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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68화 (1,056/1,404)

#1068화 새로운 용사 후보 (7)

우리를 포위한 녀석들 중에는 우리와 함께 나서서 아크 드래곤과 싸웠던 병사들도 꽤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전장에서는 비에른 자작의 오더를 받아서 싸웠지만.

지금은 황실 근위대를 데리고 온 네이던 후작이 상위 계급이기 때문에 반항하지 못하는 중이랄까.

반대로 그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만 해도 충분히 상황은 표현되었다.

“나라를 구한 영웅을 내 손으로 포위하다니…….”

“그러게. 이놈의 나라는 대체 뭐 하자는 건지.”

“지들이 살아 있는 게 누구 덕분인데.”

“휴. 까라면 까야 하잖아. 힘이 있나.”

아마 전체 에센시아 제국민들을 대상으로 호감도가 충분히 올라가 있어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 터.

거기다 우리와 함께 싸우면서 추가적으로 호감도가 더 생성되었을 수도 있었다.

만약 네이던 후작의 황실 근위대가 우리를 치는 결정을 내렸다면 이들은 어떻게 나왔을까 싶기도 하고.

나라를 버리고 도망갔던 황실 근위대와 끝까지 남아 제국을 지킨 제국 병사들 사이에서는 그만큼의 벽이 형성되어 있었다.

일단 명령을 따르기는 하는데 마음에서 오는 행동은 아니라는 거다.

당장 옆에 비에른 자작만 해도 네이던 후작을 향해 우호적인 반응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이니까.

슬쩍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다 눈빛으로 잡아먹겠다. 표정 풀어.”

“음…… 알겠습니다.”

원래 이렇게 호전적인 녀석인가 싶기도 하고.

하긴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

그렇지만 지금은 네이던 후작을 적대하기엔 좋은 시점이 아니었다.

“결정이 났으면 이제 쟤들 좀 물리지?”

네이던 후작을 보면서 말하자 결국 포기한 네이던 후작이 손짓을 했다.

“근위대를 뒤로 물리도록.”

곧 우리 주변을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며 포위하고 있던 에센시아 근위병들이 서서히 뒤쪽으로 자리를 물리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가 포위망이 풀리자 그제야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차하면 서로 칼부림을 할 기세라.

저들도 긴장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분위기를 네이던 후작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근위대와 제국 병사들이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거리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네이던 후작이 데리고 온 근위대가 정예병이기는 한데.

쪽수로는 제국 병사들이 월등히 많았다.

무엇보다.

저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일 자체가 문제였다.

보통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네이던 후작이 제국 병사들에게 호통을 쳐야 했지만.

지금은 병사들의 불만 가득한 기세를 보고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저어 버렸다.

신용을 잃은 지휘관의 딱 그런 표정이랄까.

쭉 제국 병사들을 보던 네이던 후작이 날 보면서 말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저들의 마음을 휘어잡으셨나 봅니다.”

“저게 부러우면 너도 아크 드래곤하고 맞짱 떠 보던가. 그럼 싫어도 따르게 될걸?”

“……그렇군요.”

네이던 후작도 아는 것이다.

나라를 버리고 간 녀석과 지킨 자들의 차이를.

거기다 타국의 왕자를 지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병사들은 그 지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정말 지금 상황에서 내가 칼자루를 거꾸로 쥐라고 하면.

쥘 녀석도 상당히 나올 것이다.

당장 옆에 비에른 자작만 봐도 뭐…….

대치 상태가 일단락되자 고개를 돌려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던 일련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저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왕국 사람들 말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는 네이던 후작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타 왕국의 귀족들과 병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솔직히 저들이 이곳에 따라올 이유는 하나도 없긴 했다.

속으로 약간 뜨끔한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미 비에른 자작이 다 처리해 둔 상황이라.

“아마 아크 드래곤 때문에 왔을 겁니다.”

“쓸데없는 곳에 힘 빼네.”

내 말에 이번에는 네이던 후작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감히 제국의 것을 탐낸다고 생각하는 거려나?

네이던 후작은 저들이 따라온 사실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보통 같으면 제국이 압도적으로 위세를 펼쳐야 정상일 테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딱히 그러지도 못한 모양이고.

황실 근위대장으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상황이었다.

뭐 저들이 따라왔기에 지금 이 녀석이 함부로 못하는 것도 있으니까.

내 쪽에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려나?

그들이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탐내는 것과는 달리 말이지.

그때 왕국 쪽 사람들 중에 한 녀석이 먼저 나서서 앞으로 걸어왔다.

황실 근위병과 제국 병사들이 동시에 그를 만류하려다가 누군지 알아보고는 곧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타란 제국의…….”

“용기사……!

“영웅이잖아.”

“여기 어떻게 와 있지? 성마 전쟁에 나간 거 아니었어?”

특유의 회색빛이 도는 용비늘 갑옷을 입은 전사 한 명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오자 그를 발견한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바로 형편없이 구겨졌다.

“젠장. 어떻게 저 녀석이 이곳에…….”

네이던 후작이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이 확 찡그리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로 보였다.

그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타란 제국?”

순간 재중이 형이 정리해 준 크루아 대륙 일대기가 머리에 쫙 펼쳐지는 느낌과 함께 타란 제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연하겠지만.

크루아 대륙에서 제국이 에센시아 제국 딱 하나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듯 웃음 지었다.

“호오. 타란 제국인가? 여기서 꽤 멀 텐데?”

확실히 고대의 지도를 보면 타란 제국은 에센시아 제국으로부터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비공정을 타고 가도 한참을 가야 할 정도로.

거대한 산맥 몇 개는 넘어가야 겨우 도착할 만한 거리인데.

굳이 볼일이 없다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는 거리이기도 했다.

“왕국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그러게. 나도 생각 못 했네.”

타란 제국의 용기사, 거기에 회색빛 갑옷이란 특징을 합치자 짐작이 가는 영웅이 떠올랐다.

이 시점에 타란 제국에서 저 녀석이 오는 일이 있었던가?

나도 역사를 훑어봐서 알고는 있었다.

옆에 비에른 자작만큼이나 꽤 유명한 녀석이니까.

비에른 자작이 극에 달한 방어 특성으로 유명한 영웅이라면.

저 녀석은 완전히 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녀석의 무서운 점은.

압도적인 기동력.

저 녀석은 용을 다룰 수 있는 용기병이니까.

정확하게는 타란 왕국이 자랑하는 용기병 중에서도 기사에 해당하는 최상위 직종이었다.

굳이 마왕군 쪽에서 비교를 하자면…….

마왕 벨라와 같은 직급이랄까.

뭐 개인 능력으로 치면 마왕 벨라가 강하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압도적인 특유의 강렬한 기운을 풍기는 걸 굳이 숨기지 않고 편안한 표정으로 제국 병사들 사이를 걸어 들어오자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그들이 거리를 벌렸다.

반대로 황실 근위대는 모두 무기를 꺼내들면서 녀석을 막아섰다.

“멈추십시오.”

그러자 그자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난 내 앞을 막는 것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순간 그가 손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자 무섭게 기운이 퍼지면서 주변을 압박해갔다.

쿠구궁.

“으아악!”

동시에 녀석을 막아서선 황실 근위대의 무릎이 동시에 꿇려 나갔다.

마치 누군가 눌러 내리듯.

“저건……?”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그때 먼저 눈치챈 재중이 형이 말을 꺼냈다.

“호오. 저 녀석도 마왕의 결계를 쓰잖아?”

“아. 그렇네요.”

분명히 비슷하기는 한데.

이쪽이 조금 옅은 느낌이랄까.

그 증거로 황실 근위대 중 일부는 그 기운에 맞서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저들 중에서도 실력이 좀 있는 녀석들인 모양이고.

그걸 본 녀석이 입가를 실룩였다.

“호. 그래도 황실 근위대라는 거냐.”

순간 녀석이 추가적으로 손을 들어 주먹을 세게 쥐자 더욱더 압박이 강해졌다.

쿠구구궁!

“크윽!”

이번에는 버티기 힘든지 황실 근위병들도 입가에 피를 내며 억지로 버텨내는 모습이었다.

그때 갑자기 네이던 후작 쪽에서 강렬한 기운이 뻗어나가 녀석의 압력을 해소시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중화시킨다고 해야 하나?

창과 마법을 동시에 쓴다고 했으니까 아마 이건 네이던 후작의 마력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펼친 결계가 옅어지면서 황실 근위병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낭패한 표정을 가득 짓고서.

그 모습을 지켜본 네이던 후작과 녀석이 서로 공중에서 눈빛이 한 차례 오갔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기세를 끌어올리던 네이던 후작이 이내 양보하듯 먼저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카샤스 대공.”

“오랜만이군. 네이던 후작.”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네.

어쩐지 보자마자 네이던 후작이 똥 씹는 표정을 짓더라니.

반대로 카샤스 대공이라 불린 자는 여유가 있는지 결계를 거두더니 편안하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쪽을 흥미로운 듯 한 번 슥 훑어보았다.

뭔가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카샤스 대공이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흐음……. 그렇게까지 강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아크 드래곤을 죽인 거지?”

의아하다는 표정을 가득 보이더니 곧 내게서 시선을 돌려 옆에 서 있던 재중이 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이쪽이려나?”

그러고는 재중이 형이 입고 있는 갑옷을 빤히 바라보았다.

꽤나 놀란 눈치로.

“발록 플레이트라…… 굉장한데?”

<주호> 저 녀석이 발록 플레이트를 알아보네요.

<불멸> 그러게. 여기 와서는 처음인데?

순간 망설이지 않고 전사 형에게 빠르게 연락했다.

<주호> 형, 마왕 올펠 플레이트 바로 집어넣어요.

<방패전사> 알았다.

전사 형도 이곳을 보고 있었는지 그대로 장비를 리방 아머 킹의 플레이트로 변경했다.

녀석의 관심이 재중이 형에게 있었으니 보지는 못했을 터다.

여기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보여 주기에는 너무 위험도가 크니까.

못 알아볼 확률이 높긴 한데.

알아볼 확률도 무시하지 못했다.

굳이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카샤스 대공은 발록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듯했다.

“흐음. 그렇다고 해도 아크 드래곤은 힘들 텐데 말이야. 대체 어떻게 잡은 걸까?”

카샤스 대공은 궁금증 가득한 말과 다르게 매서운 눈빛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왕자라는 것을 들었을 텐데도 막 나오는 걸 보면.

그다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비에른 자작을 보자 굳은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카샤스 대공은 타란 제국의 황족입니다. 현 타란 제국 황제의 동생이기도 하고요.”

“그래?”

어쩐지 로가슈 왕국의 왕자인 내 앞에서도 막 나간다 했다.

영웅으로서의 특징은 보았지만 직위나 가족 관계는 그냥 넘어가 몰랐는데.

한 제국의 황족이라면.

그것도 황제의 친동생이라면.

왕도 아닌 왕자인 내 입장에서도 직위로만 비교하면 꽤 버거운 존재였다.

황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황자들에 준하는 직위에 속하니까.

황실 근위대장인 네이던 후작도 막 지나가는 동네 친구처럼 부르는 건 덤이고.

당장 이 자리에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가 오지 않는다면.

이 녀석을 어떻게 막아내는 건 힘들어보였다.

그걸 잘 아는 재중이 형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멸> 귀찮은 게 끼어들었네.

<주호> 네. 곤란하네요.

지금 이 정도 거물이 끼어드는 건 원래 계획에선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녀석이 여기 와 있는 거지?

그보다는 앞으로가 문제였다.

딱히 이 녀석이 아크 드래곤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던가 하지는 못 하겠지만.

무력으로 깽판이라도 치고 가면.

답이 없었다.

흐음.

타 제국에 와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할 정도로 개념이 없어 보이진 않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특히 지금처럼 상황이 어수선할 때는 모든 것이 변수가 된다.

잠시 나와 재중이 형, 네이던 후작을 빤히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아크 드래곤으로 옮겨갔다.

흥미 가득한 눈빛을 넘어.

욕심이 난다는 그 눈빛을 굳이 감추지도 않았다.

“어쩐다.”

대놓고 혼잣말을 하는 녀석을 굳은 눈빛으로 쳐다보자 곧 녀석이 결정을 내렸다는 듯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녀석. 내가 전부 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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