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화 아크 드래곤 몰이 (6)
크루아 대륙의 원 역사에서 마족들이 계속해서 쳐들어왔을 때 천계의 천사들이 마냥 손 놓고 구경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저 성유.
유사시에 쓸 수 있도록 꽤 많은 양의 성유를 에센시아 제국에 제공해 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아주 당연하겠지만.
천계의 천사들도 자선 사업하는 놈들은 절대 아니니까.
얼핏 생각하기에 천사라고 다 웃으면서 퍼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쩌면 이놈들이 인간들보다 더할지도 모르지.
에센시아 제국에서 무지막지한 자원을 뜯어 가면서 성심 쓰듯이 성유를 안겨준 건 제국 고위 귀족들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중간 거래로 상당한 양의 제국 보물들을 빼돌린 게 그 고위 귀족들이니.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에 애꿎은 제국 국민들만 등골이 털린 셈이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후에 역사서에서 다 나와 있으니까.
이 당시에야 쉬쉬하면서 몰래 넘어갔던 일도.
나중에는 다 역사로 남는다.
그것도 꽤 안 좋은 일화로.
귀족들이 부패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일화라던가?
뭐 중간에서 많은 폭리를 취해 비싸진 건 맞는데.
기본적으로 성유 자체가 비싸긴 하다.
금과 맞먹을 정도면 거의 사치품이나 마찬가지라.
처음에 비에른 자작에게 성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반응은…….
잘 모른다고 일단 시치미를 떼었다.
하지만 계속 캐물으니 결국 성유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성유 자체가 자신의 권한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물품이라던가?
황실의 허가가 없으면 아예 쓸 수도 없는.
그야말로 전략물자였다.
여기서 웃긴 건.
정작 그런 성유를 잔뜩 가지고도.
아크 드래곤에게 전혀 써먹지를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유는 뭐.
단순했다.
성유를 아크 드래곤의 몸에 들이부으려면 그만큼 아크 드래곤에게 접근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남아 있는 영웅이라고 할 만한 녀석들도 있긴 한데.
그들이 탈것을 타고 아크 드래곤에게 접근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몇 번 시도를 한 모양이니.
하지만 문제는 한 사람이 들고 움직일 수 있는 성유의 양이 한정되어 있었다.
거기다 많은 성유를 탈것에 실었다가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 속도가 대폭 떨어진다.
그럼 접근하기도 전에 추락할 게 뻔하니까.
그렇다고 비공정을 접근시키자니 아크 드래곤이 비공정을 부숴 버리거나 그 자리를 피해 버리면 그만인 일이었다.
공중에서 저렇게 빠르게 날아다니는 아크 드래곤에게 성유를 뿌리는 건.
그만큼 에센시아 제국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그런 NPC들과 다르게.
우린에게는 인벤이 있었다.
수많은 성유를 넣어두고도 무게 차이가 극심하게 나지 않는.
NPC들이 보면 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스템이 그런 걸.
황제가 제국성을 등지고 튀면서 이렇게나 비싼 성유를 굳이 가지고 가지 않은 것도.
성유의 무게 때문이다.
사실 에센시아 제국에는 성유보다 더 값어치가 나가는 보물들이 많았다.
같은 무게로 쳤을 때 말이지.
한 번에 비공정에 실을 수 있는 성유는 한계가 있기도 했고.
애써 챙겨가지 않은 것도 이해는 된다.
덕분에 우리가 성유를 전부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려나?
비에른 자작을 털자 결국 성유의 보관 창고를 개방했다.
황녀의 명에 따라.
처음에는 목이 날아간다고 내어주지 않으려던 병사들도 황녀의 인장이 찍힌 증서를 보여주니 그 자리에서 창고를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황녀와 손을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뒤는 뭐.
어떻게든 황녀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에센시아 제국의 재산을 거덜 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유를 뒤집어쓴 채 백색 화염에 활활 타오르는 아크 드래곤이 연신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키아아아악!!
“용케 안 들키고 했네요.”
고속으로 날아가는 아크 드래곤의 시선을 일일이 피해서 성유로 작업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나였으면 채 절반도 하기 전에 들켰을 터.
아크 드래곤의 움직임을 완전히 꿰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방법이었다.
제국에서도 성유를 써먹어 보려고 시도는 해봤겠지만.
번번하게 실패한 건 다 이유가 있지.
“네가 어그로를 잔뜩 끌어줘서 그래. 시야가 절반뿐인 데다가 널 잡으려고 완전 미쳐 있었으니.”
재중이 형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재료가 좋은 장인을 만나면.
최고의 결과를 내듯.
지금 재중이 형은 최고의 성과를 내보였다.
“성유가 전혀 아깝지 않네요.”
“큭. 아까워하기는 했고?”
“하하.”
어차피 내 돈이 아닌지라.
“자, 그럼 저 녀석을 다시 지상에 처박아야겠지.”
“네.”
아크 드래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저 비행.
지금도 그렇다.
녀석을 공중에서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드래곤 계열의 탈것을 가진 나와 재중이 형의 가르가 주니어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속도가 한참 밀리는 걸 탈것의 조정 실력으로 겨우 만회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 어떻게 추격당해 지상으로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지.
그리고 당장에야 성유로 피해를 주었지만.
성유가 계속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오지 않는 이상에야.
하늘에서는.
이 녀석을 어떻게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결국 승부는 지상에서 봐야 한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게 뭐지?”
재중이 형이 활활 타오르는 아크 드래곤의 한 부위를 바라보며 말하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날개를 어떻게든 꺾어 놔야죠.”
다른 드래곤들과는 다르게 아크 드래곤의 날개는 총 네 장.
보통 한쪽의 날개를 꺾으면 공중 탈것들은 추락한다.
하지만 이 녀석 같은 경우에는 그걸 장담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세 장 정도는 꺾어 놔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안다.
“필요한 물품은?”
“가져 왔죠.”
전사 형에게서 전달 받은 몇 가지 물품들.
그중 대부분을 재중이 형에게 다시 전달했다.
성유를 써서 인벤이 텅 비어 있을 테니.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가 아닌.
재중이 형이 바쁠 것이다.
“저 녀석 정신 차리고 나면 이번에는 나일 거다.”
“네.”
그랜드 크로스로 한 방의 충격을 주어다면.
이번엔 재중이 형이 성유로 녀석에게 지대한 타격을 가져다주었다.
한 방은 내가 강했겠지만.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누적시킨 건 성유 쪽이 더 높지 않을까.
당연히 아크 드래곤은 재중이 형을 보게 될 것이다.
뭐 날 본다고 하면.
서로 역할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
그럼에도 재중이 형이 맡는 쪽이 조금 더 나을 터.
“성유 시간 다 됐지?”
“거의 끝났어요.”
지속 시간이 무한대였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성유가 가진 강력한 성능만큼이나 지속시간도 굉장히 짧았다.
“걸어가면서 금을 바닥에 버리는 꼴이라니까.”
“딱히 아니라고 할 수 없겠네요.”
우리가 추가로 공격을 해서 대미지를 줘도 괜찮았겠지만.
디버프 대미지가 접근이 불가능할 수준이라.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활활 타오르던 성유가 어느덧 그 빛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아크 드래곤도 점점 피해에서 벗어나는 중이고.
그런 녀석의 한쪽 남은 눈이 우리 쪽으로 획 돌아갔다.
“캬아아아악!!”
짜증이 잔뜩 섞인 거친 하울링.
녀석이 살면서 이렇게까지 두들겨 맞은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센 하울링을 뱉어냈다.
아크 드래곤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런 반응이 오히려 반갑다는 듯.
“다행히 도망은 안 가네.”
“다행이죠.”
녀석은 과연 알까?
우리가 도망 안 가서 다행이라고 한 말의 뜻을.
“와요.”
성유가 완전히 꺼지자 아크 드래곤이 네 장의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그 거대한 신체를 날렵하게 비행했다.
비록 그 날개가 성유에 녹아 누더기가 됐음에도.
아직까지는 비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그리곤 정확하게 내 쪽이 아닌 재중이 형을 향해서 움직였다.
“나중에 보자.”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를 빠르게 비행시키며 이 자리를 이탈하자 나 역시 아퀼라스 주니어로 공중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까와 다르게 지금은 내게 관심이 떨어진 듯 아크 드래곤이 재중이 형의 가르가 주니어의 뒤를 바싹 쫓아 날아갔다.
그만큼 재중이 형에게 받은 피해가 크다는 반증이겠지.
한 나라의 재산을 냅다 들이부운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둘을 보며 르아 카르테를 꺼내 빠르게 아이템 복사를 시작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비에른 자작에게 미리 이야기해서 마련한 수십 개의 칼날을 연달아 꽂을 수 있는 칼집 역시도 아퀼라스 주니어의 인장에 걸쳤다.
거기에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를 연속해서 꽂아 넣었고.
자.
준비는 됐고.
<주호> 준비 완료.
<불멸> 그래, 시작한다.
그렇게 상공에서 기다리다 보니 저 멀리 날아갔던 가르가 주니어와 아크 드래곤이 술래잡기를 하듯 공중에서 꼬리를 물기 위해 끊임없이 교차하며 활공하는 게 보였다.
그것도 수많은 브레스를 연이어 피해 가면서.
하지만 가르가 주니어는 절대 뒤를 잡혀주지 않았다.
큭.
역시 탈것 조정 능력은 재중이 형이 위다.
나야 감각을 개방해 아크 드래곤의 공격 경로까지 다 파악하고 미리 내빼는데 반해, 재중이 형은 순전히 자신의 경험과 조정 실력으로만 피해내는 중이니까.
단순 숙련도로만 치면 비교 불가다.
그리고 그렇게 피하는 와중에도 공중에 뭔가의 물건을 계속 풀어놓고 있었다.
얼핏 보면 뭔가의 뭉치 같은 원형의 아이템들이 하늘에 계속 뿌려졌다.
<불멸> 시작하자.
<주호> 네. 갑니다.
이건 정말 정확해야 한다.
타이밍.
속도.
위치.
어느 것 하나 놓치면 안 된다.
온 감각을 전부 풀어헤치자 주변 일대가 전부 내 감각 속에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의 자루로 손이 갔다.
‘지금.’
쐐애애액!!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아크 드래곤이 지나갈 어느 한 장소에 르아 카르테를 날렸고.
그 르아 카르테가 재중이 형이 미리 풀어둔 아이템을 정확하게 뚫으며 검신이 박히는 순간.
콰아아앙!!
허공에서 거센 폭발이 터지면서 그곳을 지나가던 아크 드래곤의 날개의 일부분이 거칠게 찢겨져 나갔다.
“캬아아악!!”
아이템이 폭파하면서 사방으로 뭔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알갱이들이 비산해 아크 드래곤의 날개를 벌집으로 쑤셔놓았다.
‘다시!’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를 뽑아 계속해서 날려 꾸준하게 폭발을 이끌어내었다.
그것도 아크 드래곤이 이동하는 경로를 정확하게 파악해.
도저히 녀석이 피할 수 없도록.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키아아악!!”
아크 드래곤이 계속 찢어지는 날개에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 입장에서는 지금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는 판이라.
아마 정신이 없을 것이다.
비공정의 주포와 중앙성의 방어포에도 찢기지 않던 날개가 지금은 쭉쭉 찢어져 나가는 중이다.
후.
역시 돈질이 최곤가.
지금 터지고 있는 저 아이템들의 값어치는.
분명히 성유의 그것을 충분히 능가한다.
재중이 형이 두 손을 번쩍 들고는 외쳤다.
<불멸> 크큭. 돈값 하네.
<주호> 네. 확실하네요.
수도 없이 많은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를 집어던져서 계속 폭발을 일으키자 당하기만 하던 아크 드래곤이 눈치를 챈 듯 고개가 내 쪽으로 들어 올려졌다.
이제 눈치챈 건가?
아크 드래곤은 아예 넝마가 된 날개를 억지로 펼치며 내 쪽을 향해 거센 비명을 질러댔다.
“캬아아악!!”
그런 일그러진 표정의 아크 드래곤을 보고는 환영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어디 한번 덤벼 봐.”
네 녀석에게는 아직 줄 게 더 남았으니까.
녀석을 지상에 처박을 수 있는.
최고의 돈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