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11)
내가 한 마왕 대리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화련이 내 쪽을 보면서 물었다.
“마왕 대리라니.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음, 제가 말 안 했나요?”
“그래.”
그러고 보니 화련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준 적은 없었던 것 같네.
발록의 정체도 모르기도 하고.
다짜고짜 마왕 대리라는 말을 하면 놀라는 건 당연할 것이다.
<주호> 우리가 빠지면 누군가는 마왕을 상대해야 하잖아요.
<화련> 그게 쟤들이라고?
<주호> 그런 셈이죠.
<화련> 가능해?
<주호> 방금 두 눈으로 봤잖아요.
솔직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투기장이라는 존재가.
그리고 마침 랭커들도 다수 참가했었고.
이들에게 발록의 힘을 보여주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패황까지 손수 나서서 증명해주었다.
발록의 강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저 장비가 좋은 패황을 한 번에 구겨 넣을 수 있는 존재가 이곳에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테니까.
이건 같은 랭커들끼리도 힘든 일이다.
압도적인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좋았다.
쓰러졌다 일어난 패황을 보면서 물었다.
“직접 상대해 본 소감은 어때요?”
“평가를 해달라는 겁니까?”
“네, 본인이 제일 잘 알 것 같아서요.”
그러자 패황이 잠시 발록을 쳐다봤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아마 전에 붙어본 마왕 올펠과 비교를 하려는 거겠지.
패황이라면 대략적인 힘의 우위 정도는 이미 판단이 섰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마왕 올펠보다는 약하군요.”
역시.
굳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패황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답해주었다.
다름 아닌 마왕 올펠과 비교를 해달라는 거였으니까.
마왕 올펠보다 약하다는 평가에 발록의 이마에 잠시 힘줄이 생겼지만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발록도 잘 안다.
아직은 마왕 올펠 급은 아니라는 것을.
직접 붙어보지 않아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지금 전력으로는 최하위 마왕 정도는 어떻게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랭커들과 비교하면요?”
그 말에 패황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랭커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존재입니다. 당장 그 어떤 유저를 데려다 놓아도 1:1은 상대가 안 될 겁니다.”
그 말은 하더니 패황이 내게 다시 물었다.
“혹시 고위 NPC입니까?”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이 NPC라는 말은 자동으로 필터링 되어 발록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저가 아닌 건 당장 패황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이 정도로 강한 유저가 있었다면.
벌써 포섭하려고 했었겠지.
단번에 서버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의 수준이니까.
당장 저 앞에 전신만 해도 발록과 단독으로 붙여놓으면 무리다.
“뭐 일단은 그런 셈이죠.”
“흠. 그렇다면야…….”
패황이 어느 정도 납득하겠다는 표정과 함께 내게 물었다.
“어떤 경로로 얻은 건지는 비밀입니까?”
이것 봐라?
발록이 욕심이 나긴 하나 보네.
그러면서도 어차피 안 알려줄 거라는 건 이미 패황도 알고 있었다.
“네, 영업비밀이죠.”
순간 패황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다고 하더라도 얻을 방법이 없는 건 맞긴 한데.
문제는 다른 쪽이겠지.
이 정도로 강한 NPC를 내가 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 그렇다고 무한정 부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제야 패황의 굳은 표정이 풀어졌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 안심하는 표정이랄까.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내 쪽의 전력이 너무 높을 경우였다.
마왕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강함을 가진 녀석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니까.
특히 서버의 패권을 쥐고 있는 전신이나 패황 같은 경우에는 그런 점을 더욱 민감하게 여길 것이다.
어쩌면 마왕성의 지분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협력하지 않을 테지.
“지금은 우호도가 높아서 한두 번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딱 못을 박았다.
여러 번이라고 하면.
그것 자체도 위험하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저쪽은?”
패황이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대신해 물어보았다.
한쪽에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아, 저들도 같습니다.”
“정말 셋이나 됩니까?”
그 말에는 꽤 놀란 듯했다.
확인차 물어봤을 텐데.
“네, 방금 붙어본 녀석과 거의 동급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내 말이 끝나자 전신, 패황, 혼령의 표정이 모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화련은 팔짱을 낀 채 내 쪽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뭔가 불만이려나?
곧 내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화련> 아니, 애초에 저렇게 강한 녀석들이 있으면 그냥 셋이서 마왕 스티어를 잡았으면 되잖아.
<주호> 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요. 이전의 녀석이라면 가능했을지 몰라도 아마 지금은 안 될 거예요.
<화련> 그럼 그때 잡았으…… 이건 아니네.
화련도 방금 생각났는지 말을 바꾸었다.
처음부터 마왕 스티어가 우릴 뒤통수치려던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낸 거지.
그전에 녀석과 사이가 안 좋았다면 저 셋을 데리고 마왕 스티어의 목을 땄을 수도 있었다.
솔직히 누가 알았겠나.
중간에 녀석이 미쳐 날뛸지.
듣고 있던 신시아는 미리 알아보지 못해 아쉽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자기 영역에 이런 녀석들이 있었는데 전혀 몰랐으니까.
아쉬울 수밖에.
당연히 먼저 낚아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일단 우호도가 높아야 가능해요.”
“네에…… 그렇겠네요.”
다른 말로 잘해주라는 거지.
편의도 좀 봐주고.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발록이 내게 물었다.
“마왕 대리라는 건…… 네 마왕성에 주둔하라는 건가?”
역시 어딘가에서 정보를 다 듣고 온 모양이었다.
내가 마왕성을 가진 것까지 아는 걸 보면.
“어, 그렇지.”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뱀파이어 로드와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았다.
“둘도 가능하다면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
내 말에 뱀파이어 로드가 먼저 말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로.
“우리가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나?”
역시 이런 건 우호도만으로는 안 되는 거려나.
이들은 무작정 나를 돕고만 있던 게 아니었다.
당장은 나를 돕는 게 자신들의 이득이 되니까.
더 성장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런데 만약 마왕성에 묶이게 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의무라…… 아니, 그건 아닌데. 다들 잠시 따로 이야기 좀 가능할까요?”
그러면서 전신과 패황, 혼령, 신시아를 바라보자 다들 알았다는 듯 곧 대기실을 나가주었다.
지금 하는 말은 아무래도 저들이 들으면 안 되는 말이기도 하니까.
화련도 한마디를 남겨놓고 나갔다.
“일 틀어지지 않게 잘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나가자 바로 뱀파이어 로드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 마왕성에 불청객들이 상당히 많이 들이닥칠 거야. 당장은 아니지만. 곧.”
불청객이라는 말에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 얼음 여왕이 동시에 날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마왕성을 침략하는 다른 마왕들을 너희들이 막아줬으면 해.”
곧 뱀파이어 로드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마왕은 좀 버거운데.”
이 녀석.
아주 안 해줄 생각은 아니었나 보네.
마왕이 버겁다고 빼는 걸 보면.
만약 마왕만 아니었다면 그냥 해줄 생각이었나 보다.
“아, 꼭 마왕이 아니고. 그 밑에 잔챙이들 있잖아. 떼거지로 몰려들면 힘들다니까.”
두 손을 들면서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엄살을 부려도 마왕을 못 잡는다는 말은 안 하네.
그만큼 지금 성장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거기다 여긴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이 한 편이니까.
어지간한 마왕은 와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필요한 거고.
문제는 그들 휘하의 다수의 몬스터 부대일 텐데.
이들이 걱정하는 건 바로 그 어마어마한 쪽수다.
마왕군의 진짜 힘은 거기서 나오는 거라서.
솔직히 마왕 스티어도 휘하의 사신 부대들을 꺾어야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런 점들을 무시하면서 무작정 지키라고 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순 없지.
“무작정 지키라는 건 아니야. 버거우면 마왕성은 그냥 포기해도 된다.”
“뭐야? 그럼 꼭 지켜야 하는 게 아니잖아.”
여기까지는 미끼.
이제 본품을 걸어야지.
“그렇지만 만약 마왕성에 처들어오는 마왕을 단독으로 죽일 수 있다면 어떨까?”
“응?”
“잔챙이들을 누군가가 싹 정리해준다면?”
“호오?”
이제야 셋의 표정이 변했다.
먹음직한 먹잇감을 볼 때의 딱 그런 맹수의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누구나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는 건 똑같다.
그게 NPC라고 한들 마찬가지지.
어쩌면 그런 점에 더 민감할 수도 있고.
이들에게 강해진다는 건.
그야말로 삶이나 마찬가지다.
“성대한 파티를 할 거야. 마왕들이 처들어올 때마다.”
“파티를 한다고?”
“어, 파티.”
파티라는 말에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파티라고 하니 이해를 못할 수밖에.
하지만 이게 유저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 파티라는 게 얼마나 유저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지를.
그런 그들을 향해 검지를 들어 올리면서 웃어 보였다.
“마왕성의 기능 중에 아주, 아주 좋은 게 있거든.”
바로 이벤트를 부여하는 기능.
마왕성 자체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개인이 단독으로 내걸 수 있는 이벤트 시스템이 존재했다.
일종의 의뢰성 퀘스트랄까.
이건 다른 유적지나 거점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앙 거리에 가보면 유저들끼리 올려놓은 이벤트라던가 의뢰 같은 것들이 잔득 걸러져 있었다.
하지만 아예 시스템적으로 이걸 지원하는 건 또 아니라는 거지.
보통은 NPC가 되어야 가능한데.
마왕성은 이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마왕이라면.
아마 유저들에게 마왕이 내거는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써지는 거겠지.
그리고 지금.
난 그걸 쓸 수 있었다.
서버의 전 유저들을 대상으로.
원한다면.
그들에게 상당히 유혹이 되는 그런 퀘스트도 부여할 수 있었고.
그게 바로 파티가 되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그런 셋을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쪼잔하게 여긴 마왕성 전용 사냥터가 없더란 말이지.”
그리고 환하게 미소 지으면 말을 이었다.
“마왕성 전용 사냥터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내가 만들면 돼!”
그게 비록 유저들과 마왕들을 갈아 넣는 시스템일지라도.
다른 녀석들이 안 주면 내가 만들어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난 이 마왕성 전용 사냥터를 이 지역의 명물로 만들 것이다.
전 서버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 레벨 대의 극한 사냥터를.
그러면서 셋에게 다시 말했다.
“달려드는 마왕. 죽일 수 있다면 기회 봐서 확 죽여 버려.”
내 말에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이 이제야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거래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