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9화 새로운 용사 후보 (8)
용기병.
이건 타란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다.
정확하게는 그중에서도 용기사라는 존재가.
그들 하나하나가 마족들과 정면에서 붙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용의 힘을 빌려와서 싸우는 자들이라.
타란 제국의 건국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선대의 황제가 용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용들과 친숙했다.
특히 황족들은 그 피가 더욱 진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편이었다.
특이하게도 주변국들과 교류가 없어 다소 폐쇄적이었으나 그만큼 타란 제국 자체가 강력했기 때문에 크루아 대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에센시아 제국도 이들과는 차마 척을 지지 않았다.
에센시아 제국도 자신의 영토에서 나오지 않는 타란 제국을 일부러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었고.
괜히 서로 붙어 봐야 이득 볼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까?
만약 둘이 붙어서 전력이 떨어지면 좋아할 녀석들은 따로 있으니 껄끄러워하면서도 없는 척 멀리 지내는 관계였다.
거기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타란 제국에서도 에센시아 제국에 관섭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이 크루아 대륙에서 난장판을 치든.
세력을 모아서 연합을 만들든.
그냥 모른 척 지내던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우리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한 번쯤 타란 제국을 들릴까 계획은 했었다.
이곳과 달리 타란 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품도 존재했기에 그걸 얻으려면 가기 싫어도 들려야 한다.
하지만 그 시점이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은 에센시아 제국에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타란 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어 버렸다.
우리가 처음 떨어진 곳이 에센시아 제국이기도 했고.
당분가 가지도 못하고 멀리 떨어진 타란 제국에까지 관심을 가지기에는 이곳의 상황이 녹록하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관심을 끊은 타란 제국의 대공이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 와 있었다.
그것도 내 눈앞에.
심지어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두고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도 않았다.
“어때? 값은 원하는 대로 치르도록 하지.”
당연하겠지만.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나올 것이다.
그런 큰돈을 쓰는 데 전혀 아까울 것이 없다는 듯이 녀석이 제안을 해왔다.
이건 백지 수표를 꺼내 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것도 지불할 능력이 충분한 녀석이.
에센시아 제국도 그렇지만 타란 제국 역시 부유한 나라에 속했다.
굳이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였으니까.
당연히 땅도 넓고 자원도 넘치는 나라였다.
그런 넓은 제국의 땅을 지켜낼 군사력도 충분한 상황에 그 군사를 유지할 자금까지 풍부했다.
무엇보다 녀석은 대공이다.
황제 바로 아래의 직위에.
그것도 본인조차 용기병 중 가장 강하다는 용기사였다.
타란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 중에 한 명이기도 했고.
재력에 무력까지.
무엇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 내게 말한 원하는 값을 치른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닐 것이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주호> 형, 이 녀석이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거죠?
<불멸> 흐음. 나도 그건 모르겠는데?
원 크루아 대륙 역사에서는 지금 이 시점에 이 카스샤 대공이 에센시아 제국에 있어서는 안 된다.
마왕군에 대륙이 초토화되어 가는 그때가 되면 서로 싫어도 손을 잡긴 하지만.
그것도 아주 나중에 이야기였다.
카샤스 대공이 이 나라에 와 있을 이유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역사가 뒤틀린 거지?
솔직히 에센시아 제국의 역사야 이미 우리가 너무 많이 틀어 버려서 난장판이 된 걸 부인할 순 없지만.
타란 제국은 다르다.
애초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저 천리 밖 나라에서 가뭄이 나든.
태풍이 불어 닥치든.
타란 제국에서 관심을 가지기에는 일단 거리가 너무 멀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은…….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전사 형, 카샤스 대공이 원래 이 시점에선 어디에 있었어요?
난 자세히 모르지만 전사 형은 대부분의 영웅에 대한 정보를 통합했었다.
그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일부이긴 해도.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방패전사> 음, 보자. 아마 이 녀석이 지금쯤 성마대전 때문에 타란 제국에서 전쟁 지역으로 파견을 나갔을걸?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주호> 무슨 제국의 대공을 척후병도 아니고 그런데다 써요?
그런 내 물음에 전사 형은 아주 간단히 답을 내주었다.
<방패전사> 가장 빠르잖아.
<주호> 네?
<방패전사> 카샤스 대공이 소유한 용이 현 시점에서는 가장 빠르다고 되어 있어. 이 시점의 모든 탈것들과 비공정을 포함해서 말이지.
<주호> 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요.
남 말 할 수 있는 게 아닌 게.
우리도 나르샤 누나가 비슷한 역할을 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주호> 그런데 그런 녀석이 왜 여기 와 있는 거예요? 전쟁 지역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되네요.
<방패전사> 음, 아마 역사가 바뀌어서 그렇겠지. 생각해 보자면…… 이거밖에 없지 않아?
전사 형이 부위파괴를 하다 말고 발로 툭툭 아크 드래곤의 시체를 발로 차 보였다.
<주호> 아크 드래곤요? 그렇다고 전쟁 지역에 있을 카샤스 대공이 이곳에 올 이유는…….
<방패전사> 지금 에센시아 제국에서 외부로 나가 있던 영웅들을 불러들인 건 알고 있지? 혹시 그것과 연관 있는 것 아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연관이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만약 전쟁 지역을 돌고 있던 카샤스 대공이 어떤 경로로든 아크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을 침범했다는 정보와 이것 때문에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들이 자국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에 어떤 반응을 했을까.
이어지는 전사 형의 말은 내 생각에 더욱 불을 붙었다.
<방패전사> 저 녀석. 문헌에 나와 있듯이 용에는 아주 환장하는 녀석이니까. 그것도 그냥 용도 아니고 아크 드래곤이잖아. 성마전쟁 중후반에 나오는 괴물 드래곤.
<주호> 아크 드래곤이 녀석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거네요.
분명히 같은 시점에서 아크 드래곤의 출몰을 접했을 때.
동시에 복귀를 한다면 현재 가장 빠른 용을 타고 있을 카샤스 대공이 에센시아 제국의 영웅보다 빨리 도착할 확률이 더 높았다.
심지어 그들보다 늦게 출발했다 하더라도.
무엇보다 녀석이 이 에센시아 제국에 홀홀 단신으로 와 있다는 점.
그건 그들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이 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혼자 속도를 냈다는 뜻이 된다.
타란 제국의 대공쯤 되는 인간이 혼자서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금의 생각은 훨씬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
녀석은 누구보다 빨리 에센시아 제국에 와서 저 아크 드래곤을 잡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고유 특성을 이용해서 아크 드래곤을 테이밍한다던가.
이건 타란 제국의 황족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해볼 법한 일이었다.
전사 형이 아까 이야기했듯이.
카샤스 대공은 용에 미쳐 있다고 하니.
새로운 탈것의 등장은.
그것도 사상 초유의 강력한 아크 드래곤이라면.
녀석의 욕망을 끌어올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터.
뭐 그것도 녀석이 일찍 도착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설마 녀석도 이렇게 빨리 아크 드래곤이 잡혔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재중이 형을 계속 쓸어 보면서 의심스럽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카샤스 대공이 이곳에 있는 이유와 더불어 저 녀석이 원하는 것까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주호> 형, 아무래도 아크 드래곤 때문에 녀석이 여기 와 있는 것 같아요.
<불멸> 아, 전사한테 들었다. 꽤 귀찮은 녀석이 붙어 버렸어. 쉽게 포기할 기세가 아닌데?
<주호> 그런데 굳이 죽어 버린 아크 드래곤에 왜 저렇게 관심이 많죠? 어차피 테이밍 같은 것도 안 될 텐데요.
<불멸> 모르지. 혹시 알아? 타란 제국에만 내려오는 특별한 비법이 있을 지도. 녀석이 시체를 통째로 사고 싶다는 걸 보면. 아마 아주 방법이 없진 않을 거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왕 벨라.
그리고 그녀가 타고 있던.
<주호> 형, 설마 저 녀석…… 마왕 벨라처럼 언데드 드래곤을 쓰려는 걸까요?
<불멸> 호오. 그건 꽤 가능성 있겠는데? 어차피 타란 제국이야 타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언데드를 만든다고 다른 나라에 태클 당할 일도 없을 테고. 거기다 저 녀석은 그런 걸 신경 쓸 위인도 아닌 듯 하지?
처음에는 단순히 아크 드래곤의 뼈와 비늘 등으로 무구를 만들기 위해 사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해보자 전혀 상황이 달라졌다.
카샤스 대공이 아크 드래곤의 시체를 통째로 사려는 건.
결국 녀석의 목적을 위해서였다.
아크 드래곤을 언데드로 만들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녀석이 나올 것이다.
원래도 암흑 속성이 주력이었으니 거의 대부분의 능력을 계승할 수도 있을 테고.
일부 능력은 더 강해져서 나올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데드로 만들 능력이 되는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어쨌든 지금.
카샤스 대공은 내게 얼마가 되었든 지불할 의사는 분명해 보였다.
그것도 백지수표를 내밀면서.
흐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좋은 조건부터 말하는 건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그때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불멸> 저 녀석 아마 지금 똥줄 타고 있을걸?
<주호> 네?
<불멸> 지금 네 옆에 있는 게 누군지 봐봐.
그렇게 고개를 돌리자 네이던 후작이 나를 호위라도 하듯 바싹 붙어서 서 있었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지금 카샤스 대공에게서 나를 보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중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샤스 대공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 보였다.
이것 봐라?
아까까지만 해도 네이던 후작은 우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를 지켜주는 모양새였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리고 반대로 카샤스 대공은 그런 네이던 후작을 못마땅한 듯 쳐다보는 중이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다시 카샤스 대공이 말을 걸었다.
“왜? 조건이 부족한가? 난 지금 그대에게 뭐든 지불할 의사가 있다.”
만약 저 녀석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완전 빵점짜리 제안을 하는 셈이었다.
자기 패를 다 꺼내놓고 말하는 건.
그만큼.
녀석도 다급하다는 뜻이었다.
만약 내가 이대로 네이던 후작을 따라가 버리면.
닭 쫓던 개가 되는 거려나?
그러자 옆에서 네이던 후작이 나를 만류했다.
“황제께서 기다리십니다.”
황제를 들먹이기까지 하면서.
솔직히 내가 좀 늦게 간다고 황제가 화를 낼 것 같진 않은데?
그보다는 빨리 나를 이 자리에서 빼내고 싶어 하는 듯했다.
저 카샤스 대공에게서.
혹여나 내가 저 녀석의 손을 잡을까봐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크 드래곤의 잔해.
이건 정말 엄청난 값어치를 가지고 있을 테다.
그게 에센시아 제국이 되었든.
타란 제국이 되었든.
그걸 소유한 나와 아크 드래곤의 자원이 어느 쪽으로 넘어가는가의 싸움이랄까.
이전에야 에센시아 제국의 단독 입찰이었다면.
지금은 타란 제국이 참전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어이없는 듯 말했다.
<불멸> 이 녀석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들이켜는데?
<주호> 그러게요. 아 혹시 1황자도 아크 드래곤에 눈독 들이고 있는 걸까요?
지금의 네이던 후작의 태도를 보면.
아마 틀리진 않을 터.
재중이 형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따로 보자는 걸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높지.
뭐 타란 제국의 카샤스 대공에게 파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기에는 지금 이 아크 드래곤의 잔해는 값어치가 너무 컸다.
최소한 같은 급의 뭔가를 얻어내기 전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물건을 정말 지불할지는 의문이지만.
그리고 이미 에센시아 제국에는 빚을 잔뜩 만들어 놨다.
굳이 아크 드래곤까지 넘겨줄 필요는 없었다.
결국은 둘 다 내겐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진 않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값어치는 계속 올라갈 테니까.
그게 내가 되었든.
아크 드래곤이 되었든.
카샤스 대공과 네이던 후작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미소 지으며 말을 꺼냈다.
“자, 그럼 황제부터 만나 보고 결정하도록 할까요?”
이왕 싸울 거라면.
아주 너희들끼리 난장판을 만들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