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화 고대 마수의 탑 (13)
어쩌면 난장판이 된 창고를 제일 먼저 보는 게 화련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련을 보자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뭔가 말 안 한 게 있는 거야?”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음. 아무래도 창고 안을 좀 어질러놓은 상태라서요.”
그것도 좀 많이.
거의 비밀 창고 안을 뒤엎다시피 아이템들을 찾아다녔으니.
멀쩡하게 있는 부분보다는 엉망인 장소가 더 많을 것이다.
슬쩍 데보라의 눈치를 봤는데.
의외로 데보라는 그에 대해 아무런 화를 내지 않았다.
뜻밖의 말을 하면서.
“비밀 창고에서 나오면 창고 안의 물품은 다시 자동으로 정렬이 됩니다.”
“그런가요?”
꽤 좋은 시스템인데?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약간 머쓱한 듯 웃음 지었다.
<불멸> 적어도 데보라가 칼 들고 찾아오는 일은 없겠네.
<주호> 확실히 그렇죠.
그걸 데보라가 다 치우진 않겠지만.
비밀 창고 안을 아무나 들어가게 하진 않을 테니.
그나마 누군가 들어가서 확인을 안 해본다는 건 다행인 거려나.
자동으로 된다는 건.
굳이 인력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마왕 바이카르가 직접 가보지 않는 이상은.
뭐가 사라졌는지 확인되진 않을 것 같았다.
가령 내가 들고 나온 마검이라던가.
뭐 이쪽은 거의 버려두다시피 짱박아 놓은 물건 같아 보여 다행이지만.
재중이 형이나 챠밍이 가지고 나온 무기 같은 경우는 좀 다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녀석이 찾으러 갈 수도 있겠지.
그게 아주 나중이 되길 바랄뿐이다.
잠시 기다리던 데보라가 더 이상 대화가 없자 화련에게 말하면서 뭔가를 꺼내 전해주었다.
“마왕 바이카르님께서 창고 입장권을 전달하라 했습니다.”
『 카르페디움 마왕성 미지의 창고 입장권
- 1회용
- 입장권 하나당 1개의 아이템 습득 가능.
- 둘 이상의 아이템을 소지했을 경우 자동 소멸. 』
우리가 받았던 입장권과 정확히 일치하는 입장권.
딱히 구별을 둘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화련이 데보라를 보면서 물었다.
“어떤 물건이라도 상관없다는 거죠?”
“네, 하지만 딱 하나만 가능합니다. 그 이상의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오려고 하면 무조건 소멸합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경고도 우리에게 했던 그 말 그대로였다.
화련이 다시 물었다.
“시간 제한은?”
“한 시간.”
그 말을 듣자 화련이 궁금한 게 있는지 고개를 돌려 내게 질문했다.
“안에 물건이 얼마나 있어?”
“음, 아마 수백은 넘을 거예요. 방어구나 악세, 특수 아이템 같은 것들도 포함하면 더 될 테고.”
“생각보다 많네.”
“넓기도 넓죠. 헤이스트를 쓰고 한참 달려도 끝을 못 봤는데요.”
“……그럼 시간이 빠듯하겠네. 한 시간으로는.”
화련이 내 말을 토대로 대충 비밀 창고의 규모를 파악한 듯 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 시간은.
마왕 바이카르의 아이템 창고를 전부 살펴보기에는 많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거기다 다른 작업을 더 하려면 시간이 더 부족할 테고.
우리가 가지고 나온 아이템은 전부 7개.
그 수많은 아이템들 중에 고작 7개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데보라의 말대로 원래대로 정렬이 될 테고.
그 말은…….
비밀 공간으로 숨겨져 있는 장소 역시도 리셋되었다는 뜻이 된다.
정말 혹시라도.
처음에 나르샤 누나가 그랬듯.
뒷걸음치다가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 일이 생기면.
화련이 과연 그걸 그냥 지나칠까?
그 생각을 하고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니지.
이미 평범한(?) 네임드 템과는 등급부터가 다른데.
그 순간부터는 화련의 시간이 더욱 부족해지게 될 것이다.
숨겨져 있는 아이템을 찾는다고.
뭐 발견 못 했을 경우에는 어차피 모르니까 그냥 지나칠 테고.
화련 입장에선 차라리 그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
괜히 비밀 공간 찾다가 시간을 다 날리는 것보다야.
잘 비교해 보고 제대로 된 네임드 아이템을 건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화련이 날 보면서 말했다.
“그럼 사냥터에는 먼저 들어갈 거야?”
“아마 그래야겠죠? 준비가 되는 대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일단 필요한 아이템을 얻기는 했는데.
고대 마수의 탑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밖에서 미리 세팅을 다 하고 들어가는게 맞다.
안 그래도 아이템이 바뀌어서 새로 세팅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새 아이템에 적응하면서 천천히 들어가도 되겠지만.
딱히 데보라가 그 정도까지 시간을 줄 것 같진 않았다.
지금도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툭툭 내는 걸 보면 말이지.
어쩌면 여기서 얻은 아이템을 안 꺼내는 편이 나은 선택일까 싶기도 한데.
이건 좀 더 생각해보고.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화련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창고 입장권을 꺼내들었다.
“나중에 봐.”
“네, 좋은 거 많이 건져오세요.”
“흥.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화련이 입장권을 찢자 곧 빛무리와 함께 화련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옆에 있던 길드원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었고.
사라지기 전 몇몇 녀석들이 재중이 형에게 목례를 하는 걸 보면 아까는 화련 앞이라서 예의를 지킨 듯 했다.
뭐 돈 대주는 사람이 갑이긴 하지.
그리고 마지막에 예의 그 녀석도 모습을 감췄다.
흐음.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저 녀석은 신경 쓰인단 말이지.
어디까지 강해졌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 빤히 바라봐?”
“아. 그냥요.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이라.”
내 대답에 재중이 형의 의도를 잘 모를 것 같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보였다.
“뭐 그건 차차 알아가고. 조만간 붙어볼 일이 있겠지.”
눈빛만 보고도 사람 속을 맞추다니.
참 신기하긴 하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마왕 바이카르는 어딧나요?”
“마왕님은 현재 출타 중이십니다.”
“그래요?”
흐음.
마왕이 자리를 비울 일이 잘 있는진 모르겠는데.
어차피 내부 사정이라 딱히 말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데보라는 의외로 그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해 주었다.
“마왕 데미안 쪽의 회담 때문에 잠시 나가셨습니다.”
그러자 머릿속에 생각나는 게 있었다.
“혹시 마왕 선발전 때문인가요?”
내 물음에 데보라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왕 바이카르가 정말 날 마왕으로 올릴 생각인 듯 한데.
먹고 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 고대 마수의 탑은?”
“안내하겠습니다.”
“아, 혹시 바로 들어가야 하나요?”
그러자 데보라가 마치 시계를 보는 듯한 제스처로 내게 말했다.
“고대 마수의 탑은 아무 때나 입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곧 열립니다.”
대전의 중심으로 걸어간 데보라의 손이 허공을 휘젔자 곧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마왕성 전용 사냥터 『 고대 마수의 탑 』 의 입장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
어?
순간 당황한 눈빛으로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입장 시간이 3분 남았다는데요?”
“네, 아마도 그 정도 남았겠네요.”
이건 생각하고 많이 다른데?
분명히 준비를 좀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재중이 형도 난감한지 어깨를 으쓱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지금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런 재중이 형의 질문에 데보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고대 마수의 탑 입장권한이 사라집니다.”
“……미치겠군.”
전사 형을 비롯해 모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웅성거렸다.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당황한 듯했던 전사 형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제가 앞장서죠.”
그러면서 먼저 대전의 중심에 섰다.
들어가면 당장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환경이라 전사 형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정말 재수 없다면 들어가자마자 바로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테고.
이어 이쁜소녀가 전사 형 뒤에 바싹 붙었다.
“저도 앞에 설게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이쁜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소녀는 일단 후방. 챠밍하고 나르샤, 막내별을 지켜야지.”
“힝. 나도 앞에 서고 싶은데.”
“이번엔 지키는 게 먼저야. 싸우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알았어요.”
그러더니 이쁜소녀가 챠밍과 막내별, 나르샤 누나의 옆에 섰다.
“주호도 이번엔 소녀랑 같이 보호 역할. 안에 들어가면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
“형은요?”
“난 중간에서 부족한 쪽 커버 쳐야지. 전사 혼자 감당 안 되면 바로.”
원래라면 내 역할이었겠지만.
지금 내 레벨은 그다지 높은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지.
무기만 좋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좀 세팅을 하고 들어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부족한 스탯을 채울 수 있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었다.
재중이 형이 슬쩍 내 쪽을 보더니 말했다.
<불멸> 마검은 보여주기 좀 그렇지.
<주호> 네, 데보라가 아직은 모르길 바라야죠.
나중에라면 또 모를까.
시작부터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재중이 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마룡의 창을 꺼내들지 않고 프로미넌스를 꺼내들었다.
어차피 강화도 못 한 상황이라 아직 제 힘을 못 내긴 하지만.
마검 역시 같은 형편이다.
피를 듬뿍 먹여줘야 강해질 텐데.
말을 하는 사이 이미 1분이 지나가버려서 전사 형이 급하게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럼 진입합니다.”
먼저 전사 형이 대전의 중앙의 지하로 뛰어 내려가자 곧 재중이 형이 뒤를 따라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뒤를 이어 고대 마수의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뛰었다.
《 마왕성 전용 사냥터 『 고대 마수의 탑 』에 입장하셨습니다. 》
《 주호 님께서 『 고대 마수의 탑 』 1층에 진입하셨습니다. 》
《 『 고대 마수의 탑 』은 제한 시간이 없습니다. 》
《 『 고대 마수의 탑 』에서 사망할 시 사망 패널티가 없습니다. 》
《 『 고대 마수의 탑 』에서 사망할 시 입장권한이 박탈됩니다. 》
《 『 고대 마수의 탑 』에서 사망할 시 재입장이 불가능합니다. 》
《 『 고대 마수의 탑 』에서 탈출하려면 탈출을 외치시면 됩니다. 》
《 해당 던전은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끊어집니다. 》
《 던전 외부에서는 해당 던전의 시스템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
1회용 인스턴트 던전이려나?
아마도 이벤트 던전이라 그런지 몰라도 던전의 설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그중에 하나의 시스템에 눈이 갔다.
모든 연결이 끊어진다?
이걸 뜻하는 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대 마수의 탑에 입장하면서 어두워졌던 시야가 다시 펼쳐지면서 앞에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의 등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등을 보이자마자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의 입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그것도 꽤나 당황한 듯한 전사 형의 외침.
“젠장. 무슨 1층부터 이럽니까?!”
앞서 입장한 지 몇 초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전사 형의 갑옷이 벌써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그나마 전사 형의 플레이트가 마왕 올펠의 것이라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넝마가 되었을지도.
재중이 형이 내가 입장하는 걸 확인하자 바로 외쳤다.
“주호야! 일단 튀자!!”
화아아악!!
소리에 놀라 순간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운석들이 낙하하고 있었다.
하.
대체 여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