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0화 아크 드래곤 몰이 (4)
미리 예상했던 대로.
녀석의 주변에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아크 드래곤은 내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에야 그저 더미 스킬을 쓰고 있는 자신의 주위를 우연찮게 지나가는 탈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조금의 방심.
무엇보다 겉으로 보기에 아퀼라스 주니어는 아크 드래곤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냥 두었을 것이다.
아퀼라스 주니어가 주변에 날아다니는 것을.
그러다 순간적인 이중 가속으로 녀석의 몸으로 완전히 돌진해 들어갔다.
이때가 아크 드래곤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파악은 조금 빠르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먼지 폭풍이 시야를 완전히 가린 상태였다.
이걸 위해 전사 형에게 부탁해 이 일대를 포격으로 먼지투성이로 만들어냈다.
단 1초라도 녀석의 시야를 흐려놓는.
아주 약간의 시간.
그 짧은 시간동안 녀석이 우리를 놓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런 판단은 아주 주효했다.
아크 드래곤이 아퀼라스 주니어의 가속 스킬에 놀랐는지 고개를 돌리는 사이 이미 내 등 뒤에는 휘황찬란하면서도 투명한.
새하얀 천사의 날개 이펙트가 뻗어나가는 중이었다.
대천사의 가호.
그랜드 크로스를 쓰기 전의 선행 스킬.
만약 이렇게까지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면.
이 대천사의 가호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나 눈에 띄는 화려한 스킬을 쓰는데 아크 드래곤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이건 아무리 시야를 가리기 위해 폭격으로 먼지 폭풍을 만들어 두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대천사의 가호를 쓰는 순간.
바로 들킨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대천사의 가호를 아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
대천사의 가호를 최대한 늦게 써야 했기 때문에.
선행 스킬인 대천사의 가호를 쓰고 난 뒤 그랜드 크로스를 차징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랜드 크로스는 차징을 할수록 마력을 많이 잡아먹고.
그만큼 강해지는 스킬이었다.
아무리 내가 레벨이 낮다고 한들.
풀 차징만 가능하다면.
바로 정면에서 아크 드래곤의 싸다구를 후려친다고 해도 먹히지 않았을까.
이 그랜드 크로스라는 스킬은.
무려 대천사의 최종 스킬이니까.
위력 하나만큼은.
현존하는 그 어떤 스킬보다도 강하다.
설령 그게 과거 성마 전쟁 시대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끝판왕 네임드인 아크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이 그랜드 크로스만은.
반드시 통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대천사의 가호를 쓰고 난 뒤.
그랜드 크로스를 차징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고 한들.
제 위력을 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레벨과 스펙이 낮은 내가 풀 차징이 없이 제대로 타격을 주는 건 더 힘든 일일 테고.
그래서 더욱 더 녀석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딱 하나.
녀석에게 통할 유일한 약점을 잡기 위해서.
대천사의 가호를 쓰자마자 바로 두 개의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를 녀석의 눈에 박아 넣었다.
“캬아악!!”
녀석이 더미 스킬로 몸을 숨기고 있던 허공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크 드래곤도 설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눈에 검을 박아 넣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다른 녀석들이 보기에 자신은 보이지 않는 상태여야 하니.
여기서 끝나면 섭하지.
【 그랜드 크로스! 】
두 개의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가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광채를 뿜어내며 일대를 환하게 물들였다.
당연히 두 개의 르아 카르테가 박혀 있던 아크 드래곤의 눈 역시도 화끈한 빛이 터져 나왔고.
화아아악!!
콰아아앙!!
최대의 위력을 이끌어낼 풀 차징?
뭐 없으면 어때.
그냥 이렇게 녀석의 눈 안에다가 스킬을 터트려 버리면 그만인데.
아무리 차징을 못한 위력이 줄어든 그랜드 크로스라고 하더라도.
그랜드 크로스는 그랜드 크로스다.
최소한의 위력 정도는 보장해 준다는 거다.
그것도 무려 녀석의 약점에 해당하는 내부 부위 안에서라면.
폭사하는 그랜드 크로스의 빛 속에서 두 손에 잡았던 르아 카르테가 손잡이만 남겨놓고 검신이 모두 터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애초에 레플리카 버전이다.
내구성은 뭐.
할 말이 없을 정도지.
하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그랜드 크로스를 쓰는 초기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당장 이걸 놓고 빠지지 않으면 나 역시도 피해를 볼 것 같거든.
미련 없이 부서져 버린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의 손잡이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
그리고는 그 폭발에 몸을 그대로 맡기면서 아퀼라스 주니어의 몸통으로 내 몸을 바싹 붙였다.
콰아아앙!!
그랜드 크로스의 후폭풍으로 인해 아퀼라스 주니어와 내 몸이 마치 포탄에 두드려 맞은 듯 미친 듯이 흔들리며 아크 드래곤에게서 튕겨 나왔다.
사실 그랜드 크로스가 이렇게 근접해서 붙어 쓰라고 만든 스킬도 아니지.
당연히 그 반사 위력으로 인해 나도 꽤 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이었다.
크윽.
이것도 못할 짓인데?
그사이 아크 드래곤의 머리 쪽에서는 크리티컬이 연이어 터지면서 화려한 대미지 축제를 벌이는 중이었다.
무려 녀석의 내부에서부터 터진 스킬이다.
평범하게 외부에서 쓴 것과는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아크 드래곤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빛의 폭풍이 동시에 주변을 가리고 있던 먼지들을 싹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이 일대의 먼지들이 모두 녀석을 중심으로 사라져 갔다.
대신 그 자리는 온통 폭발의 빛이 머금고 있었고.
어느새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를 이끌고 날아가던 아퀼라스 주니어를 뒤에서 받쳐 주었다.
“세이프.”
이 한 방으로 아퀼라스 주니어 역시 기절 상태라.
나 역시도 아퀼라스 주니어의 몸체에 내 몸을 숨겼기에 피해를 최소화했다.
“살아 있냐?”
“네, 그럭저럭 살긴 했네요.”
그런 날 보면서 재중이 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감탄했다.
“미친 자식.”
“하하…….”
“애가 정도를 몰라. 그걸 붙어서 쓰면 너도 죽는 걸 몰라?”
“안 죽었잖아요.”
“하. 그냥 말을 말지.”
“뭐 처음부터 아퀼라스 주니어를 방패 삼으려고 했어요.”
듣는 아퀼라스 주니어는 꽤 섭섭하겠지만.
지금은 잠시 기절 상태라.
피해가 있긴 해도 역소환 당하지 않은 건 상태 이상 정도라서 그럴 것이다.
기절한 아퀼라스 주니어를 잠시 소환해제 시켜놓고 재중이 형의 가르가 주니어에 올라탔다.
“덕분에 저 꼴이잖아요.”
아직도 터지는 빛의 폭발 사이로 시선을 돌리자 아크 드래곤이 그 거대한 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로 머리부터 바닥으로 꼬구라진 채 낙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머리부터 사정없이 단단한 바닥에 패대기쳐졌고.
커다란 크레이터가 다시 한 벙 생성되었다.
콰아아앙!
우드득!
낙하 각도가 잘못되었는지.
목이 반대로 꺾인 게 아닌 정도로 심각하게 피해를 입은 아크 드래곤의 기묘한 모습을 보니 왠지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주변의 마법진들도 일제히 해제가 되었다.
더미 스킬을 포함해.
공격 스킬 마법진까지 모두.
전에 더미 스킬이 간파당해 비공정과 제국성의 주포에 당해 떨어졌을 때처럼.
지금 역시 모든 스킬이 사라졌다.
굳이 피해의 정도를 논하자면…….
아마 전보다 지금이 훨씬 위력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 증거로 지금 아크 드래곤의 전신에서 피를 계속 뿜어내는 중이었다.
특히 머리 쪽은 아예 새까맣게 타버렸는지 힘없이 벌어진 입 사이로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고.
무엇보다.
반대로 꺾어진 저 튼실한 목.
중간에서 목뼈도 꺾였는지 목 한쪽이 확 튀어나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중간에 낙하가 잘못 된 듯했다.
“죽었을까요?”
“설마. 이 한 방에 죽어 버리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거라면 이 고생을 안 하지.”
재중이 형 말이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것은.
지금 아크 드래곤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빛으로 돌아가거나 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무방비상태이긴 한데.
그렇다고 그랜드 크로스 한 방에 체력이 다 깎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지.
지금은 그냥 기절 상태라 봐야했다.
아마도 연달아 기절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시간이 길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시간을 벌었으면.
써먹어야겠지.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비에른 자작에게 다시 포격을 시작하라고 하세요.
이건 일종의 시간벌이였다.
이 정도로 죽어줄 아크 드래곤이 아닐 테니.
아크 드래곤을 정말 잡고 싶다면.
녀석을 죽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계속.
물론 지금처럼 그랜드 크로스를 써서 녀석을 다운 시킬 수도 있지만.
그랜드 크로스의 쿨타임과 마력 회복도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크 드래곤이 똑같이 방심해줄 거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야 했다.
아마 다음번에 내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분명히 반격을 해올 테니까.
혹은 그냥 머리만 피해 버려도 그랜드 크로스를 눈에 완전히 명중시키기란 요원한 일이다.
곧 황실 비공정과 중앙성에서 연이어 주포와 방어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쿠우우웅!!
퍼어어엉!!
이전에는 단순히 포격을 맞아 떨어졌다면.
지금은 아크 드래곤의 내부에서부터 그랜드 크로스가 터진 상태.
단순히 외부 충격에 의한 다운과.
내부 폭발로 인한 다운은 피해도에 차이가 있었다.
적어도 그걸 수습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에는.
포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신 포격이 터질 때마다 녀석의 신체가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저건 외부 장갑과 마법 방어 시스템이 피해를 온전히 반사하거나 흡수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지.
예전의 포격에서 무난하게 버티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는 피해가 좀 있겠네요.”
“그럼 다행이지.”
그랜드 크로스까지 썼는데 이 포격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많이 아쉬울 터였다.
“일어나면 눈이 시뻘겋게 변해서 달려올걸?”
현재 아크 드래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저 수많은 포격이 얼마나 유효타를 줄지는 몰라도.
분명히 아크 드래곤은 일어나자마자 나부터 찾을 것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 나를 어떻게든 찢어죽이기 위해.
“혹시 녀석이 이대로 도망가면요?”
“흐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는 않겠지.”
나쁘지는 않다라…….
아크 드래곤이 튀는 게 최선의 결과는 아니라는 뜻일 테다.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주는 것.
그게 최선의 결과다.
거기다.
지금처럼 에센시아 제국의 지원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안 되면 한 방 더 날려보죠.”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녀석의 어그로를 확실히 끌어야 하니까.
포격이 연신 터지는 와중에 전사 형에게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상황은?
<주호> 보다시피 지금은 괜찮은데 곧 일어날 거예요.
녀석의 꺾였던 목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면서 재생하는 모습을 보니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날 모양이다.
<주호> 제가 말한 준비는요?
<방패전사> 대략 70% 정도? 급하게 공수한다고 아직 완전히 구하진 못 했어. 비에른 자작도 이 속도가 한계라고 하더라. 그나마 황녀가 허가를 해줘서 망정이지. 아니면 절반도 준비 못할 뻔했다.
<주호> 음. 그 정도면 잠시 해볼만은 하겠네요.
잠시라는 내 말에 전사 형이 크게 웃었다.
<방패전사> 하하, 이 미친놈. 지금 그 잠시를 때우려고 얼마를 쓰는지 알아? 너 직접 보면 기절할걸?
그런 전사 형에게 웃으면서 답했다.
<주호> 어차피 제 돈도 아닌 걸요.
맞다.
내 돈이 아니니까.
이렇게 막 굴리는 거다.
옆에서 재중이 형 역시도 크게 웃어버렸다.
“황녀가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질 거야.”
“그러니까 말리기 전에 해야죠.”
어쩌면…….
황실을 살리고도 황녀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겠는걸?
죄목은 제국 재산 탕진…… 정도 되려나?
“슬슬 일어난다. 가자.”
잠시 지켜보다가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를 준비된 장소를 향해 이동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크 드래곤의 광포한 울음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쿠아아아아!!!
“아주 열이 바싹 올랐는걸?”
“적어도 안 따라오지는 않겠네요.”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부터 아크 드래곤이 거대한 날개를 활짝 피고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더니 우리를 그대로 따라 오기 시작했다.
포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덕분에 제국 중앙성은 녀석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녀석이 화풀이로 깨부수면 어쩌나 했는데.
그보다는 나를 잡는 게 녀석에게는 더 우선순위인 모양이다.
곧 전사 형과 비에른 자작이 마중 나와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전사 형이 나와 재중이 형에게 빠르게 뭔가를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그 물품을 모두 받은 뒤.
다시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 하늘로 올라갔다.
“조심해라.”
“네, 형도 조심해요.”
멀리서 매섭게 기운을 흩뿌리며 접근하는 아크 드래곤을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돈질의 무서움을 느껴 봐.”
제국이 먼저 털리나.
네가 먼저 털리나 한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