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25화 (1,013/1,404)

#1025화 에센시아 제국 (4)

이전에 가르시아 제국에서 얻은 자료들을 토대로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하지만 400년 이전의 크루아 대륙.

에센시아 제국성에 대한 자료는 일단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편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조금씩 남아 있는 역사의 단편들.

사실 이걸 제대로 된 정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기는 한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달까.

그중 영웅에 대한 정보는 그런 모자란 정보 속에서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르아 카르테를 가진 영웅에 대한.

내 관심을 끄는 정보이기도 하고.

르아 카르테의 원래 주인.

레온 브라이더.

유독 이 영웅에 대한 내용은 상세하게 나와 있는 편이긴 했다.

대부분 영웅의 서사에 대해 찬양하는 것이지만.

어떤 마족을 죽였다느니.

무슨 방어전에서 주도를 해서 승리를 했다는 내용이나.

마왕군을 패퇴시킨 것도 중간에 보이고.

그런데 정보를 보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정보들이 존재한다고 해야 하나.

마치 누가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낸 듯, 중간중간 비어있는 정보들이 신경 쓰였다.

잠시 머리를 쉴 겸 거실로 나와 어두워진 밤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이거 앞뒤가 너무 맞지 않는데?”

분명히 레온 브라이더가 대단한 영웅임에는 틀림없었다.

만약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면 이렇게 찬양하는 글을 남겨두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레온의 등장 시기가 굉장히 애매했다.

어떤 자료에는 한참 성마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나왔다는 것도 있고.

다른 자료는 또 이미 성마 전쟁 이전부터 활동했다느니.

또 어떤 건 마지막 성마 전쟁쯤 되어서야 등장을 한다.

마왕을 무찌르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으로.

정보가 하나같이 달라.

이렇게까지 시간 차이가 많이 나는 영웅의 서사가 말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문제는.

이전에 나타나는 레온이 후에 나타난 레온보다 더 강한 경우도 허다했다.

혼자서 마왕군을 초토화시켰던 레온이 등장하더니 좀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그냥 마족 하나한테도 고전하는 레온이 나오기도 하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 기록이 엉망이라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다.

어차피 시대가 지나면서 전승이 달라질 수도 있는 노릇에다가 피난 오는 길에 자료가 소실되었을 경우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건 이상한 거다.

마치 누군가가 짜깁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는 정보들이라…….

후.

역시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물어봤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이 고대 마수의 탑에 들어온 이상 직접 나갈 방법은 없으니 이건 불가능하고.

사장님이 추가 정보를 잘 가져오길 바랄 수밖에.

* * * * *

하루가 지나고 접속을 하려는데 몇 가지 공지가 떠 있었다.

흐음.

아마 이건 우리가 카르페디움 마왕성을 통해 고대 마수의 탑으로 들어가서 이려나?

몇몇 공지 내용이 그에 관련된 공지였는데 크게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쭉 넘겼다.

카르페디움 마왕성과 고대 마수의 탑이 새로 업데이트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니.

어차피 지금 다른 유저들이 알아봐야 접근할 방법도 없었다.

운영자가 대놓고 입장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그러려면 마왕 바이카르를 무시하고 일을 진행해야 할 텐데.

이건 또 불가능이지.

모르긴 해도 마계 설정상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알고 있다고 해도 다른 유저들의 간섭은 없다는 거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91.

> 로딩 중...

그간 몇 번의 전투로 레벨은 조금 더 올라간 상태였지만 아직 200은 넘기지 못 한 상태지만.

뭐 곧 그것도 넘길 듯하네.

무엇보다 에센시아 제국성의 상황은 전시였다.

그것도 성마 전쟁이 일어난 한복판의 전장.

레벨을 올리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

접속하자 바로 챠밍에게서 연락이 왔다.

<챠밍> 잘 잤어요?

<주호> 응, 나쁘지 않네. 넌 안 피곤해?

어제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나와 같이 자료를 찾는다고 꽤 늦게 잤었다.

<챠밍> 저도 괜찮아요. 아.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일어난 큰 이벤트 중에 몇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았는데 나중에 말해줄게요.

<주호> 응. 고생했어.

그 이후로 이쁜소녀와 전사 형, 나르샤 누나, 막내별도 차례대로 접속하고.

마지막으로 재중이 형도 접속했다.

모두가 모이기로 한 장소는 에센시아 제국성의 한 술집이 딸린 외곽 여관이었다.

제일 먼저 도착해 가게를 살폈는데 모든 테이블이 텅텅 비어있었다.

오늘은 우리 외에 손님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장사가 잘 안 되나 봐요?”

“아냐. 비상 소집령이 떨어져서 모두 나가 버렸어.”

비상 소집령?

그러고 보니 접속했을 때부터 유독 거리에 사람이 없어 보이는 것이 착각은 아닌 모양이다.

술을 마시는 용병들이 보이지 않아 의아하긴 했는데.

걱정이 되는지 주인 아주머니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죽어나갈지…… 이제 제국엔 미래가 없는 걸까?”

이곳에서 쭉 가게를 열고 있던 사람이라면 지금 상황이 와 닿을 듯 했다.

매번 전투가 열릴 때마다 죽어나가는 용병들이 체감될 테니까.

지금은 비어 버린 저 많은 테이블들이 원래는 그들이 가득 앉아서 술을 마시던 장소였을 터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에센시아 제국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겐.

그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밖에 없었다.

곧 망해 버리는 제국의 미래는.

입 밖에 내기에는 너무 아프지.

“역시 그렇지? 용사님들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용사인가…….

용사를 말하면서 희망을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 지었다.

아마도 당신이 생각하는 그 용사들은.

이곳을 결코 지켜주지 못할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미래에는…….

곧 에센시아 제국성이 박살난 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용사들이 마왕군을 이기게 될 테니까.

그것도 크루아 대륙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곤 난 뒤다.

그렇게 대륙과 나라가 전부 불태워지고.

남쪽으로 계속 피난을 가 마지막에 정착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가르시아 제국이 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 있는 이 사람도.

특별히 운이 좋지 않다면.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네, 운이 함께하기를…….”

모르겠다.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팀이 하나둘 여관으로 들어왔다.

“거기서 멍하니 뭐해?”

전사 형이 먼저 들어와 물었고, 곧 표정을 바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별것 아니에요. 다 같이 오셨네요.”

“오는 길에 모두 만나서. 그런데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

“비상 소집령이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옆에 주인 아주머니를 눈짓하자 전사 형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전사> 흐음. 역시 그거려나?

<주호> 아크 드래곤요?

<방패전사> 어, 지금 위협이 될 만한 게 그거뿐이잖아.

<주호> 흐음. 의외로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방패전사> 저들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주호> 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에센시아 제국성이 망하지는 않자나요.

분명히 미리 파악한 에센시아 제국의 역사에서는.

지금은 망하진 않는다.

일단 망하긴 하는데.

그게 적어도 오늘은 아니라는 거다.

<방패전사> 하긴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피해가 엄청날걸? 쉬워 보이지 않던데.

저 말에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레벨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사 형은 근처에 있기만 해도 체력이 쭉쭉 깎여 나갔는데 평범한 녀석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뭐 에센시아 제국에서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강한 녀석들이 많이 있을 테니 직접 붙어봐야 아는 일이려나.

<주호> 일단 두고 보죠.

지금 당장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에센시아 제국성에 발을 들여놓은 용병에게 갑자기 큰일을 맡길 귀족 녀석들도 없을 테고.

우리가 직접 찾아가면 쫓아내지나 않으면 다행일 지도.

“올라가서 의논을 해보죠.”

혹여나 다른 NPC가 듣는 건 사양이라.

이곳에서는 우린 철저한 이방인이다.

그렇게 모두 여관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군 뒤 그간 모았던 정보들을 하나씩 짜 맞추기 시작했다.

일단 전사 형이 모두에게서 정보를 받아 사건별로 나누면 재중이 형이 그걸 토대로 거대한 연대표를 만들어나갔다.

세세한 정보는 우리가 하나씩 살을 붙였고.

서로 비교해 보고 맞지 않는 사건은 버리거나.

혹은 취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건 역시도 그대로 묻어 버렸다.

작은 사건들은 애초에 기록되지도 않았으니 그나마 큰 건들 중에 쓸모없는 걸 쳐내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틀을 갖춰갔다.

어느 정도 취합된 정보를 한참 살펴보던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함정 같은 정보가 많군요.”

“어, 핵심으로 가는 건 정말 몇 개 없어. 나머지는 다 위장이나 허위로 작성된 것뿐이다.”

허위는 그나마 가려내기 쉬웠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만들어내 끼워넣기 한 거니까.

문제는 위장된 정보들.

이건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 같아서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로 교차 검증을 하기 전에는 정말 있던 일인가 하고 믿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정보를 위장한 거지?

그리고 그런 결과들을 받아든 뒤 재중이 형의 평가는 꽤 적나라했다.

“이건 뭐…… 영웅들이 아니라 각 나라의 이해득실로 똘똘 뭉쳐진 집단이네.”

재중이 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

각 영웅들은…….

그 나라의 이득만을 위해 움직이는 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르샤 누나가 혀를 차면서 순수한 감상평을 말했다.

“대륙이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러고 있었으니 망하지.”

막내별도 마찬가지.

“꼭 유저들 보는 것 같네요. 서로 고대 마수의 아이템을 얻으려고 저러는 걸 보면요.”

“이건 더 가관이지 않아? 뒤통수 쳐서 다른 영웅 죽이고 아이템 얻는 거 말이야.”

어느 역사 속 한 레이드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었는데.

하나는 두 영웅이 서로 힘을 합쳐 싸우다 한쪽이 죽었다 정도였는데.

다른 하나가 문제였다.

레이드 이후 한 영웅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표현.

그리고 나중에 그 사라진 영웅의 아이템을 들고 나타난 다른 한 영웅.

이건 대충 봐도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레이드 시점과 후에 다른 영웅이 아이템을 들고 나타난 시점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이렇게 대놓고 비교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꼭 이런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후에 역사를 보면 알지만 당시에는 모를 만한 일들이 꽤 존재했다.

자신의 나라를 미끼로 버리고 마왕군에게 도망친 영웅도.

역사에서는 끝까지 항쟁했다고 되어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후자가 맞는 편이다.

“개판이네.”

“개판이죠.”

나르샤 누나와 막내별이 신나하며 영웅들을 계속 까대고 있는 동안 이쁜소녀가 진(眞)토르를 꺼내들고는 내게 물었다.

“오빠, 이거 버릴까요?”

“음…… 그러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토르도 영웅의 무기였지 아마.

슬쩍 나르샤 누나의 영웅의 활을 보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소 지었다.

“쓰는 사람만 제대로 쓰면 되는 것 아냐? 과거에 누가 썼든.”

그 말에 이쁜소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간의 정리가 끝난 뒤.

재중이 형이 손을 들었다.

“좋아. 여기까지. 역시 에센시아 제국 황실에 대한 건 꽤 적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아마 이건 사장님이 마리아 가르시아에게 정보를 받아와야 좀 더 그려질 듯 했다.

“당장은 황실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는 거죠?”

“뭐, 그렇지. 어떻게 보면 우린 일개 용병일 뿐이니까.”

우리가 가진 직위는 이곳에서는 쓸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바닥에서부터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국 내 핵심 사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직위는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만한.

꽤 높은 직위가.

문제는.

그만한 직위를 얻을 만한 시간이 있느냐인데.

현재 이곳에서 우리에게 있는 인맥이라고는 동향 병사 정도가 전부다.

“이건 좀 많이 어렵겠네요.”

그렇게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문득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게 되려나……?

“형,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 번 해볼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