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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02화 (990/1,404)

#1002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10)

거점 포엔의 투기장에서 백여 명의 유저들을 압살한 정체불명의 후드 속의 존재는 발록이었다.

전투가 끝나자 마치 귀찮은 것들을 상대한다는 듯 손을 휘저어 먼지를 털어낸 발록이 슬쩍 고개를 들어 투기장 바깥에서 구경 중이던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온 걸 본 건가?

빤히 나를 바라보던 발록이 고개를 출입구 쪽을 향해 끄덕거렸다.

저쪽으로 오라는 거겠지.

“마침 녀석도 우릴 봤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날 신시아가 혼이 나간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지금 녀석을 알고 있고 없고는 그녀에게 그다지 상관이 없는 듯했다.

“난 완전 망했어요…….”

“하하…….”

적당히 건다고 걸었는데.

아무래도 발록이 저들을 압살해 버리면서 생각보다 타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다 안 받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정말요?”

지옥 끝에 누군가 발로 밀어 넣었다가 손을 내밀어준 것처럼 그녀의 표정에 다시 온기가 돌아왔다.

가만 놔뒀으면 그냥 새하얀 백지 같은 표정만 봤을지도.

그렇다고 아예 안 받는다는 말은 아닌데.

구세주를 보는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뭐, 어차피 그것 때문에 온 것도 아니고요.”

약간의 유흥이랄까.

그 와중에 이득을 보면 더 좋은 거고.

그런데 발록을 본 전신과 패황, 혼령의 얼굴은 신시아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혼령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저 녀석은 대체 뭡니까?”

확실히 랭커 수 명을 순식간에 요리해 버린 터라 놀라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흐음.

이 녀석.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거려나?

예전에 가명으로 활동했을 때 전장에 몇 번 투입되기는 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혼령이 직접 그 모습을 본 건 아니라 그런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

지금도 발록 특유의 전투를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박투를 해 힘으로 찍어 누른 거라.

확실한 연관점이 없다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불멸> 알아보진 못하는가 보네.

<주호> 네, 다행이네요.

혹시나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그럼 이전의 가명과 연결될지도 모르고.

꽤 피곤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걱정은 나중으로 밀어놔도 괜찮을 듯 했다.

“직접 보면 알 거예요. 그리고 저 녀석이 바로 우리 쪽 전력이 되어줄 녀석입니다.”

이미 전신과 패황, 혼령 앞에서 무력시위는 충분히 해보였다.

랭커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이걸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녀석들의 몫이지만.

슬쩍 살펴본 전신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어필은 된 모양이었다.

어쩌면 경계하는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그만큼 발록이 녀석이 보기에는 위력적이라는 거지.

방금 짓눌린 녀석들이 서버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랭커들인 걸 감안한다면.

저 단순한 전투만으로도 그들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까지 나는지 모르진 않을 거다.

특히 전신 같은 탑랭커라면 더하다.

피부로 와닿는 느낌 자체가 다를 터.

그런데 의외로 패황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내게 말했다.

“한 번 붙어보고 싶은데.”

이건 호승심 같은 거려나?

그런데 그런 그를 보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을게.”

그리고 그런 재중이 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주호> 악취미예요.

<불멸> 뭐 어때? 직접 해보고 싶다는데. 좋은 기회잖아.

<주호> 흠, 그렇긴 한데요.

꼴사납게 쥐어터지는 모습을 굳이 봐야 할까 싶어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재중이 형 말대로 본인이 직접 한다는데…….

나쁘지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마주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

“자리를 만들어 드리죠.”

내 말에 패황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이 양반은 지금 죽을 길을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긴 하려나.

그렇게 전신 등을 데리고 투기장의 대기실로 가자 발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뱀파이어 로드와 혹한의 얼음 여왕 역시도 앉아 있었고.

둘 다 후드를 눌러 쓰고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유저로 보였다.

뱀파이어 로드가 조금은 지겨운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잖아.”

“아, 미안. 일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원래 계획하고는 상당히 틀어져서.”

이건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이들을 데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야 했는데.

이를테면 빙룡왕 시튜러스를 찾으러 간다든지.

마왕 벨라를 찾아야 새 마왕성에서 이들도 정착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세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계획이 변경된 건.

아군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마왕 스티어가 삽질을 하면서부터였다.

대천사의 무기도 변수였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이런 저런 마왕이 다 꼬이면서 일이 완전히 틀어졌지만.

생각해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결과였다.

우여곡절 끝에 마왕 올펠을 잡기도 했고.

마왕 스티어의 마왕성까지 공짜로 손에 넣었다.

거기다 현재 마왕 서열 1위라는 놈과는 일단은 협력하는 모양새였다.

녀석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기 위해서는 변수를 최대한으로 줄여놔야 한다.

그 과정에 이 녀석들이 필요한 거고.

그때 발록이 고개를 들어 날 보면서 말했다.

“강한 녀석이 죽었더군.”

“아, 마왕 올펠?”

내 대답에 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나?

여기까지 소문이 날 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유저들을 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봤다.

내가 시아트 마왕성을 차지한 건 유저들이 알지만.

그렇다고 마왕 올펠을 죽인 건 모르니까.

알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유저들 정도가 전부인데…….

흠.

이건 아니네.

얼마 전 영상을 통해 전 서버 유저들이 보기도 했었다.

그들이 NPC들에게 몇 마디만 했으면 서버 내에 NPC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터.

아님 전사 형이 이야기해 줬을 수도 있고.

알려고 하면 방법이야 많았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이지?”

“그 전에 여기 이 사람하고 한 번 붙어줬으면 해.”

그러면서 패황을 가리키자 발록의 눈썹 한쪽이 꿈틀거렸다.

마치 패황의 모습을 스캔이라도 하듯.

그리곤 결론이 났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강하진 않군.”

그 말에 패황이 확 인상을 구겼다.

설마 상대한테서 대놓고 약하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그런 발록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아…… 너무 팩트로 후려까진 말고.”

“후려까?”

“뭐 그런 말이 있어. 아무튼 네 전력을 알아야 이쪽도 협조를 얻을 수 있어서.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

내 부탁에 발록이 뭔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투를 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했다.

“오히려 저쪽이 더 붙어볼만 하겠군.”

그러면서 발록이 전신을 대놓고 가리켰다.

“쟤?”

“내가 보기엔 이쪽보다 저 녀석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이상하네?

겉으로 보이는 스펙상으로는 전신과 패황이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진 않을 텐데?

물론 레벨도 전신이 더 높고 가진 장비가 더 고급이긴 하겠지만.

이 정도로 평가가 차이날 줄은.

전신도 그런 발록의 평가가 뜻밖이었는지 관심을 보였다.

“이건 그냥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보는 건데. 그럼 난 어때? 저들에 비하면?”

내 물음에 발록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약하다.”

“너무 팩트로 후려까진 말라니까. 마음 아프게.”

그리고 또 의외의 말을 했다.

“그렇다고 저들에게 지진 않겠지.”

이번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란 눈빛을 보였다.

레벨 200대인 내가 저들과 붙어도 지지 않는다는 말을 대놓고 한 거라.

이거…….

아무래도 저 평가는 내가 가진 테르타로스 때문인 것 같은데.

바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계속 도망 다니면 지진 않겠지.”

얼렁뚱땅 녀석의 말을 넘겨버리자 발록도 더 이상은 말을 하진 않았다.

<불멸> 이 녀석 꽤 예리한 면이 있다니까?

<주호> 곤란하죠.

아직까지는 말이지.

“뭐 난 그렇다 치고. 아무튼 패황하고 한 번 싸워줬음 해.”

전신은 딱히 요청은 하지 않았으니.

굳이 나서서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죽여도 되나?”

“아니. 죽이는 건 안 돼. 말했잖아. 협조를 얻어야 한다고.”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패황이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누가 죽는지는 해보면 알겠지.”

휴.

적당히 했으면 좋겠는데.

패황이 장비를 착용하고 스킬을 쓰자 패황의 전신에게 푸른 기운들이 퍼져 올랐다.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가 얼마나 버텨 주려나?

마왕 올펠의 공격도 꽤 받아내긴 했으니 아예 못 버티진 않을 텐데.

동시에 발록의 몸 전체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다행히 풀 전력은 아니네.

그런데 오히려 패황이 도발을 했다.

“전력을 다 해라.”

패황의 호기 있는 말에 발록이 잠시 패황을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굳이 원한다면.”

갑자기 폭발적인 화력이 발록에게서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패황과의 거리를 좁혔다.

마치 처음의 내게 했던 것과 유사한.

거리를 도약하듯 사라지면서.

순간적으로 패황의 측면에 나타난 발록의 펀치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한 패황이 인상을 구기면서 리빙 아머 킹의 라지 쉴드를 들어올렸다.

쿠와앙!!

쇠와 쇠가 정면에서 부딪히는 충격파가 대기실 내를 덮치며 내 감각을 쭈삣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패황의 신형이 반대편으로 튕겨나가며 대기실의 한쪽 벽에 가서 그대로 처박혀 버렸다.

콰아앙!!

퍼어억!!

저 무식한 공격을 몸으로 그대로 받아내니 저 모양이지.

옆에서 재중이 형이 휘파람을 불면서 말했다.

“적당히를 모르네.”

“그러게요.”

하지만 난 사실 패황이 막아냈다는 거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었다.

마왕 올펠에게 극한으로 몰리면서 실력이 좋아졌을 수도 있고.

발록이 강하긴 한데.

마왕 올펠에 비하면 한 끗발은 밀린다.

전신이 상당히 놀란 듯 발록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본인이 생각했던 것 이상일 테지.

저 패황이 한 방에 쓰러졌으니.

곧 무너진 대기실의 벽을 집고 일어난 패황이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놀란 듯 말했다.

인상을 한껏 구긴 걸 보면.

처음에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긴 거려나?

“이놈…… 절대 유저 수준이 아닌데?”

직접 한 번 붙어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 거다.

발록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마 지금쯤 속으로 그간 붙어봤던 마왕하고 발록을 비교하고 있을 터.

그 정도로 발록은 강하다.

일반적인 유저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그런 패황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요. 이쪽은 마왕을 상대할 녀석들이라고.”

그 말에 오히려 발록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마왕?”

“아, 미리 말한다는 게 이제 말하네.”

그리곤 의아해하는 발록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뭐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고. 당분간 네가 마왕 대리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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