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13)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을 포섭하고 난 뒤는 그렇게 어렵지 않는 일이었다.
“이야기 끝났어요.”
회의실 문밖으로 신호를 하자 화련과 밖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툴툴 거리던 화련에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져서요.”
“그래서 잘 됐어?”
“음, 일단 목적한 바는 이룬 것 같네요.”
“해결했다는 거네.”
나와 화련의 대화에 전신과 패황, 혼령의 눈빛이 변했다.
그런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이쪽은 포섭이 잘 됐어요.”
내 장담에 발록 쪽을 바라본 패황이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마왕은 확실히 막을 수 있는 겁니까?”
“꽤 높은 확률로요.”
“실패할 수도 있다?”
패황의 다소 부정적인 물음에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시작부터 진다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되겠죠.”
내 뜻을 알아들은 패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에게 제안을 넣었다.
물론 패황에게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제 마왕성과 모두의 거점들을 연결하고 싶은데요.”
“흠. 포탈 말입니까?”
“그건 꽤 곤란하군요.”
대답과 함께 패황과 혼령은 고개를 돌려 전신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두 명의 세력과 전신의 연합은 전쟁 중인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왕성에 거점들의 포탈을 연결하게 되면 상황이 꽤 복잡해질 수도 있다.
콕 집어 말하자면.
우리 마왕성의 포탈을 매개로 서로의 거점으로 바로 넘어갈 수가 있게 된다.
다른 말로.
자기 본진에 적의 포탈을 만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건 전신도 좀 꺼려 하는 모양이었고.
본의 아니게 잠시 손을 잡고 마왕 레이드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들이 계속 아군이라는 뜻은 아니니까.
여차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칼부림을 할 수 있었다.
전신이 고개를 저었다.
“마왕성의 도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 싶진 않군요.”
정확히는 나보다는 재중이 형을 보면서 거절의 뜻을 말한 거다.
아마 중간에서 정리를 해 달라는 거겠지.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건 아니잖아?”
“네, 뭐 그렇죠.”
그리곤 전신, 패황, 혼령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은 개별 포탈을 만들어드릴 생각이에요. 서쪽 포탈, 동쪽 포탈을 각각 전용 포탈로 드릴게요.”
마왕성 기능은 꽤 여러 가지가 있었다.
포탈의 인원 제한도 가능하고.
그중 적대적인 세력이 포탈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설정하는 기능도 존재했다.
이건 거점마다 기본으로 있긴 한데.
마왕성은 그걸 포탈마다 따로 설정이 가능하다.
만약 이 기능이 없었다면 애초에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 같은 포탈을 타고 넘어가서 목을 겨누면 곤란한 건 매한가지니까.
그리고 꼭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도 있었다.
“그것도 불편하시면 여기 중립 연합의 거점을 통해서 오셔도 됩니다만……?”
중립 연합의 거점 포엔.
이곳은 포탈에 따로 인원을 배치해 서로의 포탈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아예 통제를 하고 있었다.
괜히 중립 연합이 아니지.
그래서 양쪽 연합에서 더 사람들이 많이 오가기도 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해도 상관없긴 한데.
굳이 따로 돈을 써가면서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어차피 이번에 거점 포엔과 포탈을 연결한 상태라.
이용하자면 이쪽이 더 편할 것이다.
신시아를 보자 그녀는 괜찮다는 듯 말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는 표정이었다.
“전 그쪽을 선호해요.”
“그런가요?”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양쪽 연합 사람들이 마왕성을 다이렉트로 가지 않고 거점 포엔을 거쳐서 가면 그녀가 얻는 이점이 많이 존재했다.
포탈 이용료부터 해서.
중간에서 중계 무역을 할 수도 있을 테지.
한 연합을 책임지는 연합장으로서는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러자 전신과 패황 양쪽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이쪽이 편합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결정은 된 것 같으니까.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좀 하죠.”
그리고는 마왕성과 관련된 계획들을 몇 가지 설명해 주었다.
그중 가장 앞선 것은 바로 마왕성 방어전.
이른바 마왕성 전용 사냥터 만들기였다.
“추후 서버에 방어전 퀘스트를 부여할 겁니다. 상품은…… 아마 나쁘지 않을 거예요.”
상품으로 나갈 물건들은.
앞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시아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기대되네요.”
중립 연합 입장에서는 꽤 혹할 만한 제안일 것이다.
고렙 사냥터를 전신과 패황 쪽 연합에서 양분해 먹던 지금 상황에 적절한 사냥터를 개방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럼 다들 다음에 뵙도록 하죠.”
그렇게 몇 가지 사항을 조율한 뒤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전신과 패황, 혼령은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은 화련과 신시아.
그중 신시아를 보면서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받을 게 좀 있네요.”
그 말이 나오자 신시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뭐 그렇다고 신시아가 파산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결투장 같은 건 주인이 손해 보지 않도록 대비를 해두니까.
그렇다고 해도 손해가 막심하긴 할 테다.
“뭘 원하세요?”
아까 분명히 말했다.
다 받을 생각은 없다고.
확실히 그걸 잘 기억하고 있었는지 내가 원하는 것부터 물어왔다.
아주 긴장한 얼굴로.
배당에 따라 돈을 지불하면.
정말 큰돈이긴 할 테니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뭐 별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한 가지 정도겠네요.”
내가 검지를 들어 올리자 신시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서 뭔가 떠올린 건지 금방 울 듯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결투장을 내어달라는 거라면…… 안 돼요.”
결투장?
아.
신시아는 내가 요구할 만한 것 중에 하나가 결투장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었다.
“음, 그건 확실히 돈이 되긴 하겠죠. 신시아 님이 내어놓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싸기도 할 테고요.”
뭐 탐이 아예 안 난다면 그것도 거짓말이지만.
신시아가 이걸 내어놓느니 그냥 배 째라고 할 확률이 더 높겠지.
우리와 등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럼 바로 난 빚 독촉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무력을 사용해서.
물론 그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결투장이 아니라서.
결투장을 언급하자 신시아가 더욱 긴장된 표정을 지었는데 내가 손을 젓자 경계하는 눈빛이 풀렸다.
“아닌가요?”
“네, 일단 결투장은 아니에요.”
마왕성에 가져다 놓으면 수익이야 좋겠지만.
딱히 마왕성은 그게 아니더라도.
뽑아낼 게 많다.
괜히 도박성 투기장으로 욕을 먹어가면서 평판을 깎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형식으로든 돈을 잃게 되면.
그 불평은 내게로 향할 테니까.
자신이 잘못 선택해서 잃은 돈이긴 해도.
그걸 탓하기에 주인장보다 적절한 사람은 없다.
중립 연합인 신시아 같은.
굳이 사서 욕먹을 필요는 없겠지.
이제 경계가 풀린 신시아에게 원하는 걸 말했다.
내가 직접 구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만.
신시아라면 다르다.
“강화석이 필요해요.”
“네?”
“강화석요. 그것도 종류별로 전부 필요합니다.”
내 말에 신시아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기에.
저 표정을 보니 아마 중립 연합을 내어달라는 말까지 상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종류별로라면……?”
“정제 무기 강화석, 정제 방어구 강화석, 일반 강화석, 한계 돌파 강화석,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전부요.”
“네?”
“중립 연합에서 가지고 있는 분량이 꽤 될 텐데요?”
아마도 적당한 수준은 아득히 넘어설 것이다.
중립 연합에서 비축하고 있는 강화석의 양이.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불멸> 큭, 중립 연합 창고를 털려고?
<주호> 네, 좋은 기회잖아요. 어차피 다른 연합에서 가진 분량들은 쉽게 내어놓지 않을 거니까요.
전신이나 패황, 혼령 같은 녀석들에게 연합이 소유하고 있는 강화석들을 달라고 하면 절대로 내어놓지 않을 터다.
그건 전력 누출이나 다름없으니까.
같은 맥락으로 중립 연합 역시도 쉽게 그런 전략 아이템을 내어놓진 않을 테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에…… 그러니까.”
조금은 당황한 듯한 신시아의 표정에 협박 반, 회유 반을 섞어서 말했다.
“안 주시면 그냥 돈으로 받을까요?”
“네에? 그건 안 돼요!”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엄청난 돈일 테니까.
이미 몇 십억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신시아 혼자 해결하는 건 절대 불가능할 터다.
그런 신시아에게 한 가지 선물을 건네주었다.
“이틀 안에 구해다 주시면 빚을 절반으로 탕감해 드리죠.”
순간 신시아의 태도가 돌변했다.
“어떤 강화석부터 가져다 드려요?! 아님 창고를 다 보여 드릴까요?!”
망설임이라고는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확고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솔직히 빚의 절반은 저 창고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신시아에게서는 저 빚을 다 받아내지도 못한다.
본인이 토해낼 수 있는 수준까지만 요구하자 신시아도 허락한 것이다.
“하하, 그럼 쇼핑 좀 해볼까요?”
내가 할 수 있는 많고 많은 제안 중에 굳이 강화석을 요구한 것은…….
앞으로 갈 마왕성 전용 사냥터를 위해서였다.
사냥터의 수준을 모르는 이상 지금의 스펙으로 원활하게 사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렇다면 최고의 준비를 해 가는 게 맞긴 한데.
문제는 아이템까지야 어떻게 구한다고 치더라도.
강화석은 그게 아니다.
물론 유저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을 전부 뒤진다거나 경매장을 뒤지면 꽤 찾을 수 있기야 할 테지만.
일일이 찾아다닐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물량이 내가 원하는 만큼 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팔려고 내놓은 강화석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진 않을 테니.
특히 몇몇 특수 강화석들은 시장에 아예 나와 있지 않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각 연합에서 꽁꽁 싸매고 내놓지 않는.
이를테면.
10강 정제 강화석이라든가.
+1 확정 강화석 같은.
정말 재수가 좋다면 한계 돌파 강화석도 구할 수 있긴 하겠지만.
이건 물량 자체가 없을 테니 혹시나 해서 말해본 것뿐이고.
사실 이 한계 돌파 강화석은 이미 몇 개 가지고 있긴 했다.
특수한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받은 게 있으니까.
“아, 그리고 마족의 심장도 있으면 좋겠네요. 아다만티움은 없겠죠?”
마족의 심장은 15강 이상의 아이템을 강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마족으로 변할 수 있는 마족의 심장을 그런 식으로 소모하는 건 아깝긴 하겠지만.
어차피 공짜니까.
아다만티움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정도이려나.
내가 계속 목록을 읊자 신시아가 혼이 나가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몇 개 있기는 한데…….”
“좋네요.”
“드린다고는 안 했…….”
“그럼 그냥 전부 돈으로…….”
“아뇨! 다시 생각해 보니 드려도 될 것 같아요…….”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준다니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화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네, 강도.”
“음, 정당하게 받아가는 건데요? 그것도 50% 세일해 준 거예요.”
“그럼 정정.”
그러면서 화련이 말을 이었다.
그것도 환하게 웃으면서.
“악마가 여기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