서 얻고 싶은 물건이 있어요.”

“그때까지만 서로 협조하자?”

“어차피 한배를 탄 것 아니었나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황실 비밀 던전에서 얻고 싶은 물건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물건인지 물어본다면 알려 주실 건가요?”

그때 레오나 에센시아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정령의 신이라고 아시나요?”

“……뭐?”

“정령신의 무구. 제가 얻고 싶은 건 바로 그 물건이에요.”

그 순간 이 공간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불멸> 하, 설마 여기서 르아 카르테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정령신의 무구.

그건 바로.

내가 들고 있는 르아 카르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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