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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33화 (1,021/1,404)

#1033화 에센시아 제국 (12)

아무리 봐도 저건 멸망각인데…….

처음에는 아크 드래곤 한 마리 떴다고 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단 한 타에 제국의 연합군 대부분의 전력이 깎여나가 버렸다.

제국의 전력을 너무 상향 평가했었나 싶기도 하고.

재중이 형은 아크 드래곤과 제국의 연합군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역사상으로는 오늘 멸망하지는 않는데 말이야…….”

그 뒷말은 어쩌면 멸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되는 거려나.

재중이 형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뭔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국 역사에서 지금 시점에 아크 드래곤이 쳐들어온 일이 있었나?”

“네?”

뜬금없이 꺼낸 재중이 형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으음.

막상 말을 꺼내기 전에는 몰랐는데.

콕 집어서 재중이 형이 그 말을 꺼내니까 곧 이상한 점들이 떠올랐다.

“아크 드래곤이 침략했던 적이 있긴 했었죠, 아마?”

에센시아 제국에서 점점 멀어지는 도중에 재중이 형이 시스템을 조작해 미리 정리해 둔 연대기를 꺼내 들었다.

나 역시도 시스템 창을 띄워 올렸고.

분명히 역사에는 아크 드래곤이 쳐들어온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다시 떠올려보니 그 시점이…….

“그래, 있기는 했지. 그게 지금이 아닐 뿐이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

우리야 처음 여기에 오는 순간 미리 발견을 했기에 당연히 아크 드래곤이나 타이탄 중에 하나가 쳐들어올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오히려 우리 판단을 흐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발견한 것 하나.

“음, 아크 드래곤은 역사에서 중반부쯤에나 나오네요.”

정확하게는 성마전쟁이 있고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등장한다.

재중이 형도 확인을 마친 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참. 실수네.”

원래 역사에서는 아주 한참 뒤에나 아크 드래곤이 등장한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마왕군의 몬스터군에 포함되어 있네요.”

“어, 거기서도 거의 끝판왕급으로 나오지.”

무슨 수를 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왕군과 같이 에센시아 제국을 침략하게 된다.

그것도 히든 무기 수준이랄까.

마지막에 등장하는 녀석이 원래 제일 강한 법이라.

수많은 마왕군의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할 만큼의 엄청나게 강력한 네임드였다.

다른 말로.

지금 역사에 등장하면 안 되는 몬스터라고 해야 하려나.

“그런 녀석이 왜 지금 나왔을까요?”

내게 되묻듯이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다가 순간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하.

설마 아니겠지?

방금 떠올린 사실이 진짜면 꽤 곤란해지는데…….

나와 같이 고민을 하던 재중이 형도 순간 뭔가가 떠올랐는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 낭패한 듯한 딱 그런 표정.

“아무래도 너도 같은 걸 떠올린 것 같은데?”

그리고는 나 역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예상이 되는 일인데.

굳이 입 밖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아크 드래곤을 우리가 끌고 왔겠네요. 아마도.”

사실 비행 탈것의 이동거리로 몇 십 분 차이면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고 봐야 했다.

굳이 찾아가지 않는 이상은 발견할 일이 없는.

혹은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예 대놓고 방향을 정해놓고 가지 않는 이상에야…….

지금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도 그랬다.

에센시아 제국과는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 있는 산맥 한가운데.

그것도 둘 사이엔 몇 개의 산을 넘어가야 발견할까 말까 한 거리가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그 특별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

우리가 그 자리에 등장함으로.

곧 재중이 형의 담담하면서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의 한 마디가 내게 와 닿았다.

“시작부터 말아먹었군.”

“네, 시작부터 망했죠.”

“원래는 지금 아크 드래곤이 제국 역사에 등장할 일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갑자기 등장하죠.”

“그래. 산맥 한복판에서 짠 하니 등장해서 녀석들의 시선을 끌고는…….”

“곧장 에센시아 제국으로 와버리죠.”

우리가 메테오 스트라이크들을 피해 도망쳤을 때.

아크 드래곤은 우리를 놓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당장이야 타이탄과 싸운다고 시선을 주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추적할 수 있도록 방향을 알아둔 것 같았다.

바로 에센시아 제국 방향.

“방향만 알면 녀석에게 그 정도 거리야 시간문제니까.”

이건 내 능력도 어느 정도 원인에 포함되어 있었다.

광범위한 지역을 스캔하듯이 알아내는 초감각 수준의 능력.

당시 발견될 리가 없는 제국을 찾아내 날아갔으니 아크 드래곤도 역시나 그 길을 그대로 따라온 셈이다.

애초에 우리가 최단 거리의 길을 선택해서 날아왔으니.

방향이 틀릴 일도 없고.

그냥 시간만 있으면 쭉 날아오면 되는 일이다.

“휴. 재앙을 끌어들였네요.”

그렇게 말하는 도중 이제는 거리가 제법 떨어져 아크 드래곤과 제국의 연합선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 에센시아 방어전 권역을 벗어났습니다. 》

《 전투 상황이 해제됩니다. 》

처음부터 에센시아 방어전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전투 권역을 벗어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우리야 잘 빠져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잘못하다가 우리가 돌아갈 제국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재중이 형도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성마 전쟁에 우리 이름 올라가는 거 아냐? 에센시아 제국 망하게 한 원흉들로.”

“설마요…….”

이미 확정된 역사에서 과거의 시점으로 온 거라 여기서 뭔가를 한다고 역사가 바뀐다거나 하진 않을 터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가 어긋나면.

우리가 미리 알고 있던 역사의 흐름이 대놓고 헝클어지게 된다.

저기 걸려 있는 이벤트가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숨겨져 있는 아이템들까지 하면…….

이 시점에 제국이 망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손해였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당장 돌아갈 제국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비벼 볼 장소가 있는 상황과 아닌 상황 사이에는 정말 큰 차이가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망하면 안 되죠.”

“어, 아직은 안 돼.”

“하지만 방법이…….”

“저들이 어떻게든 막아내길 바라야지.”

“될까요?”

“아직은 모르지.”

원 역사에서 아크 드래곤이 등장하는 시점의 역사와는 이미 많은 부분이 틀어져 버렸다.

심지어는 원래 오늘 일어나기로 되어 있던 원 역사 속의 황실 암투 역시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나라가 망할 판인데.

암살이나 하고 있는 게 정상은 아닐 테니.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제국이 망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어쩌면 지금이기에 더 쉬울지도 모르지.

난장판일수록 일을 벌이긴 쉬울 터다.

복잡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사이 챠밍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챠밍> 오빠. 어디에요?

<주호> 아, 여기 우리가 원래 왔었던 곳으로 날아가는 중이야.

<챠밍> 으음, 여기 지금 난리 났는데. 제국성을 방어하는 방어벽이 깨지고 있어요.

<주호> 벌써?

<챠밍> 네, 지상으로 비공정들도 엄청 떨어졌고요. 제국성 전체가 아수라장이에요.

<주호> 생각보다 아크 드래곤이 훨씬 강한가 보네.

<챠밍> 설마…… 제국이 망하진 않겠죠?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못 막는 것 같아요.

챠밍이 느끼기에도 지금이 꽤 위협적인 상황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제국성의 방어라인이 뚫림과 동시에 성벽을 방어하는 마법 배리어가 깨진다는 건.

아크 드래곤이 대놓고 제국 시내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지금 외곽에 있어도 위협적인데.

제국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밖에서 날뛰는 것과 인프라가 있는 제국 내에서 날뛰는 건.

그만큼 큰 차이다.

제국 함대가 굳이 배리어가 있는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불리할 수도 있는 외곽에 나와서 싸우는 것도 같은 이유고.

잠시 고민하다가 챠밍에게 조금 전 파악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챠밍> 네?

<주호> 그러니까 우리가 아크 드래곤을 에센시아 제국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고.

<챠밍> 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국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은 챠밍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아크 드래곤이 지금 에센시아 제국의 전력으로 받아칠 만한 상대가 아닌 게 문제였다.

후에 활약을 하는 영웅도 있다고는 하나.

그들도 성장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테고.

뭐 그렇다고 아예 밀려 버리거나 하진 않겠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지.

<주호> 일단 피할 수 있으면 피해 있어. 아크 드래곤은 당장 상대하기엔 무리야.

<챠밍> 금방 올 거죠?

<주호> 아마도? 그런데 늦지 않게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당장 가봐야 알겠지만.

만약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황이 다르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장 우리가 저 자리에 있다고 한들.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

이렇게 된 이상 되든 안 되든 하나의 가능성에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꽤 당황한 듯한 챠밍의 말투.

<챠밍> 아, 오빠. 지금 에센시아 방어전이 강제 참여로 바뀌었어요.

<주호> 뭐?

<챠밍> 에센시아 제국성 안에 있으면 무조건 참여해야 한데요.

이건 챠밍뿐만 아니라 다른 우리 팀에게도 마찬가지인지 모두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느낌이었다.

<방패전사> 이거 곤란한데?

<이쁜소녀> 오빠, 저희 어떻게 해요?!

<나르샤> 강제 참여인데 못 빠져나가.

<막내별> 정말 못 나가요.

곧장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형, 에센시아 방어전이 강제 참여로 바뀌었다는데요?”

“아, 나도 방금 들었다. 휴. 난감하게 됐는걸.”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성을 침략하는데도 우리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우리 팀이 참여를 하지 않으면 뒤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다른 방향으로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내면 되니까 굳이 지금의 방어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방어전이 끝나기 전에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건.

곧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뜻하니까.

조금만 실수를 하면.

이 역사 속에서 바로 아웃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버틴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 제국이 터지면.

그것조차도 힘들 것이다.

“하, 답이 없네요.”

만약 제국이 망하게 된다면.

또 다른 흐름으로 이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제국 재건 스토리라던가.

흐음.

어쩌면 이쪽이 더 파고들기는 좋을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고민은 거기서 끝냈다.

당장 우리 팀이 죽어버리면 재건 스토리고 뭐고 안 하니만 못하다.

결국은 저 제국을 살려내야 한다는 데 생각을 집중했다.

“우리가 가진 패가 쓸모가 있길 바라야죠.”

챠밍에게서 계속 에센시아 제국성의 상황을 전달받으며 아퀼라스 주니어와 가르가 주니어를 이끌고 원래 우리가 왔던 장소로 이동했다.

“휘유, 산맥이 아주 작살이 나 있네.”

그러다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이 치고받은 장소에 도착했는데 이곳의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산맥이 통째로 깎여 나간 건 기본에 사방으로 움푹하게 파여 들어간 지름 수십 미터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거기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들끓고 있는 지상의 모습은 지옥의 그것을 연상케 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이게 최상위 네임드들의 싸움인가.

과연 제국이 버티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날아다니면서 찾아봐.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네.”

재중이 형과 흩어져 우리가 원하는 한 가지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얼마나 날아다니면서 찾았을까.

저 멀리 보이는 지상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생긴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바닥에 묻혀 있지만.

유독 크게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그것이.

“형!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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