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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6화 (1,014/1,404)

#1026화 에센시아 제국 (5)

만약 이곳 에센시아 제국성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짧은 시간 내에서는 절대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상위 직위로 올라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마 전쟁이 일어나는 전시 상황.

이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이를 뒤집을 수도 있을 터.

우리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은.

충분하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라……. 우리가 지금 모아둔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녀석들보다 좀 앞서나가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원하는 바에 도달할 수는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재중이 형의 말이 맞다.

사실 현재 우리가 가진 정보는 거의 치트키나 마찬가지였다.

특수한 몇 가지 사건 내에서는 경쟁자에 비해 거의 모든 상황을 앞서나갈 수 있는.

사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

분명 그런 정보들을 이용하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더라도 어떻게든 원하는 직위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보다 더 빠른 방법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우려하던 인과 관계를 상당히 뒤집을 수도 있을 테고.

가진 정보를 상당수 못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지금이니까.

바로 지금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아뇨. 그 정도만 원했으면 굳이 말하진 않았겠죠.”

“그럼?”

재중이 형이 신기한 물건을 보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챠밍, 이쁜소녀, 전사 형, 나르샤 누나, 막내별 역시도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는 모습.

그런 그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용사요.”

“응?”

“넹?”

“뭐?”

다소 엉뚱한 말이 나오자 다들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그런 반응을 즐긴 다음 모두에게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러니까 용사가 되고 싶어요.”

내 말에 전사 형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하하, 용사라니. 생각도 못 했는데.”

이쁜소녀는 왠지 용사라는 말에 신나하는 것 같았고.

“와! 오빠가 용사 되는 거예요?”

챠밍도 못 말리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재밌겠어요.”

막내별은 엉뚱한 사람 다 본다는 듯 역시 웃음을 보였다.

“역시 별나시네요.”

나르샤 누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주호답네. 그래서 계획은 있고?”

모두 안 된다는 말은 절대 안 하네.

이미 겪어봐서 다 안다는 듯 용사가 될 거라는 말에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상적인 시간 내에서는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가 힘들겠더라고요.”

전사 형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지. 우리가 가진 정보가 많기는 해도. 어차피 지금 접근할 수 있는 퀘스트는 한계가 있으니까. 아예 이곳 에센시아 제국성에 쳐들어오는 아크 드래곤이나 타이탄 같은 녀석들을 우리가 단독으로 잡아버리지 않는 이상에야.”

전사 형 말대로 저런 미친 수준의 네임드를 우리끼리 잡아낸다면 굳이 우리가 힘들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용사급의 대우를 해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어렵겠지.

현재 에센시아 제국성에 있는 NPC들이 우리 보다 약할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보다 월등히 강하면 강하지.

성마 대전이라는 시대 상도 있긴 하겠지만.

후에 나오는 NPC들이 이전의 존재들보다 더 강한 건 그냥 게임 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지금 이곳 에센시아 제국성에 주둔하는 핵심 직위 NPC들은 최소 영웅 급의 위엄을 낼 것이다.

그리고 조사한 정보에서도 각 왕국에서 보내온 영웅 후보들 역시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가 정보 곳곳에서 발견됐으니까.

우리가 그 사이에서 단순 무력으로 두각을 드러낸다?

이건 가능성으로 치면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였다.

그간 굳이 힘들게 정보를 끌어 모은 것도.

다른 녀석들의 빈틈을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으니.

정상적으로는 우린 그냥 이곳에서 넘쳐나는 일개 용병일 뿐이다.

아마 운영자들도.

이런 수준 안에서 유저들의 위치를 정해놓았을 것이다.

성마 대전에 참가하는 병사들 중에 하나.

나중에 합류할 많은 유저들의 규모를 고려해 본다면.

딱 이 정도가 포지션이 좋다.

처음부터 유저들을 상위 포지션에 올려두면.

밸런스가 말도 안 되게 일그러질 테니.

그만큼.

이곳에서 직위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다.

모두를 보면서 한 가지 가정을 꺼내들었다.

“우리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 몇 가지를 선점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과연 운영자가 하지 않았을까요?”

전사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맞다는 듯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래.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와서 이용할 수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겠지.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은 다 그렇게 할 거야. 당장에야 우리밖에 없으니까 아직은 써먹을 수 있겠지만.”

“네,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못 써먹는 정보들이 넘쳐날 거예요.”

누군가 과거에 개입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역사는 변한다.

특히 그 존재의 욕심이 과하면 과할수록.

좀 더 핵심적인 뭔가를 건드려 버릴 테니까.

이건 재중이 형이 성마 대전 당시의 역사적인 로드맵을 역으로 작성하면서 우려했던 점이기도 했다.

조금만 건드리면.

이후에 일어날 이벤트들이 죄다 일그러진다.

성마 대전 연대기를 따라가는 줄기를 타고 가다보면 이건 필연적이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을 건드리더라도.

결국은 변한다는 결론.

단독 이벤트야 괜찮겠지만.

대형 연계 이벤트는.

어차피 나중에는 끝을 예상하기 힘들다.

아마 운영자들도 이런 점까지 고려를 했기에.

미래의 정보를 가져다 쓰는 걸 그다지 개의치 않아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네가 할 수만 있다면.

이용할 만큼 해보라는 자신감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운영자들의 자신감에 왠지 모르게 스크래치를 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검지를 하늘로 살짝 들어 올려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을 향했다.

“그러니까. 그냥. 아예 시작 포인트를 확 높여서 시작해보죠.”

전사 형이 털털하게 웃으면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용사라는 거지?”

“네, 용사요. 시작부터 용사로 시작하면. 꽤 재밌지 않을까요? 이 성마대전이라는 것도.”

“하여간 네 녀석도 진짜 정상은 아니야.”

전사 형의 극찬에 마주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나르샤 누나가 전사 형의 칭찬과는 달리 약간의 우려를 담아서 내게 물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용사들은 이미 각 왕국들에서 차출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점이잖아? 제국에 소속된 용사도 있긴 한데. 다들 소속이 명확해.”

미리 성마 전쟁 시대의 용사들의 정보를 알아본 나르샤 누나의 말이 맞았다.

용사라는 게 사실 별 게 없다.

제국에서 강력한 유니크 NPC들.

그리고 각 왕국에서 차출된 그 나라의 최고위급 전사나, 마법사, 현자, 성직자.

혹은 특수 계열에서 이름을 날리는 대륙급의 NPC 정도.

이게 이 시대의 용사들을 지칭하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다.

당연히 그들의 소속은 명확하다.

모두가 각 나라를 대표해서 나온 올스타나 마찬가지니까.

저들 입장에서 우리 같은 어디서 떨어진지 모르는 용병 나부랭이가 그런 클래스에 끼어들만한 일말의 가능성 따위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재중이 형이 나를 슬쩍 쳐다본 뒤 중간에 끼어들었다.

“변수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

그런 재중이 형에게 전사 형이 반문했다.

“변수 말입니까?”

“어, 지금 활동하지는 않지만 곧 활동하게 될, 그런 녀석들 말이야.”

재중이 형의 말에 뭔가를 눈치챈 전사 형이 급하게 다시 용사들의 정보를 모아둔 정보를 꺼내들었다.

곧 몇 개의 정보를 찾아내더니 이내 흥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전사 형이 날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네, 어때요? 가능성이 있을까요?”

“흐음……. 어렵다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전사 형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그럼 해보면 되겠네요.”

우려 섞인 전사 형의 대답이 같이 나왔다.

“이거 망하면 그냥 아웃인데도?”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뭐.”

“아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은 전사 형이 그 용사 정보를 옆으로 돌려주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이 한 번씩 살펴보고는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으음, 이 사람은…….”

“될 것 같은데에.”

“그러게. 말이 안 되는데…… 되네?”

“가능성 있어요.”

다들 한 번씩 전사 형이 넘겨준 용사 명단을 보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한 명을 보고는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고.

모두를 보며 그를 언급했다.

“레온 브라이더. 이게 바로 제가 차지할 용사의 이름입니다.”

르아 카르테의 전 주인이자.

전대의 특출난 수많은 영웅들 사이에서도.

7 영웅이라 불리던.

용사들의 구심점 중에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은…….

무소속이다.

그것도 아직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유니크 영웅이기도 하고.

* * * * *

사실 고민을 많이 하기는 했었다.

이전에 재중이 형과 전사 형과 함께 몇 가지 고려했던 점들이 있었다.

바로 기존 대륙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특수 NPC들은 건드리지 말자는 것도 그런 고려 사항 중에 포함되었다.

우리가 살리거나.

죽이면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을 컨트롤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핵심 NPC들은 그대로 두고 가면서 우리가 원하는 각종 이득들을 얻어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과연 언제까지 기존에 가진 미래 정보로 우리가 이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런 생각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전체 공지에 카르페디움 마왕성과 고대 마수의 탑에 대한 내용이 떴을 때부터였다.

처음에야 아직까지는 아무 영향이 없겠거니 했는데.

생각해 보면 운영자가 아무런 생각 없이 공지 같은 걸 올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언제가 되었든.

공지를 저렇게 올라온 이상은.

분명히 개입을 한다.

그렇다면.

시간을 길게 유지하며 하나씩 최대한 빼먹는다는 원래의 계획도 일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용사라는 건.

굉장히 메리트가 있는 직위였다.

당장 내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용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상당히 높은 직위를 가지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 방법이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가장 편하게 용사가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이곳 제국이나 다른 왕국에 가서 바닥부터 기어올라 용사 직위를 얻는 것보다 더욱더.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몇몇 특별한 용사들은 발현 시기와 위치가 정해져 있는 편이고.

이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이야 하겟지만.

하지만 역시 그보다는.

내가 가진 확실한 패를 이용하는 편이 낫겠지.

문득 인벤에 넣어진 르아 카르테를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쳐다봤다.

“이곳인가…….”

어두컴컴한 지하의 퀘퀘한 습기가 올라와 몸을 불쾌하게 만드는 장소.

거기다 내 두 손에는 지금 쇠사슬이 묶여져 있었다.

흔히 말하는.

범죄자를 포박해놓은.

딱 그런 상태였다.

“미친놈. 뭐가 이곳이야. 헛소리 말고 빨리 들어가.”

마치 죄수를 취급하든 뒤에 병사가 내 등을 발로 차자 자연스럽게 내 몸이 죄수들이 모여 있던 한 철창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끼이익!

무거운 철장이 닫히자 병사가 코웃음 치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어둠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하 감옥.

그리고 한참 시선을 돌려 살피던 중 그들 중에 원하던 한 사람을 눈에 넣었다.

찾았다.

레온 브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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