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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17화 (1,005/1,404)

#1017화 고대 마수의 탑 (11)

오는 데 몇 분을 썼지?

챠밍을 잡고 달리면서도 내 생각은 온통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그 비밀 공간이라는 것을 찾아 들어가고 난 뒤에 바로 아이템을 습득해서 나오지 않으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마검 때야 들어가서 바로 얻었으니 그런 메시지가 뜨지 않은 듯했고.

감각으로 미리 파악해둔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달리면서도 자칫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잘못하면 늦겠는데.”

챠밍이 빠르게 달리는 내 손에 이끌려 발이 거의 바닥에서 날다시피 떠 있는데도 꽤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네가 얻어야 하는 아이템. 지금 없어지기 일보직전이거든. 다시 닫히기 전까지 3분의 시간이 있는데 내가 오는 길에 거의 반을 써버린 것 같아.”

만약 마계 서열 2위였던 서리 여왕의 아이템이 시간이 오버되어 잠적해 버린다면.

다시 그 비밀 장소를 찾아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나마 아직 발견 못한 구역에서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지나면서 이미 뒤졌던 장소에서 비밀 장소가 생성된다면 꼼짝 없이 확인 못하고 넘어가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왔던 길을 다시 싹 뒤져가면서 확인할 만큼의 여유는 우리에게 없었다.

이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도 어느덧 많이 남지 않았으니.

아마 이번에 서리 여왕의 아이템을 놓친다면.

그냥 손 놓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마왕 바이카르가 이런 기회를 다시 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큰일이네요. 거기다 저까지 달고 달리고 있으니까 더 느릴 텐데.”

산술적으로 챠밍의 말이 맞았다.

나 혼자 뛰어오는 데만 해도 3분의 절반을 써버렸다.

그런데 다시 돌아갈 때는 챠밍을 뒤에 달고 달려야 하니 속도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 혼자 돌아가 봐야 의미도 없고.

중간에 먼저 달려가서 열어둘 수는 있겠지만.

이러면 반대로 챠밍이 비밀 공간을 찾아오지 못하게 된다.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그런데 그때.

챠밍에게서 환한 빛이 퍼져나왔다.

그리고는 네게 스킬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 더블 헤이스트! 】

【 윈드 워크! 】

헤이스트의 상급 스킬.

거기다 바람의 기운을 이용해 더욱 몸을 가속 시키는 윈드 워크 스킬까지.

두 보조 스킬이 동시에 걸리자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지며 달리던 속도에 이중으로 가속이 붙었다.

“어?”

“이러면 좀 빨리 가겠죠?”

내게 싱긋 미소 짓는 챠밍을 돌아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래. 이거라면. 충분하지.”

이 정도 스킬들이 더 붙어주면 챠밍을 달고도 충분히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었다.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도 좀 배워놔야겠는데.

더욱 가속이 붙자 바람이 갈라지는 듯한 시원한 기분이 들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거의 10초쯤 시간이 남았을 때.

“오빠! 저기예요?”

“어! 들어가자!”

거의 사라질 듯 일렁이면서 입구가 사라지는 모습에 다급한 마음을 다잡고 챠밍부터 입구로 던지다시피 몸을 날렸다.

“꺅!”

그리고 챠밍이 먼저 비밀 입구로 몸이 사라졌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겨우 몸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비밀 입구를 통과한 뒤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자 완전히 입구가 모습을 감춰 버렸다.

“휴. 1초만 늦었어도 아웃이었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쓰러져 있던 챠밍이 꽤나 아파하는 소리를 냈다.

“아야. 아파라.”

“아, 미안. 너무 세게 던졌지?”

다급해서 일단 챠밍을 던지긴 했는데.

그 때문에 착지까지는 고려하지 못 했다.

“덕분에 들어왔잖아요?”

그리고는 챠밍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털고 일어나 비밀 장소 안쪽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저거에요?”

“어. 난 일단 여기서 접근 불가. 다가가면 무섭게 화내거든. 저게 마법사 전용인 모양이야.”

“아, 그렇구나.”

직업이 딱히 정해져 있진 않지만.

아마 어떤 스킬을 보유했다거나 혹은 스탯 비율 같은 것으로 구분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접 딜러인 나와 달리 챠밍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스탯이 지력과 마력에 몰려 있었으니까.

챠밍이 긴장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서리 여왕의 아이템에서 나오던 서리 스킬에 대한 이펙트가 확 퍼져나왔다.

으음.

설마 챠밍도 조건에 안 되는 거려나?

혹시 레벨대가 굉장히 높아야 하던가 하는 문제가 있을 수도.

분명히 대마법사라는 전제가 있었으니.

서리 여왕의 아이템이 보기에 최소한 그런 조건은 넘어서야겠지.

가급적이면 그 조건이 좀 낮았으면 좋겠는데.

긴장한 눈으로 챠밍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이젠 완전히 뿌옇게 변한 서리 사이로 챠밍의 모습이 사라지자 감각을 완전히 개방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그냥 빼내오는 편이 나을 테니까.

꼭 서리 여왕의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그에 준하는 아이템을 얻으면 되는 일이다.

여기서 일이 잘못되어 혹 죽기라도 하는 것 보다는.

계속 챠밍의 상태를 주시하는데 어느 순간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주변의 냉기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칫.

뭔가 잘못된 건가?

할 수 없이 르아 카르테와 마검을 들고 서리 경계 안쪽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몸 상태에 제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잠시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터.

그런데 그때.

경계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해냈어요.”

“응?”

그리고는 서리 경계가 양쪽으로 쫙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챠밍이 길게 어둠과 달빛을 꼬아놓은 형태의 투톤의 스태프를 양손에 꽉 쥐고 있었다.

스태프 끝에는 역시 달빛과 냉기과 마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초승달 문양의 거대한 심볼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은은함과 짙은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특이한 형태의 스태프.

거기서 줄기줄기 뿜어내는 마력의 양이 기존의 챠밍이 낼 수 있는 한도를 까마득히 넘어섰다.

이건 단순히 마력만 높은 게 아닌데?

거의 세 가지 종류의 다른 마력들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어쩌면 네 가지가 넘을 수도 있으려나?

“안에서 어떻게 한 거야?”

“아, 서리 여왕이 몇 가지 질문을 하길래 대답했는데 아마 통과가 되었나 봐요.”

“서리 여왕을 만났어?”

“으음. 정확하게는 잔영만요. 본체는 아닌가 봐요.”

어떤 시험이 있었고.

챠밍은 그걸 통과한 듯했다.

“다행이네. 여차하면 강제로 빼올려고 했거든.”

“으음. 안 그러길 잘한 것 같아요.”

“그래. 그랬으면 못 얻었겠지.”

그리고는 챠밍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새 스태프는?”

“아…… 그게 음. 좋은데. 아무래도 추가 개방을 좀 해야 되나 봐요.”

“성장형?”

“그건 아니고. 스태프의 본래 능력을 꺼내 쓸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해요.”

“아직은 강하진 않다는 거네.”

“네. 그래도 지금 쓰기엔 충분히 강할 거예요.”

“전에 대흑마녀 스태프와 비교하면 어때?”

“으음. 비교 불가? 아마 전부 개방을 못 해봐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리 여왕의 스태프가 압도적으로 좋을 것 같아요.”

역시 전 마계 서열 2위 마왕의 스태프라는 건가.

어지간한 네임드 템은 명함도 못 내는 듯했다.

“아, 그런데 그거 속성이 대체 몇 가지야?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세 가지가 넘는데.”

서리 여왕이라고 해서 냉기 관련 속성이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완전 달랐다.

일단 마왕이니 어둠 속성이야 당연히 있겠고.

그런데 의외로 빛 계열도 보이는 것 같고.

거기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바람 속성과 물 속성까지도 얼핏 보였었다.

한 가지 스태프에 이 정도까지 옵션이 붙을 수가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아, 아까 네 주위로 맴돌더라고. 몇 개는 잘못 봤나 싶은데.”

“아뇨. 잘 본 거예요. 이 스태프. 그동안 봤던 스태프들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그래?”

“네, 저도 깜짝 놀랐는데…… 아마 전 속성이라고 하면 될까요?”

“뭐?”

방금 뭘 들은 거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설마 모든 속성?”

“으음. 일단은 그런 것 같아요. 암흑 속성과 냉기가 주를 이루기는 하는데. 일단 스태프를 쓰는 방식이 기존과 좀 많이 달라요.”

“이거 참…….”

솔직히 지금 챠밍이 말하는 걸 들으면 마신 등급 스태프라고 해도 믿겠다.

“좋네. 그럼 추가 개방하는데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줘. 도와줄 테니까.”

“알았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서리 여왕의 스태프가 마음에 드는지 두 팔로 꽉 껴안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소득이 크네.

이러면 적어도 나와 재중이 형, 챠밍, 나르샤 누나는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아이템을 건져낸 셈이었다.

중간에 금속의 정령이 나와서 챠밍 주위를 막 맴돌았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마치 먹음직한 음식을 찾은 것처럼.

“아, 나중에 얘 맛 좀 보게 해줘.”

“네?”

“이 녀석. 꽤 미식가거든.”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의 날개가 더욱 빠르게 파닥거렸다.

이 녀석, 흥분했구만.

금속의 정령이 보기에도 이 서리 여왕의 스태프는 1등급 한우인 모양이었다.

어지간한 아이템에는 반응도 없는 애가 이런다는 건.

아마 그만큼 이 스태프의 성능이 좋다는 거겠지.

잠시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던 챠밍이 내게 물었다.

“그러면 오빠는 아이템 더 찾을 수 있어요? 전사 오빠랑 소녀하고 막내별 언니도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마도. 그런데 시간이 좀 부족하겠네. 이동할 거리가 꽤 넓어서.”

“아! 그럼 저랑 같이 가요. 계속 이속 버프 걸어줄게요.”

“그럴래?”

확실히 이번에 혼자 달리는 것보다 챠밍이 옆에 같이 있는 게 훨씬 빠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같이 움직일 것을.

내 말에 챠밍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굉장히 기쁘다는 듯.

“이번엔 도움이 돼서 좋아요. 그동안 받기만 하고.”

“네가 같이 가주는 것만 해도 충분해.”

그러자 챠밍의 볼이 살짝 빨개지더니 한 손에 스태프를 옮겨 잡고는 반대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이건 아마 잡아달라는 말이겠지……?

“달릴 거죠?”

고개를 끄덕인 뒤 챠밍의 손을 꼭 잡아주자 챠밍이 미소 지었다.

한마디 말을 덧붙여서.

“아, 그래도 급하다고 막 던지는 건 안 돼요. 아까 아팠단 말이에요.”

“하하…… 알겠어. 그럼 가보실까요?”

비밀 장소를 나오자 이번에는 완전히 입구가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랜덤하고 장소가 뜨는 듯 했다.

아마 운이 꽤 좋지 않았다면.

찾지 못 했을 수도 있겠어.

곧 신호를 주자 챠밍이 내게 이속 버프를 걸어주었다.

【 더블 헤이스트! 】

【 윈드 워크! 】

역시 이중, 삼중으로 가속이 걸리면서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가자.”

그리고 그런 챠밍과의 콤비는 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동 속도가 빨리진 만큼.

무려 스무 곳이나 비밀 창고를 추가로 찾아 열어댔으니까.

아마 운영자가 보고 있었다면 정말 기절했을지도.

몇 개의 아이템은 악세서리나 방어구여서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지만.

다른 몇 개는 정말 필요한 아이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로.

개중에는 전사 형과 이쁜소녀, 막내별이 환호할 만한 아이템들도 존재했다.

“휴, 이제 시간이 다 됐네요.”

마왕 바이카르가 준 시간을 정말 알차게 쓴 결과물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아마 녀석도 이 정도까지 털어먹을 거라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입구를 빠져나가자 보좌관인 데보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얘도 기절하겠네.

우리가 여기서 가지고 나가는 아이템을 알게 된다면 말이지.

그런 데보라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안내해 주실까요? 고대 마수의 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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