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화 황실 비밀 던전 (1)
카샤스 대공의 말에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답했다.
“필요하다면이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 황제가 돌변할 수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제대로 알아들었군.”
하지만 카샤스 대공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타이탄은 이미 파손되어 쓸 수 없어.”
제국 황제가 타이탄을 바란다고 해도.
타이탄을 움직일 수 있는 핵이 손실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거기다 타이탄의 동체조차도 자폭으로 인해 상당수가 날아간 상황이고.
남은 파편으로는 그저 아이템 몇 개나 만들어 볼 수준이었다.
그것조차도 제대로 된 파편이 남아 있다는 가정하에서 말이지.
실제 타이탄은 그 쓰임이 다 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런데 제국 황제가 굳이 그런 타이탄 잔해를 원해서 일을 벌인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내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정확하게는 타이탄 자체가 아닌. 타이탄의 가동 방법이다.”
“가동 방법?”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분명히 내 소유의 타이탄이라고 했을 때.
황제의 표정.
미묘하게 의심스러운 느낌이 들긴 했었다.
당시에는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달라.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카샤스 대공에게 물었다.
뭔가를 눈치챈 표정으로.
“혹시 제국 황제가 타이탄을 더 가지고 있는 겁니까?”
“로가슈 왕국의 불멸 공작이라 했나? 꽤 예리하군.”
저 카샤스 대공의 대답은 긍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맞다. 에센시아 제국은 타이탄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
《 에센시아 제국 비밀 연구소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
응?
제국 비밀 연구소?
뜻밖의 순간에 시스템 메시자가 뜨자 재중이 형과 눈이 마주쳤고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아무래도 이상한 곳을 건드린 것 같은데?
<주호> 네.
그리고 이어지는 카샤스 대공의 말은 내겐 더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비록 쓸 수는 없지만.”
“못 쓴다고?”
아니.
가지고 있는데 못 쓴다는 게 말이…….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나와 그들의 차이.
금속의 정령 별.
분명히 그때는 금속의 정령이 도와주었기에 타이탄과 소통을 하면서 움직일 수 있었다.
반대로 그런 정령이 없다면 어떨까…….
이건 가정이긴 한데.
만약 내가 얻었던 그 타이탄이 제어가 안 되어서 마음대로 돌아다녔던 거라면?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런 타이탄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기라도 하나?”
“안 그래도 황제가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긴 하지.”
제국 황제가 타이탄을 여럿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걸 제어를 못해서 자기들 맘대로 돌아다닌단다…….
<불멸> 개판이군.
<주호> 네, 이럴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불멸> 그럼 바깥에 저 혼자 돌아다니던 타이탄을 네가 주웠다가 맞겠는데?
<주호> 그런 셈이죠.
왜 타이탄이 아크 드래곤과 싸우고 있었는가 했더니.
제어가 안 되는 타이탄이 외곽을 나돌다가 아크 드래곤과 부딪힌 듯 했다.
그 결과 타이탄이 박살나 버렸고.
그걸 내가 냅다 주워온 셈이었다.
이상한 건.
상식적으로 지들이 가지고 있던 타이탄을 내가 가져다 쓴 셈인데.
제국 황제는 오히려 내게 타이탄이 부서진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었다.
그것도 모자라 영웅 후보 특권이라던가 하는 다른 보상 역시 쥐어 줬고.
오히려 날 의심해야 되는 것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황제가 지나가듯이 말했던 한 마디.
분명 내가 아는 로가슈 왕국과 다른 것 같다고 말했었지.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신경 쓰진 않았지만.
<주호> 형, 타이탄이 에센시아 제국 소유라면 왜 황제가 내게 따지지 않았을까요?
<불멸> 그것까진 모르지.
<주호> 그리고 어쩌면 내가 로가슈 왕국의 왕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불멸> 흐음. 그건 확실히 문제네.
만약 제국 황제가 알고도 덮어준 거라면?
이건 문제가 꽤 심각해진다.
필요에 따라 언제라도 우리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거니까.
왕족 사칭 뭐 이런 것도 괜찮을 테고.
대놓고 말한 게 아닌 걸 보면 아직까진 기우 같지만…….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어야 했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살짝 표정을 구겼다.
<불멸> 일부러 덮어 주었을 경우에는…… 꽤 귀찮아지겠는데? 여차하면 빠져나갈 구석 정도는 만들어놔야겠어.
<주호> 네.
<불멸> 최악의 경우. 에센시아 제국을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고.
<주호> 생각해 두죠. 마침 옆에 좋은 보험도 하나 있고요.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을 슬쩍 바라봤다.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카샤스 대공을 봤고.
<불멸> 타란 제국이라. 나쁘지 않지.
만약 카샤스 대공이라는 줄이 없다면.
타란 제국으로 가는 건 모험이 되겠지만.
처음과 달리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언제라도 타란 제국에서 시작할 여건 정도는 마련되어 있었다.
<불멸> 그전에 여기서 해먹을 건 다 해먹어야겠지.
<주호> 네. 그렇죠.
당장 제국 황제가 왕족 사칭이니 어쩌니 하면서 목에 칼을 들이밀지 않는 이상에는.
아직까진 에센시아 제국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기껏 쌓아둔 명성과 보상들이 있는 마당에.
그리고 무엇보다 레오나 에센시아.
이 5황녀를 황제로 만들어 버리면.
또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니까.
그 과정이 녹록하지 않아서 문제지.
<불멸> 일단은 모른 척 한번 장단을 맞춰 보자고. 제국 황제가 어떻게 나오나.
<주호> 연기하자는 거죠?
<불멸>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잖아? 그리고 제국 황제가 우리 목을 날릴 생각이었다면 벌써 했을 거다.
<주호> 그럼 일단 해보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먼저 쫄아 움추려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카샤스 대공은 어떻게 타이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지? 에센시아 제국의 기밀 같은데.”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해 주었다.
“타란 제국의 대공이 그런 것도 몰라서 되겠나.”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어떻게 보면 타란 제국은 에센시아 제국의 상대국이라고 보면 된다.
언제라도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지금이야 성마대전 중이라 딱히 그런 일은 일어나진 않겠지만.
상대방의 전력 정도는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건 맞긴 했다.
“그런 기밀을 막 말해 주어도 되고?”
“문제 있나?”
“아니. 오히려 우리는 고맙지.”
그냥 알아서 정보를 가져다 바치겠다는데 싫을 사람이 있을 리가.
만약 우리가 자체적으로 알아내려고 했다면 한참의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오히려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도 있을 수 있을 테고.
그런 정보를 카샤스 대공은 그냥 막 풀어주었다.
<주호> 저 녀석. 아크 드래곤이 어지간히 탐나긴 하나 봐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불멸> 그렇다고 아예 전부를 믿지는 마. 녀석도 제국 황제만큼이나 위험한 놈이다.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몰라.
<주호> 네. 명심하죠.
제국 황제도 그렇지만.
카샤스 대공 역시 위험인물이긴 마찬가지였다.
지금에야 우리에게 목적이 있어서 붙어 다니긴 해도.
그때 카샤스 대공이 살짝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천사 놈들. 쓸데없이 일만 벌여가지고는.”
“응? 방금 뭐라고?”
설마 여기서 천사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재중이 형을 슬쩍 보니 역시나 놀라면서도 흥미로워하는 눈치였다.
《 성마 대전의 천사 진영에 대한 정보를 습득합니다. 》
순간 당황한 눈빛을 바로 감췄지만 카샤스 대공이 눈을 살짝 찌푸렸다.
“설마 천사를 모르진 않겠지?”
“우린 대륙이 다르니까. 완전히 잘 알지는 못해.”
천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맞다.
하지만 대천사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었다.
지금 내 인벤에 대천사의 검이 있기도 하고.
“그런가? 아무튼 그런 놈들이 있어. 재수 없는 것들.”
재수 없다는 데는 한 표.
대천사 루스 그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재수 없는 걸로는 안 끝난다.
아마도 카샤스 대공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등장 시기가 너무 이른데?
<주호> 이상하게 엮인 느낌이네요. 혹시 원 역사에도 벌써 등장해요?
<불멸> 아니. 아직은 천사들이 등장할 때가 아닌데 말이야. 뭔가 많이 뒤틀리긴 했네.
성마대전.
말 그대로 빛과 어둠의 대결이었다.
빛 진영에는 천사와 인간들이 있었고.
반대로 어둠 진영에는 악마와 다수의 몬스터군이 존재했다.
단순하게 이분법의 싸움 같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도 복잡하게 진영이 다시 갈린다.
같은 악마군인데도.
서로 적대하는 곳도 즐비했고.
반대로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처럼.
서로 적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협력을 하는 것도 아닌.
좀 애매한 사이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
에센시아 제국은.
대표적인 천사 진영에 속한 나라였다.
친 천사적이라고 해야 하나?
반대로 타란 제국은.
그 폐쇄적인 성향답게.
천사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천사군들이 바글바글해지는 에센시아 제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설마 그 타이탄을 천사들이 준 건가?”
“아니. 알아서 만들라고 실컷 등 떠밀어 준 거다. 직접 주기에는 우리에게 눈치가 보이니까.”
《 타이탄에 대한 추가 정보를 습득합니다. 》
<불멸> 흐음. 일단은 타란 제국도 겉으로 보기에는 천사 진영의 한 축이지만. 달가워하진 않았겠는데.
<주호> 그런가요?
<불멸> 역사적으로 에센시아 제국과 타란 제국은 적대국이다. 에센시아 제국에 타이탄이 추가되는 걸 타란 제국에서 좋아할 것 같진 않잖아?
<주호> 그럼, 타란 제국도 뭔가를 받으면…….
<불멸> 타란 제국은 그런 성향은 또 아니지. 자체적으로 독립적인 성향이라. 도움을 받는 순간 뭔가 내놓아야 했을걸? 내정간섭이라던가…… 혹은 천사들을 위한 신전을 잔뜩 만들어야 했을지도 모르고. 뭔가의 아이템을 바쳤을 수도 있겠지.
<주호> 자기들은 거리를 두고 있는데 옆 동네에서 대가로 주고 잔뜩 받아들인 셈이네요. 새로운 전력을.
<불멸> 에센시아 제국에 성유가 많은 것만 봐도 알잖아.
확실히 성유가 에센시아 제국에선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편이긴 했다.
아마 타란 제국에 가면 성유 구하기가 또 하늘의 별따기일지도 모른다.
정령석도 마찬가지고.
<주호> 그런데 도움 준 것에 비해서 천사가 너무 안 보이는데.
<불멸> 악마하고 비슷할걸? 본체로 오기 힘든 건.
역시 그런 거였나.
천사들이 본체로 오는 게 가능했다면 아크 드래곤을 그들이 막아 주었을지도.
어떻게 보면 아직은 천사와 악마의 대리전이라고 봐야 했다.
인간과 몬스터들을 써서 벌이는.
그 와중에 타이탄은 반칙이지.
어지간한 몬스터들 다 씹어 먹을 전력이라.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나중에 이 엄청난 전력의 타이탄이 천사 진영이 아닌.
악마 진영에서 나오게 된다.
적어도 원 역사에서는 타이탄은 악마군이다.
<주호> 정작 원 역사에서 타이탄은 악마군이었잖아요.
<불멸> 그래. 그랬었지.
그리고 재중이 형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불멸> 누군지는 몰라도. 천사 진영에. 배신자가 있어. 그것도 타이탄을 홀라당 가져다 바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