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화 아크 드래곤 몰이 (15)
챠밍이 이야기한 대로 아크 드래곤은 마지막을 불사르기 위해 자폭을 준비 중이었다.
그런 아크 드래곤을 공격할 유일한 수단.
녀석의 배리어 안쪽에서 아크 드래곤의 뿔로 만든 창을 박고 버티고 있는.
타이탄.
링크를 동조하자 타이탄이 커다란 함성을 끌어올렸다
“그아아아!!”
그리고는 정령석으로 된 중앙 코어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황금빛 기운이 전신의 회로를 따라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타이탄과 링크를 하고 있기에 잘 안다.
지금의 이 힘은.
타이탄이 남겨둔 마지막 힘이라고.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딱 한 발 남겨둔.
그런 황금빛 기운들은 타이탄의 팔을 타고 흘러 아크 드래곤의 뿔로 줄기차게 힘을 보내주었다.
곧 아크 드래곤의 뿔이 확연한 황금색의 빛을 내며 타오르는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가자!”
아크 드래곤 뿔의 창을 뽑아낸 뒤.
곧바로 타이탄의 모든 중량을 실어 아크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당연하겠지만 아크 드래곤의 머리 역시 단단하기 그지없는 비늘로 보호를 받는다.
특히 머리 쪽의 비늘은 다른 곳에서 비해 더 강한 편이었고.
하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비공정 폭탄을 떨어뜨리고 성벽 방어포로 두들긴 지금.
아크 드래곤의 비늘의 내구도는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약해진 상태였다.
그런 비늘의 방어는.
타이탄이 마지막으로 내지른 일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콰드드득!!
아크 드래곤의 뿔로 만든 창이.
이번엔 원래 주인이었던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파고 들어갔다.
타이탄이 코어를 쥐어짠 마지막 힘.
그리고 아크 드래곤의 뿔이 가진 단단함이 합쳐진.
지금 우리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일격.
“캬아아악!!”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아크 드래곤이 발악을 했지만.
그렇게 타이탄이 창으로 계속 머리를 찍어 누르는 데도 불구하고.
고통스런 괴성만 지를 뿐.
아크 드래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녀석도 마지막 자폭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그런지 그 어떤 다른 스킬도 준비하지 못한 듯했다.
이 순간만큼은 타이탄을 방어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이젠 좀 죽어라!”
링크로 전해오는 감각에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면.
타이탄 역시도 거의 수명을 다해 가는 듯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거다.
제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를.
에센시아 제국의 그 수많은 자원을 들이부은.
이 마지막 일격이 먹히기를 기도했다.
<주호> 형, 만약 저 녀석이 이걸로도 안 죽으면…….
<불멸> 알아. 다 대피시켜야지.
여기서 아크 드래곤을 죽이지 못하면.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라.
녀석이 자폭해서 에센시아 제국 전체가 날아가든.
그게 아니면 녀석이 다시 회복해서 죽어라 우리 뒤를 쫓든.
아크 드래곤과 한 공간에 발붙이고 사는 건 이젠 무리라는 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녀석이 죽든.
우리가 죽든.
하나는 죽어야 한다.
아마 저 아래서 챠밍과 이쁜소녀를 비롯한 우리 팀과 비에른 자작, 수도 없이 많은 병사들이 전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면서.
거기다 얼굴 모를 황녀 역시도 마찬가지.
아크 드래곤이 자폭을 해서 제국이 날아가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죽지 않으면.
황녀의 목이 먼저 날아갈 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니.
그전에 자폭으로 다 죽으려나…….
링크를 걸은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데도 아크 드래곤이 계속 죽지 않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주호> 왜 안 죽죠?
<불멸> ……모르지.
아니.
이 정도까지 해줬으면 당연히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순간 팔이 멈칫했다.
불길한 생각이 하나 스쳐지나가서.
<주호> 설마…… 뒤에 남은 페이즈가 더 있는 건 아니겠죠?
챠밍이 살펴본 문헌에 남아 있었다고는 하나.
실제로 아크 드래곤을 상대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간의 패턴들도 다 처음 접해 보는 것들이었고.
그래서인지 확신을 못 하겠다.
지금의 한 방이.
마지막일지 아닐지.
재중이 형도 이번만은 질린 눈치인지 말했다.
<불멸> 설마. 더 있겠냐.
보통 이 정도까지 했다면.
뭔가의 시스템 메시지라도 흘러나와야 할 텐데…….
나오지 않았기에 더욱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타이탄 역시도 마지막 힘을 다해 가는 듯 서서히 그 황금색 코어의 색이 흐트러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타이탄이 그 힘을 다해가는 듯 하자 다시 전사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어떻게 하지?
<주호> 모르겠어요.
이미 배리어로 인해 성벽 방어포의 포격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였다.
비공정을 더 떨어뜨린다고 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을 것 같고.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떨어뜨린 비공정도 이젠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거다.
비에른 자작이 남겨달라고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나.
어떻게 쓰다 보니 훌러덩 다 써버린 걸.
나중에 호감도가 반토막이 나려나.
무엇보다.
저 아크 드래곤의 배리어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
그건 아직 아크 드래곤이 죽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절망적인 이야기라는 거겠지.
<주호> 형, 그 마룡의 창으로 저 배리어 찢어버릴 수 없어요?
그 말을 하기 무섭게 이미 재중이 형은 가르가 주니어를 타고 지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빠르기도 해라.
그런데 저 형.
아까 대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지?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네.
그사이 아크 드래곤의 배리어 끝에 도달한 재중이 형이 고대 마룡의 창을 휘둘러 배리어의 끝을 갈아냈다.
주변 포격이 없기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정말 세차게 휘두른 일격이었다.
카가각!!
그런데 불꽃만 튈 뿐.
재중이 형의 마룡의 창이 그대로 바깥으로 튕겨 나와 버렸다.
<불멸> 큭. 이거 파괴 불가 속성인 것 같다.
<주호> 정말요?
<불멸> 어, 마룡의 창이 안 먹혀. 어둠 속성인데도 불구하고.
간혹 가다 존재한다.
절대 부술 수 없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지금으로 치면 저 배리어가 그런 존재인 듯했다.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부셔야 한다던가.
몇 번 더 배리어를 쳐보던 재중이 형도 난감한지 두 손을 들어보였다.
<불멸> 아무래도 이걸 깨려면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한 거려나?
재중이 형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후에 성마 전쟁 중후반부에서 나올 뭔가의 아이템을 말하는 것일 테다.
지금 시점의 우리로서는 구하지 못하는 아이템.
아마 아크 드래곤 레이드의 마지막을 장식할 그런 특수 아이템이겠지.
그 말을 듣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크 드래곤을 잡을 수 없다니.
에센시아 제국의 창고를 다 털어오는 짓까지 했음에도 힘들다는 게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럼에도 머릿속은 계속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분명 뭔가 방법은 있을 거야.
깨지 못하는 레이드 같은 건 없으니까.
하지만 딱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고이 아껴둔 타이탄을 움직이는 게 마지막 패였으니.
그 이상이 바로 나올리는 없었다.
“휴, 정말 쉽지 않네.”
혹시 다른 영웅들이 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 잡아놓은 아크 드래곤에 수저를 올리는 건 용납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때.
르아 카르테가 웅웅거리며 금속의 정령이 바깥으로 나왔다.
작은 날개에서 나는 빛을 반짝반짝 흩날리며.
“좀 도와줘?”
“응?”
내가 멍한 듯이 쳐다보자 금속의 정령이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줘, 말어?”
“아! 잠시 정신이 없었네. 할 수 있어?”
“으음. 일단은 내가 하는 건 아니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꾹꾹 눌렀다.
정확하게는 내 심장을.
응?
왜 심장을 누르는 거지?
그때 갑자기 한 가지 시스템이 옆에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간 숨겨져 있었던 듯.
아무런 이모티콘이 없던 장소에.
“새 스킬 슬롯?”
“응. 선택은 본인 몫.”
설마 이런 스킬도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선뜻 그 스킬에 손이 가진 않았다.
“이거 참.”
하려면 할 순 있는데.
활성화까지 되어 있는 스킬인데.
그 스킬이 문제다.
<주호> 형, 어떻게 방법이 생긴 것 같긴 한데요.
지금도 계속 배리어를 두들기며 마룡의 창 스킬 조합을 실험해 보던 재중이 형이 내 말을 환영했다.
<불멸> 호오. 드디어 찾은 거냐?
<주호> 그게 좀…….
그리고 금속의 정령이 도와준 것까지 말하자 재중이 형이 웃음 지었다.
<불멸> 정말 비싼 값 하네.
<주호> 네, 문제는 이걸 쓰기가…….
<불멸> 아깝다?
<주호> 그렇죠…….
<불멸> 어차피 한 번밖에 못 쓰잖아. 아쉬울 것도 없을 텐데?
딱히 재중이 형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손이 선뜻 안가는 건 사실이다.
<불멸> 그럼 뭐…… 제국에서 값을 받아내면 되겠네. 어차피 못 쓰는 거.
<주호> 제국에서요?
<불멸> 어차피 못 쓰는 패지만. 저들은 그걸 모르잖아.
<주호> 아…… 형은 진짜. 최고예요.
이래서 재중이 형을 사랑한다.
막힌 곳을 팍 뚫어주는 재주가 있거든.
곧장 아퀼라스 주니어를 끌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그리곤 비에른 자작 옆으로 내렸다.
깜짝 놀란 비에른 자작이 내게 달려와서 외쳤다.
“어떻게 되어가는 겁니까?”
“뭐가 어떻게 되긴. 저 녀석 자폭하려는 거 막고 있는 거지.”
“네?!”
자폭이란 말에 화들짝 놀란 비에른 자작의 모습.
하긴, 말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
우리도 문헌을 봐서 아는 거라.
“지금 자폭하려는 걸 ‘내 타이탄’을 써서 억지로 막아두고 있는 중인데…….”
여기선 내 타이탄이라는 걸 콕 집어서 굳이 강조를 할 필요가 있다.
“혹시 피해가…….”
그 물음에 단호하게 말했다.
“저 녀석 터지면 일단 제국은 통째로 날아갑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세상에.”
정말 하늘이 무너져라 좌절하는 비에른 자작의 표정을 보고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설마 터지게 그냥 두겠어요?”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있긴 한데…….”
침을 꼴깍 삼키는 비에른 자작에게 장엄하게 말했다.
“제국을 살리려면 제 타이탄을 희생시켜야 합니다만.”
그 말에 비에른 자작이 침통한 듯 말을 받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겠군요.”
여기서 타이탄을 소모한다는 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국의 나라에서.
여기서 본론.
“황녀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손절 치고 간다는 늬앙스를 가득 보여주자 비에른 자작이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바로 황녀님께 연락하겠습니다.”
화들짝 놀라면서 비에른 자작이 곧장 황녀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황녀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건수가 크다 보니 쉽게 결정을 못 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얼마 후.
결연한 눈빛을 보인 비에른 자작이 내게 말을 꺼냈다.
“황녀님께서 타이탄에 걸 맞는 보상을 반드시 내어주시겠다고 합니다. 제국을 털어서라도.”
“오케이. 그럼 서면으로 준비 좀 해 주시죠.”
상황이 급하긴 한데.
진짜 급한 건 저쪽이라.
얼마 뒤 서류까지 준비 됐다는 말과 함께 확인까지 끝내고 난 후에야 미소 지었다.
이건 시스템으로 보장되는 서류니까.
절대 지켜져야 하는 시스템이다.
“후.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는 새로 떠오른 스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바로 타이탄의 자폭 스킬에.
자폭엔.
자폭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