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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66화 (1,054/1,404)

#1066화 새로운 용사 후보 (5)

보통 자작이 후작에게 반기를 드는 건 일상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애초에 급수가 맞지 않기도 하고.

언제든지 손가락 하나로 찍어 누를 수 있을 만큼의 격차가 둘 사이엔 존재하니까.

후작이 아주 삽질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그 삽질을 후작이 해버린 상황이다.

무려 자국을 등지면서 떠나기까지 했으니까.

뭐 황제가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어쨌든 후작이 제국을 버린 건 사실이긴 했다.

황제의 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든.

자의로 했든지 간에.

결과는 이미 나와 버렸다.

그리그 지금 저 후작의 태도를 보면.

딱히 황제를 거스를 생각도 없어 보이고.

오자마자 고압적으로 비에른 자작을 직위로 찍어 누르는 자세만 봐도 대충 저 후작의 평소 스타일이 어떤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멸> 호오, 비에른 자작이 생각보다 세게 나가는데?

<주호> 명분이 있잖아요.

현재 비에른 자작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에센시아 제국에 끝까지 남아 제국을 지켜냈다는 점.

이게 비에른 자작이 강하게 나갈 수 있는 명분이었다.

반대로 후작은 그렇지 못했고.

황실 근위대장이라는 직책과 외성 방어대장의 직책만 두고 보면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할 일을 서로 다한 셈이지만.

저 후작은 앞으로 제국을 버렸다는 비난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적으로 직위는 황실 근위대장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여기서는 비에른 자작이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당장 후작이 입을 다문 것도.

차마 대답하기 어려운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도 그렇고.

<주호> 그래도 아주 철판은 아닌 모양인데요? 태도를 좀 바꿀까요?

<불멸> 흐음. 글쎄. 그렇게 쉽게 될 것 같진 않은데?

재중이 형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실 근위대장의 태도가 변했다.

눈을 뜬 황실 근위대장은 이미 생각을 다잡은 듯 비에른 자작에게 말했다.

“네가 입에 올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건 황실의 일이다.”

설마 저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건가?

뻔뻔함을 넘어 얼굴에 철판을 냅다 깔아 버렸다.

그런데 비에른 자작이 순간 멈칫했다.

황실의 일이라는 단어에.

으음.

역시 비에른 자작은 아직 황실의 명에 반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정말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보면.

감정적으로는 이미 저 후작 녀석의 상판을 한 대 후려갈기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애써 참는 모습이 딱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정작 남아서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녀석은 참아야 하고.

지 한 목숨 살자고 도망간 녀석은 오히려 돌아와서 떵떵거리고 있으니…….

“정말 개판이네요.”

“확실히.”

황실 근위대장과 비에른 자작의 대치가 이어져 고요해진 순간에 나온 나와 재중이 형의 대화에 침묵이 바로 깨져 버렸다.

특히 황실 근위대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바로 드러내면서 나를 향해 노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개판이고 했습니까?”

그래도 왕자는 왕자이려나?

저 황실 근위대장도 차마 내 직위는 무시하지 못하는 듯 했다.

짧게 본 녀석의 태도를 보면 분명히 반말부터 튀어나왔을 것 같은데 말이지.

“왜? 잘못 들었으면 한 번 더 해줘?”

다시 확인시켜 준다는 말에 황실 근위대장의 얼굴색이 울그락불그락하게 변해 갔다.

그러더니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차하면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 같은.

딱 그런 분위기로.

“방금 그 말은 에센시아 제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허리춤에 손이 가는 걸 봐서는 정말 검을 뽑아들 기세인데?

그런 황실 근위대장에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참. 어이없으려니까 별게 다 시비네. 야. 그 제국도 제대로 남아 있어야 모욕 아냐? 그리고 그 제국. 방금 내가 구해준 것 같은데?”

내 말에 곧장 반박하려고 했던 황실 근위대장의 입이 바로 닫혀버렸다.

그러게.

본전도 못 뽑을 말은 왜 해가지고.

가만히 욕먹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황실 근위대장이 저 모양이면 안 봐도 제국 돌아가는 꼬라지를 알 것 같았다.

“이건 뭐 겨우 물에 빠진 거 건져놨더니 대놓고 칼질 할 기세네.”

이어지는 내 말에는 아예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저도 머리라는 게 달려 있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황실 근위대장 자리는 내려와야지.

정보력과 판단력이 그 수준 밖에는 안 된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지금 내게 따지면.

자기가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내 수준은 여기까지라고.

그래서인지 황실 근위대장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쭉 주변을 둘러보던 황실 근위대장이 쓴 표정을 지으면서 뒤에 대기 중이던 보좌관으로 보이는 녀석들을 불러냈다.

그리고는 뭔가의 질문을 계속 해대기 시작했다.

<주호> 뭐 하는 걸까요?

<불멸> 이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거겠지.

<주호> 흐음.

황폐해진 제국의 모습.

눈에 들어오는 광활한 일대가 전부 아크 드래곤과의 전투로 증발한 듯 움푹 파여 사라진 광경에 황실 근위대장이 잠시 인상을 썼다.

아마 아크 드래곤과의 전투로 남긴 흔적을 토대로 내 전투 능력을 파악하려는 중인 것 같은데.

계속 보고를 받던 황실 근위대장이 곧 내게 말을 걸었다.

조금은 얼떨떨한 표정과 함께.

“정말 타이탄을 보유하고 계신 겁니까?”

이놈은 이미 제 부하들에게 다 들어놓고 뭘 다시 물어보는 거지?

거기다 비에른 자작 역시도 내가 타이탄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미리 말했었다.

저 녀석이 안 믿었을 뿐.

그런데 전투 중에 목격된 게 워낙 많아서 그런지 부하들 입을 통해 듣고는 이제야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녀석도 머리가 있다면.

아크 드래곤을 잡은 게 누군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게 적어도 비에른 자작은 아닐 테니까.

“왜 못 믿겠어?”

“아, 아닙니다.”

<주호> 확실히 여기선 타이탄이 먹히긴 먹히나 보네요.

<불멸> 지금 저 녀석들 수준으로 보면 타이탄은 괴물일걸? 성마전쟁 중후반기도 아니고 현 상황에서는 타이탄 자체로도 재앙 수준이지. 굳이 아크 드래곤까지 가지 않더라도.

황실 근위대장이 아까와 다르게 날 어려워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타이탄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처음에 어디 처박혀 있는 왕국인가 했던 태도도 지금에 와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지금은 내가 왕자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 타이탄이 저기 고철로 처박혀 있다는 건데…….

당장 저 근위대장이 칼춤이라도 추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주호> 덤벼들진 않겠죠?

<불멸> 흐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진 않겠지. 무엇보다 제국을 구한 영웅인데.

<주호> 죽여서 입막음할 수도 있잖아요.

<불멸>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단독으로 왔으면 모를까. 저 너머에 다른 왕국의 사절들도 꽤 섞여 있다.

재중이 형이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자 확실히 그쪽 방향에 다른 왕국의 국기로 보이는 것들이 펄럭이고 있는 중이었다.

<불멸> 쟤들도 상황 파악을 위해 보냈을걸?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 의견을 전부 무시할 순 없었을 테고.

아마 황실의 군대를 보내서 통제를 하려고 했을 텐데.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단독으로 오지는 못한 듯했다.

<불멸> 무엇보다 지금 죽어 쓰러져 있는 게 아크 드래곤이거든.

<주호> 어떻게든 자국의 인원을 집어넣었겠네요.

<불멸> 그래. 그러니까 저 황실 근위대장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는 거다. 여기서 입막음을 위해 우리에게 칼춤이라도 췄다가는, 제국을 구한 영웅을 죽였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해. 그리고 더 문제는…….

슬쩍 왕국의 병사들을 본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불멸> 자신들도 언제든지 저렇게 처리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아주 나쁜 사례가 될 테니까. 그게 제국을 구한 조력자였다고 해도 말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목을 쳐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가는…….

<주호> 황실 입장에선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 되겠네요.

<불멸> 그렇지. 지금 저 후작 녀석은 손발이 꽁꽁 묶인 거나 다름없어.

그럼 더 마음이 편해지는데?

혹여나 녀석이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걱정은 묻어둬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난 이 녀석들에게 받아내야 할 게 있거든.

“분명 타이탄이 있긴 했어. 그런데 말이지. 이놈의 제국을 구한다고 ‘내 타이탄’이 지금 저 모양이 됐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타이탄의 잔해가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황실 근위대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곧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난처하다는 듯.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상황을 직면했을 때의 딱 그런 표정이랄까.

“하…… 난감하군요.”

에센시아 제국을 지키기 위해 그 값어치를 차마 매기기 어려운 타국의 타이탄이 박살이 났다는 사실.

난감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 버렸다.

“이거 꽤 비싼데 말이야. 네가 물어 줄래?”

내 말에 황실 근위대장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정말 아주 난처하다는 듯.

곳곳에 남겨진 전투 흔적을 보면 누가 봐도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의 전투가 일어난 게 맞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의 흔적을 남길 수가 없을 테니까.

물론 비공정을 수도 없이 투하하고 성벽 방어포를 쏴서 남긴 흔적도 있긴 한데.

지금은 그 사실도 묻혀가는 듯했다.

그만큼 타이탄의 임팩트가 크다.

“그러니까 네가 네 돈으로 물어줄 거 아니면 좀 닥치고 있어줄래? 타이탄이 부서져서 지금 내 심기가 불편하거든.”

“그건 좀…….”

곧 황실 근위대장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저도 알 것이다.

이걸 물어줬다가는 자신은 파산이라는 걸.

애초에 물어주지도 못할 테지만.

“자아, 그럼 너 말고 누구에게 가서 이걸 청구해야 할까?”

자신은 빼준다는 늬앙스를 보이자 녀석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일단 자기 돈은 아니다 이거지?

그런데도 황실에 요구하라고 말을 못하는 건.

녀석이 황실 소속이기 때문이다.

자칫 목 날아가기 딱 좋은 발언이라.

대신 곧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황실 군대를 위시한 황실 근위대장의 위압적인 태도가 확 누그러들었다.

<불멸> 큭, 이 녀석은 아크 드래곤의 소유권을 따지러 왔을 텐데 말이야.

<주호> 지금 상황에서 그 말을 하긴 어렵죠.

아크 드래곤을 잡은 것도 우린데.

심지어 타이탄까지 박살 난 상태다.

여기서 아크 드래곤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타국의 정보원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억지로 아크 드래곤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면…….

<불멸> 아크 드래곤을 내놓으라고 했다가는 타국의 왕족들이 앞으로 협조를 안 할 확률이 높아.

<주호> 네, 아무리 목숨 걸고 도와줘 봐야 결국 제국 좋은 일만 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이곳에 있는 아크 드래곤의 잔해는 저 녀석들이 절대 손대지 못한다.

어떻게든 위압적으로 누르기 위해 친히 황실의 군대까지 몰고 왔지만.

결국 쓸데없이 군대만 움직임 셈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황실 근위대장은.

중요한 일을 처리할 결정권이 없었다.

내가 왕자다 보니 최소한 황자나 황녀 정도는 왔어야 하는데.

지금은 말도 못 꺼내 보고 계속 밀리다 아예 입이 봉해져 버렸다.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 이제 마음이 좀 풀리나?”

“네, 조금은 후련하군요.”

비에른 자작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던 황실 근위대장을 그냥 찍어눌러 버렸다.

“이게 바로 작위의 힘이라는 거야.”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좀 클 필요가 있겠어.”

“네?”

“음…… 대충 공작쯤 되면 저 녀석을 그냥 누를 수 있지 않을까?”

“에이, 제가 무슨…….”

손사래를 치는 비에른 자작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냐.

넌 미래에 공작이 된다니까?

그리고 그 길을 내가 열어줄 생각이다.

“넌 이 왕자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그럼 공작 자리 하나쯤은 만들어 줄게.”

무슨 길 가다 차이는 돌멩이처럼 공작 자리를 이야기하는 모습에 비에른 자작이 웃음 지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이 녀석 전혀 안 믿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니 재중이 형도 웃으면서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불멸> 나중에 공작되고 난 뒤에 어떤 표정 지을지 궁금해지네.

우리야 역사를 아니까.

뭐 지금 역사가 많이 틀어지긴 했는데.

오히려 이 녀석의 출셋길은 더 빨라졌다.

그때 황실 근위대장이 계속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왕자님을 따로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음?

이것 봐라?

만약 황제가 보자고 했다면 대놓고 말했을 텐데.

지금 태도는 절대 황제가 아니었다.

바로 전사 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사실 이런 건 전사 형이 제일 잘 안다.

<주호> 전사 형. 황실 근위대장 이 녀석. 몇 황자 측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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