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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84화 (1,072/1,404)

#1083화 5황녀 (7)

에센시아 제국 내 외곽에는 공략되지 못한 몇 가지 위험도가 높은 던전들이 존재했다.

원 역사의 기록으로만 띄엄띄엄 흔적이 남아 있는.

그중에서 그나마 정보가 있는 던전들의 목록 중에 하나가 이번에 우리가 들어가려는 황실 비밀 던전이었다.

하지만 다른 던전과 달리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는 던전이다 보니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무리가 있었고.

황제의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반드시 데리고 들어가야 했다.

당연하겠지만 이 던전에서 5황녀가 죽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럼 우리의 목적 중에 절반을 잃어버리는 셈이라.

“미리 말해 두지만 굉장히 위험할 겁니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이전에 다른 황자와 황녀들이 들어갔다가 죄다 중도 포기하고 나온 던전이었다.

이 녀석들이 그냥 들어가진 않았을 테고.

최대한 가진 자원을 끌어모아서 들어갔을 텐데.

그럼에도 실패를 하고 나왔다는 건.

이 비밀 던전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저 제국 황제 역시 마찬가지.

앞서 누군가 공략을 했다면.

미공략 던전으로 남아있진 않을 거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난이도에 지금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중이다.

내 엄포에 5황녀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아크 드래곤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역시도 5황녀 입장에서는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매번 목숨을 걸어야 겨우 다른 황자나 황녀와 비슷해지는 거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NPC는 우리와 달리.

한 번 죽으면 뒤가 없었다.

뭐 어차피 여기서 죽으면 이 성마대전 시대에서 탈락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긴 하려나?

결국 누구 하나 죽지 않고 공략을 해내야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중도 포기를 하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점 정도일까?

하지만 그게 어디까지 들어갔을 때 되돌아 나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카샤스 대공이 내게 말을 걸었다.

다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군. 그 던전은 제국 황제도 공략하지 못한 곳인데.”

역시 카샤스 대공도 알고 있었던 거려나?

이건 마치 들어가면 무조건 죽는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셈이랄까.

“남의 나라 던전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데?”

“유명하니까. 그것도 악명으로.”

타란 제국의 대공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라.

딱히 비밀 던전이라 하기도 애매한데?

잠시 날 쳐다보던 카샤스 대공이 결국 한숨을 짧게 쉬고는 말을 꺼냈다.

“다른 대륙에서 와서 잘 모르겠지만, 에센시아 제국 내에는 타란 제국이나 다른 왕국들의 정령석 생산량을 월등히 상회하는 정령석 채굴 던전이 존재한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역시 예상대로네.

<주호> 네, 황실 비밀 던전이 정령석 채굴 던전이 맞았어요.

<불멸> 하긴. 생각해 보면 카샤스 대공이 이 던전을 알 법도 한 건. 혹여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는 가정하에 타 제국의 자원 생산량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위치니까. 꼭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정령석을 수입하거나 거래하려면 정보는 있어야겠지.

재중이 형 말이 맞다.

분명 카샤스 대공이 본인 입으로 말했다.

타란 제국과 다른 왕국들보다 에센시아 제국의 정령석 채굴량이 훨씬 많다고.

그렇다는 건 결국.

에센시아 제국은 다른 제국에 정령석을 수출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혹 전력 누출을 우려해 타국에 수출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아이템들과 거래를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

타란 제국과는 길들인 용을 거래한다던지.

흠.

용을 정령석과 바꿔 줄지는 의문이지만.

그 등급이 높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지니까.

정령석은 그 자체로 전략적인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사람을 정령사로 단번에 바꿔 줄 수 있는 물건이다.

본인 하기에 따라 후에 정령사의 등급이 달라지면 그 값어치는 또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성마대전이 한참이라면.

정령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원일 테고.

거래할 값어치는 충분하다.

물론 그 정령석은 지금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용도로 써먹어 버려서.

카샤스 대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던전이 꽤 위험하다는 거다. 주호 왕자는 그 정령석들이 어떻게 나는 거라고 생각하나?”

“그야 물론 채굴해서…….”

채굴이라는 대답에 카샤스 대공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내게 물었다.

“미공략된 던전에서?”

“아…….”

카샤스 대공의 질문의 요점을 바로 눈치채 버렸다.

미공략이라는 건.

한마디로 위험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 된다.

당연히 채굴을 하는 과정에.

누군가는 죽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정령석이 쉽게 캐가라고 막 굴러다니진 않을 테니.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던전 내에서의 위험도는 던전에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에 비례해서 계속 올라간다.

“설마 채굴 때마다 몇 명씩 죽어 나간다는 건가?”

“그 정도면 말하지도 않았지.”

어림도 없다는 표정과 함께 카샤스 대공이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응?

손가락 두 개를 보여 주기에 의아한 듯 되물었다.

“무슨 뜻이지?”

“대략 열이 들어가면 여덟이 죽어 나온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말이지.”

그 말에 바로 시선을 돌려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보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표정이랄까.

카샤스 대공이 다시 설명을 이었다.

“네가 만약 제국의 황제라면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채굴하겠어? 죽을 게 확실한 위험한 던전인데 반드시 들어가서 캐야 한다면.”

그런 카샤스 대공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굳이 떠올리고 싶진 않지만.

나는 이미 그 답을 안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머리는 이미 계산에 들어가고 있으니.

반드시 죽는 자리에.

값어치가 있는 인력을 집어넣는 건 제국 황제가 할 법한 판단은 절대 아니었다.

그 손실이 명확하니까.

그러니까.

죽어도 괜찮은.

제국 황제 입장에서 없어져도 딱히 상관없는 사람들이 먼저 투입될 것이다.

“죽어도 괜찮은 범죄자. 그다음은 부랑자. 힘이 없는 노약자. 그것도 안 된다면…….”

내가 말을 흐렸지만 카샤스 대공은 단호하게 정답을 말해 주었다.

“연고가 없는 길거리의 아이들이지. 언제 없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

카샤스 대공이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걸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다시 한 번 시선을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돌리니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것도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듯.

“아이들이 많이 죽나요?”

내 질문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5황녀의 슬픈 눈빛에서 연민과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보이는 듯했다.

“네…… 사실이에요.”

“그렇군요.”

솔직히 여기서 NPC들이 누가 죽는지는 그다지 관심 없는 게 사실이었다.

다른 유저들도 딱히 NPC들이 죽고 사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애초에 그건 그들의 관심사는 아니니까.

당장 몬스터 하나만 잘못 쳐들어와도 무수하게 죽어 나가는 게 NPC들이라.

그게 어른이 되었든, 여성이 되었든, 아이들이 되었든.

아마 바로 앞에서 보면 좀 화는 나겠지만…….

그렇다고 실제와 같이 분노하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정령석을 캐야 하는 겁니까?”

이성으로는 잘 안다.

그 정령석의 보유량이 에센시아 제국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지금처럼 성마대전이 일어난 상황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쓴다는 것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국민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

군대가 있고, 기사단이 있는 것 아닌가.

귀족들도 그렇고.

하지만 실제로는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 가는 중이다.

무언가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이들은.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약자들을 그냥 외면한다.

그것도 죽을 자리로 몰고 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긴다라…….

잠시 내가 말이 없자 카샤스 대공이 날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성군은 아니지.”

“확실히.”

“그리고 네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녀석이다, 제국 황제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거기서 죽어 나가는 게 자신의 자식들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딱히 이어서 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5황녀는 그 이후에 이어질 말을 너무 잘 아는 듯했다.

“저도 황제의 경마장 위의 말이겠죠.”

“그것도 한참 뒤쳐진 채 따라가는 말이지.”

순간 레오나 에센시아와 카샤스 대공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러니 따라잡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겠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치 황제를 이기려면 이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는 듯 말하자 5황녀의 굳건한 눈빛을 본 카샤스 대공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보였다.

“패기는 좋네.”

아마 카샤스 대공은 그녀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듯했다.

곧 그 시선을 거두고는 내게 물었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황실 비밀 던전은 에센시아 제국의 빛나는 자원 채굴 장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황제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소야. 정령석을 캐다가 무수히 사람들이 죽어 나가니까. 가급적이면 비밀로 하고 싶겠지. 그런데 굳이 왜 주호 왕자를 들여보내는지 알고 싶지 않아?”

확실히 황제 입장에서는 외부인에게 절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장소일 터다.

정령석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외부에서 정보만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다르다.

가급적이면 비밀로 하는 게 황제에겐 더 좋다.

뭐 우리가 그 비밀 던전을 클리어 해버린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뻔한 걸 굳이 카샤스 대공이 물어볼 리가…….

“공략하길 원해서가 아니야?”

“아니. 황제는 주호 왕자가 던전 공략에 성공하든 말든 그다지 관심이 없을 거다.”

그 말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의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불멸> 설마…….

<주호> 뭔가 아는 게 있어요?

<불멸> 아는 것보다는 추측이지. 그리고 방금 카샤스 대공 말로 확신이 서긴 했다. 제국 황제는 아예 다른 걸 원하고 있어.

<주호> 원하는 것?

<불멸> 그래.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황제가 원할 만한 것이 뭐가 있겠어?

<주호> 흐음…….

내가 가진 무기들은 황제에게 직접적으로 보여 준 적이 없으니 일단 패스.

아크 드래곤의 잔해?

이건 카샤스 대공이 바라 마지않는 아이템일 테고.

그럼 남는 건 하나뿐이었다.

<주호> 혹시 타이탄인가요?

<불멸> 어. 그거지. 전에 황제와 그림자가 말했던 것 기억 안나? 헛돈 들였다고.

<주호>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분명히 타이탄이 내 소유라고 했을 때 그런 말을 황제가 하긴 했었다.

그때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버리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상한 말이기는 하다.

바로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물었다.

“타이탄?”

“머리가 나쁘진 않군. 그래. 황제가 원하는 건 바로 그 타이탄이다.”

그리고 카샤스 대공의 이어지는 다음 말은 날 섬뜩하게 만들었다.

“필요하다면 주호 왕자를 죽여서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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