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화 고대 마수의 탑 (15)
잠시 한숨을 쉬면서 저 멀리 있을 두 몬스터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챠밍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여긴 1층이 아닌 것 같아. 아니. 1층인데 완전히 다른 층이라고 봐야 하려나?”
“역시 그렇죠?”
챠밍도 이곳이 1층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전사 형이 올펠 플레이트를 손질하던 손을 멈추고는 혀를 내두르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1층 정도였으면 이 녀석이 이 모양은 되지 않았겠지.”
현재 우리가 가진 가장 강한 방어수단인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그 잠깐 사이에 손상을 많이 입은 상태였다.
“계속 쓸 수 있겠어요?”
“음, 강화를 좀 더 하고. 수리도 좀 하고 하다 보면 어찌어찌 버틸 듯한데?”
“정비할 곳이 필요하겠네요. 그런데 여긴 좀…….”
위험 구역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언제 저 강력한 녀석들이 이곳으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재중이 형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일단은 살고 보자. 나르샤는 계속 저쪽 방향을 주시해 줘. 우리가 보는 것보다는 네가 살피는 게 훨씬 빠를 테니까.”
그 말에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소 불안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만약 먼저 알고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 녀석들을 떨쳐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지상에 있던 녀석은 가능하겠지만…….”
“아크 드래곤 말이지?”
아크 드래곤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들 어깨를 움찔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보통의 드래곤은 절대 아니었다.
그간 상대해 왔던 드래곤들하고는 베이스부터 다른 느낌이랄까.
심지어 전에 마왕 벨라가 타고 있던 스컬 드래곤도 이 정도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좀 더 압도적인 강함.
무엇보다 지상의 괴물을 직접 상대하면서도 추가적으로 그 정도의 운석 낙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무서운 거다.
단단한 신체를 기반한 강력한 근접 공격.
눈에 들어오는 전 필드를 덮을 수준의 원거리의 대단위 마법 타격.
멀리서도 눈으로 좇기 힘들 초고속 기동.
거기다 추가적인 스킬들이 더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겠지.
아주 잠시 봤을 뿐인데도.
아크 드래곤은 상상할 수 있는 괴물의 수준은 아득히 넘어섰다.
단순히 유저 몇몇이 붙어서 사냥할 수 있는 녀석도 아닌 듯했고.
1층이라는 곳에 있을 만한 녀석이 아닌 것도 확실했다.
전사 형이 날 보면서 물었다.
“네 아퀼라스 주니어로 상대가 될까?”
“……아무래도 그건 어렵죠.”
솔직히 말해서 아퀼라스 주니어는 예전 아퀼라스의 열화판인 테이밍체였다.
아무리 능력을 올린다고 해도 결국은 직접 해당 네임드와 붙기에는 부족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윗줄로 예상되는 아크 드래곤과 붙인다?
당장 이속부터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판에…….
그냥 공중에서 비행 몇 번하고는 바로 녀석에게 씹혀서 떨어지겠지.
전사 형이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 역시도 고개를 저었다.
“아아, 가르가도 무리지. 이 녀석은 불속성만 좋은 녀석일 뿐이야. 아마 할 수 있는 마법 공격 대부분이 녀석의 속성에 발릴 걸?”
“어렵군요.”
“나랑 주호하고 동시에 떠도 어차피 안 돼. 독수리에게 참새 두 마리가 붙어봐야 참새니까.”
“설마 그 정도로 차이 날까요?”
“아마 그럴걸?”
내가 생각했던 걸 재중이 형도 똑같이 생각한 듯했다.
아까 잠시 아퀼라스 주니어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했는데.
초고속 기동을 하는 아크 드래곤을 보고는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날아봤자 금방 떨어질 거라고.
재중이 형 역시도 비슷한 등급의 가르가를 들고 있으니 생각 역시 비슷했다.
전사 형이 할 수 없다는 듯 이쁜소녀를 보고 말했다.
“베히모스 꺼내 봐. 이동하자.”
“넵!”
【 베히모스 주니어 소환! 】
그러자 이쁜소녀 옆으로 커다란 베히모스 주니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 잡는다고 그 고생을 했던 녀석인데.
지금은 저 아크 드래곤과 타이탄을 보자 이 녀석도 꽤 작아 보인다는 감상을 지우긴 힘들었다.
“다들 올라타요.”
비행이 가능한 아퀼라스 주니어나 가르가 주니어는 일단 안 된다.
혹시라도 공중에서 날아다니다 아크 드래곤의 관심을 끌면 답도 없고.
모두가 베히모스 주니어에 올라타자 이쁜소녀가 내게 물었다.
“주호 오빠, 우리 어디로 가요?”
일단 올라타긴 했는데.
나도 여길 모르는 건 매한가지라.
“잠시만.”
그리고는 곧장 모든 감각을 풀가동 시켰다.
그러자 사방으로 감각이 뻗어나가며 주변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샅샅이 뒤져 나갔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는 안 되겠고.
이 근처에서 느껴지는 건 죄다 산맥 아니면 들판밖에 없었다.
하긴 던전 안에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긴 한데.
그러면 정말 저 두 괴물들밖에 없는 거려나?
솔직히 이건 더 최악이다.
아무 자원도 없이 저 괴물들을 상대하는 건.
당장 죽으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
최소한.
뭔가가 있긴 해야…….
그때 내 감각에 뭔가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건 나도 좀 의왼데?
지금 잡힌 감각이 맞는가 싶어서 잠시 눈을 깜빡일 정도였다.
그러자 날 바라보던 챠밍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뭔가 있어요?”
“아…… 있긴 한데. 이게 맞나 모르겠는데?”
설마 여긴 던전 안이 아닌 거려나?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 번 감각을 퍼트렸는데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듯 우리 팀을 보면서 말했다.
“왜…… 여기에 제국성 규모의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네?”
“응?”
“뭐?”
“에?”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전사 형, 막내별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음, 내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요. 저쪽 방향에 꽤 커다란 규모의 성이 있어요.”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쁜소녀에게 말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자. 여기서 계속 있을 수는 없어.”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베히모스 주니어를 이동시켰다.
“멍멍아! 달려!”
응?
멍멍이?
졸지에 멍멍이가 된 베히모스 주니어가 작게 포효를 하더니 곧장 내가 알려준 방향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공중 이동은 아니긴 해도.
베히모스 주니어는 마치 하늘을 날듯이 빠르게 이동해 산 몇 개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버렸다.
“휘유. 역시 네임드 펫은 좋구나.”
그런 전사 형의 감상에 의아한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형도 히드라 주니어 있잖아요.”
“아, 그놈은 너무 느려 터져서. 아마 네가 달리는 것보다 느릴걸?”
“그럼 답답하겠네요.”
공성할 때는 좋겠지만.
이동은 영 아닌 듯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새 몇 개의 산을 더 넘어가자 시야에 하나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확실히 성이네요.”
내가 멀리서 느낀 게 결코 틀리지 않았다.
지금도 저 성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은 NPC들의 움직임들이 느껴졌다.
NPC라 확신한 것은 당연히 이곳에 유저가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는 성의 벽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 거리가 있는 외곽에서 베히모스 주니어를 멈춰 세웠다.
“어때?”
재중이 형이 내게 물어보자 잠시 더 감각을 퍼트렸다가 회수했다.
“으음. 멀리서는 그냥 좀 많은 정도로 느껴졌는데. 성에 NPC가 상당히 많네요.”
“어느 정도?”
“대략 만 단위는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많다고?”
내 말에는 재중이 형도 놀란 듯했다.
일반적인 성에서 이 정도 숫자의 NPC를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국성이나 신성 제국성의 규모에 맞먹는.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클지도 모르겠는데.
전사 형도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그냥 1회성 이벤트 던전에 이런 규모의 성이라고? 너무 과도한데요?”
재중이 형 역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나치게 많아.”
“네, 아무래도 우리가 뭘 놓친 듯합니다.”
전사 형도 그렇고 재중이 형 역시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고대 마수의 탑은 말 그대로 사냥터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왕성 전용 사냥터라고.
하지만 지금 보이는 광경은 마왕성 하나 수준에서 보여줄 만한 광경은 아득히 넘어섰다.
오히려 이건 마왕성의 규모와 맞먹을 만한 정도라.
이벤트 던전이라기에는 과도한 건 확실하다.
거기다 처음 탑에 진입했을 때의 저 네임드 아크 드래곤만 봐도 그렇고.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가봐야겠죠?”
내 말에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한 번씩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밖에 없잖아?”
“그럼 가야지.”
먼저 전사 형이 베히모스 주니어에서 뛰어내리더니 앞장 섰다.
“뭐 죽기밖에 더하겠냐. 그리고 여기서 죽는다고 정말 죽는 건 아니라며?”
“그래도 아웃인데요?”
“아, 그건 그렇지.”
그러면서도 앞으로 쭉 걸어나가는 전사 형을 보고는 우리 팀 역시도 전부 베히모스 주니어에서 뛰어내려 전사 형의 뒤를 따랐다.
“베히모스는 넣어두고. 괜히 경계할라.”
내 말에 이쁜소녀가 바로 베히모스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성으로 다가가자 성문 외곽을 지키고 있던 NPC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십이.
확실히 좀 과도하긴 한데?
보통은 많아도 서넛 정도만 지키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지 전사 형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그렇게 전사 형이 성문에 다가가는 순간.
성문을 지키는 모든 NPC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이 시기에 외부에서 인간이……?”
웅성웅성.
저들도 꽤 당황했는지 급하게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저들이 들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가 지금 보기에는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왜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
“멈춰라!”
“움직이면 죽인다!”
“설마 마인인가?!”
동시에 튀어나오는 말들에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이곳을 인간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거지?
슬쩍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뭔가 이상하죠?”
“어, 왜 여기 인간 NPC가 있냐?”
이상한 걸 느낀 건 나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와 재중이 형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저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사람이네요?”
“마족이 아니야?”
“여기 마계 아니었어?”
챠밍, 이쁜소녀, 막내별 모두 의아한 듯 말했다.
그러자 NPC들 역시도 당황한 듯 우리에게 무기를 치켜세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마계?! 역시 마족이었나?”
“보기에는 인간 같은뎁쇼?”
“뭐지? 대체…….”
“지원군을 부르겠습니다.”
서로 앞에서 쳐다보면서도 이 상황의 이상함에 먼저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마왕성의 이벤트 던전 안에 있는 기묘한 규모의 성.
그것도 마계에 있을 수도 없는 인간 NPC들이 지키고 있다라...
이건 상식을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났다.
무엇보다 이런 곳이 있다면 마왕 바이카르가 그냥 놔두지 않았을 텐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혼란한 상황에서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챠밍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면서 저들 병사들에게 물어보았다.
챠밍은 혹시 뭔가를 눈치챈 건가?
“혹시 여기가 어딘가요?”
“뭐? 그것도 몰라? 이곳은 제국성이잖아!”
어?
제국성이라고?!
그런데 그다음에 병사에게 나오는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내가 아는 그 제국성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