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9화 아크 드래곤 몰이 (13)
대체로 이전 시대에 쓰던 아이템들은 사장되고 더 이상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은 아이템 성능에서 너무 뒤처지니까.
아이템의 옵션은 둘째 치더라도 기본적인 대미지가 주변 몬스터들에 비해 낮은 편이라 가급적이면 인벤에 들어가 다시 나오질 않는다.
혹은 팔아 버리던가.
드래곤 슬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얻을 당시에는 최강의 아이템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대미지가 먹히지 않아서 인벤에 아주 묵혀두었던 아이템 중에 하나였다.
정확하게는 옵션이 너무 치우쳐져 있다는 게 문제랄까.
통상적인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에는 옵션이 다소 괴랄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악마형 몬스터들을 상대로 할 때 대미지가 증폭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미지가 낮아 칼날도 들어가지 않으면 크리티컬을 터트리기란 지난한 일이라…….
결국 크리티컬을 터트려야 옵션 효과를 최대한 볼 수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는 약간 계륵 같은 존재로 남아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악마형.
거기에 드래곤.
이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몬스터는 흔하지는 않지만.
현재 내 앞에 그 녀석이 있다.
그 조건을 딱 충족하는 녀석이.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시간을 조금만 끌어 주세요.”
그러면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흔들어 보이자 재중이 형의 눈빛이 반짝였다.
망해 가는 이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달까.
“호오. 아직 쓸 만한 게 남았잖아?”
“네, 하지만 충분히 복사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정도야.”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인벤에서 뭔가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그건……?”
“좋은 거 얻었잖아. 써먹어야지.”
차분하게 갈무리 되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빛으로 물든.
고대 마룡의 창.
“이 녀석 속성 잊었냐?”
“아…… 어둠 속성 무력화.”
저 창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어둠 계열 속성을 무력화시킨다는 데 있었다.
무엇보다 그 등급이 굉장히 높다.
마신의 무기와 맞먹는 수준의 무기 등급이니까.
다른 말로.
지금 저 아래에서 타이탄에 깔려 있는 아크 드래곤에게도 먹힐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거다.
“저 폭격 속으로 들어가려고요?”
“아니. 아무리 나라도 그런 미친 짓은 안 하지.”
확실히 저 사방에서 빽빽하게 쏟아지는 성벽 방어포의 포화 속으로 들어가는 건 내가 봐도 미친 짓이다.
아예 한 점을 타깃으로 삼고 원형의 진을 치고 안에서 들이붓는 수준인데.
저 포화 속에서는 제국의 창고를 털어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외부 장갑을 장착한 타이탄조차 체력이 쭉쭉 깎인다.
들어가는 순간.
방어가 아무리 높더라도 유저는 한 순간에 녹아 버릴 것이다.
“포격은 잠시 아껴. 어차피 마지막에 퍼부으려면 지금 멈춰 두는 게 좋을 거다.”
“흐음. 그럼 바로 아크 드래곤이 벗어날 텐데.”
“타이탄이 누르고 있잖아. 그리고 포격이 멈추면 타이탄 수명도 좀 늘어날 거고.”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저 마지막 페이즈에 들어간 아크 드래곤은 포격이 멈추는 순간부터 타이탄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녀석이 이곳을 벗어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니까.
방어를 하던 힘을 전부 공격으로 전환하면 타이탄도 오래 버티진 못한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고대 마룡의 창에 손을 올리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너 형 못 믿냐?”
“아뇨. 믿죠.”
사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가장 믿는다.
그 말만큼이나 실력으로 확실하게 보여 주는 사람이라.
“오래는 못 잡아둘 거야. 마룡의 창이라는 게 무한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래도 저 마지막 페이즈는 잠시 묶어둘 수 있을 거다.”
“그것만 해도 어디에요.”
지금 제국의 재산을 들이부어야 겨우 잡아두는 걸 재중이 형은 혼자서 하려고 하고 있다.
단순히 무기 성능이 좋은 걸 떠나.
아크 드래곤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지금 말한 걸 성사시킬 수 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
결정이 나자 곧 재중이 형이 비공정 폭탄의 투하를 멈췄다.
<주호> 전사 형. 포격 잠시 멈추세요.
<방패전사> 뭐? 지금 멈추면 난리날 건데.
<주호> 아뇨. 이제부터는 재중이 형 혼자서 아크 드래곤을 누를 거예요.
<방패전사> 에?
전사 형의 깜짝 놀란 답변이 돌아오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누가 들어도 놀랄 말이긴 했다.
에센시아 제국의 남아있는 영웅 후보들조차 아크 드래곤에게는 혼자 덤비진 않는다.
그런 무식한 일을 지금 재중이 형은 하려고 하고.
“전사 형이 깜짝 놀라는데요?”
“큭. 이거 그동안 너무 놀았나 본데?”
그리고는 어깨를 붕붕 돌리더니 바로 가르가 주니어를 하강시켜 빠르게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오래 못 버틴다. 올라올 때까지 준비 다 해놔.”
정말로 갔네.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 방어포가 일제히 멈췄고 아크 드래곤이 네 쌍의 날개를 펼치며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보였다.
타이탄이 아크 드래곤의 뿔로 만든 창으로 녀석의 마지막 페이즈의 방어를 찢기는 했으나.
포격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타이탄만으로는 역시 무리다.
그런데 붉은 라인을 그리며 쭉 날아 들어간 재중이 형이 고대 마룡의 창을 내질렀다.
녀석의 날개를 따라 비행하자 곧 아크 드래곤의 새로 성성된 검은 날개가 길게 쭉 찢어지는 게 보였다.
촤아아악!!
마치 칼로 두부를 썰 듯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갈려나가는 모습.
저 아름다운 궤적에서는 그 어떤 저항이나 어색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날개의 결을 따라가면서 갈라내자, 피어오르던 검은 기운 역시도 같이 일자로 쭉 찢겨져 나갔다.
“캬아아악!!”
그와 함께 아크 드래곤 역시 과한 괴성을 질러댔다.
찢겨나간 어둠의 날개 사이로 검은 기운이 분해되듯 흩어져 버렸으니까.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로 빠르게 아크 드래곤 주변을 돌며 창을 능수능란하게 휘두르자 곧 아크 드래곤의 날개가 완전 넝마가 되어 찢겨졌다.
동시에 아크 드래곤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브레스와 각종 광역 마법으로 대항했지만.
한참 신이 난 재중이 형의 현란한 움직임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아크 드래곤의 시야가 재중이 형의 비행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해야 하려나.
거기다 아예 닿으려는 광역기들조차 고대 마룡의 창으로 찢어 버리고 있으니.
고대 마룡의 창에 닿는 족족 아크 드래곤이 쓴 마법들이 깨어져 나가며 재중이 형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브레스는 피해 버려.
어둠 속성이 섞인 광역기는 그대로 찢어 버린다.
아크 드래곤이 이빨과 손톱을 뻗어 봐야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지 오래였고, 바로 다른 곳에서 아크 드래곤의 비늘을 가르면서 신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전사 형에게 연락이 올 정도.
<방패전사> 와우. 미쳤잖아?
<주호> 그러게요.
잠시라고는 해도.
정말 혼자서 저 아크 드래곤을 단독으로 누를 수 있을 줄은.
시간을 벌어준다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순간을 위해 저력을 아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고대 마룡의 창은 오래 못 쓴다고 하니.
아마 그게 맞을 듯했다.
덕분에 비공정과 포격 모두를 쉬게 할 수 있었다.
겨우 벌어준 시간을 헛되게 쓰면 안 되겠지.
곧장 드래곤 슬레이어를 복사해 쫙 아퀼라스 주니어의 등에 늘어놨다.
그렇게 한참을 복사하던 중.
인벤에 한 녀석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바로 마검.
이 녀석…….
체력을 강탈하는 옵션을 가지고 있었지?
아직 상태를 회복시켜야 해서 제대로 된 성능이 나오진 않겠지만.
일단은 마신급의 무기니까 당연히 저 아크 드래곤에게도 통용될 것이라 예상했다.
다른 무기의 어설픈 옵션 몇 개 더 넣어봐야.
어차피 아크 드래곤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터.
그럴 거면.
마검에 속한 옵션을 복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마검을 복사해서 옵션만 넣는 거라면.
굳이 다른 녀석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
이 지역은 비에른 자작이 모두 통제를 해놓은 상태였다.
거슬릴 만한 것도 없어.
결정을 내리곤 바로 마검을 꺼내들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몇 번 실패를 하긴 했으나 곧 불완전한 마검이 쭉 연달아 아퀼라스 주니어의 등 위에 올려졌다.
한쪽에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잔뜩 복사되어 있었고.
누가 보면 정말 기겁하겠네.
하나도 가지기 힘든 무기들을 쫙 깔아두는 모습이란…….
준비를 마치자마자 르아 카르테에 차례대로 탐식을 시작했다.
주로 드래곤 슬레이어의 옵션을 붙이고.
그다음은 마검의 옵션을 뽑아내는데 몰두했다.
사실 뭐가 제대로 된 옵션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옵션이 죄다 물음표라.
거기다 진(眞)토르까지 꺼내들었다.
- 모든 공격 광역 판정.
이 옵션 하나를 빼내기 위해.
지금부터 할 건.
이 옵션이 빠지면 안 되니까.
중간에 마신의 옵션 중 물음표에 해당하는 옵션은 그냥 몸으로 때워서 확인했다.
내 팔을 내가 그어봄으로써.
그리고 피가 쭈욱 빨려 나가는 이펙트와 함께 관련 메시지가 뜨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는 거지 뭐.”
임시방편이긴 하나.
이보다 확실한 확인 방법은 없었다.
여기에다가 대천사의 검의 옵션도 집어넣었다.
악 성향 몬스터를 때려잡는 옵션을.
그렇게 한참을 복사하고 탐식을 하다 보니 하나의 르아 카르테가 완성되었다.
15강인 르아 카르테에 옵션을 넣었더니 몇 가지 옵션은 더 뻥튀기가 되어졌고.
『 +15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 (유일) <정령의 가호>
/ 출혈 105(85+20) 타격 70(50+20)
- 드래곤형 피해 700% 추가
- 악마형 피해 500% 추가
- 치명타 확률 35%
- 악 성향 몬스터 타격 시 치명타 대미지 2000%
- 크리티컬 시 확률로 드래곤형 체력 4/100 감소
- 크리티컬 시 확률로 악마형 체력 3/100 감소
- 모든 공격 광역 판정.
- ?
- ?
- ?
- ? 』
정체 모를 저 물음표 옵션들은.
마검에서 뽑아낸 옵션들이었다.
몇 번 실험해봤을 때 가장 효과가 좋았던.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확실히 옵션을 뽑아냈을 텐데.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재중이 형이 죽을 판이라.
처음에는 잘 버티던 재중이 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피해를 입고 조금씩 페이스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고대 마룡의 창이 불완전하다보니 아직은 어려운 듯했다.
<주호> 형, 준비 끝났어요.
<불멸> 좋아. 이제 빠진다.
다시 전사 형에게도 연락을 넣었고.
<주호> 형 지금 빠집니다. 포격 다시 시작해 줘요.
<방패전사> 오케이.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빠지자마자 바로 사방에서 방어포의 포격이 이어졌다.
곧 갑옷이 넝마가 된 재중이 형이 웃음과 함께 내 옆에 올라왔다.
“고생했어요.”
“어,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저만큼 혼자 버틴 것도 진짜 대단하긴 하다.
아이템 복사하는 시간을 혼자서 전부 벌어 주었으니.
“이제 정말 녀석을 지워 버리자고요.”
바로 가지고 있던 비공정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잔뜩 복사한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를 그 비공정의 갑판에 우르르 집어던졌다.
“그럼 갑니다. 특제 르아 카르테 폭탄.”
이게 터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숫자의 르아 카르테가 녀석의 몸에 가서 박힐 것이다.
강력한 체력 감소 옵션을 덕지덕지 바른.
최강의 검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