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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08화 (996/1,404)

#1008화 고대 마수의 탑 (2)

카르페디움 마왕성.

가르시아 제국과 맞먹는 규모의 크기를 보며 감상에 빠져 있을 때 뒤쪽에서 뭔가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흠칫.

재중이 형이 먼저 프로미넌스를 꺼내 뒤쪽으로 경계를 했고 전사 형은 바로 뒤로 뛰어들 준비를 하기 위해 허리를 낮췄다.

나 역시 무기를 소환하려는 그때.

어둠 속에서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호 님.”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다니.

인기척을 일부러 낸 게 아니라면 정말 목 끝에 칼이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침을 삼켰다.

재중이 형의 얼굴 한편으로 쓰게 웃는 모습을 보니 형 역시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적의가 있었다면.

막기 힘들 정도의 침투 능력.

이런 녀석이 고작 안내역이라 이거지?

그런데 그때 녀석을 감싸고 있던 짙은 어둠 같은 기운이 스르륵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흘러내리는 어둠 사이로 몸에 타이트하게 붙은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고혹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움이 보이는 여성.

붉디붉은 입술 사이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의 그 찢어질 것 같은 음성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잔잔하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랄까.

“인사가 늦었군요. 바이카르 마왕님의 보좌관, 데보라라고 해요.”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모습.

바깥의 검은 기운은 아마도 위장이려나?

아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모습이 마왕 바이카르의 수하에 어울리는 모습일 수도.

내가 계속 쳐다보자 데보라가 살짝 고개를 옆으로 흘리면서 말했다.

“이상한가요?”

“아뇨. 지금 모습이 낫네요.”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에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보다야 지금이 백배 낫긴 했다.

“그럼, 마왕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뒤돌아선 데보라가 다시 어둠 사이로 걸음을 옮기자 재중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따라가야겠죠.”

어깨를 으쓱한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그래, 가자.”

그러면서 재중이 형의 시선은 여전히 데보라의 이름 쪽에 가 있었다.

<불멸> 어쩌면 저 녀석이 마왕 스티어보다 더 강할 수도 있겠어.

<주호> 그래요?

<불멸> 방금 녀석이 움직였다면 아마…… 다 죽었을 거다.

재중이 형의 표정이 계속 굳어 있던 게.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만큼 방금의 녀석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었다는 것.

오히려 본 모습을 드러낸 지금이 더.

<주호> 정말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네요.

그렇게 보좌관이라는 데보라의 뒤를 따라 마왕성의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전사 형과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도 따라 걸어왔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마왕성의 복도는 그 자체로 위협적인 기운이 계속 뿜어져 나왔다.

슬쩍 고개를 올려 복도 한편을 보자 그 사이로 뭔가의 기관 같은 것이 잔뜩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심지어 처음 보는 마법진들도 곳곳에 그려져 있는 게.

이 복도는 침입자들을 막는 용도로 쓰여 지는 모양이었다.

멀리서 데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밟은 위치만 따라오세요. 아니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건 경고도 뭐도 아니다.

따르지 않으면 정말 목이 날아가겠지.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함정들에 의해서.

이곳의 레벨 대를 생각해보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닐 테니.

아마 데보라라는 안내인이 없다면.

눈앞의 복도는 절대 지나갈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한동안 데보라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어느 순간 거대한 석상들이 보였고 멀리 하나의 문이 보였다.

석상들도 하나같이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데.

데보라가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일단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듯 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죽이려고 하진 않을 테니.

끼이이익!

커다란 문에 데보라가 손을 대자 기다렸다는 듯 자동으로 문이 갈라지면서 양옆으로 밀려나갔다.

이것도 역시 인증 같은 게 있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열려고 하면 무력으로 부수든가 해야겠지.

“따라오세요.”

데보라가 먼저 들어가고 뒤를 따라 들어가자 안쪽은 거대한 대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 멀리 끝에는 역시 마왕인 바이카르가 앉아 있었고.

전사 형이 그걸 보고는 한마디 했다.

“어째 여기 보스들은 다 등장이 똑같냐.”

“그렇죠 뭐.”

사실 첫 등장은 완전히 다르긴 했지만.

굳이 그 말은 하지 않고 마왕 바이카르를 바라보자 녀석 역시도 시선을 내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녀석의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나왔다.

“늦었군.”

“준비할 시간은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가. 그럼 바로 시작하지.”

여타 다른 말도 없이 녀석은 바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그그긍!!

그러자 갑자기 대전의 중앙의 바닥이 갈라지면서 중간에서 하나의 계단이 생성되었다.

정확히는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

“탑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름이 모든 걸 표현하지는 않지.”

녀석의 말에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명칭만 탑이었지.

다른 형태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설마 이곳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어?”

이건 낭패인데?

만약 이런 식의 입장만 가능하다면.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보급 역시도 마찬가지고.

재중이 형 역시 살짝 찌푸리는 걸 보면 같은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다른 건 다 떠나서.

물약의 보급.

이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금 가진 물약만 가지고 사냥을 했다가는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할지도 모르니까.

장비야 어떻게든 한다지만.

물약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특히 층으로 되어 있는 던전이라면 소모가 더 빠를 수도 있다.

내 말에 옆에 있는 데보라가 설명해 주었다.

“입장권이 있으면 다시 나오실 수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하지만 이어진 말은 우리를 황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만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금 장난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데보라가 추가로 설명을 해주었다.

“안에 어둠의 상인이 있습니다.”

“흠, 그래요?”

이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예 물자 보급이 안 되는 상황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과는 천지 차이니까.

적어도 손가락 빨면서 버틸 필요는 없었다.

다만 어둠의 상인이 뭘 얼마나 해먹을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몇 층까지 있는 거죠?”

내 말에 데보라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네?”

“모릅니다.”

그런 데보라의 말에 우리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마왕성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네 전용 던전이 어떻게 생겨 먹은지도 모른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데보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을 해주었다.

“내부의 형태가 항상 바뀝니다. 층수 역시도.”

전사 형이 그 말을 듣고는 한숨을 쉬었다.

“와, 대책 없네. 그럼 지도도 없다는 말이잖아.”

지금 말은 저렇게 해도.

전사 형의 부담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소한 지도가 형성되어 있어야 길을 안내하면서 적들을 상대할 텐데.

매번 바뀌는 지도에 따라 탱을 하라는 건.

위험도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일이니까.

몰이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마 들어가면 시스템으로 미니맵이 뜨지 않을 확률이 100%다.

지도를 보면서 돌아다니며 몹을 모으는 것 대신.

순수하게 본인의 감각과 기억만으로 움직이는 것.

쉽지 않다.

전사 형을 보면서 물었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전사 형이 허탈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안 돼도 해야 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럼 해야지.”

뭐 이건 전사 형에게 맡길 수밖에 없나.

여차하면 나나 재중이 형이 감각을 써서 경계를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려 다시 데보라에게 물었다.

“그럼 여기 마왕성 시설은 이용할 수 없나?”

이건 정확히 마왕 바이카르에게 물은 것과 다름없었다.

너네 제안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맨손으로 들어가라고?

솔직히 여기 마왕성의 아이템들을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넘어왔으니까.

마왕 바이카르를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손을 들어올렸다.

“데보라. 내어줘라.”

그러자 데보라가 흠칫하면서 마왕 바이카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왕님. 이미 전용 사냥터만 해도 충분히…….”

데보라가 대꾸하는 순간.

마왕 바이카르에게서 살인적인 기세가 뻗어 나왔다.

“내가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냐, 데보라?”

파지직!!

순간 데보라의 검은 기운이 한 번에 스파크를 튀면서 터져나가며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그녀의 주변으로 강렬한 전력이 터지며 그녀의 무릎을 강제로 꿇려버렸다.

<주호> 형, 이 여자 강하다고 안 했어요?

<불멸> 그만큼 저 마왕 놈이 강하다는 거지.

이건 격의 차이가 너무 나서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네.

대체 저 정도로 강한 녀석이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는 이유는 뭐지?

주니까 일단 받아먹기는 한다지만.

역시 의심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곧 스파크가 사라지자 데보라가 입가의 피를 훔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따라오시죠.”

그리고 저 데보라의 만류에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릴 정도로.

지금 주려는 물품들이 좋은 것이라는 걸.

그렇게 데보라가 먼저 대전 왼쪽의 문을 따라 걸어나가자 우리도 역시 그녀를 따라갔다.

뒤로 흘깃 마왕 바이카르를 보자 그 녀석은 이미 홀연히 모습을 감춘 뒤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대전의 상단에 있었는데.

눈치도 못 챘네.

어쩌면 본체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데보라를 따라 들어간 곳은 다른 복도를 떠나 한참을 걸어간 뒤였다.

“이곳은 카르페디움 마왕성의 전용 창고입니다.”

<불멸> 오, 돈 냄새가 잔뜩 나는데?

<주호> 하하…… 그러게요.

입장하는 문부터가 이미 황금으로 떡칠이 되어 있었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이나 시아트 마왕성과는 공통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진짜 보물방이다.

데보라가 뭔가 잔뜩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

“한 분당 딱 하나의 아이템만 가지고 나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데보라가 우리에게 뭔가를 나눠주었다.

『 카르페디움 마왕성 미지의 창고 입장권

- 1회용

- 입장권 하나당 1개의 아이템 습득 가능.

- 둘 이상의 아이템을 소지했을 경우 자동 소멸. 』

일종의 보상 같은 건가 본데…….

아무래도 우린 그냥 얻어낸 것 같았다.

딱 하나뿐이라는 건 좀 아쉬운 점이지만.

안 주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데보라를 보면서 물었다.

“정말 어떤 물건이라도 상관없나요?”

“네, 하지만 딱 하나만 가능합니다. 그 이상의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오려고 하면 무조건 소멸합니다.”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후.

그럼 들어가 볼까?

“입장권 사용.”

입장권을 찢자 곧 내 시야가 변경되며 어느 한 장소로 옮겨와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소환된 우리 팀에게서 바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아!! 대박!”

나 역시 시선을 돌려 주변의 몇몇 아이템을 살펴보고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하.

마왕 바이카르.

이 녀석 진짜 통 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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