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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90화 (978/1,404)

#990화 마왕의 핵 (8)

다른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서둘러서 시아트 마왕성 지하로 내려온 것도 다 이런 일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곤란한 일들.

그리고 그런 위험도의 최상단에 위치한 존재.

마왕 데미안과 더불어 마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마왕 중 하나.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녀석은 마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내 물음에 마왕 바이카르로 생각되는 녀석이 어둠 속에서 내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지하 공간을 격하고 우리에게 들려왔다.

웃는다고?

곧 조금은 재밌어하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웃음기가 녀석의 진중한 말에 배어 들려왔다.

“맞다면?”

방금 녀석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딱히 녀석은 자신을 감출 생각도 없어 보였고.

아무런 주저 없이 자신을 드러내었다.

젠장.

역시 마왕 바이카르였나?

혹시나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차라리 마왕 스티어 같은 녀석이 상대하기 편하지.

이건 마계에서 거의 끝판왕에 가까운 녀석일 것이다.

물론 다른 마계의 강력한 존재들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녀석들 중에서는 이 녀석이 가장 강력할 것이다.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마왕을 이렇게 많이 마주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긴 하네.

다른 유저들은 마왕 발자국 구경도 못 해본 판에.

<주호> 형, 곤란하게 됐어요.

<불멸> 아아. 확실히. 지금은 절대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녀석이 나왔네.

재중이 형 역시도 같은 생각인 듯 프로미넌스를 강하게 잡은 채 전방을 주시했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마왕 중에서도 서열 1위인 녀석이었다.

마왕 스티어 정도 녀석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아까 마왕 데미안만 봐도.

대략적으로 이 녀석이 어느 정도 강할 거라는 건 유추가 되었다.

아까의 멤버들이 다 모여서도 어쩌지 못한 마왕 스티어를 마왕 데미안은 그냥 찍어 누를 수준인데.

그렇다는 건 마왕 바이카르 역시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 이 자리는 우리에겐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저 녀석이 진심으로 작정하고 달려들면.

재중이 형은 상황을 살피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듯 내게 말했다.

<불멸> 이건 안 되겠다. 넌 빠져. 마신의 파편은 아쉽지만, 여기서 손을 떼자.

그 말대로 일단은 살아있어야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마왕 바이카르에게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다음을 기약하긴 어렵다.

화련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내 옆으로 바싹 붙었다.

<화련> 아, 그러니까. 좀 대비를 하고 오지.

<주호> 저 녀석이 대비를 한다고 될 것 같아요?

<화련> 으음. 그렇긴 하네.

화련에게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사실 지금 꽤 놀란 상황이었다.

우리가 정보를 흘린 건 분명히 마왕 데미안 쪽의 진영이었다.

이곳 시아트 마왕성에 먼저 도착한 것 역시 녀석들이었고.

당연히 반대 진영인 마왕 바이카르 쪽은 반응이 늦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적어도 우리가 마신의 파편을 빼내기 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떡하니 녀석이 막고 있으니.

중간에 정보가 샌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처가 너무 빠르잖아.

미리 이곳을 쭉 지켜보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계속 이곳을 살피고 있었던 거냐?”

그런데 설마 아니겠지라는 막연한 예상과 달리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을 해주었다.

“조금은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군.”

그냥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었다.

만약 마왕 바이카르가 마신의 파편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지하에 우리가 내려서는 순간.

바로 공격을 강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아주 느긋하게 우리가 내려오는 걸 기다려주었다.

심지어 지금도 그렇다.

분명히 마왕 올펠이 그랬듯이 충분히 결계를 만들어서 우리를 가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위해를 가하지 않는 중이다.

일단 녀석이 당장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는다는 정도가 그나마 위안이려나?

그런데 잠시 기다린 마왕 바이카르가 곧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네가 원하는 건 이것이겠지.”

녀석의 손 위에서 휘몰아치는 강력한 마력의 집약체.

아직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뭔가의 거대한 결정이 마왕 바이카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마치 주변의 어둠을 빨아들이는 듯한 아주 거센 맥박이 그 결정에서 느껴졌다.

어지간히 많은 타르석을 먹어 치웠는지 대량의 마력이 뿜어져 마왕성 지하 전체에 가득 흘렀다.

“마신의 파편…….”

대충 봐도 알겠다.

저건 마신의 파편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마신의 파편과는 좀 형태가 달랐다.

이전에 베르테니아 마왕성에서 봤던 녀석은 좀 더 무기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데.

지금은 그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마왕의 파편마다 모양이 다른 거려나?

아직 마신의 파편을 하나밖에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내게는 그런 차이를 분별할 경험이 부족했다.

저게 정말 마신의 파편이 맞는지도 솔직히 모르겠고.

그냥 지금.

마왕 바이카르가 이 장소에서 꺼내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유추해본 것이다.

굳이 이 지하에서 생뚱맞게 저런 아이템을 꺼냈을 리는 없으니까.

“이것을 전에 본 적이 있는 모양이군.”

그러고 보니 마왕 바이카르는 내가 마신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다.

녀석과 전투를 치른 적이 없기도 하고.

내가 마신의 파편인 테르타로스를 얻고 난 뒤에는 줄곧 유저들하고만 싸웠으니까.

마왕 올펠과 싸울 때도 마신의 파편은 꺼내놓지 않았었다.

일단은 모른 척 말했다.

“마왕 스티어가 여기 있다고 말해주던데?”

“그런가?”

다시 잠시의 침묵.

하지만 그 침묵과 달리 내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마왕 스티어가 자리를 비워서 쉽게 빼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신의 파편이…….

하필 제일 까다로운 녀석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아까 전에 우리를 마주쳤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때 분명히 마신의 파편 때문에 왔냐고 녀석이 물었지.

재중이 형도 마신의 파편을 확인하더니 바로 혀를 찼다.

<불멸> 쳇, 저 녀석이 이미 선수 친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다.

아직 마왕 바이카르가 마신의 파편에 손을 대지 않았기를 하는 생각.

하지만 녀석은 보란 듯이 마신의 파편을 손에 넣고 우리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꺼내 놨다.

<주호> 난감하게 됐네요.

어차피 다른 마왕이 손에 넣었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겠지만.

화련 역시도 마왕 바르카르가 가진 마신의 파편을 보더니 어이없는 듯 말했다.

<화련> 저게 정말 마신의 파편이야?

<주호> 네, 제 생각과는 다른 형태지만요.

그 말에 다시 마신의 파편을 빤히 바라보던 화련이 말을 이었다.

<화련> 그럼 망한 거네?

<주호> ……그런 셈이죠.

마왕 바이카르에게서 저걸 무력으로 뺏어올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힘들겠지.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만약 발록, 혹한의 얼음 여왕, 뱀파이어 로드가 다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지금 생각하기에 녀석들이 다 있었다고 해도 장담을 못 할 것 같았다.

마왕 데미안의 힘을 이미 눈으로 확인한 상태라.

녀석의 손에 마신의 파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렸다.

아마 조금 더 서둘러 왔더라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녀석이 언제쯤 저걸 획득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이상은.

예상하기에 마왕 스티어가 마왕성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인 듯한데.

그럼 우리가 아무리 빨리 왔더라도 이미 넘어갔을 것이다.

결국 다른 마신의 파편을 찾아야 하는 거려나.

그런데 여전히 이상한 점은 존재했다.

마신의 파편을 먼저 얻었으면 그냥 가버리면 끝 아닌가?

왜 굳이 이곳에 남아서 우리를 기다린 거지?

저 여유로 보아 간발의 차로 마신의 파편을 얻은 것도 아니다.

그럼 일부러 기다렸다는 건데…….

뭔가 모를 위화감.

그리고 어긋남.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한마디 말이 나왔다.

이건 그냥 감이다.

이 녀석.

분명히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뭘 원하지?”

그러자 어둠 속에서 녀석이 날 직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녀석이 곧 말을 꺼냈다.

“재미있군.”

녀석의 짧은 한마디.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제대로 녀석이 원하는 바를 찌른 모양이었다.

그게 확실히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불멸> 상황이 꽤 묘하게 흐르는데?

<주호> 네, 그리고 저 녀석. 애초에 우리에게 볼일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마왕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 난 네 녀석에게 볼일이 있지.”

설마 마왕 올펠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인가?

아니다.

애초에 마왕 올펠은 마왕 데미안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왕 바이카르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존재라는 거지.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 반대랄까.

적대적인 세력의 마왕을 죽여줬으니 녀석 입장에서는 나쁘지도 않을 터.

그런데 굳이 그런 공치사를 전하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또 말이 안 된다.

이번에는 꽤 재밌다는 듯 웃음 섞인 말이 들려왔다.

“설마 마왕 올펠 녀석을 인간들이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조금 틀린 점이 있긴 하다.

그건 마왕 스티어가 같이 싸웠으니 가능했다.

온전히 우리의 전력은 아니라는 거다.

뭐 오해는 오해로 남겨놔야 하나?

굳이 그런 말을 해서 우리의 전력을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

그때 마왕 바이카르가 나와 재중이 형을 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없이 무거우면서도 압박을 주는 듯한 웃음.

마치 괜찮은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그럼 미묘한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저 녀석에게 있어서 이건 어쩌면 지나가던 유희에 불과할 수도.

아무래도 마왕 올펠을 죽인 게 녀석의 흥미를 유발한 모양이었다.

“하여, 네 녀석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그러더니 마왕 바이카르가 손에 들린 마신의 파편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볍게 휘둘러 내게 던졌다.

쌔애액!

물론 그게 가볍게 던진 것처럼 보였지만.

내 스펙에서는 꽤 버거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녀석이 던진 마신의 파편을 두 손으로 받아내자마자 순간 내 몸이 형편없이 뒤로 밀려나면서 바닥에 스키드 마크가 타올랐다.

끼이이익!!

젠장.

가볍게 던진 게 이 정도라고?

어떻게든 자세를 제어해 그 넘치는 힘을 최대한 바닥 면으로 흘려보내자 겨우 몸이 멈춰 섰다.

그것도 십여 미터가 밀려 나간 상태로.

이거 레벨 200대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온전히 받아내자 마왕 바이카르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던져놓고 설마 못 받을 거라 생각한 거냐?

그와 함께 강한 의문이 들었다.

방금 녀석이 기회를 준다고 했던가?

그것도 마신의 파편을 통째로 넘긴다고?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내게?

이건 상상조차도 못 했던 일이라 그런지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들었다.

재중이 형과 화련 역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밀려 나간 나와 마왕 바이카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상황이 이상하기는 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체 저 마왕 녀석.

무슨 꿍꿍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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