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6화 황실 비밀 던전 (3)
15 황실 기사단?
이전에 네이던 후작이 잠시 언급했던 기사단인데.
설마 레오나 에센시아가 그 기사단과 인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원 역사상에는 레오나 에센시아에 대한 정보가 미미하니까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15 기사단 말인가요?”
말이 좋아 황실 기사단이지.
귀족이 아니라서 특별한 뒷배 없는 녀석들이 밀려나다시피 모이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유배 기사단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황실 기사단과 15 기사단은 완전히 다른 존재랄까.
계급에 막혀 평민은 더 이상 상위의 기사단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력이 부족한가를 따지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하고.
애초에 실력이 없으면 황실 기사단이 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러니까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결국 신분의 벽에 막혀서 묶여 있는 케이스라는 거다.
<주호> 15기사단이 5황녀와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불멸> 5황녀도 숨겨둔 패 하나 정도는 있겠지.
당장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레오나 에센시아도 가진 전력을 꺼내들어야 했을 것이다.
당장 우리가 도와준다고는 해도 될지 말지 확신할 순 없을 테니.
“네, 15 황실 기사단은 현재 저를 따르는 중이에요.”
“흐음. 그렇단 말이죠.”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녀석이 생각났다.
레온 브라이더를 찾아서 지하 감옥에 갔을 때 만난 그 덩치.
분명히 네이던 후작이 15 기사단이라고 했었지.
<주호> 전에 그 덩치 녀석요. 분명 5황녀가 모르는 녀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불멸> 그랬지.
재중이 형도 생각난 듯 레오나 에센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멸> 일부러 모르는 척한 거네.
<주호> 네. 십중팔구는요.
<불멸> 그렇다면 왜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를 속이려고 했냐는 건데…….
딱히 나쁜 의도가 숨겨져 있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자리에 네이던 후작이 있기도 했었고.
아마 괜히 5황녀도 관심을 끌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찝찝한 건 털고 넘어가야 했다.
“혹시 전에 황녀님을 데려다 준 녀석…….”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가 아무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어요. 그자는 15 황실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에요.”
부기사단장?
그 말에 잠시 재중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불멸> 흐음. 생각보다 직책이 있는데?
<주호> 네, 실력도 있어 보였고요.
역시 그냥 어중이떠중이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의심이 남았다.
비록 한직의 기사단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황실 기사단이다.
그런데 그런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을 심부름꾼으로 쓰려면…….
어지간한 직책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예전에 예상했듯.
황실에서 일정 이상의 직책을 가진.
그것도 상당히 높아야 가능할 테고.
그런 인물이 지금 우리 눈앞에 있었다.
황실 내에서 황녀보다 높은 위치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뭐 황실에 황자와 황녀가 발에 치이다 싶게 많기는 한데.
딱 집어서 15 황실 기사단과 연관이 된 건.
지금 이 레오나 에센시아밖에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알기에는 말이지.
<주호> 물어볼까요?
<불멸> 전직 영웅 말이야?
역시 재중이 형도 생각하고 있었구나.
<주호> 네. 어떤 식으로는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때 그 덩치의 배후에 이 레오나 에센시아가 있다면.
5황녀는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때 당시 황실에서 황자 암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의심이 간다면 그건 전부 5황녀에게로 화살이 향한다.
심증은 있는데 증거가 없는.
딱 그 정도 상황이랄까.
황자 암살 사건은 원 역사를 본 우리밖에 모른다.
당장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을 가지고 황녀에게 추궁하듯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라.
<불멸> 일단은 두고 보자. 괜히 긁어서 문제 만들 필요는 없어.
<주호> 네. 잠시 미뤄두죠.
혹시 레오나 에센시아가 당장 이 모든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우리 일에도 차질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라.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결정을 했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는 표가 날 거니까.
대신 다른 쪽으로 물었다.
“믿을 수 있는 자들입니까?”
위험도가 높은 황실 비밀 던전에 들어가는데 믿을 수 없는 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럴 바에야 우리끼리 들어가고 말지.
특히 다른 외부의 입김이 들어간 기사단이라면.
중간에 분명히 문제가 된다.
“네, 15 기사단이 딱히 첩자를 심어놓고 할 정도로 다른 황자나 황녀들에게 위협적인 기사단은 아니니까요.”
“다른 녀석들이 경쟁 상대로도 안 본다는 거네요.”
내 직설적인 말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완전히 밀려난 기사단과 존재감 없는 황녀의 조합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엉망인 조합이다.
그런 기사단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거겠고.
<주호> 어떤 것 같아요?
<불멸> 딱히 틀린 말 같진 않는데? 의심스러운 곳이 좀 있긴 해도. 오늘 전까지는 경쟁자가 아닌 건 확실하니까. 굳이 여력을 내서 첩자까지 심을 수준은 아니었을 거야. 차라리 그 여력을 다른 세력에 더 투자하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첩자 때문에 고생하진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뒤에서 칼 잡고 돌진하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라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자들은 떼놓고 가기로 하죠. 던전 안에서 칼빵 맞는 건 사양이라.”
“칼빵?”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그냥 웃으면 말을 넘겼다.
“아. 그런 게 있어요. 뒤치기라고 해야 하나.”
옆에서 카샤스 대공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끼어들었다.
“배신을 조심하라는 거지.”
“알았어요. 의심스러운 자들은 최대한 골라내도록 하죠.”
사실 5황녀와 그 덩치가 제일 의심스럽긴 하다만…….
그렇다고 5황녀를 떼어놓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혹시 부기사단장인가 하는 녀석도 데리고 가야 합니까?”
“으음. 제가 알기로 기사단 내에서 실력이 제일 좋아요. 다른 기사단의 실력자들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고요. 믿을 수 있냐고 한다면…… 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기사단장은 믿을 수 있어요.”
흐음.
예상 이상으로 그 녀석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네.
그때 재중이 형이 묘한 늬앙스로 말했다.
<불멸> 혹시 연인이거나 뭐 그런 거려나?
<주호> 설마요.
<불멸> 역시 그렇지? 아무리 봐도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네.
미녀와 야수 정도가 아니라.
미녀와 몬스터 수준은 되지 싶었다.
5황녀의 취향이 그런 쪽이라면 딱히 할 말은 없긴 한데.
전에 마주쳤을 때 딱히 그런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리고 뭔가 이상한 마음을 품었다면.
벌써 기사단을 박차고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녀석이었다.
굳이 연 떨어진 5황녀 곁에 붙어있지 않아도 말이지.
“좋아요. 황녀님을 믿어 보죠.”
<주호> 형, 전사 형에게 따로 조사를 좀 부탁할게요.
<불멸> 큭. 역시 못 믿는 거지?
<주호> 네. 아까 말한 대로 칼빵 맞긴 싫거든요.
일단 앞에서는 믿어본다고 했지만.
다른 녀석들에게 뒤통수 맞아본 게 어디 한두 번이 아니다.
심심하면 배신하고 칼침 놓는 놈들이 천지라.
“네. 그럼 15 황실 기사단을 준비 시킬게요.”
* * * * *
황녀와의 대담은 추가 전력인 15 황실 기사단을 추가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쪽은 황제의 인가만 있으면 가능한 일인데다가 딱히 황제가 허락하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그대로 될 것이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황제를 만나러 가고 남은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아마 들어가면 좀 걸릴 거야.”
“기다리라는 건가?”
“설마. 일개 왕자가 제국의 대공을 기다리게 할 수 있나.”
사실 이게 맞는 말이다.
평범한 관계였다면 다리를 붙자고 기다려 달라고 해도 대공이 들어줄까 말까인데.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카샤스 대공이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나도 들어간다.”
“……뭐?”
“기다리기만 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언제는 제국 황제가 싫어할 거라며?”
“내가 황제 눈치를 볼 것 같은가?”
“아니.”
이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제국 황제의 눈치 따윈 1도 보지 않는다.
<불멸> 괜찮겠지.
<주호> 네, 우리야 땡큐죠.
무려 영웅 후보도 아닌 그냥 영웅이다.
가진 바 능력은 다른 이와 비할 바가 못 된다.
논하는 것 자체가 실례지.
당장 저 15 기사단이 통째로 들어가는 것보다 이 카샤스 대공 한 명이 더 강력할 것이다.
“어떻게 들어가려고? 아무리 그래도 에센시아 제국의 던전인데.”
타국의 대공이 들어가려는데 과연 그냥 둘까.
그것도 제국의 치부가 존재하는 장소를.
“적당히 기사단 옷 하나 입고 들어가면 되겠군.”
“정말 진심이네.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가려는 이유가…….”
“죽어서 나오면 곤란하니까.”
“으음. 눈물 나게 고맙긴 하네.”
“고마운 줄 알면 타란 제국으로 넘어와라. 여긴 아무리 봐도 대접이 엉망이군.”
카샤스 대공이 보기에는 내가 받는 대접이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실이기도 하고.
“사서 고생이지 뭐.”
원 역사를 보면 후에 절대 얻지 못하는 물건이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 있었다.
적어도 그건 가져야 하니까.
그리고 타이탄 역시 마찬가지.
첨부터 몰랐으면 넘어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해먹을 게 지천에 널렸는데.
그깟 대접 좀 못 받는다고 손 놓을 내가 아니다.
“특별할 일이 없는 이상 황녀는 허가를 받아올 거야.”
“곧 들어가겠군. 그럼 나도 준비를 좀 하겠다.”
그러더니 카샤스 대공이 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자신이 타고 온 용에게로 가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누가?”
“제국 황제요.”
“카샤스 대공이 알아서 하겠지.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진 않을 테니.”
흐음.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건 괜히 내 착각이려나.
카샤스 대공이 따라 들어가는 것 자체가 반칙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나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이후에 제국 황제가 따진다고 해도 말이지.
“우리도 준비 좀 하죠. 다른 녀석들이 오기 전에.”
카샤스 대공은 단독으로 움직여서 빨리 도착했고 다른 녀석들은 각자 거느린 군단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복귀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성마대전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병력을 빼야 하니까.
무작정 병력을 다 빼버리면 그 이후에는 안 봐도 뻔하다.
“어쩌면 안 돌아올 수도 있겠는데?”
“네?”
“보다시피 제국이 멀쩡하니까.”
“아…… 그렇죠.”
재중이 형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하자 나 역시 납득해 버렸다.
원래라면 초토화되었어야 할 제국성도 그대로고.
제국의 영토 역시 좀 날아갔다 뿐이지 얼마 안 가 복구가 될 것이다.
“확실히 위험 부담을 안고 복귀할 필요는 없겠죠.”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다른 황자와 황녀들을 만나면 귀찮아질 뻔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다행이려나.
하나같이 강성인 녀석들이라.
“그럼 다들 모이라고 하죠.”
* * * * *
얼마 뒤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지키고 있던 우리 팀이 모두 5황녀의 황녀궁으로 모여들었다.
다른 곳은 보는 눈도 많고.
모일 만한 곳도 없었다.
“전사 형, 고생했어요.”
“놀고 있는다고 더 고생했다. 영 심심해서 말이지. 근데 여기는 완전 폐허네?”
“하하. 좀 그렇죠? 아무 곳이나 앉아요.”
전사 형을 따라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이 적당한 곳에 먼지를 치우고 자리를 잡았다.
“황제는 어땠어?”
“음. 좀 생각하고는 다르더라고요.”
그리고는 그간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말해 주었다.
그러자 전사 형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야, 5황녀가 배후 아냐?”
“역시 전사 형도 그렇게 생각하죠?”
“뭔가 꿍꿍이가 있는 황녀라……. 용케 같이 들어간다고 했다?”
전사 형이 보이게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딱히 나도 부정하고 싶진 않았고.
“일단 당장은 목적이 같으니까요. 나중에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요.”
“오케이. 그러니까 황녀 뒤를 좀 더 캐보라는 거지?”
“네, 그 덩치하고 기사단도요.”
“미래의 영웅인 레온 브라이더하고 연관이 있을 테니까?”
“겸사겸사?”
“혹시 잘 안 되면 타란 제국으로 튈 거예요. 보험을 잘 들어놔서.”
“크큭. 알았다.”
그리고는 챠밍을 보면서 말했다.
“아크 드래곤의 잔해는?”
그 말에 챠밍이 자신의 스태프를 손으로 툭툭 쳐보였다.
마왕 서열 2위.
서리 여왕의 스태프.
이 스태프에는 다른 아이템에는 없는 특별한 기능이 존재한다.
『 공간전이. 』
얼핏 보면 유저의 인벤토리와 비슷하지만.
물건 그 자체를 그대로 쓸어 담을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이 스태프에 들어가 있었다.
아크 드래곤의 거체를 한꺼번에 집어넣을 수 있는 방대한 아공간.
왜 처음에는 그런 기능이 있는가 의아했지만.
아마 이런 때를 대비해서 준비된 거려나.
어쩌면 서리 여왕도 이런 식으로 마법 재료를 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한정 쓸 순 없고 몇 가지 제한이 있긴 한데.
유용한 기능임에는 틀림없다.
챠밍에게 맡기고 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지금쯤 아크 드래곤이 없어졌다고 난리일 거예요.”
미소 지으면서 웃는 챠밍을 보고는 나 역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거…….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