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47화 (1,035/1,404)
  • #1047화 아크 드래곤 몰이 (1)

    남아 있는 제국 비공정 두 대에서 뿜어진 주포가 아크 드래곤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준 뒤.

    그간 아크 드래곤이 모습을 감추는데 썼던 더미 스킬과 더불어 브레스들을 쏟아내던 브레스 마법진들 역시 한꺼번에 허공에서 깨져나갔다.

    키이잉!

    콰지징!!

    “크아아아!!”

    갑자기 모습이 드러난 아크 드래곤의 동체 전체에서 단단하게 몸을 보호하던 비늘 중 일부가 금이라도 간 듯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사이로 붉은 체액들 역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연산을 하며 허공에서 돌아가던 마법진들이 모두 깨지며 그 여파가 고스란히 아크 드래곤에게 역으로 되돌아간 모양.

    지금 비공정의 주포로 숨겨져 있는 아크 드래곤의 본체에 큰 타격을 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주포들의 위력이 아크 드래곤에게 저만한 피해를 입힐 수 있냐고 한다면…….

    또 그건 아니지.

    이건 순전히 많은 마법진이 동시에 깨졌기 때문에 내부에서부터 심각한 피해를 본 것이다.

    당연히 마법이 크고 강할수록.

    리바운드는 훨씬 크게 다가온다.

    심지어 지금은 브레스가 무려 백여 발이 준비된 상태였다.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주는 피해 이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미지를 아크 드래곤에게 입혔을 터.

    아크 드래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피해를 줘서 그런지 에센시아 제국 중앙성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서 떠나가는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아!!!”

    “드디어 공격이 먹혔어!!”

    “아크 드래곤이 피를 흘린다!”

    “마법진도 전부 사라졌잖아?!”

    “와!! 살았다!!”

    저 사방을 울리는 외침들은 제국성이 그간 얼마나 수세에 몰려 있었는지를 잘 알려주는 반증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반격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터.

    그만큼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브레스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될 뻔한 제국 중앙성에 남은 사람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에서 겨우 살아난 게 기쁜 듯 수정구가 마구 빛을 발했다.

    “주호 왕자. 당신. 정말로 해냈네요.”

    저 정체 알 수 없는 황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쁜 듯이 외치자 수정구를 보며 마주 웃으며 답해주었다.

    “제가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높은 확률로 확신이 있었다.

    시선에 빤히 잡히는 걸.

    더미 스킬만 믿고 가만히 날고 있는 표적을 못 맞추는 것은 내게 굴욕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내겐 쉬운 일이라는 뜻이고.

    그러자 곧 황녀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꽤 의미심장한 말로.

    “당신이 제국을 구했어요.”

    제국을 구했다라.

    사실 이미 알맹이들은 다 빠져나간 상태라 껍데기만을 구한 셈이긴 한데.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제국을 절체절명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음.

    이러면 나도 영웅 후보에 들어가는 거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챠밍이 내 팔을 건드렸다.

    뭔가를 알리듯.

    “응? 무슨 일…….”

    “오빠, 지금 떨어져요.”

    “떨어지라고?”

    이건 수정구에서 떨어지라는 소리인가?

    물음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챠밍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니요. 저기 위!”

    “아하.”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자 겨우 자세를 유지하던 아크 드래곤에게서 이상 조짐이 생겨났다.

    공중에 떠 전신에서 피를 내뿜던 아크 드래곤이 그 커다란 동체를 유지하고 못하고 날개가 접었다.

    그리고는 날 수 있는 힘을 잃은 아크 드래곤의 동체가 지상으로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파아아아!!

    얼마나 덩치가 큰지 단순히 자유낙하를 하는 것뿐임에도 대기가 찢어지면서 사방으로 강한 돌풍을 일으켜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밀어닥치는 수준이라.

    저게 지상으로 떨어지면…….

    “다들 피해.”

    뒤를 볼 것도 없다.

    아크 드래곤이 수직으로 떨어지면 그 위치에 지상의 형체가 있는 모든 것들이 박살날 테니.

    굳이 내 신호가 아니더라도.

    이미 아크 드래곤의 낙하를 본 모든 이들이 사색이 되어 이 자리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비에른 자작을 비롯한 모든 병력들이 동시에 우르르 빠져나가는 모습이란.

    “우리도 튀자.”

    그러자 챠밍이 미소지으며 내 팔을 붙들고는 그대로 스킬을 시전했다.

    【 블링크! 】

    나와 함께 사라진 챠밍이 다시 손을 놓자 어느새 내 몸은 추락 위치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 와 있었다.

    “땡큐.”

    “뭘요.”

    그리고 우리 뒤에 따라 달려온 재중이 형이 부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누군 블링크 써서 편하게 오고. 누군 뛰어오고 말이야.”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누가 부럽데?”

    우리 팀 모두 헐레벌떡 뛰어와 추락 지적과 한참 거리를 벌리자 곧 아크 드래곤이 무방비한 등짝 그대로 지상을 들이박았다.

    쿠아아앙!!

    마치 폭탄 수십 개가 터진 것처럼 맹렬한 폭발음이 들림과 동시에 후폭풍이 대기압을 찌그러뜨리면서 밀려 들어왔다.

    휘유우웅!!

    멀리 도망 온 우리의 몸이 동시에 불쑥 들릴 정도의 파괴력.

    단순 자유낙하로만 주는 압력이 이정도니…….

    아크 드래곤의 신체에 가해진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터.

    특히 저렇게 무거운 녀석들은 그 피해가 훨씬 크다.

    전사 형이 몸이 공중에 들리면서도 놀랍다는 듯 외쳤다.

    “휘유. 저 새끼 몸 딴딴한 것 보소.”

    제국 한복판에 강제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의 추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크 드래곤은 몸이 터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마법이 깨지면서 내부에 준 피해가 더 커 보였다.

    대지에 꼴아 박은 상태인데 신체의 피부가 버티다니.

    대체 저 신체는 얼마나 단단한 건지…….

    그런 아크 드래곤을 본 전사 형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그것도 꽤 욕심을 담은 눈빛으로.

    “주호야. 저 녀석 비늘 뜯어내면 꽤 좋은 방패 나오겠지?”

    “하하. 아무렴요.”

    거기다 한술 더 떠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비늘만 있냐. 뼈도 있잖아. 이번 기회에 무기나 새로 맞춰 볼까?”

    전사 형도 그걸 받아주었고.

    “형님이 든 무기가 더 좋지 않습니까?”

    이건 직접 만들어놓고 나중에 비교해봐야 알겠지만.

    “음, 그럼 방어구로 해야겠다. 애들 방어구도 좀 맞춰주고.”

    “이빨도 몇 개 좀 뽑죠.”

    “좋지.”

    이미 아크 드래곤을 다 잡은 것처럼 품평에 들어가는 둘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무려.

    성마 전쟁 중후반부에 가야 등장하는 녀석이다.

    그것도 성마 전쟁의 마족 측 핵심 네임드 중에도 꽤 나중에 등장하는 끝판왕 격 녀석이기도 하고.

    아마 상위 마왕을 제외하면.

    이 녀석과 맞먹을 녀석 자체를 찾기 힘들 것이다.

    아니지.

    오히려 그보다 더 윗줄에 있을지도 모른다.

    괜히 재앙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 테니.

    드래곤 계열 중에서는.

    특히나 강한 개체.

    이 녀석을 베이스로 아이템을 만들 수만 있으면.

    앞으로의 성마 전쟁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터.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죠.”

    어쩌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른다.

    다른 영웅들이 개입하지 않는.

    순수하게 우리의 힘으로 이 수준급의 네임드를 요리할 수 있는 건.

    거기다 이젠.

    임시지만 제국의 중심이 된 황녀가 우리를 알아본 상태였다.

    우리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모르긴 해도.

    당장 요구하는 것 중에 상당수는 황녀가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헐레벌떡 우리 옆으로 뛰어온 비에른 자작이 내 옆에 섰다.

    확실히 자작 때라 그런지 공작과 같은 품위는 없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게 편하다.

    “비에른 자작. 저 황녀를 통하면 제국의 자원을 더 끌어다 쓸 수 있나?”

    내 물음에 비에른 자작이 몇 가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꽤 긍정적인 표정과 함께.

    “네, 황녀님이 허락해주시면 그간 자작 위에 묶여 있던 제한을 대부분 풀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지금보다 더한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건.

    우리 계획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정말 엄청난 돈지랄 일 테니까.

    “아주 마음에 드네. 그럼 어디 제국의 재산을 마음껏 가져다 써볼까?”

    “그건 좀…….”

    난감해하는 비에른 자작에게 추가로 몇 가지 오더를 더 내렸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아. 그 전에 허락 정도는 받아야지.”

    바로 수정구를 들어서 황녀에게 연결했다.

    “혹시 제국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좀 가져다 써도 됩니까?”

    그러자 잠시 생각하는 듯 대답이 없던 황녀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아크 드래곤을 잡는데 필요한 지원인가요?”

    역시.

    저 지위쯤 되면 말의 의도를 알아서 잘 해석하는 듯했다.

    “그런 셈이죠. 비에른 자작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지라…….”

    “그렇다면 좋아요. 내 권한이 허락하는 하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죠.”

    “통이 크시네요.”

    이 황녀는.

    대체 내가 뭘 얼마나 가져다 쓸 줄 알고 저렇게 대답을 하는 걸까.

    아마 제대로 듣는다면 뜯어말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황녀에게서 나온 말은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이미 황족 중에는 저만 남아서 이곳을 지키는 중입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아크 드래곤을 잡아서 에센시아 제국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본인이 의식하고 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지금 우리라는 말을 썼지?

    그렇다는 건.

    황녀가 우리를 자신의 세력이라고 확실하게 인식을 했다는 뜻이었다.

    뭐 내가 너무 과대 해석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옆에 재중이 형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한 것을 보면.

    아예 틀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주호> 형, 이건…….?

    <불멸> 어, 황녀가 우릴 자신의 세력으로 점찍었군.

    <주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도?

    <불멸> 그 지원을 죄다 가져다 쓰면서 자신에게 오는 부담보다. 지금 아크 드래곤을 잡아내는 게 훨씬 더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거다. 정치적인 입장으로.

    정치적이라.

    황족이라고는 달랑 하나 남았는데.

    그것도 다른 황족들은 제국을 튀다시피 놔두고 간.

    마지막 황녀.

    그런 황녀가 아크 드래곤을 잡는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주호> 확실히 저 황녀에게는 엄청난 업적이 되겠네요.

    <불멸> 그래. 반대로. 지금 에센시아 제국을 등지고 내뺀 녀석들은…….

    <주호> 상당히 곤란해지겠죠.

    이렇게 버리고 도망갔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들의 목을 죄다 친다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제국의 실세들이 그들의 뒤를 바치고 있는 이상에야.

    특히 급히 돌아오는 영웅들도 각각 미는 황족이 있을 테고.

    하지만.

    적어도.

    이제부터는 명분은 이쪽에 있다.

    그것도 홀로 남아 제국을 살려냈다는 명분이.

    당연하겠지만 그 명분은.

    이 황녀를 단숨에 황위 계승의 꼭대기로 올려줄 것이다.

    다른 상위 계승자들과 나란히 설 수 있도록.

    이거 든든한 빽을 잡았다고 해야 하려나?

    만약 성공만 하면.

    바로 황위 계승 싸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뭐 이게 썩을 동아줄인지.

    앞으로 황금이 될 줄인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쓸 수 있는 좋은 패가 생겼다는 건 확실했다.

    잠시 고민한 뒤 미소와 함께 말을 꺼냈다.

    <주호> 그럼, 겸사겸사. 보너스도 좀 챙겨보죠.

    그런 내 말에 재중이 형의 눈빛이 진하게 물들었다.

    흥미로워하는 딱 그런 눈빛.

    <불멸> 호오? 제대로 해보려고?

    <주호> 네, 이왕 하는 것. 에센시아 제국도 한 번 먹어 볼까요?

    이미 한 번 먹어 본 다른 제국도 있는데.

    안 될 게 뭐 있겠어?

    <주호> 아무래도 우린 황녀만 키울 팔자인가 봐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