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82화 (1,070/1,404)

#1081화 5황녀 (5)

황실 비밀 던전의 준비.

우리와 황제의 대면.

뜬금없이 불려진 5황녀.

이것을 모두 종합해 보면 네이던 후작의 예상은 틀린 게 아니었다.

5황녀와 함께 간다는 말에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다소 놀랐다는 표정이려나.

<불멸> 아마 네이던 후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주호> 네?

<불멸> 5황녀와 함께 간다는 걸 듣자마자 표정 굳었잖아. 전에 따로 1황자와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한 것도 그렇고.

<주호> 우리를 자신들의 세력으로 만들 생각이었나 보네요.

분명히 이전에 네이던 후작이 1황자와 자리를 만든다는 말을 하긴 했었다.

우리야 황제와의 대면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거긴 해도.

그렇다고 네이던 후작이 여기서 강하게 나오기는 힘들었다.

자신이 1황자의 측근 세력이라는 걸 대놓고 알리게 되는 일이라.

당장 황제가 저렇게 건재한데 말이지.

다른 마음 품고 있다는 걸 굳이 나서서 알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황제가 이걸 모를까 싶기도 하고…….

좀 전까지 만나고 온 황제는 생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에센시아 제국을 버리고 튄 황제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직접 만나본 후에는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어쩌면 황제가 직접 나섰으면 아크 드래곤을 다른 방식으로 막아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는 늬앙스의 질문에 네이던 후작이 애써 표정을 감추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좀 의외라서 말이죠. 5황녀는…….”

뒤에 말을 이어서 하려다가 내 뒤쪽에 있던 5황녀와 눈이 마주쳤는지 네이던 후작이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

그래도 네이던 후작은 황실 근위대장이었다.

대놓고 황자나 황녀에 험담은 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그것도 본인이 바로 면전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레오나 에센시아는 이런 상황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딱히 반응도 없었고.

아마 지금 네이던 후작의 머릿속은 꽤 복잡할 듯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래서 일단은 선을 그어주었다.

“황제의 부탁이다.”

간단명료한 딱 한 마디.

만약 5황녀가 우리의 선택이라고 하면 그 순간부터 네이던 후작의 태도는 돌변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게 순전히 황제의 부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늬앙스가 있으니까.

다른 해석의 여지를 준다고 해야 하나?

그제야 굳어있던 네이던 후작도 조금은 표정이 풀어졌다.

“흠흠, 그렇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괜히…….”

뒷말은 차마 하지 않고 흐리는 걸 봐서는 옆에서 지켜보던 카샤스 대공이 이제 생각난 듯했다.

남의 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여줘서 딱히 좋은 건 없으니 수습하려는 거겠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주시죠. 황제께서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최고로 부탁드립니다.”

“흠. 특별히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네이던 후작도 아까와 달리 순순히 준비를 도와주기로 한 모양이다.

“보자, 에센시아 제국에서 취급하는 최고급 체력 회복 물약과 각종 상태 이상 회복 물약. 장비 수리 킷. 그리고 마력 회복 물약도 있으면 좋겠는데? 대략 기사단 하나 정도가 일주일은 넉넉히 쓸 수 있는 양으로.”

“음. 다른 것은 괜찮으나 마력 회복 물약은…….”

안다.

마력 회복 물약은 수량도 적고 매우 비싸다.

구하기도 힘들고.

아마도 이건 황실에서 수량을 잡아놓고 관리를 하는 품목일 것이다.

성유나 정령석처럼.

“황제한테 다시 가서 말하면 되나? 준비가 미흡해서 못 들어갈 것 같다고.”

“……아닙니다. 최대한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 그리고 성유도 좀 부탁해. 정령석도 있으면 좋고.”

성유와 정령석은 우리가 다 가져다 썼다고 해도 분명히 남은 분량이 있다.

비에른 백작이 창고를 다 털어왔다고 하지만.

그건 열람이 가능한 외부 창고에 한해서지.

“아, 그리고 최대한 빨리 섭외 가능한 대장장이들 좀 부탁하지. 급하게 만들 물건들도 있고.”

“혹시 뭘 만드실 생각인지……?”

“아크 드래곤을 잡아서 뭐 하겠어? 장비 만들어야지.”

“흠. 그런 특수 아이템을 취급할 수 있는 대장장이는 숫자가 적습니다.”

“시간이 걸린다 이건가?”

“네, 그리고 원하시는 시간 내에 만족할 만한 장비를 만들지도 못할 겁니다.”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하긴, 아크 드래곤 수준의 재료인데. 뚝딱 만들어지는 게 더 이상하겠지.

<주호> 그럼 이번 황실 비밀 던전은 드랍템으로만 해봐야겠네요.

당장 제작템이 없다고는 해도.

아크 드래곤을 잡고 나온 드랍템들은 내 인벤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흠.

나나 재중이 형이 착용할 수량은 되겠지만.

우리 팀은 좀 아쉬울 수 있겠는데.

“그럼 그건 잠시 미뤄두지. 그래도 섭외는 해놔. 최고의 대장장이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왕자님께서 만족할만한 수준의 대장장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제국의 최고 대장장이라도 말인가?”

“아시다시피 용이지 않습니까. 그것도 아크 드래곤이죠.”

“흐음. 되는데 까지는 구해봐.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아, 혹시 타이탄을 정비할 수 있는 대장장이도 있나?”

“그건 좀…….”

네이던 후작이 이번 질문에는 난색을 표했다.

역시 이건 무린가.

타이탄은 이미 완파되어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걸 잘 아는 네이던 후작도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고쳐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니까.

금속의 정령도 더 이상 못 쓴다고 못을 박았고.

아쉽지만 타이탄에 대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타이탄의 잔해로 전사 형 장비나 더 만들어 줘야 하려나?

아마 아크 드래곤의 부파템보다 이쪽이 순수한 방어력은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때 지켜보던 카샤스 대공이 내게 넌지시 제안을 건넸다.

“타란 제국은 용에 관련된 아이템에 대한 기술 수준이 에센시아 제국보다 월등히 높다.”

그런 카샤스 대공의 말에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한참 영업 뛰고 있는데 옆에서 방해하는 자를 보는 딱 그런 표정이랄까.

어떻게 보면 난 이 에센시아 제국의 손님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기본적으로 왕자 신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틀리면 그냥 바로 이 제국을 나를 수 있으니 네이던 후작도 이렇게 조심해서 날 대하는 거고.

그런데 이 와중에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좋은 점을 늘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나.

어쩌면 1황자의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는 우리를 포섭하던 네이던 후작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마에 혈관 마크가 올라온 네이던 후작이 짜증내듯이 말했다.

“타란 제국은 너무 멀지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카샤스 대공이 받아쳤고.

“내 용을 타고 가면 금방이다.”

“지금…… 대 에센시아 제국과 해보자는 겁니까?”

자기가 점찍어놓은 왕자를 빼 갈 것 같은 위기감인지 네이던 후작의 기세가 바로 올라왔다.

<불멸> 큭, 떡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지들끼리 난리네.

<주호> 그러게요.

타 대륙의 왕자.

지금 이 대륙과는 어떠한 연고도 없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은 그 어떤 왕국의 왕자들보다 월등히 좋다.

당연히 에센시아 제국의 네이던 후작과 타란 제국의 대공 사이에서 불꽃이 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굳이 카샤스 대공이 날 따라온 것도 그런 이유니까.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날 빼돌리겠다는 의지를 한껏 보여주자 네이던 후작이 결국 폭발했다.

“주호 왕자는 에센시아 제국의 손님입니다.”

“그건 너희들 생각이고. 안 그런가? 주호 왕자?”

고개를 돌려 둘 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날 보자 순간 난감함이 몰려왔다.

아.

싸우려면 니들끼리 나가서 싸워.

엄한 사람 잡지 말고.

갑자기 그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레오나 에센시아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섰다.

“지금은 제 손님입니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사전에 관심을 끊겠다는 제스처를 보이자 네이던 후작이 움찔했다.

아무리 황실 근위대장이라고 해도 어쨌든 5황녀는 황녀 신분이었다.

표면상 대놓고 대들지는 못한다는 거지.

그리고 반대로 카샤스 대공은 상대가 황녀로 급이 올라가면 네이던 후작처럼 막 대하기도 어려워질 테고.

아까 보여주었던 군인과도 같은 빳빳한 기세가 일어나자 순간 둘 다 침묵을 했다.

바로 레오나 에센시아가 내 팔 깃을 잡아당겼다.

“여기서 볼일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갈까요, 주호 왕자님.”

그렇게 네이던 후작을 떨쳐놓고는 레오나 에센시아, 재중이 형과 함께 멀어지자 우리 뒤를 카샤스 대공이 따라붙었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슬쩍 내게 물었다.

“곤란한 것 같아서 나섰어요. 혹시 무례였나요?”

“아뇨. 중간에 잘 끊어주셨어요. 덕분에 귀찮은 일은 피했네요.”

굳이 내가 말해도 되지만.

황녀가 나서면 모양새는 더 좋아진다.

그걸 잘 아니 황녀가 나섰겠지.

멀리 뒤에서 따라오는 카샤스 대공을 슬쩍 뒤돌아본 레오나 에센시아가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괜찮은 건가요?”

“아, 뭐 괜찮을 겁니다. 딱히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는 건 아닌 듯 하니.”

아크 드래곤에 대해 욕심이 있다는 것만 빼면.

지금까지는 꽤 우호적이니까.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황녀에게도 그다지 나쁘진 않을 겁니다.”

“네?”

“저 카샤스 대공이. 제국에서 머물 거처를 이쪽으로 삼는 셈이니까요.”

그제야 레오나 에센시아가 이해했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확실히 제겐 나쁘지 않는 일이군요.”

방금의 저 대답.

거기서 확실히 힌트를 얻었다.

재중이 형도 눈치채고는 미소를 지었다.

<불멸> 우리 황녀님께서 아주 생각이 없진 않으신가 봐.

<주호> 네, 그냥저냥 야심 없는 황녀였으면 저런 반응은 보이지 않겠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카샤스 대공과의 면담은요.”

에센시아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타란 제국의 2인자.

살아있는 영웅.

본인의 무력.

위치와 세력.

재력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모두 출중하다.

사실 이건 내가 붙는 것보다.

가시적인 효과는 카샤스 대공이 훨씬 좋을 것이다.

<불멸> 강력한 조력자와 눈에 띄게 아름다운 황녀라. 확실히 그림은 되겠네.

<주호> 네, 겉으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죠.

지금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필요한 건 뒷배경이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카샤스 대공은 절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그 어떤 패보다도 좋은 패였다.

지금처럼 카샤스 대공이 내게 집착하는 때라면.

충분히 저 위치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따라오는 카샤스 대공을 막지 않았고.

카샤스 대공도 어쩌면 알면서도 따라오는 걸 수도 있겠는데…….

“이젠 확실히 물어보죠. 레오나 에센시아.”

내가 이름을 부르니 레오나 에센시아가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황녀께서는 황위에 오르길 원하십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