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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67화 (1,055/1,404)

#1067화 새로운 용사 후보 (6)

아마 황실 근위대장은 지금 이 자리에 황제의 명을 받아 왔을 것이다.

비에른 자작이 말하긴 황실 근위대장이 전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현 상황을 알아보고 중간에 걸리는 다른 이들을 직위로 누르기에는 이만한 이는 또 없었을 것이다.

그게 타국의 왕자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거기다 타이탄을 소유하고 있었던 나만 아니라면 원하는 바를 거의 이루었을지도.

결국 처음에 우리를 압박하며 포위했던 것과 달리.

저 녀석도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녀석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나를 따로 만나보고 싶다는 이가 있다고.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주호> 이건 역시 황자나 황녀 쪽이겠죠?

<불멸> 그래. 처음에 녀석이 강하게 나온 것도 기선을 잡으려는 거였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쯤 되는, 그것도 황실 근위대장이다.

최소 제국의 중심 세력권 안에 들어가는 자다.

그런 녀석이 과연 이 상황을 모르고 왔을까?

아니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아크 드래곤을 잡은 이를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현 제국의 전력으로 어찌하지 못한 아크 드래곤을 잡았다는 것 자체로 누군가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하니까.

<주호> 처음부터 우리를 공격할 의도도 없었겠네요.

<불멸> 어, 만약 그랬다면 저렇게 관중들을 줄줄이 달고 올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녀석이 순순히 타국의 귀족들을 달고 온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뭐 타국의 왕족들이 압박을 넣는다면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기는 했겠지만.

무리를 하면.

이 녀석들을 떼어놓는 것도 아주 못할 일은 또 아니니까.

어차피 우리를 보여 줘도 상관없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왔다면.

지금의 저 후작의 태도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비에른 자작이 내가 타이탄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순간.

녀석의 눈빛이 변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야 놀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오히려 로가슈 왕국의 왕자라는 것보다.

타이탄을 말했을 때가 더 표정 변화가 컸다.

그리고 이젠 녀석의 목적은 명확하게 보였다.

<주호> 처음부터 우리와 접선하기 위해 온 거겠네요.

<불멸> 그렇지. 그것도 누구보다 먼저 손을 쓰기 위해 직접 오기까지 했고.

물론 에센시아 황제의 명도 있긴 했을 것이다.

우리를 데리고 오라던가.

혹은 반대의 방법을 쓰던가 하는.

어느 쪽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온 목적 중에 황제의 명이 가장 크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중간에 누군가가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다.

저 황실 근위대장에게.

그리고 그런 일이 가능한 건.

황제 바로 아래의 황자들이나 황녀들밖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차기 계승권을 가지고 있는.

꽤 높은 위치의 황자나 황녀일 것이다.

곧 전사 형에게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전에 족보 정리한 걸 보면…… 이 후작 녀석은 1황자의 측근이다. 네이던 후작. 너 이 녀석 기억 안 나?

<주호> 음…… 글쎄요.

앞으로 죽어 나갈 귀족들을 일일이 기억할 정도는 아니라…….

이름이 조금 익숙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확 기억이 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 하필 1황자 소속이라니.

꽤 귀찮아졌는데.

<방패전사> 일단은 이 녀석도 영웅 후보 중에 하나야.

<주호> 그래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스치듯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방패전사> 특징은 마창사. 마법과 창을 모두 쓰는 특이한 녀석인데…… 꽤 강할걸? 이 시대에선. 거의 영웅 끝자락에 들어갈 수준이다.

<주호> 흐음. 생각보다 거물이네요.

확실히 황실 근위대장쯤 되면 강하긴 할 것이다.

그 자리를 그냥 폼으로 얻은 건 아닐 테니.

황제가 머리가 돌로 되어 있지 않는 이상.

무력이 중시되는 자리에 능력도 안 되는 이상한 녀석을 앉혀놓을 리는 없겠지.

문제는.

이 녀석이 내 기억에는 없다는 데 있었다.

그건 결국 성마대전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녀석은 아니라는 거다.

중요도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놈이라는 말이고.

이 녀석이 내 기억에 없는 것도.

굳이 기억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접점조차 없어 만날 일도 없다고 판단했으니 기억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히 강한 수준이었다.

직위는 엄청나게 높았고.

기억할 필요가 없는 건 만날 일이 없을 때의 문제지만.

내 눈앞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

애초에 우리가 퀘스트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행했다면 절대 만날 수 없는 녀석이랄까.

그런 녀석을 만났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은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비에른 자작을 다른 방식으로 만났듯이.

이 녀석도 쓰기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당장은 이 녀석의 소속이 문제였다.

1황자.

황금의 사자라고 불리는 녀석.

이 황실 근위대장인 네이든 후작이 1황자의 명을 받고 온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주호> 전사 형, 과거에 1황자가 황위를 잡죠?

<방패전사> 어, 별다른 변수가 없는 이상은.

그건 곧 황위를 이 1황자가 이어받는다는 뜻이고.

이미 이 시점에서부터 1황자는 황실을 휘어잡고 있다는 뜻도 된다.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황실 근위대장이 1황자의 명을 따르는 걸 보면.

아쉽게도 3황자나 2황녀는 그다지 좋은 결말을 보진 못할 테고.

아니다.

어차피 결국에는 에센시아 제국이 망해서 다 죽어 나가니 크게 의미가 없는 거려나?

그럼에도 지금의 네이든 후작의 접근은 의미가 있었다.

아직까지는 에센시아 제국이 망하진 않았으니까.

그것도 우리의 활약에 의해.

이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을지도.

재중이 형을 보면서 의견을 구했다.

<주호> 미래의 황제는 어때요?

<불멸> 왜 한 번 만나 보려고?

<주호>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요.

<불멸> 줄이야 많으면 좋긴 하지. 황제만 없으면 1황자가 실세니까.

재중이 형은 딱히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확실히 1황자 루트를 타면.

앞으로 편해지는 건 맞다.

원래라면 이 루트는 우리에게 없는 루트였지만.

지금은 길이 열리는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조금 찝찝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살살 간질거리는 느낌이랄까.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딱 그런 기분?

<불멸> 왜 이상해?

<주호> 아, 그냥 좀 뭐가 찝찝하달까…….

그때 재중이 형이 나를 빤히 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투로 스치듯 말했다.

<불멸> 이미 한 번 실패한 인물이니까.

<주호> 네?

<불멸> 1황자. 황금의 사자. 영웅에 무력도 좋아 정치도 잘해. 지도력도 좋아. 기사단도 다 장악했고. 모계도 건국 공신 공작가지. 귀족들까지 전부 무릎 꿇리기도 했고.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

그대로 가만히 듣기만 하면.

제국을 이끄는 차기 황제로는 정말 최고의 황자였다.

능력. 세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도 않고.

더할 나위 없는 황제감이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국 이 녀석이 황제가 된 미래의 제국은.

망한다.

그것도 쫄딱.

뭐 그게 재앙과 같은 성마전쟁 때문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망하는 건 사실이니까.

본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재앙에.

결국 이 1황자는 대처를 하지 못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왜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밟지 말아야 하는 선택지랄까.

앞서 누군가 뽑은 복권이 꽝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걸 지금 내가 다시 뽑으려는 것도.

“꽝이려나…….”

내가 혼잣말을 내뱉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네이던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네가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혼잣말이지.

“날 보고 싶다는 그 분이 1황자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순간 네이던 후작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스멀스멀 압박의 기운을 흘려냈다.

아.

이건 실수.

네이던 후작은 황자 자신이 밝히지 않는 이상은 1황자의 측근이라는 걸 내세우진 않을 거다.

아직까지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걸로 되어 있으니까.

적어도 지금의 황제가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건 변하진 않을 거다.

“대충 찍어 봤는데?”

너스레를 떨며 말을 흘리자 날 수상하게 보던 네이던 후작의 기세가 다시 줄어들었다.

이거 참.

전사 형이 강하다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

잠시지만.

내 감각이 경계할 정도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왜? 2황녀나 3황자인가?”

“아닙니다. 1황자님이 맞습니다.”

“비공식으로?”

“그렇습니다.”

“흐음.”

이건 따로 자리를 마련하자는 걸로 들리는데.

재중이 형을 보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만나보는 건 나쁘지 않지.

<주호> 일단 발을 걸쳐놓자는 거네요.

재중이 형 말은.

이게 썩은 패인 건 알지만.

여기서 우리가 거절해 당장 불편해질 일을 피하자는 뜻으로 들렸다.

제국의 1황자를 아예 무시하는 것도 지금에서는 문제가 될 테니까.

무엇보다 녀석은 현재 에센시아 제국의 실세였다.

뭐 제국을 버리고 도망갔다 오면서 그 명성도 꽤 깎이긴 했겠지만.

“당장은 무리인데?”

“그렇습니까?”

“조만간 자리를 만들자고.”

그러면서 뒤를 슬쩍 보자 네이던 후작도 별다른 트집은 잡지 않았다.

저 황폐해진 제국의 광경은 방금까지 우리가 아크 드래곤을 상대로 싸웠다는 걸 아주 잘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적당히 알아서 꺼지라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모르겠네.

“그래도 황제는 알현하셔야 합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아, 그리고 확실히 해야 할 게 있는데 말이야.”

다시 고개를 돌려서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의 잔해를 보면서 말했다.

“이건 우리 거다.”

“흠…….”

“너네가 제국을 버리고 갔을 때 남아 있던 황녀와 이미 다 계약을 맺은 사항이다.”

“하지만 그건 임시적인…….”

“황제의 인장도 다 두고 갔다면서? 그런 일 하라고 놔두고 간 거 아니었나?”

후에 문제가 생길 일은 딱 잘라서 처리해 두는 게 좋았다.

괜히 황녀와 협약을 맺은 게 아니었다.

중간에 일부러 시간을 끌어가면서까지.

“황제의 인장이 찍힌 문서는 말 안 해도 알지?”

아마 가만히 두었으면 아크 드래곤을 제국에서 잡은 거니 일정 부분을 내놓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아예 틀어막아 버렸다.

감히 어디서 숟가락을 올리려고.

설마 자신들이 버리고 간 황녀가 그렇게까지 했을 거라는 생각하지 못 했는지 차마 대답을 못하고 네이던 후작의 입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잠시지만.

임시 황제도 황제다.

난처한 듯 네이던 후작이 말을 흐렸다.

“휴…… 제가 대답해 드릴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그건 됐고.”

어차피 대답을 원한 건 아니다.

내가 원한 건 따로 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이번에 제국에서 받아야 할 게 좀 많아. 이건 1황자에게 말하면 되는 거려나?”

그 말에 네이던 후작의 몸이 움찔했다.

아마 이 말은 저 녀석이 공포를 느끼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황제 폐하께 바로 모시겠습니다.”

녀석은 두 말 없이 손을 들어 버렸다.

지금 내가 말한 건.

망해가던 에센시아 제국을 살려낸 값을 받아내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과연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이건 1황자라도 부담스럽지.

혹시나 1황자에게 불똥이 튈까 봐 아크 드래곤의 소유권은 당연하게도 주장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게 누울 곳을 보고 누워야지.

이전이라면 만나기조차 어려웠을 황실 근위대장이었지만.

지금은 내 시선을 애써 피하는 중이었다.

옆에서는 재중이 형이 키득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불멸> 어차피 결정권도 없는 녀석 그만 잡고 가자.

<주호> 네. 본격적으로 뜯어먹으러 가죠.

그리고 난.

이 제국이 보유하고 있는 물건들 중 일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과연 황제가 자신의 제국에 대한 값을 얼마나 쳐줄지 기대가 되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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