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화 고대 마수의 탑 (12)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아이템은 개인당 하나씩.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더 신중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재중이 형, 챠밍, 나르샤 누나는 거의 확실하게 가지고 나올 물건들을 정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 했다.
시간도 부족한 편이었고.
그런데 챠밍의 도움으로 꽤 많은 비밀 공간들을 추가로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걸리던 이동 시간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옆의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이 정도면 괜찮죠?
<불멸> 어, 생각 이상이다.
재중이 형도 이번 파밍이 꽤 만족스러운지 입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호> 그래도 다들 모아둔 아이템들을 전부 복사하지 못한 건 아깝네요.
<불멸> 어차피 마력도 부족했잖아. 더 모아놔 봐야 아무 의미도 없었어.
<주호> 하긴 그렇죠.
우리 팀에서 각자 아이템들을 모아서 내가 복사하기 편하게 한곳에 모아두었는데.
문제는 내가 그걸 소화할 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다.
첫째는 시간.
그리고 두 번째는 마력.
어차피 마력도 시간에 포함된 문제라…….
하나같이 밖에 나오면 최강 소리를 들을 아이템들이었는데.
그걸 마치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 보듯이 그냥 지나쳐올 수밖에 없었다.
<불멸> 그래도 전사가 데이터는 많이 모아놨어.
<주호> 아, 목록 정리했다고 했죠?
<불멸> 어, 나중에 써먹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다들 마냥 손 놓고 그 시간을 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아이템들의 목록.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장소에서 나오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창고 전체의 아이템들을 모두 스캔 떠서 그걸 목록화시켜 두었다고 한다.
개중에는 다 살펴보지 못한 것도 꽤 있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나올 아이템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혹은 어떤 네임드를 잡을 때 어떤 아이템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하니까.
거기다 그런 데이터가 있으면 나중에라도 필요한 옵션을 찾아 네임드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라는 거다.
이 일도 다 전사 형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아이템 데이터가 나중에 꼭 필요할 거라고.
전사 형 덕분에 꽤나 많은 데이터를 쌓았다.
특히 무기를 제외한 악세서리와 방어구들.
혹은 스킬북과 특수 물약 같은 아이템들도 많이 찾아냈다.
나야 어차피 무기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다 지나치고 달려서 확인할 기회가 없었지만.
전사 형이 따로 정보를 모아두었기에 그런 아쉬운 부분 역시도 채울 수 있었다.
<불멸> 창고에 있는 아이템들을 다 가지고 나오진 못 해도. 적어도 정보는 남으니까.
<주호> 네, 전사 형이 판단을 잘 했네요.
개인 당 하나씩 밖에 아이템을 가지고 나올 수 없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아이템들을 들고 나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게 당장은 쓰지 못하더라도.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정보를 모아댄 것도 아니었다.
<불멸> 곧 고대 마수의 탑으로 가면 꽤 많은 네임드들을 마주칠 거야.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 네임드 템들은.
바로 이거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대 마수의 탑 자체가 하나의 고급 사냥터.
굳이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네임드 아이템들을 가지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 고대 마수의 탑에서 추가로 구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우리에겐 존재했다.
만약 예상대로 우리가 생각한 네임드들과 마주칠 수만 있다면야.
전사 형이 모아둔 정보를 토대로 원하는 네임드들을 사냥하면서 추가적으로 아이템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겠지.
단순히 레벨링만 하기 위해 가는 게 아닌.
그래서인지 전사 형을 포함한 모두가.
네임드와 관련된 악세서리와 스킬북 부분은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아이템 목록에서 아예 지워버렸었다.
얻을 수 있을만한 물약이나 특수 아이템 관련 된 것들도 마찬가지.
어차피 예상이 맞다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
혹시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바깥에 나가 정보가 있는 관련 네임드들을 찾아내면 그만.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NPC들에게 물어보면 NPC들은 대답을 안 해준다.
가령 예를 들면 A라는 특성을 가진 네임드나 아이템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이름을 포함해 꽤 구체적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에 몇몇 특수 NPC들이 그에 관련된 답변을 내어줄 수 있게 된다.
마계 경매장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런 정보를 얻어내기 쉬워질 테고.
애초에 숨겨진 정보를 파는 집단이기도 하니까.
돈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정보를 구할 수 있을 터.
거기다 녀석들이 가지지 못한 정보를 우리가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정보와 교환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봤던 마계 경매장 마스터라면 말이지.
아이템 정보에 목말라 있는 건 그쪽도 매한가지라.
반대로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마냥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고 싶은데 알려달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건 그냥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일과 다름없게 된다.
NPC들도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을 테고.
키워드가 될 만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건 이만큼 정보를 모으는데 불리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딱 한 시간 남짓한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의 모험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이득을 남긴 모험이 되었다는 거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바로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가 아니라면.
절대 구할 수 없을.
고대 마수의 탑이나 바깥세상에서는 당분간 절대 구하지 못할.
딱 그런 아이템들만을 노렸다.
이를 테면.
내가 가지고 나온 마신의 무구 중에 하나인 마검.
재중이 형의 마룡의 창.
챠밍의 서리 여왕의 스태프.
나르샤 누나의 영웅의 무기인 무형시 활.
그리고 남은 우리 팀 모두가.
그런 식으로 아이템들을 따로 뽑아왔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들.
오직 그런 아이템들만이 이곳에서 가치가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내가 굳이 네임드 템들을 복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 기인했고.
어쩌면 마왕 바이카르의 핵심은 이런 특수 아이템들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은 인벤에 아이템들을 숨기고 있는 이쁜소녀.
그리고 전사 형과 막내별 모두 들뜬 표정을 애써 숨긴 채로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마지막에 그런 것들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기에 깜짝 놀랐었지.
비밀 장소들을 뒤지다가 계속 저들의 아이템들은 구하지 못 했었는데.
탐사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다들 정말 바쁜 몇 분을 보냈었다.
혹시나 다른 특수 아이템들이 구해질지 확실할 수 없어 미리 가지고 있던 네임드 아이템들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칠 정도.
다들 눈이 빨갛게 변해서 각자의 시험을 했었지 아마.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긴 하다.
특히 이쁜소녀는 단 몇 초만을 남겨두고 특수 아이템을 얻어냈다.
슬쩍 이쁜 소녀를 바라보자 아직도 흥분을 다 가라앉히지 못한 듯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고생했어.”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이쁜소녀가 연신 기쁜 듯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으으, 마지막엔 못 얻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겠어요.”
“덕분에 잘 됐잖아.”
애초에 이쁜소녀가 얻어서 나올 아이템은 광룡 커틀라스 배틀 해머였다.
솔직히 그 아이템만 해도 최상위급 네임드 템이라.
여러 상황에서 진(眞) 토르를 대체할 만큼의 위력은 내어줄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고.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나온 아이템으로 인해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날아가 버렸다.
어쩌면 비밀 창고에서 그 아이템을 못 얻고 그대로 나왔으면.
실패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정말 무시무시한 아이템을 가지고 나왔다.
“헤헷.”
이쁜소녀가 얼마나 좋은지 차마 감정을 다 감추지 못하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보자 전사 형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생각 이상의 아이템을 얻어 애써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고.
이 형도 그렇지만 막내별도 꽤…….
막내별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야누비스 스태프와 파우스트 완드.
그리고 새로 얻은 아이템을 저울질 하면서 어떻게 할까 생각이 많았으니까.
꽤 행복한 고민이었지 아마.
곧 앞서 걸어가는 마왕 바이카르의 보좌관 데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반응을 보면.
우리가 들고 나온 아이템을 데보라는 확인 못 하는 게 확실했다.
혹시라도 안다면 이렇게 그냥 넘어가진 않을 터.
아마 나중에 데보라가 창고 정리라도 하게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마왕 바이카르가 직접 하진 않을 테니.
어쩌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는 더 좋고.
굳이 우리가 얻은 아이템을 티내고 싶진 않으니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모르는 편이 우리에게는 좋았다.
그러다 엉망으로 쌓아둔 수도 없이 많은 아이템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재중이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호> 설마 창고 좀 어질러 났다고 나중에 칼질하러 오는 건 아니겠죠?
<불멸> 아아.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인데? 어지간히 난장판을 해놨어야 말이지.
<주호> 좋게 넘어가길 바라야겠군요.
아마 모르긴 해도 정리를 직접 한다면.
정말 데보라가 칼 들고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럼 섬찟한 기분을 애써 누르면서 데보라를 보자 어느덧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일단 주변을 살펴봐도 마왕 바이카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재중이 형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꽤 늦었잖아?”
“이쪽은 준비할 게 많았거든.”
바로 화련과 그 길드원들.
이번에는 아예 정예만 뽑아온 듯 하나같이 눈빛이 살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프로 팀이었던 헤라 길드의 유저들이라.
아마 실력 면에서는 그 어떤 길드와 붙어도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제일 뒤에 따라 들어오는 한 유저.
<불멸> 저 녀석, 예전에 그놈 아니냐?
<주호> 맞나 보네요.
<불멸> 화련이 스카웃했다더니 여기까지 데리고 왔네. 확실히 재능이 있긴 했어.
꽤 시간이 지나긴 했는데.
분명히 그때 당시 내 검격을 잡동사니와 같은 허름한 무기로 계속 막아내는 녀석이었다.
물론 그때야 내 쪽에서 압도하긴 했지만.
내겐 중간에 공백이 꽤 많았으니까.
아마 레벨도 저 녀석이 이젠 나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높다.
전에 유저 상위 랭킹에서 이 녀석의 이름을 얼핏 지나치며 본 것 같기도 해.
거기다 화련이 끼고 다닐 정도라면.
장비 지원도 적당히 해주진 않았을 터.
중간에 몇 번 화련이 언급한 적도 있었고.
그 녀석도 날 슬쩍 바라보더니 꽤 놀란 듯 두 눈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표정을 지웠다.
흐음.
지금 붙으면 잘 모르겠는데?
난 그 이후로 녀석의 플레이를 본 적이 없으니.
레벨도 레벨이고.
화련이 나와 뒤쪽의 그 녀석을 번갈아 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때?”
“저야 잘 모르죠.”
“흐응…… 그래?”
이건 그냥 솔직히 대답한 거였다.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순 없는 노릇이라.
딱히 저 녀석도 그것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눈치도 아니었고.
아니.
그냥 별로 표정 변화가 없다고 해야 하나.
화련이 다시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마왕 바이카르의 사냥터에서는 우리가 앞서나갈 거야. 기대해도 좋아.”
“자신감 넘치시네요.”
“응. 준비는 철저히 했으니까. 최고만 뽑아왔거든.”
자신 넘치는 화련에게 말했다.
“아, 마왕 바이카르가 창고 사용권을 줄 거예요.”
“그래?”
“음, 미리 조언하자면 안에 듣도 보도 못한 네임드 템이 즐비해요.”
“그럼 한발 늦었네. 너네가 좋은 거 다 뽑았을 거 아냐.”
그런 화련의 불만 섞인 눈치에 웃으면서 답해 주었다.
“뭐 그렇긴 한데. 워낙 아이템들이 많아서 큰 상관없을 거예요. 끝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 창고. 거기다 어차피 개인당 하나밖에 아이템 못 가지고 나와요.”
“그렇단 말이지? 그럼 됐어.”
화련은 대충 내 말을 알아들은 듯 했다.
많고 많은 아이템들 중에 성향에 맞는 아이템 하나씩은 표도 나지 않을 테니.
그런 화련을 보고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마 화련은 원하는 아이템을 고스란히 가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린 겉으로 보이는 아이템은 하나도 손대지 않았으니까.
“그럼 좋은 파밍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