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화 에센시아 방어전 (10)
아크 드래곤이 떠 있는 하늘을 뒤덮는 듯한 마법진들의 향연.
그 어마어마한 마법진의 개수에 놀라움을 넘어 감탄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심지어 그 마법진에서 생성되어 뻗어나가는 건.
다름 아닌.
드래곤 브레스였다.
하나하나가 진짜 제대로 된.
진짜 브레스.
차라리 환영 같은 거라면 믿기라도 하겠는데.
나르샤 누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흘렸다.
“저건 상식을 벗어났네.”
“그러게요.”
멀리서 지켜보는 우리야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하지만.
아마 확실하게 모르긴 해도.
지금 저 중앙성에 있는 NPC들은 완전 비상이 걸렸을 것이다.
전사 형도 한마디 했다.
“이거 잘못하다 오늘 에센시아 제국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것 아냐?”
그런 전사 형의 말에 딱히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브레스 백여발을 직접 맞이해본 경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진짜 저걸 막아 낼 수 있는가조차도 의문이고.
공중에서는 제국과 왕국을 대표하는 비공정들이 미친 듯이 주포를 돌려 아크 드래곤에게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번 공격이 의미가 있는 것은.
평소라면 저 주포들로 명중조차 힘들 테지만.
지금은 아크 드래곤이 대단위 브레스를 준비하는 동안 이동 없이 계속 고정되어 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콰앙!
쿠아앙!!
십여 대의 거대한 비공정에서 수도 없이 뿜어내는 주포들의 위력 시위에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주포가 아크 드래곤에 날아가 터지는 충격파로 인해 지상까지 그 여파가 충격을 주었다.
당연히 주변의 NPC들도 깜짝 놀라 허리를 숙였고.
그만큼 주포의 집중된 포화에는 강력한 위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저 아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쩌면 그동안의 전투 동안 가장 유효했던 공격이 아닐까 싶은데?
보통은 아크 드래곤이 그 엄청난 기동력으로 다 피해 버리니까.
저게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먹힌 공격일 것이다.
옆에서 비에른 자작도 허리를 숙이면서도 손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제발 떨어져라!!”
비에른 자작조차 이번 공격이 완전히 통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서 재중이 형이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마치 저 주포들의 폭격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듯.
“흐음. 어렵겠는걸.”
“그래요?”
“어, 자세하게 봐. 전혀 영향이 있지 않아.”
재중이 형의 그 말에 시선을 더욱 집중시키며 아크 드래곤의 주변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주포들의 폭발이 연이어 터지는 와중에도 아크 드래곤은 그 동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중에 떠있었다.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듯.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사실 비공정의 주포가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의 방어막에 막혀 아크 드래곤에 채 닫기도 전에 폭발이 일어났다.
“단순히 브레스만을 위한 마법진이 아니야. 추가로 방어 마법진도 같이 시전했다.”
“……사기 아니에요?”
“그러게.”
재중이 형도 두 손을 들어 올리면서 사기라는 걸 인정해 버렸다.
“완전 사기지. 어떻게 보면 아크 드래곤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저 많은 주포가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까.”
틀린 말이 아니다.
마법사들이 대단위의 마법을 준비할 때가 가장 큰 빈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보통은 광역기를 쓰기 전의 준비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편이었고.
그때를 노려서 마법사의 목을 따는 건 유저들에겐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공수가 완벽한 사기라니.
밸런스도 이 정도면 완전 붕괴다.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괴물을 만들어 놓은 거야?”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지금 과거 역사 이벤트가 제대로 유저들에게 퍼졌고.
수많은 유저들이 참여했다고 한들.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밸런스 붕괴였다.
호랑이가 날뛰는데 개미 수백만 마리가 덤빈다고 게임이 되긴 하겠나.
짓밟혀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놓진 않았을 텐데요?”
“흠. 그건 그렇지. 성마 전쟁 중후반에 나오는 네임드니까. 아예 못 잡게 만들어놓진 않았을 거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게 지금이 아니라 문제지.”
성마 전쟁 중후반부.
앞으로 몇 년 뒤가 될지도 모르는 시점.
반대로 지금은.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 준비라는 영웅들마저 밖으로 나가 있는 시점이라.
그런데 그렇게 집중포화를 맞아가면서도 백여 개의 마법진이 꾸준하게 돌아가는 동안.
마치 하늘의 대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응?
잘못 본 건가?
워낙 폭격이 심해 시야가 확실하지 않긴 했지만.
미묘하게 아크 드래곤 주변으로 시야가 왜곡되는 것 같은 기분이 났다.
뭐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심지어 NPC인 비에른 자작 역시도 그냥 하늘을 올려다볼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이상하게 대기가 휘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응?”
그 말에 재중이 형의 눈썹이 살짝 치켜세워지더니 다시 한 번 하늘을 빤히 쳐다보았다.
“흐음. 정말 그러네. 이상할 정도로 아크 드래곤의 주변이 휘어져 있어.”
분명히 주포들이 터지는 장소에 아크 드래곤이 보이긴 했는데.
거기다 확실하게 주포가 날아가 폭발까지 일으키기도 했고.
문제는.
저 폭발이 제대로 된 폭발이냐는 것이다.
한참을 쳐다보던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더미네.”
그 말에 우리 팀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닿았다.
재중이 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고.
“저거 위장이야. 그냥 대놓고 후려치라고 만들어 둔.”
이상할 정도로 휘어지게 보이던 광경이.
사실은 더미였다는 거다.
아크 드래곤처럼 보이는.
전사 형이 한숨을 쉬면서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 제국 쪽에서 삽질하고 있다는 거군요.”
“어. 아주 제대로 삽질 중이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다가 주포를 낭비하고 있으니까.”
더미.
혹은 환영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실제로 지금 아크 드래곤은 저 위치에 있지 않다는 거다.
챠밍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긴 했어요.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저 집중포화를 시전 중에 버텨낼 수가 없으니까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시전 중에는 누구라도 무방비 상태가 된다.
드래곤이야 방어가 높으니 버틸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마법이 방해 받으면 시전 중인 마법이 깨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한마디로.
지금 아크 드래곤이 더미를 보여주고 대신 포격을 맞으며 다른 곳에서 저 많은 브레스를 준비 중이라는 거다.
위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만큼.
시전 시간도 마찬가지로 길 터.
그 긴 시간을.
더미로 속여 버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국에서는 더미만 냅다 공격 중이고.
그때 막내별이 외쳤다.
“시작됐어요!”
먼저 시전된 듯한 몇 개의 마법진이 돌아가는 걸 멈추면서 그대로 지상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내었다.
일단은 시전된 건 다섯 발.
속성 역시 다양했다.
화염, 뇌전, 폭풍, 빙결, 독.
하나의 드래곤이 썼다고 상상할 수 없는.
무려 다섯 가지의 속성이 동시에 시전되자 우리가 예상했던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마 한 번에 백여 발의 브레스를 동시에 뿜어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저 대단한 아크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무리인 듯했다.
쿠아아아!!
화르르륵!
휘이이잉!!
키이이잉!!
마법진들 각각 강력한 브레스를 뿜으면서 지상의 중앙성으로 떨어지자 순간 중앙성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방어 마법진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저건……?”
“아무 대책이 없진 않겠지.”
마치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방어 마법진이 크게 생성되어 브레스들을 막아섰다.
콰아아앙!!
콰아앙!!
콰드드득!!
브레스와 방어 마법진이 허공에서 동시에 부딪혀서 터지고 밀리며 그들만의 싸움을 이어갔다.
비에른 자작이 다시 손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황족들만이 쓸 수 있는 중앙성의 대마법 방어진입니다.”
“그래?”
그래도 제국이라는 이름에 맞게 정말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쉽게 멸망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고.
재중이 형이 비에른 자작에게 물었다.
“저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어? 무한정 버틸 순 없을 것 아냐.”
그 물음에 비에른 자작이 조금은 암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가 알기로 대략 스무 번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채 절반도 못 막는다는 소리 아냐.”
지금 공중에 떠 있는 브레스는 무려 백여 개.
그런데 비에른 자작의 말에 따르면 그중 막을 수 있는 건 스무 번이라고 한다.
저 대마법 방어진이 아무리 잘 막아 봐야.
결국 시간문제라는 거다.
비에른 자작에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거 못 막으면 망해.”
성벽도 한 번에 뚫어버릴 브레스인데.
한 발도 아닌.
수십 발이 넘게 중앙성으로 떨어질 예정이다.
비에른 자작이 세상이 망한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매달렸다.
“제발, 제국을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비에른 자작에게서 퀘스트가 떠올랐다.
뭐.
대충 제국의 멸망을 막아달라는 부탁 비슷한 그런 퀘스트였다.
아마 미리 준비되어 있던 퀘스트 라인에 들어간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열심히 보상도 읽어 보고 그랬겠지만.
어차피 이미 에센시아 방어전에 들어와 있는 이상은 크게 의미가 없는 내용이기도 했고.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거겠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더미인지 모르고 열심히 주포를 두들겨 대는 비공정들의 삽질.
당연하게도 하늘에 가득한 마법진들은 흔들리지도 않았다.
휴.
일단 급한 불을 끄기는 해야겠는데.
당장 중앙성이 날아가면.
그다음에는 제국 전체에 폭격이 시작될 거다.
거기까지 진행된다면 제국을 살려내는 것도 별 의미가 없을 테고.
순간 다른 생각이 잠깐 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천계에서 개입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없는 걸 봐서는.
확실히 연합되어 있는 형태는 아닌 듯 했다.
말이 성마 전쟁이지.
지금까지는 그냥 준비 과정 정도랄까.
그런 준비 과정에서 다 털려버리는 제국이라…….
한숨이 나오는 걸 애써 참으며 비에른 자작에게 물었다.
“급한 불부터 끄지.”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 빛을 발하려면.
적어도 중앙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내 말에 이쁜소녀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 팀들 역시 마찬가지고.
“오빠, 좋은 방법 있어요?”
“응. 딱히 방법이랄 건 없는데…….”
비에른 자작 역시도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날 바라봤다.
이거 참.
사실 특별한 방법이라고 하기도 그랬다.
“그게. 보이거든.”
“네?”
“응?”
“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자 내가 손가락으로 공중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대략 저기쯤 되려나?”
그런데 다들 눈을 씻고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챠밍이 내게 물었다.
“혹시 저기에……?”
“응. 아크 드래곤. 저기 떠 있어.”
폭격 지점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허공.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지만.
내게 전달되는 감각에는.
저 녀석의 날개짓이 완전히 잡혔다.
비에른 자작을 보면서 바로 말했다.
“제국 사람들하고 연락 가능하지?”
“네?! 넵! 가능합니다!”
씨익 웃으며 오더를 내렸다.
“그럼 저곳으로 주포를 돌려.”
아직은.
네 맘대로 멸망은 안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