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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89화 (1,077/1,404)

#1088화 황실 비밀 던전 (5)

보다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당장 성마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으로 직행하는 게 정답이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곳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이 존재했다.

일단 한 번 성마대전에 참가하고 나면.

다시 에센시아 제국성으로 돌아오긴 힘들 테니까.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우선 사항으로는.

황실 비밀 던전.

이곳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작업을 하기에는 너무 방해를 많이 받을 확률이 높았다.

다른 상위 황자나 황녀들이 없는.

이 타이밍이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소식은.

성마대전에 나가 있던 황자와 황녀들이 에센시아 제국으로 돌아오려다 이곳 소식을 전달 받고는 복귀를 취소해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카샤스 대공보다 먼저 돌아온 레오나 에센시아를 통해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성마대전에 나갔던 병력들은 다시 전선에 재배치했다고 해요.”

재중이 형의 추측이 맞아 떨어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에 나쁘지 않은 소식이군요.”

황자와 황녀들이 돌아오면 귀찮은 일들이 마구 쌓일 텐데.

적어도 그런 위험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던전 공략에 15 황실 기사단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어요.”

“급한 불은 껐네요.”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가서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리를 도와줄 병력이 필요하긴 했다.

그렇다고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어중이떠중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보다야 이쪽이 훨씬 낫겠지.

무엇보다 우리보다는 던전에 대한 정보가 많을 것이다.

미리 참고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공략 가능할 테고.

원 역사에는 이런 던전의 공략법까지는 나오지 않으니까.

결국 던전 공략은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기사단이 출정할 준비가 좀 필요하긴 해요.”

“네, 어차피 우리도 준비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라서요.”

“얼마나 걸릴까요?”

“음. 장비를 구하는 시간하고. 공략에 필요한 작전도 좀 짜야겠죠.”

그동안 다른 황자와 황녀들이 숱하게 실패를 하고 나온 던전을 아무 준비 없이 막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이건 당연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고.

다시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물었다.

“네이던 후작은?”

“주호 왕자가 요구했던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래도 하는 시늉은 한다는 거려나.

원래라면 1황자가 성마대전에서 에센시아 제국으로 돌아왔어야 하지만.

다시 돌아감으로 인해 네이던 후작이 중간에 붕 떠버렸다.

이러면 그냥 황제의 명을 이행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혹시 대장장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던가요?”

“구하고는 있다고 하는데. 쉽지 않은가 봐요. 공방을 맡고 있던 7 상업지구가 이번에 날아가는 바람에…….”

“흐음. 그건 곤란한데요.”

7 상업지구가 어딘지는 굳이 안 물어봐도 잘 알 것 같았다.

아크 드래곤과의 전투로 싹 날아가 버린 곳일 터.

당시에 아크 드래곤이 날뛰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방패전사> 하필 날아가도 거기가 날아가냐.

<주호> 그러게요. 만들어야 하는 게 쌓여 있는데 말이죠.

우선 가장 먼저 전사 형의 라지 쉴드부터 제작해야 했다.

기존에 쓰던 방패는 방어력이 너무 낮으니까.

정확히는 모르긴 해도 황실 비밀 던전의 레벨대는 상당히 높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나 전사 형에게도 부담이 될 만큼.

그러니까 결국 장비가 좋아야 부족한 레벨을 커버할 수 있는 셈이었다.

그걸 위한 대장장이가 구해지지 않아 잠시 한숨을 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의외의 말을 했다.

“사실 제가 아는 대장장이가 있어요.”

“그래요? 실력은?”

대장장이 NPC는 등급이 따로 있어서 어떤 물건을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등급이 결정한다.

그래서 높은 등급의 대장장이는 몸값도 비싸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대장장이는.

보통 대장장이로는 안 된다.

“인간이 아니라 드워프예요.”

그 말에 우리 팀 모두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일단 드워프면 기본은 한다.

어지간한 아이템은 다 만들 수 있고.

아크 드래곤의 재료까지 손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좀 많이 비싸요.”

“상관없죠.”

오히려 몸값이 비쌀수록 고맙지.

몸값이 어설픈 녀석들은 실력도 고만고만할 테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만들려는 물품은 그냥 적당히 잘해서는 안 된다.

그때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이 진지해지면서 내게 말했다.

“주호 왕자, 당부할 게 있어요.”

“무슨 일 있나요?”

“몰래 뒷거래하는 거니까 절대 황제 폐하가 알면 안 돼요.”

“으음. 그 드워프가 황실에서 일하나요?”

“네. 황실 비밀 연구소에서요.”

그 말에 나와 재중이 형이 바로 시선을 마주쳤다.

<주호> 형, 이거?

<불멸> 그래. 전에 그 타이탄 제작에 관련된 시설이다.

음.

여기서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몰랐는데.

“황녀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내 물음에 잠시 침묵을 하던 레오나 에센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사실 저도 비밀 연구소에 관여하고 있어요.”

솔직히 이 말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타이탄을 만드는 걸 제가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요.”

<불멸> 이거 참. 까면 깔수록 뭔가가 계속 나오는 황녀네.

<주호> 그러게요.

제국 황제와 레오나 에센시아는 처음부터 타이탄이 제국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런데 내 앞에서는 일단 모르는 척하면서 넘어갔었다.

지금 말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몰랐을 테고.

“왜 그걸 말해 주는 건가요?”

“이젠 한배를 탔잖아요. 신뢰를 위한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해 드려야죠.”

<불멸> 이거 생각보다 황실에서 황녀의 입김이 셀 수도 있겠는데?

재중이 형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타이탄을 제조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황실 비밀 연구소는 제국 황제가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핵심 기관에 5황녀가 포함되어 있다니…….

이 정도면 제국 내에서도 5황녀는 핵심인물이나 마찬가지다.

원 역사는 대체 얼마나 대충 서술해놓은 건지 모르겠네.

이건 처음부터 우리가 생각한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좀 놀랐나요?”

“네, 생각도 못 했죠.”

“아까는 이야기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어서요.”

확실히 제국 황제 앞에서 자기 정체를 밝히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한데.

그 이후에는 카샤스 대공이 계속 붙어 있었고.

말할 틈이 없었다고 보는 게 나으려나.

뭐 여기까지 말해주었다는 건.

물어보는 걸 대답해 줄 용의가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조금은 예민할 수 있는 이야기를.

“타이탄 제조 기술. 사실 천사들에게서 제공 받은 기술이죠?”

내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레오나 에센시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걸 어떻게……?”

“모르기가 더 어렵죠.”

사실 카샤스 대공에게 들은 거다.

아주 불만 섞인 말투로.

“그리고 불완전한 기술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 알고 있나 보네.

“네. 아쉽게도요.”

“아마 황제가 덤탱이 쓰고 샀으려나?”

덤탱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하자 바로 말을 정정했다.

“황제가 천사들에게 사기 당해서 강매 당했죠?”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조금 돈을 과도하게 쓰긴 했어요.”

뭔가 조금씩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아가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제국 황제도 제가 타이탄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겠죠?”

“네, 그래서 제국 황제께서 많이 양보하시는 중이시죠. 주호 왕자에게요.”

“그래서 앞에서 대놓고 요구하셨군요.”

“들어주실 걸 알았으니까요.”

이 정도면 거의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인데.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가장 궁금했던 점 하나를 물어보았다.

“왜 당신을 데리고 들어가라고 한 거죠? 공략도 안 된 황실 비밀 던전에?”

“그건…….”

“처음에는 솔직히 5황녀께 제국 황제가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듣다 보니 점점 아니었다.

단순히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황위 경쟁 싸움을 시키려고 우리를 붙여준 게 아닐 것 같았다.

음.

순서가 반대로 됐나?

우리가 황실 비밀 던전을 언급했기에.

5황녀가 딸려 나온 거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한숨을 쉬면서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물었다.

“황위 경쟁. 사실 그거 그냥 위장 아닌가요?”

순간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빛이 잔잔하게 내려앉으면서 왠지 모를 한기가 나오는 듯했다.

무너진 황녀궁 지붕 사이로 내려오는 햇빛에 반사된 은발이 그런 기분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묘하게 차가우면서도 싸늘한.

지금껏 알던 황녀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뭔가 하나둘 찝찝한 면이 없잖아 존재했는데.

지금 그걸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아주 잠시지만.

제국 황제와 같은 피부가 찌릿해지는 위압감이 레오나 에센시아의 가녀린 몸에서 흘러나온 듯했다.

“주호 왕자님은 정말…… 곤란하네요.”

<불멸>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주호> 네.

<불멸> 확실하진 않지만. 저 황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곧장 재중이 형도 긴장한 듯 자세를 낮췄고.

나 역시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언제라도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기 위해.

우리 팀 역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각자 전투 준비를 했다.

<방패전사> 이게 무슨 일이야?

<주호> 너무 긁었나 봐요.

상대가 적당히 감추려고 했던 핵심까지 한 번에 뚫어버린 셈이랄까.

아마 의도치 않았던 질문까지 나오는 바람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당황했을 지도 모르고.

우리와 황녀 사이에 차갑게 흐르는 묘한 기류가 흐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황녀가 기세를 풀어버렸다.

“여기서 은인에게 칼을 들이미는 건 역시 예의가 아니겠죠.”

그러더니 다시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고 다시 햇살이 무너진 지붕을 통해 내려와 주변 공기를 데워주기 시작했다.

싸울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

목 뒤가 뜨끔할 정도로 기세를 뿜어내다니.

느끼기에는 전에 카샤스 대공이 적당히 내뿜은 기세와 맞먹는 것 같기도 했다.

<주호> 전사 형. 5황녀는 역사에도 없었다면서요.

<방패전사> 쩝. 나도 좀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어떻게 이런 존재가 역사에도 한 줄조차 없었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아까 보았던 황자와 황녀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어도 레오나 에센시아를 어찌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재중이 형이 약간은 허탈한 듯 말을 꺼냈다.

<불멸> 설마. 세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세력이 필요 없는 거였나?

<주호> 그런 모양이에요.

<불멸> 본인이 저렇게 강하면. 애초에 세력이 있을 필요도 없지.

물론 세력이 있으면 좋기야 할 테다.

그런데 이미 제국 황제의 총애를 받는 듯한 모습인데.

더 이상 뭔가 필요할까.

그리고 딱히 세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당장 황실 비밀 연구소에 참가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황자나 황녀들은 존재 자체도 모르는 곳을 말이야.

거기다 15 기사단 역시 레오나 에센시아의 휘하에 있을 확률도 아주 높았고.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기사단을 아예 장악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한 뒤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물었다.

우리가 들어간다던 황실 비밀 던전에 기어코 5황녀를 끼어 넣은 이유가 있을 터.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둘씩 후보군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하자 곧 몇 가지로 압축되었다.

그중 가장 그럴싸하고.

확률이 높은 것.

“설마하니 비밀 던전 안에서 우릴 죽이라고 하진 않았을 것 같고…….”

내 흘러가는 떠보는 말투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럴 거라면 이미 한참 전에 제국 황제께서 나섰을 거예요.”

“던전 안에서라면 흔적도 안 남잖아. 좋은 기회일 텐데?”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못 하겠어요.”

외부에서는 일단 우린 에센시아 제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만약 우리를 죽이려고 들었다면.

제국 황제라고 해도 후폭풍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며 전사 형이 불만을 꺼내놓았다.

<방패전사> 이래서 꿍꿍이 많은 녀석들은 싫다니까.

<주호> 흐음. 아까는 분명 엄청 이쁘다고 하셨…….

<방패전사> 내가…… 뭐라고…… 했더라?

바로 고개를 돌리는 전사 형을 그냥 내버려두고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럼. 황실 비밀 던전에 있겠군요. 타이탄을 움직일 수 있는 뭔가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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