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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06화 (994/1,404)
  • #1006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14)

    머쓱한 표정으로 화련을 보고 마주 웃었다.

    “악마는 아니지만. 일단은 마왕 후보입니다.”

    “이거나 그거나.”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옆에서 신시아가 손을 들고 옳소 하면서 외치는 건 그냥 무시하는 게 낫겠지.

    재중이 형은 이미 배를 잡고 웃는 중이라.

    다시 시선을 돌려 신시아를 보고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 게 있어요.”

    부탁이라는 말에 신시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놀란 듯 어깨가 움찔했다.

    음.

    안 잡아먹는다니까.

    저렇게 쪼는 걸 보면 조금 미안해지려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뭔데요?”

    입술도 떨리는 걸 보면 정말 들어주고 싶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딱히 나쁘지도 않을 거고요.”

    “네?”

    “마왕성에서 이벤트를 하면 중립 연합에서 지원해 주었으면 해요.”

    이건 중립 연합에서 유사시에 병력을 지원해달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내 말에 신시아가 큰 짐을 내려놨다는 듯 안심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오히려 그건 걱정 안 해도 다들 알아서 갈 거예요.”

    “그런가요?”

    “네, 좋은 사냥터는 가지 말라고 해도 찾아가는 사람들인데요. 통제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아.

    생각해 보면 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사냥터를 통제해서 사냥을 못 하게 하는 게 더 안 좋은 일일 수도.

    기획한 마왕성 전용 사냥터가 잘 활성만 되면.

    이곳보다 좋은 사냥터는 당분간 찾기가 힘들어질 거다.

    이벤트성이긴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값어치가 있겠지.

    그간 보지 못했던 아이템과 장비가 떨어질 테니.

    버텨 낼 수만 있다면.

    저들에게는 최고의 사냥터가 된다.

    신시아가 순순히 손을 들고는 말했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해야 할 입장이라고요. 아까는 자리에 있어서 말은 안 했지만. 전신과 패황이 알짜배기 고렙 사냥터를 통제하는 바람에 제대로 사냥이 되지 않으니까요.”

    아까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전신과 패황 쪽 연합에 쌓여 있는 게 상당했던 모양이다.

    중립 연합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

    전신과 패황이 대놓고 사냥터를 통제하면.

    저들이 뚫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에 내가 빼먹은 네임드들만 봐도 사냥은 전부 저들끼리만 진행했었다.

    그런 와중에 마왕성의 사냥터라…….

    “그럼 제가 돈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내 말에 신시아가 얼굴에 웃음기를 싹 빼고 말을 받았다.

    “그냥 확 째고 접을까요?”

    “아뇨.”

    그건 안 되지.

    신시아가 접으면 당장 강화석을 받아낼 곳이 사라지게 된다.

    “알면 잘하라고요. 그리고 이왕 주시는 거, 마왕성 사냥터의 병력 배치 우선권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상하게 돈 안 되는 곳만 메우라고 하면 안 되니까요.”

    신시아의 말에 역시나 옆에서 재중이 형이 웃음을 지었다.

    “대놓고 뜯기지는 않겠다는 건가?”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죠. 아닌가요?”

    신시아가 결투장의 투기를 알면서도 당해준 이유가 있었네.

    무작정 신시아가 손해 보는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신시아도 자기 밥그릇은 챙기고 있었다.

    아니.

    길게 보면 저게 더 이득일 수도 있었다.

    결투장에서 나오는 수입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까.

    반대로 마왕성의 사냥터에서 괜찮은 곳을 배정받을 수 있으면.

    결코 나쁘지 않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손을 들었다.

    “공짜밥은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네요.”

    “그럼 딜이죠?”

    슬쩍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해도 된다는 거지.

    사냥터에서 손해 보지 않고 좋은 자리를 내어주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환영이지.

    막상 마왕성에 적들이 쳐들어오면.

    주변 곳곳이 알짜 사냥터가 될 테니까.

    그걸 알아서 달려들어 막아 준다는데.

    이 이상 좋은 딜도 없었다.

    “좋아요. 딜. 잘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더 부탁드려요.”

    신시아는 강화석을 내어주고 연합 전체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러운 협상 능력으로 치면.

    결코 나쁘지 않은 능력이다.

    괜히 중립 연합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네.

    만족스러운지 신시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는 받아내야 저도 강화석 빼먹은 걸로 할 말이 생기거든요.”

    “전에 그 사람들 말이죠?”

    “네, 겉으로만 위원인 그 사람들요.”

    “참 여러 가지로 피곤하시겠네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중립 연합이 약간 그런 느낌이 난다.

    내 말에 다시 신시아가 웃음 짓더니 한마디 했다.

    “오신 김에 그 사람들 좀 싹 쓸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 농담인가요? 진담인가요?”

    “으음, 어떨까나아……?”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서 거절을 표했다.

    “요즘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해서요. 여기까지 신경써 줄 여력은 없네요.”

    딱히 이건 거짓말이 아니기도 했고.

    조만간 마왕 바이카르의 마왕성을 찾아가야 하는 판에.

    여기서 또 판을 벌리는 건 사양이었다.

    중요도로 치면 전자가 압도적으로 위다.

    그러자 신시아가 정말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쉽다. 좋다 말았네요.”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불멸> 호오, 얘 생각보다 치밀한데? 들어보니 우릴 이용해서 중립 연합의 구도를 바꾸려고 했네.

    <주호> 본인 손으로는 하지 못하니까?

    <불멸> 그렇지. 마침 잘 됐다 싶었을 거다. 전신이나 패황이 아닌 제3세력의 등장은.

    <주호> 날로 먹으려다가 귀찮아질 뻔했네요.

    중립 연합의 내정을 어느 정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가 하자고 한다면 흔쾌히 허락했을지도 모른다.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치워 버리는 데는 우리만 한 적임자가 없을 테니.

    그간 얌전히 당해 주던 신시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정말 하나같이 만만한 사람이 없네.

    “나중에 사냥터 홍보나 잘 해주세요.”

    “아무렴요.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번엔 우리와 한 가닥 선을 만들었다는데 만족한다는 건가.

    그때 화련이 앞을 막으면서 말했다.

    “적당히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았으면 끝내. 시간이 널널한 건 아니니까.”

    “그렇죠.”

    어차피 중립 연합에서 얻을 만한 건 다 얻었다.

    그러자 신시아가 내게 다가왔다.

    “그럼 따라오세요. 원하시는 물건 내어드릴게요.”

    * * * * *

    그렇게 신시아를 따라가서 상당수의 강화석을 받아낸 뒤 한껏 가득한 인벤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덕분에 시간을 꽤 아꼈네.

    곧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다들 어디세요?

    <방패전사> 투기장 외곽에서 기다리는 중. 볼일은 다 끝났어?

    <주호> 네, 만족스러운 거래였어요.

    사실 거래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뜯어냄이었지만.

    연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 형을 비롯해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까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뭘 발견한 챠밍이 흘깃 내 뒤쪽을 보고는 말했다.

    <챠밍> 화련도 가요?

    <주호> 아, 뭐 이번엔 마왕성행 티켓도 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따로 갈 거야.

    그 말에 챠밍이 묘한 표정으로 나와 화련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보란 듯이 내 옆으로 딱 붙어서 섰다.

    순간 화련이 눈썹을 확 찡그렸고.

    둘 다 딱히 뭐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이 자리가 되게 불편한 건 왜일까.

    역시나 옆에서 재중이 형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아아, 청춘이네.”

    “누가 보면 띠동갑쯤 되는 줄 알겠네요.”

    피식 웃어보인 재중이 형이 이번엔 전사 형을 보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한 전사 형의 눈이 더 어떻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 그건?!”

    “딱 봐도 알겠지?”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

    아마 현 시점에서 서버 내 최강의 플레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방어력은 물론 성능 면에서 모두.

    “이게 방어보다는 공격형 방어구에 가까운데 뭐 이거라도 있는 게 낫겠지.”

    그 말을 한 재중이 형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휙 던져서 전사 형에게 주자 화들짝 놀란 전사 형이 다이빙하듯이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받아냈다.

    “헉!!!”

    그리곤 전사 형이 플레이트의 옵션을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크큭, 쟤 봐라. 완전 굳었어.”

    다가간 이쁜소녀가 손가락으로 꾹꾹 전사 형을 눌렀지만 이미 혼이 나갔는지 꼼짝도 안 했다.

    “힝, 오빠 죽었어요.”

    곧 정신을 차린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보고는 외쳤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나 아직 준다고 안 했는데?”

    “헉!!”

    다시 심장마비.

    “크큭, 전사는 노예 확정.”

    “노예도 감사합니다!”

    전사 형은 뭐라고 하든 일단 좋은가 보다.

    다들 전사 형 옆으로 가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구경했는데.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차마 평을 내리지 못할 만큼이나.

    부럽다는 표정도 보였고.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너무 부러워할 것 없어. 전사는 이제 마왕성 사냥터 가면 미친 듯이 굴러야 하거든.”

    “아!”

    “맞다.”

    “그렇네요.”

    챠밍, 이쁜소녀, 막내별 모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먹이 먼저 주고 구르라는 거려나.

    모두가 왠지 안쓰럽다는 듯 전사 형을 보는 시선과 다르게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전사 형은 좋아죽는 중이다.

    나르샤 누나가 내게 물었다.

    “어라? 다른 건 없어?”

    그러자 다들 의아한 듯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마왕 올펠을 잡아서 경매를 했는데 다른 아이템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아, 없어요. 이거랑 저거 구하는데 저랑 재중이 형의 포인트를 다 썼거든요.”

    그러면서 아무 설명이 없는 마왕의 핵을 보여주자 다들 고개를 갸웃했지만 챠밍이 먼저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가 결정했으면 다 이유가 있겠죠.”

    “응, 사실 이게 제일 좋은 거야.”

    다른 아이템을 다 내어주더라도.

    그 와중에 전사 형이 울먹이다시피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님, 정말 절 위해 포인트를 다 쓰셨단 겁니까?!”

    “그래, 그러니까 잘 해야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건 당장 죽으라고 하면 죽을 각오다.

    곧 전사 형에게 다가가 인벤에서 뭔가를 잔뜩 꺼내들었다.

    “어? 그건?”

    “아, 강화석요.”

    그런데 그 양이 꽤 많았다.

    우르르 나오는 강화석을 본 전사 형이 놀라면서 말했다.

    “무슨 강화석이 이렇게……?”

    『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확실히 이건 시장에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아마 신시아가 아니었다면.

    정말 오래 발품을 팔았어야 했을 지도.

    그리고 전사 형이 보며 웃으면서 강화석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구르려면 이것도 필요하잖아요.”

    감동한 듯 내 두 손을 꽉 잡은 전사 형이 역시 울부짖었다.

    “주호야! 사랑한다!”

    “그건 좀……!”

    그런 전사 형의 모습을 본 나르샤 누나가 손으로 이마를 짚은 건 역시 못 본 척해야겠지?

    휴.

    전사 형의 장비는 다 된 것 같긴 한데.

    일단 방어만 되면.

    그다음 문제는 어떻게든 풀어나가면 된다.

    내 손에 들린 강화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인벤에서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 라페르나를 꺼내들려고 할 때.

    갑자기 허공이 일렁이면서 옆에 포탈이 하나 생성되더니 그 안에서 뭔가의 신형이 빠져나왔다.

    존재만으로 검고 어두운.

    정면에서 보고 있는데도.

    흐릿하면서도 잔상이 남지 않는 무언가가 날 바라보더니 입가가 옆으로 길게 벌어지며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호 님, 모시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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