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화 고대 마수의 탑 (14)
분명히 여긴 탑 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아무리 봐도 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하늘이 갈라지면서 불타오르는 운석이 우수수 떨어지는 광경을 탑 안에서 볼 수 있진 않을 테니.
지금도 엄청난 열기를 내뿜으면서 저 멀리 곳곳에서 운석이 떨어져내려 사방으로 충격파를 퍼트리고 있었다.
쿠우웅!!
콰아아앙!!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다리를 저리게 타고 올라오자 눈을 찡그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전사 형의 커다란 등을.
운석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오는 충격을 전사 형이 몸으로 전부 막아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저 모양이 된 거고.
재중이 형의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호야! 일단 튀자!!”
“형,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나도 몰라. 들어오자마자 이 모양이다.”
그런 재중이 형의 대답에 전사 형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아니, 이놈의 던전은 무슨 상도덕도 없냐! 입구부터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지금 눈앞을 가득 메운 운석들을 보니 딱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네.
보통 던전은 그래도 시작부에선 유저들이 던전에 적응하도록 어느 정도 수준이 낮은 함정이나 몬스터들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던전은 아예 그런 상도덕을 내다버린 상태다.
시작부터 발 디딜 자리도 없이 떨어지는 운석과 그 충격파가 터지는 광경은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니까.
만약 전사 형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들어오자마자 바닥을 눕고 보지 않았을까.
뭔가 해보기도 전에 끝났을 거라는 거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요?”
“애들 들어올 때까지는 물약으로 버틸 수 있어! 그런데 올펠 플레이트가 그 전에 박살 날지도 모르겠다. 운석 대미지가 장난 아냐.”
직접 맞은 것도 아닌 단순히 충격파인데도 불구하고 이 모양이라니.
그렇게 전사 형이 몸으로 충격을 버텨주는 사이.
내 뒤를 이어 이쁜소녀가 포탈로 된 던전 입구를 타고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똑같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늘이 빨개요!!”
운석이 떨어지는 하늘의 색이 붉게 물들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 뒤에 챠밍이 뛰어들어 왔는데 챠밍은 상황을 보자마자 바로 눈빛이 변하더니 마법부터 시전했다.
【 메가 힐! 】
전사 형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빛의 잔영이 체력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 줬다.
“오오, 땡큐!”
“전사 오빠. 체력이 아슬아슬해요.”
“어, 그래서 빨리 튀어야 해!”
챠밍은 힐이 주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급한 불을 끌 정도는 되었다.
이어 나르샤 누나가 들어와서는 놀란 표정을 짓는 건 똑같았고.
“세상에.”
탑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 광경은 그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막내별이 뒤이어 따라 들어와 역시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챠밍과 똑같이 두 손을 들어올려 전사 형에게 힐부터 시전했다.
【 메가 힐! 】
막내별의 힐까지 이어받은 전사 형이 한껏 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죽진 않겠네.”
물론 이대로 계속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챠밍과 막내별의 힐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전사 형의 체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재중이 형을 보고 물었다.
“형,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잠시…….”
전사 형이 막아내는 동안 재중이 형이 계속 주변을 살피는 중이었다.
하지만 바로 몸을 숨길 곳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 전체가 운석의 충돌로 들끓는 중이라.
그때 같이 사방을 둘러보던 나르샤 누나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외쳤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만 피하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한데?”
나르샤 누나가 보는 곳은 이곳에서부터 아주 멀리 있는 한 장소.
모두의 시선이 그 방향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하나의 거대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둘이다.
공중에 하나.
지상에 하나.
제3의 눈을 가져 시야가 가장 긴 나르샤 누나이기에 한 번에 발견했지만.
그만큼 여기서 멀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이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저런 크기라니.
그건 실제로 바로 앞에서 본다면 엄청나게 크다는 거다.
나르샤 누나가 말해 주었다.
“타이탄……!”
“네?”
“타이탄이라고 뜨는데? 그리고…… 하늘에는 아크…… 드래곤.”
확실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 광택 일색인 녀석이 네 장의 날개를 크게 펼쳐서 날아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는 중이었다.
“하, 시작부터 드래곤이에요?”
“아무래도 그런가 봐.”
다시 한 번 확인한 나르샤 누나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레벨대는요?
어차피 내가 쳐다봐도 죄다 붉은색 몬스터들뿐일 거다.
레벨은 전혀 확인 못 한다는 거지.
그래서 나르샤 누나에게 물었는데 나르샤 누나가 미간을 잠시 찡그렸다.
“측정 안 돼. 아주 새빨간 색이야.”
“600대는 가볍게 넘는다는 거네요.”
여기는 고대 마수의 탑.
그렇다는 건 나오는 몬스터들은 최소한 네임드일 거라는 가정은 가능했다.
그렇다면 저 하늘에 떠다니는 네임드로 추정되는 아크 드래곤은…….
최소 발록급.
혹은 그 이상.
레벨 하향선은 색으로 알 수 있어도.
반대로 상향선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라.
어쩌면 그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른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혹시 아까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여기 1층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무슨 1층부터 저런 네임드가 나와요?”
그냥 이름만 봐도 드래곤이다.
일반 몬스터들과는 체급 자체가 다른 녀석들이기도 하고.
특히 그런 녀석이 네임드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가 나오겠지.
“설마 지금 이 운석들 전부 저 녀석이 불러낸 건가요?”
이미 이전에 운석 관련된 스킬은 본 적이 있었다.
직접 쓰기도 많이 썼었고.
메테오 스트라이크.
마법의 일종으로 당시 거의 끝판왕급 위력을 내던 최강의 스킬이기도 했다.
드래곤의 전유물인 스킬.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저 아크 드래곤이 쓰는 건 그리 이상하진 않다.
문제는.
이 일대를 전부 덮을 정도의 운석을 불러내려면 대체 얼마나 강해야 하는 걸까.
거기에 운석 하나하나의 위력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거기다 운석 주위로 기묘한 붉고 파란 스파크가 동시에 몰아치는 걸 보면.
이전에 쓰던 메테오 스트라이크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스킬이라고 보면 될 듯했다.
그리고 그런 아크 드래곤에 맞서서 싸우는 녀석도 문제였다.
타이탄.
인간형의 형체를 한 거대한 녀석이 아크 드래곤을 맞아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꿋꿋하게 두 다리로 버티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녀석이 둘이나 있다니.
“일단 튀죠.”
어느 정도 게임을 해볼 만한 상대여야 한 번 떠보지.
까딱 잘못했다가는 충격파에만 휩쓸려서 죽을 판이라.
전사 형이 나르샤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저 녀석들하고만 멀어지면 되는 거야?”
“응, 최대한 반대편으로.”
그리고는 나르샤 누나가 네임드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있는 곳과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는 피해가 없어 보여.”
“오케이. 내가 커버할게. 뛰자!”
먼저 전사 형이 몸으로 주변의 충격을 파쇄해가면서 뛰쳐나가자 나와 재중이 형이 그 뒤를 이어 달렸다.
그 뒤로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역시 쭉 달려갔다.
중간에 운석 파편들이 튀어 날아왔는데 그때마다 나와 재중이 형이 무기를 휘둘러서 운석 파편들을 빗겨쳐 냈다.
카가각!!
키기긱!!
계속 휘두르는 르아 카르테에 전해져오는 충격으로 손아귀가 터질 것 같은 압력이 밀려왔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다.
빗겨냈는데도 이렇다니.
전사 형이 힘들어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재중이 형도 연신 프로미넌스를 휘둘러서 화염 파편들을 걷어냈고.
“휘유, 파편도 장난 아닌데?”
“역시 그렇죠?”
직격으로 맞으면 피해가 좀 있을 정도.
일격에 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의 대미지는 절대 아니었다.
우리 팀을 호위하며 쭉 벗어나자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충격파가 느껴지지 않았다.
챠밍이 뒤를 돌아보면서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벗어났어요.”
아까 싸우던 존재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피해가 없다니.
이런 무지막지한 네임들은 처음 본다.
그때 챠밍이 정말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은 내게도 역시 의아함을 안겨 주었다.
“오빠, 아까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혹시 타이탄이나 아크 드래곤에 대한 아이템 본 적 있었어요?”
아직까지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내용의 질문이었다.
잠시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지금 봤던 타이탄이나 아크 드래곤에 대한 아이템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우리 팀을 바라봤는데.
다들 하나같이 창고에서 봤던 아이템들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심지어 아이템 목록을 정리했던 전사 형마저도.
전사 형이 확신을 가지듯 말했다.
“목록에는 전혀 없는 네임드야.”
네임드 템에 고유한 아이템 이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이템이 나온 네임드의 이름이 붙는 편이었다.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는 일종의 전리품의 창고라고 해야 할까.
녀석이 직접 얻거나 혹은 마계 경매장에서 산 아이템들을 보관해 두었을 텐데.
그런데 그런 창고 안에 관련 네임드 이름이 붙은 아이템이 없다는 건…….
잠시 우리에게 침묵이 내려왔다.
설마 아니겠지.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지금 상황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말이 된다.
물론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 안을 우리가 전부 살펴본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꽤 많은 아이템들을 보긴 했었다.
비밀 공간에 숨겨진 아이템들을 포함해서.
만약 단순히 창고 안에 있지만 보지 못한 것과.
아예 처음부터 없는 것.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 막내별이 먼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마왕 바이카르가 손대지 못한 네임드라는 뜻일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결코 긍정하고 싶지 않는 사실이랄까.
거기다 이상한 점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전사 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여기 1층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마왕 바이카르가 1층도 손대 보지 못했다고? 이게 말이 돼?”
처음 보는 이름을 가진 네임드도 문젠데.
겨우 1층에 나오는 네임드인데 마왕 바이카르가 건들지 못했다?
애초에 이건 말이 되지도 않는다.
본인의 마왕성 사냥터인데.
1층도 돌아보지 않았을까.
챠밍이 확신은 없는 듯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여기가 1층이 아닌 걸까요?”
하지만 분명히 시스템 메시지로는 봤다.
들어올 때 1층이라고 뜨는 것을.
그런데 지금 살펴본 내용물은 절대 1층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무슨 네임드들 싸우는 걸 구경만 했다고 죽을 것 같아 피난 와야 하냐고.
레벨 700대?
아니 그보다 훨씬 위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순간 보좌관인 데보라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흘려보냈던 한마디 말.
‘내부의 형태가 항상 바뀝니다. 층수 역시도.’
설마…….
이게 그런 뜻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