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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92화 (980/1,404)

#992화 마왕의 핵 (10)

나와 재중이 형, 화련이 서 있는 장소.

그중에 마왕 바이카르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누가 봐도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아주 확실하게.

그리고 마왕 바이카르와 내 눈이 정확히 중간에서 마주쳤다.

순간 저 녀석이 잠시 미쳤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갔다.

그런 마왕 바이카르의 시선을 따라간 마왕 데미안이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 인간이라고? 마왕 바이카르. 지금 나와 장난하나?”

어느 정도 황당해야 수긍하는 척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그 어떤 마왕이 이 자리에 와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왕 바이카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그래서 문제 있나?”

“문제 있냐고?”

마치 미친 녀석 보듯이 마왕 바이카르를 보던 마왕 데미안이 참다 못 해 결국 한마디를 꺼냈다.

“정말 미친 게냐?”

욕을 먹어서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마왕 바이카르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덤덤한 모습을 본 마왕 데미안이 곧장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저 인간 녀석, 당장 내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는 건 알고 있겠지?”

그러면서 마왕 데미안이 나를 향해 강렬한 마기를 끌어올렸다.

순간 내 주변으로 피부가 갈라질 정도의 맹렬한 돌풍이 불면서 서서히 나를 눌러갔다.

마치 버틸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듯.

휘이이잉!!

끼기기긱!!

그 돌풍에 내 갑옷의 표면이 서걱서걱 갈려나가며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위협이 느껴지자마자 바로 감각들이 경고를 해서 뒤로 몸을 뺐기에 망정이지.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갑옷째로 몸이 썰려나갈 뻔했다.

저 돌풍에 스쳐지나갔을 뿐인데 그 잠깐 사이에 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걸 보면.

아마 이전에 봤던 마왕 올펠 정도는 그냥 씹어 먹을 수준이 아닐까.

몸을 빼기 무섭게 재중이 형과 화련도 무기를 꺼내들고 내 앞을 막아섰다.

둘 다 표정이 굳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엔 마왕 데미안뿐만 아니라 휘하의 다른 세 마왕이 있다.

저들이 정말 마음먹고 공격하면 버티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장난은 거기까지.”

지켜보던 마왕 바이카르가 가볍게 손을 휘졌자마자 마왕 데미안이 불러낸 돌풍이 뭔가의 압력에 눌려 그대로 소멸되어 버렸다.

방금 마왕 데미안이 쓴 기술이 장난이었다고?

스쳤다가 죽을 뻔했는데?

거기다 마왕 바이카르는 그런 기술을 손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없애버렸다.

하.

진짜 제대로 된 마왕이면 아예 차원이 다르잖아?

이 녀석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대천사의 검을 꺼내야 하나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걸 꺼냈다가는 정말 여기서 마왕 데미안과 사생결단을 내야할지도 모른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그 패는 무리수다.

마왕 바이카르가 손을 쓰자 마왕 데미안이 코웃음 쳤다.

“이 정도도 막지 못하는 녀석이 마왕 후보라고?”

솔직히 저건 틀린 말도 아니라서.

레벨은 겨우 200대에 여타 장비 역시 짱짱한 다른 녀석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거기다 그 비교 대상이 마왕 수준이라면 더 할 말도 없지.

마왕 데미안이 보기에는 부족해도 한참이나 부족할 것이다.

녀석의 어이없다는 태도에 마왕 바이카르가 대답했다.

“아직은.”

당연히 마왕 데미안이 반발했다.

“지금 나와 장난하나? 무슨 마왕 후보가 애들 키워서 세우는 자리인 줄 알아? 당장 버티지 못하면 바로 죽어나가는 마계에서? 그것도 약해빠진 인간을? 마계의 주민도 아닌?”

마왕 바이카르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담담히 마왕 대미안의 불만 섞인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계 역사상 단 한 번도 인간이 마왕이 된 사례는 없다.”

저 녀석.

너무 뼈를 때리니 아프긴 한데.

애초에 내가 마왕 후보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마왕 바이카르가 대놓고 나를 지목했을 뿐.

난 한 번도 마왕 후보가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잠깐만. 둘이 기를 세우고 싸우는 와중에 방해해서 미안한데 말이야.”

마치 목석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내가 말을 꺼내자 마왕 바이카르와 마왕 데미안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내 입으로 마왕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건 내 착각인가?”

마왕 바이카르가 날 보고 마왕 후보로 지목했을 때 머리가 팽팽히 돌아갔었다.

과연 정말 마왕이 될 수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만약 마왕이 되었을 경우.

앞으로 마왕의 직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과 이해득실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결론은.

지금처럼 다른 녀석들의 손에 이끌려 마왕이 되는 건 문제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직접 마왕이 되면 또 모를까.

주도권의 차이도 있고.

혹시 마왕이 되었는데 겉으로만 마왕이라면.

그건 안 되는 것만도 못 하다.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들 손에 휘둘리는 건 완전 사양이지.

“그리고 딱히 마왕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그런데 이런 내 말은 오히려 마왕 데미안의 수족들인 마왕들의 심기를 건드린 듯 했다.

“감히 네까짓 녀석이 마왕이 되는 걸 거부하겠다는 거냐?!”

“건방진 새끼!”

“당장 목을 날려버려야……!”

순간 머리에 힘줄이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놔.

이 새끼들.

좀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 마왕이 되면 안 된다느니 어쩌느니 한 녀석들 아니었어?

그런데 내가 마왕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것만으로 화를 내?

물론 그 말을 한 건 마왕 데미안이고.

지금 발작하는 녀석들은 그 휘하 마왕들이긴 한데.

재중이 형도 내 생각과 같은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불멸> 저놈들,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주호> 네. 맛이 좀 간 것 같아요.

녀석들은 마왕이 되는 걸 바라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내 태도를 나무랐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화련도 마찬가지였다.

<화련> 마왕이라는 것들은 다 저래? 상태가 영 아닌데?

<주호> 하하.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네요.

마왕이 되면 머리가 굳어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마왕이 되길 거부하는 건 마왕 자존심상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쪽에선 마왕이 되길 바라고. 다른 쪽에선 마왕이 되면 안 된다고 하고. 누구 장단에 맞춰주면 돼?”

저쪽이 막 나가면.

우리라고 참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금 마왕 바이카르는 내가 반드시 마왕이 되길 바란다.

마왕 데미안에서 어떤 말을 하든.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을 테지.

거기다 마왕 서열 1위의 말이다.

한 번 꺼낸 말을 다른 녀석들이 반발한다고 뒤집기는 마왕 체면이 있으니까.

한마디로 지금은.

마왕 바이카르의 후광을 빌어 대놓고 내 의사를 말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

내 변한 태도에 마왕 바이카르가 알 듯 모를 듯한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꽤 신기한 녀석을 본다는 그런 표정이려나?

마왕 데미안에게 시선을 돌린 마왕 바이카르가 물었다.

“그래서 이 녀석이 마왕이 되는 게 불만인가?”

“당연한 것 아닌가? 자격이 없는 녀석이 마왕이 되면 마왕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나. 그리고 마왕이 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마계의 존재들에게 할 말이 없어지겠지.”

한 마디로 절대 낙하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면 마왕 데미안 저 녀석은 자기가 새 마왕 자리에 자신의 세력을 꽂아 넣는다고 미리 말한 녀석 아니었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태도를 보면 혀를 찼다.

화련도 같은 생각인 듯 했고.

<화련> 내로남불도 저 정도면 병이네.

<주호> 하하…….

아무래도 마왕이라는 자리가 걸린 자리다 보니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하긴 말 한마디로 마왕이 될 수 있다면 그 고생을 하진 않겠지만.

결국 마왕 바이카르가 마왕 데미안에게 뭔가의 제안을 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듯 아주 편안한 말투로.

“마왕이 되는데 자격이 문제라…… 그렇다면 그에 맞는 자격을 갖추면 되겠군.”

“자격을 갖춘다고?”

“그렇다.”

“하, 인간 따위가 자격을 어떻게 갖춘다는 거지?”

한때 마왕 벨라 밑에서 집사도 했었는데.

마왕이라고 안 될 것 없긴 한데.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날 전혀 기억 못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순간 마왕 바이카르가 전혀 뜻밖의 말을 꺼내었다.

“마왕 후보에 올라와 있는 녀석들과 붙여보면 되겠군.”

마왕 바이카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지하 공동 안은 잠시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지금 저 녀석 무슨 말을 한 거야?

아니.

말이 쉽지.

지금 마왕급 녀석들과 날 싸움 붙이겠다는 건가?

마왕 데미안이 말뜻을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대전이라도 하자는 거냐?”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마왕 자리를 걸고 하는 승부라면. 설마 마왕 후보가 네가 말하는 인간 따위에게 지지는 않겠지?”

다시 정적.

마왕 데미안도 지금의 마왕 바이카르의 말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휘하의 마왕들은 마왕 데미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곧 마왕 데미안이 말을 꺼냈다.

“다른 마왕 후보들이 이긴다면? 남은 마왕 자리도 내놓겠다는 건가?”

“이 녀석이 진다면. 좋을 대로.”

“그 말.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재중이 형이 그 말을 듣고는 말했다.

<불멸> 이거 참. 저 녀석 진짜 널 마왕으로 만들 생각인가 본데?

<주호> 다른 마왕 후보들하고 붙으라는 건데요?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 내 레벨이 200대다.

반면에 지금 마왕 후보라고 나올 녀석들은 최소한 마왕 끝자락에 걸린 녀석들일 텐데.

그런 녀석들과 싸워이기라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장은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뭐 마왕이 되기 싫다면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마왕 바이카르가 포기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내가 마왕이 된다고 치자.

그렇게까지 해서 녀석이 얻는 게 뭐가 있지?

대전을 붙일 거라는 말에 마왕 데미안이 수긍하자 마왕 바이카르가 좀 더 조건을 내걸었다.

“마왕 선발전.”

마왕 바이카르의 말에 다른 마왕들 모두가 움찔했다.

흐음.

마왕 선발전이 뭐길래 저런 반응이지?

“설마 지금 저 녀석 하나를 위해 마왕 선발전을 열자는 건가?”

“아니. 어차피 마왕 서열도 한 번은 정리해야하지 않나. 다른 마왕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다. 마왕 올펠이 죽은 이상 네 쪽도 마왕 서열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테지.”

그 말에 마왕 데미안도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얼핏 녀석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왕 서열을 다시 정하는 대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확한 방식은 모르겠지만.

마왕 바이카르가 굳이 마왕 선발전을 내세운 걸 보면.

그 조건이 내게 마냥 불리한 조건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잘됐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마왕 데미안이 말했다.

“다른 마왕들의 의견도 들어봐야겠는데?”

“좋을 대로.”

“그럼, 좋다. 모두 한 번 모이기로 하지. 추후 연락을 다시 하겠다.”

그리곤 마왕 데미안과 휘하의 마왕들이 그 자리에서 포탈을 열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모두가 사라지자 마왕 바이카르가 날 보면서 말을 꺼냈다.

그것도 재밌다는 표정과 함께.

“이젠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게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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