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화 마왕성 전용 사냥터 (7)
마왕 올펠을 잡고 나온 드랍템은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은 템들이었다.
애초에 지금 나올 만한 등급의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다.
마왕을 잡는 건.
그만큼 난이도가 있는 일이니까.
솔직히 마왕의 핵 하나를 가지기 위해 저 모든 아이템들을 포기한다는 건.
누가 봐도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게 얼마나 미친 것처럼 보이냐면…….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있던 전신까지도 내 선택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단단한 포커페이스를 깰 수 있다니.
확실히 미친 짓은 맞나 보네.
시작하자마자 나온 올인에 패황 역시도 눈을 찡그렸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하던 분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패황이 못 믿겠다는 듯 내게 물었다.
“방금 마왕의 핵에 올인이라 했습니까?”
“네, 올인요.”
“흠.”
“혹시 뭐가 잘못됐나요? 제 포인트 제가 원하는 데 쓰겠다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 말하자 패황이 난색을 표하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의도가 뭔지 살펴보려는 건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마왕의 핵은 설명 자체가 없었다.
아이템을 보고 뭔가 알아내고 싶어도 알아낼 수가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당황한 거다.
의도를 알 수 없는 건.
대부분 꺼리기 마련이니.
근데 그런 황당한 문제를 내가 내어놨으니 저들은 이제 풀어야 한다.
날 따라서 올인을 할 건지.
아니면.
그냥 마왕의 핵을 내게 넘겨줄 것인지.
나를 따라서 올인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럼 뭐 둘 중에 하나는 마왕의 핵을 가지게 되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마왕의 핵에 올인할 만한 사람들은 여럿 있지 않을 테니.
그런데 다른 수많은 마왕 올펠의 드랍템들을 놔두고 마왕의 핵에 올인을 한다?
이건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포인트를 잘 분배하면.
적어도 저 드랍템 중에 좋은 것으로 두세 개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무기나 방어구.
혹은 스킬북이라던가.
악세서리도 괜찮고.
밖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이템들이니 당연히 내 선택은 최악에 가까운 선택으로 보일 것이다.
화련이 슬쩍 내 옆으로 와서는 속삭였다.
<화련> 야, 너 미쳤어? 무슨 짓이야?
<주호> 아, 미치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해요.
<화련> 내가 일부러 경매 대신 포인트제로 판 깔아줬는데. 이러면 쓸모가 없잖아.
역시 화련이 신경 써준 거였나?
혹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주호> 그건 고마워요.
<화련> 아이씨. 누가 지금 감사 인사 받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저 아이템들 싹 넘어가면…….
<주호> 뭐 우리 쪽에는 재중이 형하고 화련도 있잖아요. 어차피 반은 가져올 거예요.
<화련> 그렇기는 한데.
내가 마왕의 핵에 올인을 하면.
내 포인트는 싹 사라지게 된다.
다른 아이템에는 포인트를 쓸 수 없다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다섯 명이서 나눠먹어야 하니까.
우리 쪽에서 드랍템 다섯 개 중에 세 개를 가져오는 그림이 될 것이다.
반면 이렇게 내가 마왕의 핵을 먹고 빠지게 되면.
남은 네 명이서 반반을 나눠먹는 그림이 나오게 되겠지.
물론 비율상으로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아예 아무것도 못 먹는 건 아니라는 거다.
무엇보다.
마왕의 핵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애초에 마왕의 핵 자체가 마왕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지 않은가.
여기 있는 그 어떤 아이템들과 비교해도 그 값어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아니.
이 아이템 하나가 가지는 값어치가 오히려 더 클 수도 있었다.
<주호> 아, 그리고 아이템은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요.
화련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마신의 파편인 테르타로스.
마왕 올펠을 죽일 때 테르타로스로 마무리를 해서 지금 마왕 올펠의 스펙이 테르타로스의 옵션에 복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정확하게는 마왕 올펠의 스킬들이지.
어차피 스탯이야 다른 몬스터를 잡아서도 충분히 채워 넣을 수 있는 거니까.
한 마디로.
난 굳이 저 경매에 참여하지 않아도.
이미 상당수의 스킬북들을 소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곳에 있는 유저 중 딱 한 사람뿐이다.
무기나 방어구 쪽이 아쉽긴 하지만.
이것도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주호> 형, 무기나 방어구 쪽 노려줄 수 있죠?
<불멸> 마왕 올펠의 스킬은 죄다 복사해 놨으니까?
역시 재중이 형.
내 의도를 확실히 알아챘다.
혹시나 포인트가 밀려 마왕의 핵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까 봐 올인으로 마왕의 핵을 확실하게 획득하고.
남은 건 재중이 형의 포인트에 맡긴다.
화련도 필요하면 도움을 줄 생각으로 보이니까.
이렇게 되면 적어도 포인트에서 밀리진 않는다는 거다.
전신과 패황은 아마 상상도 못 하고 있을 터.
<주호> 스킬북 쪽은 가지려는 척만 하다가 포기해서 넘겨줘도 돼요.
<불멸> 적당히 포인트를 쓰게 만들라는 거군. 알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킬북을 내놓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스킬북이 필요하지 않다고 광고할 생각이 아니라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입찰하는 시늉은 내어야 한다.
신시아가 나와 재중이 형, 화련의 눈치를 한 번 봤다가 다시 전신과 패황을 바라보았다.
혼령이야 구경만 하는 입장이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고.
그나마 다행이려나.
만약 저 녀석이 마왕 올펠 레이드에 끼었다면 지금 숫자상으로 굉장히 불리했을 테니.
“저기, 마왕의 핵에 올인이라는데. 같이 올인하실 분 계신가요?”
최소한 마왕의 핵을 얻기 위해선 무조건 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신이 나와 재중이 형을 한 번 쳐다보더니 아주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들었다.
아마 전신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올인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마왕의 핵을 포기하고 다른 아이템을 취할 것인지.
혹시나 올인을 해서 따라왔다가 자신이 마왕의 핵을 가지게 되면.
남은 아이템의 소유권은 전부 날아가게 된다.
포인트가 없으니까.
“난 포기하지.”
결국 전신의 선택은 마왕의 핵을 넘겨주는 걸로 선택을 정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패황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들었다.
“이쪽도 포기.”
전신과 패황이 포기를 한 이상.
마왕의 핵은 내 소유라고 보면 된다.
화련은 절대 올인을 하지 않을 거니까.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고.
선택이 끝나자 신시아가 마왕의 핵을 내게로 넘겼다.
“마왕의 핵은 주호 님의 소유가 되었어요. 혹시라도 선택을 바꾸고 싶다면 마지막 기회입니다.”
신시아도 역시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저 좋은 아이템들을 죄다 포기하고 이거 하나만을 노린다는 게.
믿을 수 없겠지,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봤지만 내 선택은 동일했다.
“아뇨, 이거면 충분해요.”
“하, 정말 아까운데…… 저 드랍템들.”
신시아는 가지지 못해서 그런지 더욱 좋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패황이 정말 궁금한 듯 내게 물어보았다.
“대체 저 마왕의 핵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마주 웃어 보이면서 대답해 주었다.
“아마 지금 상상하시는 그게 맞을 걸요?”
내 대답에 패황이 입을 꾹 닫았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아이템에 올인하는 바보는 없다.
전신도 패황도 그걸 너무나 잘 안다.
이 정도 급이 되는 유저들이 그것도 모른다면 당장 내려가야지.
하지만 선택을 하기에는 다른 아이템들이 너무 좋았다.
그게 저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면서도 올인하기에는 애매한.
가장 큰 문제는.
이 마왕의 핵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데 있었다.
괜히 설명이 물음표겠는가.
가져봐야 쓸 수도 없는 아이템은.
그 자체로 손해다.
전신이 흘리듯이 말했다.
“용도를 알고 있군요.”
“네, 뭐……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흠.”
아마 손해 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겠지.
하지만 어차피 내가 아니면 쓸 수도 없는 물건이다.
그 이후에는 다른 아이템들이 하나둘 입찰을 시작했다.
<주호> 스킬북은 적당히 잡으려다가 놓쳐주면 돼요.
<화련> 왜? 다 좋은데?
<주호> 아이템 쪽이 더 나을 거예요.
뭐 꼭 필요하면 가지는 편이 낫겠지만.
화련은 따로 파티를 꾸릴 예정이라 굳이 강요는 하지 않았다.
테르타로스를 쓸 수 있는 것도 결국 나뿐이니.
대신 뭐가 더 좋을지는 확실히 구분해주었다.
난 이미 테르타로스를 통해서 저 스킬들의 특성을 일부 알고 있으니까.
꼭 필요하다면 알짜만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거다.
날 도와준 것도 있고.
몰래 스킬 특성들을 알려주자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물었다.
<화련> 흐음, 수상해? 어떻게 이걸 다 알아?
<주호> 감이죠.
<화련> 됐고. 보아하니 저 스킬들 다 있는 모양이네.
역시 화련은 눈치가 빠르다.
스킬북이 나올 때마다 자꾸 포인트를 올리고 빠지는 재중이 형을 봤는지 어이없게 웃었다.
<화련> 아주 쟤들을 가지고 노네.
<주호> 하하……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이템 쪽으로 하라는 거예요.
<화련> 깽판 쳐줘?
<주호> 아뇨. 한 번만 봐주시죠.
<화련> 흥. 됐어. 필요한 것만 건질래.
그리고 그런 스킬북은 재중이 형에게 손대지 말라고 미리 말을 해주었다.
그야말로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랄까.
반대로 전신과 패황은 재중이 형이 포인트를 일부러 올려둔 스킬북에 과도하게 포인트를 사용해서 점점 포인트가 쪼그라들었다.
당사자들은 상대방이 사려던 걸 자신이 사서 잘 샀다고 생각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놓은 덫에 빠진 것도 모른 채로 계속 포인트를 소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꿔 말하면 정작 필요한 무기나 방어구, 악세서리 같은 아이템들을 사야 할 때.
그들의 포인트가 부족할 수 있다는 거지.
그것도 아주 많이.
입찰을 하던 와중에 전신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계속 나와 재중이 형을 흘깃 바라보는 게 보였다.
뭔가 찝찝하기는 할 거다.
하지만 전신과 패황은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 판을 계속 조작하고 있다는 걸.
함정에 빠져 끌려 내려가는 그들을 본 화련이 슬쩍 날 보고 미소 지었다.
<화련> 너 진짜 아주 일 잘하는 악당 같은 건 알아?
<주호> 그거…… 아마도 칭찬 맞죠?
<화련> 응, 쟤 물먹는 거 보니까 기분이 꽤 좋아.
확실히 화련하고 전신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
정확하게는 화련하고 그 언니 사이의 문제겠지만.
어쨌든 경쟁 상대라는 건 확실하다.
그런 전신을 내가 계속 물먹이고 있으니 화련이 보기에는 예뻐 보일 수밖에.
그것도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는 입장이니.
어느새 신시아가 손을 들어 경매의 끝을 알리는 말을 했다.
“마지막 물건까지 전부 분배했어요. 그럼 여기서 경매를 마칠게요.”
그리고 서로의 앞에 쌓인 아이템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반면에 전신과 패황은 뭔지 모를 패배감이 드는지 쓴웃음을 지었고.
마지막에 앞에 놓인 서로의 아이템의 구성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으니까.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아주 흡족한 경매였어요.”
이게 바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 쓸어온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