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화 에센시아 제국 (11)
에센시아 제국성 방어전을 포기하자 추가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에센시아 제국성 방어전을 포기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성의 NPC들의 호감도가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성 주변에서 명성이 하락합니다. 》
.
.
《 퀘스트 포기로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벌어지는 방어전 영역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쭉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 중 마지막에 나온 메시지.
원래는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끔 되어 있었다.
해당 지역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니까.
뭐, 퀘스트를 수락하고 난 뒤에 억지로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그럴 경우에는 페널티가 초기에 포기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퀘스트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퀘스트에 참여했다가 중도 포기하고 달아나는 것은 완전 다른 문제라.
후자의 경우에는 죽어서 나가는 게 아니라면 정말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었다.
지금같이 이 지역에서 명성 하나 쌓아둔 것 없는 상황에서는.
거의 치명적이라고 봐야겠지.
모든 NPC들에게 최악으로까지 호감도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앞으로 진행할 대부분의 퀘스트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테고.
이쪽에서 아무리 판을 잘 만들어 놔도.
NPC들이 애초에 만나 주지도 않으면.
그냥 게임 오버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시작부터 방어전 퀘스트를 포기해 버렸다.
내가 원하는 건 이 방어전에 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방어전에 묶이게 되면.
이 다시 없을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재중이 형 쪽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은 우리 팀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듯 연락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나와 재중이 형은 다른 파티에 속해 있었다.
나만 단독인 파티와 재중이 형이 파티장인 파티 하나씩.
잠시 기다리자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가르가 주니어를 붙였다.
“애들은 방어전 퀘스트 진행하라고 했다.”
“아, 그래도 되겠네요.”
여기서 바로 벗어나야 하는 건 나와 재중이 형뿐이었다.
반면 우리 팀은 이야기가 다르지.
남아서 조금이라도 기여도를 올려두면 나중에 좋게 작용할 것이다.
중간에 누가 삽질을 해 역사가 확 뒤집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이 방어전은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그냥 참가만 해도 이득을 보는 게임이다.
“둘 다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다 먹으려면 체하지.”
재중이 형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으면서 가르가 주니어를 몰았다.
“가면서 말하자. 가뜩이나 시간 부족한데.”
“네. 가죠.”
가르가 주니어가 가속 스킬을 써서 앞서나가자 바로 뒤따라 아퀼라스 주니어로 따라갔다.
그때 저 멀리서 커다란 파공음이 들려왔다.
크아아아아!!
단순히 내지르는 하울링만으로 온몸의 솜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압도적인 중압감.
“아크 드래곤……!”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두 쌍의 날개를 가진 녀석이 에센시아 제국성 쪽으로 접근하자 바로 비상경계가 울렸다.
그리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NPC가 전투 전역에 울리는 목소리를 퍼트렸다.
아마도 스킬 같은 거려나?
“비상 경계망 실시!”
“아크 드래곤이 제국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함선의 모든 포, 아크 드래곤에 집중해!”
“절대 뚫리면 안 된다!”
각 나라별로 따로 움직이긴 하지만.
일단 전체적인 대형 자체는 에센시아 제국성의 거대한 비공정을 기준으로 잡고 버티려는 듯했다.
중요한 오더도 대부분 에센시아 제국 쪽에서 나오는 모양이고.
워낙 가지각색의 나라들이 섞여 있다 보니 일사불란하다고까진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대형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적이 아크 드래곤 하나뿐이라서 더 그래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 적이 하나면 그쪽으로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 되니까.
딱히 복잡한 함대 운용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캬아아악!!
아직 퀘스트의 전투 전역을 벗어나지 못해 아크 드래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눈에 담기 위해 바라봤다.
나중에라도 다시 상대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광경.
쭉 다가오던 아크 드래곤이 비행을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리곤 네 날개가 활짝 펴지면서 날개들 사이로 뭔가의 마력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크 드래곤을 중심으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진들이 동시에 전개가 되었다.
대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마법을 시전하는 거지……?
솔직히 트리플 캐스팅 같은 건 그냥 저 아크 드래곤이 시전하는 마법에 비하면 그냥 마법 축에도 못 낄 수준이었다.
한 번에 세 가지 마법을 시전하는 것과 수십 개의 마법을 시전하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하니까.
쓸 수 있는 스킬도 문제지만.
그만큼 방대한 마력이 뒷받침되어 줘야 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아크 드래곤이 시전하고 있는 스킬은…….
“형, 저건?”
“아, 나도 봤다.”
아크 드래곤이 마법을 시전하기 무섭게 하늘 위로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더니 이내 수많은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불길한 울음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카르릉!!
어느새 하늘을 빽빽하게 채운 검은 구름들 사이로 퍼져 나가는 전격의 파도가 사위를 환하게 밝힐 수준으로 뻗어나간 순간.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바로 인상을 팍 쓰면서 외쳤다.
“젠장. 피해! 여기도 범위 안이다!”
【 이중 가속! 】
일종의 부스터와 같은 기능을 하는 스킬을 쓰자 가르가 주니어가 급가속해 총알처럼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 이중 가속! 】
나 역시도 이중 가속을 걸어 아퀼라스 주니어를 빠르게 전역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지만 워낙 범위가 넓은 탓에 미처 이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
쿠르르릉!!
콰르릉!!
곧 하늘 전체에서 우렛소리가 들리더니 시선을 압도하는 푸른빛이 세상을 가득 메우면서 지상을 향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위용의 뇌전 폭풍에 순간 입을 다물었다.
수천이 넘는 번개 다발이 동시에 떨어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누군가 물으면…….
앞으로는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내 눈으로 보는 중이니까.
곧장 온 감각을 풀로 가동해 떨어지는 번개 다발들의 경로를 파악했다.
이건 하나라도 맞으면 바로 추락이다.
파악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의 이동 경로를 수정해 가면서 아슬아슬하게 뇌전 다발들을 피해 나갔다.
하지만 무식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뇌전들이 끝도 없이 하늘에서 계속 떨어져 내렸다.
재중이 형 역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뇌전 다발을 피하는 데만 집중했다.
형은 어떻게든 피해 낼 거야.
나만 집중하면 돼.
사실 말이 쉬워 뇌전을 피하는 거지…….
동체 시력을 넘어서는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뇌전을 피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었다.
보통은 다른 스킬로 상쇄하거나 방어하는 스킬을 쓸 텐데.
이렇게 곡예를 하듯 뇌전 사이를 비행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잠시 한눈을 팔면 바로 옆을 뇌전이 스치고 내려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뇌전을 피해 나갔다.
처음엔 워낙 많은 뇌전이 떨어져서 힘들었지만 그나마 우린 빠져나가는 쪽이라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뇌전 폭풍이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낙하하는 뇌전의 빈도가 처음보다 확 줄었달까.
정말 숨도 못 쉴 정도로 스쳐지나가던 뇌전이 줄어들자 조금은 여유가 생겨났다.
“형, 살아있어요?”
“보다시피?”
재중이 형도 두 눈이 벌게지도록 집중을 해서 뇌전 폭풍을 안전하게 피해 나왔다.
다만 중간에 몇 대 스쳐 맞았는지 가르가 주니어의 상태가 그렇게 좋진 않았다.
하긴 나도 몇 번 스치긴 했으니까.
그나마 최소로 피해가 올 만한 것들만 골라 맞아 이 정도였다.
몸체에 직격으로 들어오는 뇌전을 맞았으면 지금쯤 저기 바닥에 추락해서 형편없이 구르고 있겠지.
“휴, 저런 미친 새끼를 봤나. ”
재중이 형이 아크 드래곤의 험담을 하는 사이 내 시선도 멀어진 아크 드래곤 쪽으로 향했다.
솔직히 조금 방심한 것도 있었다.
이전에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이 맞붙을 때 쓴 대단위 마법은 메테오 스트라이크 계열의 스킬이었으니까.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 뚜껑을 열고 보니 완전히 달랐다.
“설마 이 정도의 광역 스킬이 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어, 나도 좀 방심했네. 메테오야 피하긴 쉬우니까.”
만약 아크 드래곤이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면 애초에 최대 속도로 도망갔을 것이다.
잠시 뒤를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저긴 난장판이네.”
“네?”
“봐. 제국 함대가 어떻게 됐나.”
그 말에 시선을 돌려 에센시아 제국 공중 함대 쪽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하…… 아주 개박살이 났네요.”
이건 솔직한 평가였다.
거의 반파 수준도 아니고 아예 주변 일대가 싹 쓸려 버렸다고 해야 하나?
뇌전 폭풍이 집중되어 몰아친 함대는 무엇 하나 무사해 보이는 배가 없었다.
“큰 비공정일수록 기동력이 밀리니까. 아니지. 그냥 맞을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해야 하나?”
분명 제국과 다른 왕국의 비공정들은 그간 보기 힘든 수준의 거대한 비공정들이었다.
문제는 그만큼 뇌전에 맞을 크기가 크단 소리였고.
“추락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가요.”
“아니. 주 함대 빼고는 죄다 추락했잖아.”
역시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하늘을 수놓을 정도로 넘치던 비행 탈것들과 소형 비공정들이 거의 다 추락한 상태였다.
그나마 덩치 큰 비공정들은 방어가 튼튼해서 겨우 버텨낸 듯했다.
“그야말로 재앙이네요.”
나름 제국에서도 준비를 많이 해서 나왔을 텐데.
그런 준비가 무색하게 이미 한쪽은 피폐하게 털려 버렸다.
아직 레이드는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지.
“지상이었다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공중은 역시 어렵죠.”
지상에서야 가진 전력을 그대로 쓸 수 있지만.
역시 공중전은 탈것과 비공정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공중을 날아다니지 못하는 이상에야…….
지상만큼의 위용이 나오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지금 추락한 비공정 어딘가에는 누군가의 영웅 후보들이 타 있을지도 모르겠고.
최소한 저 아크 드래곤에 필적하거나 좀 떨어지는 수준의 기동력을 가진 탈것이 있지 않으면 상대하기가 정말 까다롭다.
공중 네임드의 무서움이 이런 데 있겠지.
무엇보다.
저 아크 드래곤은 굳이 지상에 내려올 필요가 없을 정도로 광역 스킬이 압도적이었다.
그냥 메테오로 하늘을 뒤덮어 버리면 그만인데.
뭐 하러 지상에서 싸워 주겠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뇌전 폭풍으로 공중을 뒤엎어버리던가.
잠시 뒤를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했네. 애들한테 빠져라 해야겠다.”
“네. 저건 무리죠.”
가득이나 우리에게 주력 탈것은 아퀼라스 주니어와 가르가 주니어뿐이다.
그나마 황실 비공정 정도 남긴 하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아크 드래곤의 한 끼 식사 수준에 불과할 터.
하늘에 뜨기 무섭게 가라앉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저 방어전에 끼어들면.
딱 죽기 좋다는 거다.
잠시 에센시아의 함대와 제국성을 바라보고 반대로 포효하고 있는 아크 드래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며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에센시아 제국. 오늘 정말 멸망 안 하는 것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