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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71화 (1,059/1,404)

#1071화 새로운 용사 후보 (10)

환영 연회라고는 했지만.

사실 이건 환영 연회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은 그다지 반가워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당장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에서 불신에 가까운 감정들이 느껴진다고 할까.

뭐 처음부터 환영받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니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보기 원했던 한 명은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네이던 후작을 보면서 안내하라는 말을 꺼내자 네이던 후작이 곤란한 듯 말을 흐렸다.

“그것 역시 어렵겠군요. 황명이라…….”

네이던 후작은 겉으로 보기에는 철저히 황권에 속해 있는 녀석이었다.

황제의 명은 절대 거스를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황제가 이곳에 참석하지 말라고 한 건가?”

분명히 황제가 명해서 나와 재중이 형을 데리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네이던 후작이 우리를 맞이하러 온 거고.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이곳에 올 거라는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소린데…….

정작 우리가 찾는 사람은 없으니.

이건 일부러 황녀를 이 자리에서 배제시켰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것도 황제가 나서서.

굳이 황제가 직접 나서 그녀를 숨긴 이유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재중이 형도 짐작이 되는지 말을 꺼냈다.

<불멸> 이거 참. 겨우 제국을 살려놨더니 바로 팽해 버리는데?

<주호> 왜 이렇게까지……?

에센시아 제국을 구한 영웅이 도착하는 자리에.

그것도 황족 중 유일하게 홀로 자리를 지켜 우리를 도와준 황녀를 빼버린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상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입가에 진한 조소를 품고 말했다.

<불멸> 이대로 황녀가 일선에 나서게 되면 제국을 지킨 공로는 황녀의 것이 되어 버리니까. 정작 제국을 버리고 튄 황제 입장에서는 꽤 골치 아픈 상황일 거다.

<주호> 황녀를 외부에 보여 주지 않겠다는 건가요?

<불멸> 어. 지금 황녀의 존재는 황제의 무능을 나타내는 걸 테니. 어떻게든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할걸?

재중이 형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나라 구한 놈 따로 있고.

그걸 숨기고 생색내려는 놈 따로 있다는 거려나.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가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제국이 망해 버린 것도 다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윗대가리가 하는 짓이 이런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아무리 강성한 제국이라고 해도.

썩어 버린 물이 위에서부터 철철 흘러내리는데 아래가 썩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는데 우리를 향한 시선이 계속 느껴졌다.

에센시아 제국의 귀족들이거나 혹은 타국의 귀족들.

당연한 듯이 중앙에 서 있는 자들은…….

아마도 제국을 등지고 날랐던 녀석들일 테지.

반대로 벽 쪽에 밀려 모여 있는 자들은 제국에 남아 있던 힘이 없이 버려졌던 녀석들일 확률이 높았다.

당장 그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주호> 어떻게 할까요? 네이던 후작은 안내해 주지 않을 생각 같은데.

<불멸> 방법이 있나. 당장 여길 들쑤시고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

<주호> 휴, 결국 좋던 싫던 황제부터 봐야겠네요.

우리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자 네이던 후작이 중간에서 난처한 듯 말했다.

“황녀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십니다.”

“그 잠깐 사이에 죽을병이라도 걸렸나 본데? 황녀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그것이…….”

네이던 후작도 지금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뒤쪽에는 지금 타란 제국의 카샤스 대공까지 있는 상황이라.

자기 나라의 치부를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도 힘들 테고.

“뭐 됐어. 어차피 네 선에서는 처리하기 힘든 거잖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던 후작도 아주 철판은 아닌지 부끄러운 건 아는 듯했다.

그게 딱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지켜보던 카샤스 대공이 의아한 듯 물었다.

“문제가 있는 거냐?”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되물었다.

“카샤스 대공의 나라에서는 홀로 남아 나라를 구한 영웅이 있으면 어떻게 대하지? 모두 나라를 버리고 도망갔을 때 말이야.”

내 질문에 카샤스 대공이 묘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주변을 한 번 쓱 훑었다.

그리고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새로운 황제로 올려도 되겠지. 어차피 나라를 다 버리고 도망갔다면. 황실 자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끝까지 남아 수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으니.”

“그 의무를 저버린 자들이 돌아와 다시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미친 거지.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땅을 파고 들어가겠다.”

카샤스 대공에게 날카로운 면이 있네.

옆에서 네이던 후작이 아픈 곳을 찔렸다는 듯 곧장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카샤스 대공이 너스레를 떨면서 자신을 모르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 파렴치한 녀석이 있다면 내가 직접 목을 날려주고 싶군.”

“그러면 바로 전쟁 날걸?”

둘 다 서로 그게 누구를 뜻하는지 알면서도 아무런 스스럼없이 이야기 했다.

어차피 나야 황제에게 받아낼 게 많은 사람이고.

카샤스 대공은 뭐.

어차피 타국의 대공 아니던가.

무엇보다 숨겨진 황녀와 다르게.

난 이미 대외적으로 직접 아크 드래곤과 싸우는 걸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인물이라는 거다.

만약 황녀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하면.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터.

거기다 난 타국의 왕자이기도 하다.

황제가 자국의 황녀에게는 막 대할 순 있어도.

내 쪽은 이야기가 완전 달라진다.

그게 지금 어렵게 날 모셔온 이유이기도 했다.

몰래 처리하기도 힘든데.

그렇다고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선 결국은 이 방법뿐이다.

자신의 수족을 보내서 미리 접촉하는 것.

황제뿐만 아니라 1황자도 그걸 염두에 두고 네이던 후작을 보냈을 터.

시선을 돌려 네이던 후작에게 물었다.

“황제가 여기 나올 생각은 없지?”

“그렇습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네.

만약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황녀의 존재가 드러나기라도 하면.

황제의 위엄이 바로 가루가 될 테니까.

내가 말을 몇 마디만 어긋나게 해주어도 황제는 곤란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국 따로 보자는 거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저 귀족들도 보고 듣는 눈이 다 있으니까 지금 상황을 어렴풋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따지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걸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하는 거려나?

“뭐, 좋아. 안내해.”

“흠. 그런데 이쪽 분들은…….”

네이던 후작이 재중이 형과 카샤스 대공을 번갈아 바라보자 이번엔 내가 선을 그었다.

“불멸 공작은 같이 간다.”

아무래도 카샤스 대공까지 같이 가기는 무리일 터.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단독으로 면담을 하자는데.

그것도 자신의 치부 섞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판에.

타란 제국의 대공을 끼어 넣고 싶진 않을 터였다.

그때 카샤스 대공이 발을 올렸다.

“내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동행하겠다.”

그 말에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무례를 범하진 마시길. 이곳은 에센시아 제국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같이 가야 한다는 거다. 그 에센시아 제국이니까 말이지. 나라를 구했다는 황녀조차 유폐시켜 버리는 녀석들인데. 타국의 왕자라고 안전할까.”

이젠 대놓고 말하는 카샤스 대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이 녀석 정말 거칠 게 없네.

“그리고 로가슈 왕국의 왕자는 내 손님이기도 하다. 아크 드래곤의 소유자니까.”

“아니. 언제부터 주호 왕자가 대공의 손님이었습니까.”

“아까 전부터.”

뻔뻔함도 이 정도면 차원이 다르긴 하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주호 왕자의 안전을 위해 동행하겠다.”

마치 내가 죽을 곳이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대하는 카샤스 대공의 태도에 재중이 형도 어깨를 으쓱했다.

<불멸> 혹시나 황제가 먼저 아크 드래곤을 채갈까 봐 이러는 모양인데?

<주호> 정말 용에는 진심이네요.

내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아크 드래곤은 정말 원하는 듯했다.

그래서 굳이 무례인 줄 알면서도 동행하겠다는 거고.

대공도 다른 제국의 정치에 끼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냥 무조건 우기는 중이다.

결국 공은 내게 넘어왔다.

여기서 내가 카샤스 대공을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하면.

황제도 어쩔 수 없이 받아주어야 할 테고.

반대의 경우라면.

상황이 좀 복잡해지려나.

잠시 재중이 형과 눈을 맞췄다.

<주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불멸> 나쁠 것 없겠지. 카샤스 대공이 동행하면 아무리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하진 못할 거다.

<주호> 그럼 결정됐네요.

그리곤 빤히 네이던 후작을 보면서 말했다.

“카샤스 대공은…… 그래. 보호자 자격으로 동행하도록 하지.”

“주호 왕자! 이건 경우에 없는…….”

“황녀를 유폐시킨 건 경우에 있는 이야기려나?”

“그건…….”

“불만이면 아주 대놓고 떠들어 줄까? 황제가 황녀를 유폐시켰다고.”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대놓고 말은 못하는 네이던 후작이 결국 백기를 들고는 아랫사람을 시켜서 말을 전달했다.

“황제께서 노하실 겁니다.”

“그럼 뭐 타란 왕국으로 넘어갈까나?”

그 말에는 카샤스 대공이 반색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당연히 네이던 후작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고.

“타란 제국은 절대 안 됩니다.”

“너넨 안 되는 게 뭐가 이렇게 많아?”

내 호령에 네이던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 뒤 말을 전달하러 갔던 녀석이 돌아오자 대답을 들은 네이던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행은 되지만…… 밖에서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감히 나 카샤스 대공을 밖에 세워두겠다는 건가?”

카샤스 대공은 저래 보여도 황제 바로 아래 급이다.

황제라고 해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거지.

“알겠습니다. 다만 제국의 민감한 사항을 이야기 할 때는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동행은 하되.

아마 황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비켜 달라는 뜻일 테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도 납득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허튼 수작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과연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에게 대놓고 허튼 수작이라고 할 만한 녀석이 몇 이나 존재할까.

그런 면에서는 카샤스 대공을 존경할 만했다.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 카샤스 대공이 대전을 지나 황제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많은 귀족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는데 카샤스 대공이 한 번 노려보니 다들 꼬랑지를 말고 고개를 돌렸다.

과연 영웅은 영웅이네.

저 귀족들이 찍소리도 못하는 걸 보면.

황제의 집무실 앞에 서자 지키고 있던 가드들에게 네이던 후작이 먼저 말했다.

“도착했다. 알려라.”

곧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휘황찬란한 집무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운데는 황제로 보이는 녀석이 보였고.

그 양옆으로는 그와 꽤 닮아 보이는 몇몇 남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 있었나 했는데 다 여기 모여 있었구나.

“로가슈 왕국의 주호 왕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다들 대화를 멈추고는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제국의 황제와 황자, 황녀들의 시선을 동시에 받는 순간.

마치 품평을 하듯 그들을 한 번 쓱 훑어본 뒤.

대놓고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나라 구한 값 받으러 왔습니다.”

알현이고 뭐고 간에.

받을 건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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