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화 에센시아 제국 (10)
나르샤 누나의 도움으로 지하 감옥에서 나온 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리 팀이 있는 여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관에선 미리 정비를 하고 기다리던 재중이 형이 밖으로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여~ 아주머니한테 말해서 두부 챙겨놨는데 먹을래?”
재중이 형이 내 손에 두부를 올려주자, 나르샤 누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감옥 들어갔다 온 것도 서러운데 형까지 이러기에요?”
농담을 받아주자 재중이 형도 피식 웃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런데 왜 나와 있어요?”
어차피 오는 걸 알았으면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리고 우리 팀도 보이지 않고.
“다들 미리 이동했어. 보다시피 여기가 문 닫아서 말이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겉으로 나오던 불빛이 모두 사라진 여관의 모습.
“여관도 안 하는 거예요?”
“어, 아까 경비병이 돌아다니면서 문 닫으라고 하더라고.”
긴급 소집령이라더니.
아마도 모든 상가가 문을 닫게끔 되어 있는 듯했다.
문제는 우리가 갈 곳이 없어졌다는 건데.
“난감하네요.”
재중이 형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어, 유저에게 친절하지 않은 곳이지. 보통 여관 같은 건 열어 둘 건데 말이야.”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유저에게 절대 친근한 환경은 아니었다.
유저가 우리밖에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겠지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높은 성벽을 바라보았다.
“곧 전투가 시작될 거야.”
“네, 그렇겠죠.”
긴급 소집령이 내렸다는 것 자체가 제국성의 방어전을 의미할 테니까.
“그래서 어떤 녀석이에요? 타이탄?”
“아니. 역시 아크 드래곤이야.”
“으음…… 꽤 까다롭겠네요.”
솔직히 타이탄 쪽이 상대하기 좀 더 나았을 수도 있었다.
당장 제국성은 성벽이라는 좋은 방어 수단이 있으니.
그런데 아크 드래곤은 성벽이 사실 무의미했다.
날개가 있는데 굳이 친절하게 성벽으로 걸어와 줄 리도 없고.
그때 나르샤 누나가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그럼 타이탄은?”
나르샤 누나의 저 물음은 타이탄이 죽었냐는 것이다.
그 물음에 재중이 형이 확신이 어느 정도 섞인 대답을 해주었다.
“으음. 아마도? 아니라면 지금까지 싸우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언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뭔가 이렇게 걸리나.
분명히 생각을 스치고 가는데 확실히 떠오르진 않았다.
잊고 있는 거라던가…….
“형, 아크 드래곤이 접근한 지 얼마나 됐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시간을 살피더니 말했다.
“완전히 접근한 건 대충 10분 정도 됐나? 네가 들어간 지도 꽤 됐고. 거기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아크 드래곤이 접근만 한 상태로 아직 싸움은 걸어오지 않고 있으니. 단순히 이동 시간만 따지면 10분 정도 될 거다. 녀석은 가르가보다는 훨씬 빠르니까.”
녀석이 날아온 시간은 10분.
확실히 우리가 녀석들을 피해 온 거리와 날 것의 이동 속도를 고려해보면 대충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해 보였다.
여기에 접근해 버티고 있는 시간을 따로 뺀다면…….
20분 정도이려나…….
“형, 지금 바로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면 어느 정도 걸릴까요?”
“대략 가르가나 아퀼라스 주니어 같은 경우에는 20분은 족히 걸리겠지. 중간에 아무런 방해가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던 재중이 형이 갑자기 눈빛을 빛냈다.
그러더니 바로 가르가 주니어를 불러냈다.
【 가르가 주니어 소환! 】
나 역시도 바로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냈고.
【 아퀼라스 주니어 소환! 】
나와 서로 눈이 마주친 뒤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에 올라탔다.
“젠장. 그런 건 좀 일찍 말하라고.”
“나도 이제 생각났는데요.”
그러면서 나 역시도 아퀼라스 주니어에 올랐다.
나르샤 누나가 갑자기 탈것을 소환해 올라탄 우리 둘을 당황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뭐해? 둘 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대답했다.
“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 나중에 알려줄게.”
바로 재중이 형이 가르가 주니어의 날개를 박찼다.
동시에 나도 아퀼라스 주니어를 공중에 올렸다.
“가죠.”
“어, 둘 중 하나만 성공하자.”
제국성 한복판에서 이렇게 탈것을 소환하면 다소 눈길을 끌긴 하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아무도 지켜보는 눈이 없었다.
긴급 소집령 때문에 근처에 돌아다니는 NPC들이 완전 씨가 말라버렸다.
만약 NPC들이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만큼 급하다.
케에엑!
카아악!
아퀼라스 주니어와 가르가 주니어가 동시에 날아오르자 제국성 건물이 곧 미니어처같이 작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르샤> 뭐야? 대체?
<주호> 아! 성밖에 나가면 바로 말해 줄게요.
나르샤 누나를 태울 수도 있긴 했는데.
그러면 그만큼 탈것의 속도가 떨어진다.
결코 나르샤 누나가 무거워서 그런 건 아니고.
“가자!”
재중이 형이 먼저 가르가 주니어로 앞장섰고.
그 뒤를 이어 아퀼라스 주니어 역시 따라 날았다.
“형, 성벽에서 공격 들어오면 어떻게 하죠?”
“무시해.”
흐음.
무시하기에는 너무 방어 시설이 강할 텐데…….
무엇보다 지금은 아크 드래곤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도 성벽의 공중 방어에 힘을 들였을 것이다.
하르포 같은 경우에도 수십 포는 가볍게 넘어갈 테고.
거기다 아마 우리가 알던 그 예전의 하르포보다 지금의 제국성의 포가 더 강할 수도 있었다.
역사에 에센시아 제국성의 전력이 더 좋았다고 하니까.
그런데 우리가 탈것을 타고 성벽 쪽에 접근하자 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달랐다.
하…….
이건 딱히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혹시나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포격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했는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그와는 많이 차이가 났다.
곧 재중이 형도 발견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나가라고 도와주네.”
“네. 잘 됐네요.”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이 안심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에센시아 제국성 성벽 위로 수도 없이 많은 탈것들이 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벽 위를 가득 채운 각종 탈것들.
그중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그만큼 이 시대에 공중 탈것이 많다는 말이겠지.
심지어 거대한 비공정과 전투 비행정들도 빽빽하게 날아올라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비공정 같은 경우에는 내가 가진 가르시아 제국의 황실 비공정을 상회하는 크기를 가진 어마무시한 크기의 비공정도 몇 개 존재했다.
“후. 엄청나네요.”
단순히 크기만 보면 그 어떤 비공정보다도 크다.
초거대 비공정에 빼곡히 달려 있는 수백 개가 넘어가는 포대 역시도 웅장함을 자랑하는 중이고.
거의 하나의 거대한 요새랄까.
그런 비공정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대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들을 호위하는 듯한 대형의 비공정들 역시도 거대한 건 마찬가지.
하나하나의 크기가 거의 황실 비공정만 했다.
황실 비공정만 한 녀석들이 이렇게 많다니…….
재중이 형 역시도 이런 세력에 감탄했다.
“괜히 최대로 번영했던 과거의 제국이 아니라는 건가?”
과거 시대상만 좀 강했다 정도일 줄 알았는데.
가르시아 제국과는 전력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나는 느낌이었다.
당장 저 초거대 비공정 하나만 날아도 어지간한 성 하나는 박살 낼 수 있을 터.
그런데 조금은 이상한 것들도 발견했다.
“국기가 다 다르네요.”
“음, 그렇네. 일종의 연합군인가?”
에센시아 제국의 국기를 필두로 서로 다른 수많은 국기들이 각 비공정에 달려 있었다.
그럼 지금 이곳에 저 숫자만큼의 국가가 모여 있다는 건가?
“성마 전쟁이라 불러모았나 보지.”
“확실히 그렇네요.”
대륙의 판도를 가를 성마 전쟁이었으니.
이 정도 세력이 모인 것도 무리는 아닐 터.
과거 찬란했던 역사의 최고의 전력이라고 생각해 보면…….
결코 부족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전력이 모자랐으면 실망했을지도.
“이것도 이벤트가 있을까요?”
“참가할 수 있다면.”
이런 규모로 일어나는 전투에 이벤트가 없을 리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내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 과거의 상급 고대 마수인 아크 드래곤이 에센시아 제국성을 침략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성 방어전이 시작됩니다. 》
《 에센시아 제국성 방어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
“형. 방어전 이벤트 떴어요.”
“어. 나도 봤다.”
아마 지금의 시스템은 우리 팀 모두에게 떴을 터.
아니나 다를까.
우리 팀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챠밍> 오빠, 방어전 떴어요.
<주호> 어. 눈앞에서 보고 있어.
<챠밍> 네?
<주호> 아, 지금 아퀼라스 주니어 타고 날아왔거든.
방금 나와 재중이 형이 참여를 하니까 파티원 모두에게 이벤트가 연결이 된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많은 비공정과 전투 탈것들이 지원을 해주는 상태에서 제국성까지 있다.
거기다 우리는 흘러가는 역사를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적어도.
지금은 이곳에서 아크 드래곤에 에센시아 제국성이 몰락하진 않는다.
다른 말로.
아크 드래곤에 피해가 얼마나 나든 상관없이.
어떻게든 이 방어전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방어전은 결국 성공할 테고.
참여만 하면.
우리에게 떨어지는 보상이 나쁘진 않을 거라는 거다.
아마 모르긴 해도.
첫 방어전을 무사히 치룬 공로로 제국에서 적당한 입지를 만들 수도 있을 터.
“뭐가 나을 것 같아?”
재중이 형이 내게 다시 묻자 바로 생각에 잠겼다.
으음.
확실히 지금의 이벤트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공할 거라는 걸 확신하는 상황이니까.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거다.
여기서 죽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존재했다.
“여기 너무 많은 녀석들이 참가하죠.”
이 방어전은 우리를 위한 방어전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저를 위해 존재하는 방어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가하는 유저가 우리밖에 없으니까.
반대로 NPC들의 세력은 어마어마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구성만 치면 몇 천대 1을 넘어서는 세력 비랄까.
물론 그 작은 1이 우리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런 세력들을 압도하면서 뭔가의 성적을 낼 수 있을까?
“형, 여기서 우리가 저 잘난 녀석들을 뚫고 활약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지금 방어전에는.
영웅이라 할 만한 녀석들이 즐비하게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레벨도 엄청나게 높은.
괴물에 가까운 녀석들이.
하나도 아니고.
최소 수십 이상.
그런데 그들 이상의 위용을 당장 우리가 만들어 낸다?
생각을 하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건 무리다.
재중이 형 역시 같은 생각인 듯 말했다.
“쉽지 않겠지. 거의 목숨을 걸고 달려들지 않는다면.”
“그럼. 우리가 선택할 건 하나뿐이죠.”
다른 선택지 하나.
이건.
굳이 우리가 활약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미 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에.
손을 놀려 바로 방어전을 취소했다.
《 에센시아 제국성 방어전을 포기합니다. 》
“그럼 가죠! 이왕 먹을 거라면……!”
통째로 준비된 걸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