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8)
이 경매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했다.
미리 약속한 대로 모두 같은 포인트를 써서 경매를 진행한 상황.
신시아가 보기에도 마찬가지.
중립으로 경매를 진행한 이 진행자도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경매는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막상 경매템들을 분배받은 전신이 내게 묘한 눈짓을 보내왔다.
마치 손해 본 장사를 한 것 같은 딱 그런 표정으로.
패황 역시 손에 계속 아이템들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흠, 경매는 잘한 것 같은데.”
그저 느낌만이 아닌.
실제로가 그랬다.
어떤 확신이 없을 뿐.
그들의 시선을 피해 슬쩍 화련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올펠의 무기는 그냥 놓아줬네요?
<화련> 검도 아닌데 굳이 뭐하러.
<주호> 흠, 그런가요.
마왕 올펠의 클로에 가까운 근접 무기는 화련에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것 같았다.
화련은 검을 좋아하지 저런 기형 무기는 원하지 않는 모양.
원래라면 가장 주목을 받았어야 하는 무기일 텐데.
우리가 상대한 마왕의 강력함을 상기해 본다면 분명 이 아이템이 가장 경매의 핵심이 되어야 했다.
<주호> 관심 없는 것치고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포인트를 올리던데요?
그런 내게 화련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화련> 어차피 안 살 거 가격이라도 잔뜩 올려야지. 저 녀석 물도 먹일 겸.
그러면서 화련이 전신을 쳐다봤다.
하긴.
저게 정답이네.
나나 재중이 형, 화련 모두 관심이 없긴 한데.
그렇다고 저 아이템을 저들에게 그냥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저 무기를 들고 있던 패황은 다른 아이템을 원했기에 내놓은 상황이다 보니 다소 관심이 시들했고.
덕분에 화련과 전신의 2파전으로 계속 포인트가 오르다가 결국 화련이 손을 떼면서 전신이 꽤 비싼 포인트를 내고 저 아이템을 가져갔다.
물론 재중이 형도 중간까지 포인트를 올리면서 열심히 양념을 쳐댔다.
화련 혼자서 올리면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주호> 그런데 전신이 저걸 끝까지 따라갈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화련> 왜? 안 되면 내가 사면 그만인데?
하.
역시 그런 거였나.
화련은 일단 냅다 질러놓고 끝까지 가는 걸 생각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스킬북 쪽에서 확실한 이득을 보고 가는 상황이라 거칠 것도 없어 보였고.
내가 미리 찔러준 저 사실 덕분에 화련은 그냥 밀어붙이는 작전이 가능했다.
그러다 그냥 마왕의 무기를 가져와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쓰거나 되팔거나.
어떤 식으로 해도 저 마왕의 무기는 그만한 값어치는 있었다.
전신도 그걸 고려해서 계속 따라왔겠지만.
그 덕분에 전신은 거의 대부분의 포인트를 저 마왕의 무기를 사는 데 써버리게 되었다.
화련이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질 않아서.
그 결과, 마왕의 무기를 얻은 전신은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나머지 경매는 거의 포기했어야 했다.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남은 드랍템은 재중이 형과, 화련, 패황의 3파전.
이때부터 압도적으로 패황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스킬북들의 실체를 아는 재중이 형과 화련이 패황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포인트에서도 밀려.
정보에서도 밀려.
그 때문에 패황은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스킬북 다수를 품에 안고 포인트를 꽤나 소모해 버렸고.
그런 패황을 상대로 너무 쉽게 마왕 올펠의 갑주를 재중이 형이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패황이 굳이 마왕 올펠의 무기를 내놓으면서까지 이 경매에 참여한 이유.
그건 바로 저 마왕 올펠의 전신 플레이트 때문이었다.
이미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패황 입장에서는 그보다 상위 방어구인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원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전사 형처럼 방어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다.
실제 본인이 잘 쓰기도 하고.
그런 녀석이 이걸 그냥 지나친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렇지만 이미 몇몇 방어 관련 스킬북에서 조금씩 포인트를 갉아 먹힌 상태라 재중이 형에게 그대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 올펠의 방어 스킬 역시도 구하기 힘든 스킬북이었다.
이것들 역시 눈길이 안 간다면 거짓말이다.
패황 역시 이 스킬북들에 약간의 포인트를 써버렸는데.
그게 녀석의 작은 실수였다.
애초에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노렸다면 가진 포인트를 하나도 쓰지 않았어야 했다.
이후에 재중이 형과의 포인트 싸움에서 패황이 완전 발려버렸으니.
설마 재중이 형이 그렇게까지 포인트를 써가면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를 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단 재중이 형이 방어구에 집중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이건 화련도 마찬가지.
오히려 다른 악세서리나 스킬북, 재료 같은 것에 집중할 거라 여긴 게 녀석의 착각이었지.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포인트를 써버린 재중이 형이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불멸> 공격력은 이미 충분해. 요는 앞으로 마왕의 전용 사냥터에서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지.
<주호> 전사 형에게 주려고요?
<불멸> 어, 전방에서 전사가 몸으로 버텨줘야 하는데…… 지금 녀석의 장비로는 택도 없지. 이러저리 두들겨 맞다가 바로 쫓겨날걸?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격력은 나나 재중이 형이 어느 정도 선은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르아 카르테를 비롯한 테르타로스와 대천사의 검인 라페르나가 있다.
재중이 형도 프로미넌스가 있고.
시간만 주어지면.
어떻게든 대미지를 입힐 수 있을 터.
문제는 마왕의 전용 사냥터에서 사냥이 되느냐 안 되느냐다.
애초에 방어가 되지 않아 버티지를 못한다면.
물약은 물약대로 쓰고 바로 도망쳐 나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밑 깨진 독에 계속 물을 들이부어 봐야.
줄줄 새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재중이 형은 이 경매를 시작할 때부터 저 사실 하나만 생각하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주호> 전사 형이 부담스럽겠네요.
<불멸> 크큭, 평생 노예지 뭐.
마왕 올펠의 전신 플레이트는 지금 시세대로 하면 정말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아니.
값어치를 매길 수 있기는 하나?
전사 형 입장에서는 금덩어리를 몸에 걸치고 싸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재중이 형이니까 이런 미친 생각이 가능하지.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절대 하지 못할 생각이다.
그때 제일 원하던 아이템을 얻지 못한 패황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플레이트. 현금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포인트제를 고수한 게 녀석에게는 오히려 패착이었다.
만약 현금 박치기를 했다면 적어도 이렇게 쉽게 넘기지는 않았을 터.
뭐 그렇게 따지면 화련이 쓸어버렸을 수도 있긴 한데…….
용을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나서 고생하는 셈이려나.
“안 되겠는걸? 나도 쓸데가 있어서.”
“젠장…….”
애초에 포인트를 꾹 모아놨어야지.
재중이 형 역시 포인트를 거의 다 써버려 플레이트 외에는 입찰하지 못했고.
나는 시작부터 마왕의 핵에 포인트를 다 써서 역시 빈털이었지만.
가장 원하는 물건 하나씩은 가져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스킬북과 악세서리. 다른 아이템으로 제작이 가능한 재료템들은 화련과 패황이 나눠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화련은 알짜들만 건져왔고.
아이템으로 인한 전력 상승 면에서만 보면.
화련이 이 안에서 가장 밸런스 있게 올라갔을 터.
나와 재중이 형이 포인트를 다 써버림으로 거의 공짜에 가깝게 남은 아이템을 화련이 쓸어갔다.
반면 가장 손해를 많이 본 건 저 패황일지도 모르겠다.
화련이 씹다 버린 아이템들을 건져갔으니.
적어도 전신은 마왕 올펠의 무기라도 건졌지.
아마 당분간은 겉으로 보이는 공격력 하나만 따져보면 전신이 전 서버에서 최강일 것이다.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녹아버릴 테고.
영웅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본인이 안 쓰고 다른 유저에게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녀석이 알아서 할 일이니.
이젠 손에서 벗어난 물건이라 관심을 꺼버렸다.
혹시 판다면 사줄 용의 정도는 있긴 한데.
녀석이 절대 팔진 않겠지.
뜻하지 않게 공격력만 대폭 올라간 전신과.
원치 않는 아이템들만 잔뜩 가져간 패황.
플레이트 하나 건진 재중이 형.
알짜만 쓸어간 화련.
마왕의 핵만 가진 나.
묘한 경매 결과가 나오면서 다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전신이 내게 궁금한 게 있는지 물었다.
“마왕성은 어떻게 유지할 생각입니까?”
역시 전신인가.
내가 마왕성을 차지하긴 했지만.
임시적으로 발만 올려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한 마디로 마왕성을 무슨 수로 지킬 거냐고 물어보는 거다.
다른 마왕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간을 볼 텐데.
우리가 마왕 올펠의 드랍템을 가졌다고는 해도.
마왕과 직접 붙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미 한 번 싸워본 전신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마왕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마왕성 지분도 같이 날아가니.
패황도 관심을 가졌다.
저 녀석도 같은 입장이라.
둘 다 적지 않은 마왕성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식 많이 들고 있는 주주 정도 되려나?
당장 휴지조각이 되기 일보 직전인.
아니.
이미 휴짓조각이 되었다가 다시 겨우 건진 거지.
이대로 놓치고 싶진 않을 터다.
“흐음, 일단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내 말에 전신이 흥미를 보였다.
“쉽진 않을 텐데…….”
“네, 뭐. 아마 그렇겠죠. 그래서 말인데. 마왕성에서 당신들의 거점과 포탈을 연결하고 싶어요.”
“포탈을?”
“어차피 서로 왔다 갔다 하려면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비공정이 있어도 한나절인데.”
당장 만들어진 비공정 몇 대를 굴릴 수 있기는 할 터.
하지만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비공정의 인원 수용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전신과 패황이 아예 마왕성에 눌러 살지 않는 이상에야.
전력으로 쓸 수는 없는 셈이지.
반면 이렇게 서로의 마왕성과 거점을 포탈로 연결해 버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원하면 언제든지 전신과 패황의 거점에서 우리 쪽으로 병력을 보내올 수 있게 될 테니까.
반대로 녀석들이 다른 마음을 먹었을 때.
대처하기 곤란한 점도 없진 않아 존재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방법이 있으니.
딱히 걱정하진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마왕성의 병력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게 비록 적이었던 녀석들이라고 할지라도.
써먹을 수 있는 병력이라면.
어떻게든 써먹어야지.
그리고 녀석들도 딱히 이걸 나쁘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전신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전력이 부족할 겁니다.”
패황 역시 마찬가지.
“우리에게 마왕성에 병력을 주둔시키라는 말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왕들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막지 못했을 경우 손해도 클 테고.”
저게 맞다.
유저들 수가 많아봐야 결국 몸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적어도 마왕이 끌고 오는 휘하 몬스터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전신과 패황의 병력에게 바라는 건 딱 거기까지고.
저들 입장에서도 나쁘지는 않을 터.
마왕성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상당히 높은 레벨 대의 몬스터들을 사냥할 기회가 생긴다.
아마 둘 다 그런 계산까지 다 염두에 두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마왕성의 지분을 지켜내는 것만 이득은 아니니까.
연합원들은 납득할 만한 이득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리고 이건 꽤 좋은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마왕을 상대하는 일이다.
이득이 없으면.
움직일 리가 없다.
문제는 마왕을 누가 상대하는냐인데.
“그건 걱정 마시죠. 앞으로 마왕을 상대할 녀석들은 따로 있으니까.”
내 장담에 전신과 패황의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만나러 가보죠.”
대신 마왕성을 지켜줄 녀석들을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