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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89화 (977/1,404)

#989화 마왕의 핵 (7)

『 마왕의 핵 / ?? 』

설명에 물음표만 있는 아이템.

이런 아이템은 예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제한이 있어 특성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특수한 기능이 있는 경우 이런 식으로 옵션 확인이 불가능했다.

사용 방법이나 기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템들은 사실상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모 아니면 도.

까보고 좋은 게 나오면 다행이지만 아닐 경우는 돈만 날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하지만 이 아이템은 다르다.

그냥 아이템 이름에서부터 이미 마왕이 들어간다.

값어치가 없을 수가 있나.

당연하게도.

이 아이템은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원하던 아이템일 것이다.

전신, 패황 할 것 없이.

원래라면 경매로 처분을 했어야 한다.

솔직히 부르는 게 값일 정도.

하지만 화련은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내게 넘겨주었다.

뒤처리를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하고.

중립연합장이 먼저 자신의 거점으로 떠서 다행이지.

지금 상황을 봤으면 기겁했을 지도 모르겠다.

화련이 별일 아닌 것처럼 관심 없는 듯 말했다.

“그래서 어딘데?”

“일단은 이곳 마왕성 지하죠.”

이미 마왕 스티어를 만나면서 몇 번 시아트 마왕성을 돌아다녀 어지간한 지형은 눈에 익혀두었다.

다만 핵심이 되는 시설들은 접근이 불가능했다.

마왕 스티어의 부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으니까.

그런 시설에는 접근 자체가 허용이 되지 않았다.

허락을 받고 싶어도.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 설명을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지하에 갈 수는 있는 거야?”

“모르죠.”

마왕 벨라 때야 애초에 내가 집사이기도 한데다가 마왕 벨라가 직접 데리고 간 거라 아무 제한이 없었다.

거기다 마왕 벨라에게는 부하라고 할 만한 녀석이 언데드 드래곤 하나뿐이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마왕성 생활이 훨씬 좋았다.

제한 없는 권력이라.

솔직히 마왕 벨라를 찾으려고 하는 것도 다시 한 번 그때의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마왕 벨라는 일단 마왕 스티어 같은 녀석과 달리 확실한 우군에 가까우니까.

당장 상황이 우세하게 바뀌니까 바로 뒤통수부터 치는 마왕 스티어하고는 성향 자체가 달랐다.

“일단 가보죠.”

나와 재중이 형, 화련이 마왕성 대전을 나서 몇 번의 복도를 거치는 동안 딱히 우리를 저지하는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한적했나 싶을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복도의 모습.

재중이 형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까 거의 다 죽은 건가?”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마왕 스티어가 대전으로 불러들인 마왕성을 지키던 몬스터들의 수가 제법 되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마왕 데미안이 데리고 온 다른 마왕들의 손에 모두 찢겨나갔다.

애초에 휘하의 부하 정도 수준의 녀석들이 마왕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마왕 스티어는 시간 벌이용 정도로 소모해 버렸고.

덕분에 지금 복도에는 그 어떤 몬스터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편하게 된 셈이었다.

“녀석들을 다 죽이고 가야 하나 했는데 잘 됐죠.”

마왕에게나 쉬운 녀석들이지.

사실 우리에게는 꽤 버거운 몬스터들이다.

이런 상황에 마왕을 잡은 게 사실상 거의 로또나 마찬가지.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마왕 올펠이 시점에 잡혀 나갈 녀석도 아닐 것이다.

거의 마계 역사를 뒤엎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내려가는 길을 찾아 계속 걷다 보니 마왕성 지하로 가는 계단이 보였다.

“이곳도 나름 구조가 비슷하네요.”

이미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다 둘러봐서 내게는 그 구조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최단 거리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자, 그럼 뭐가 기다리고 있나 한 번 내려가 볼까?”

재중이 형이 먼저 앞장서서 내려가고 나와 화련이 그 뒤를 뒤따랐다.

중간에 감각을 퍼트려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는데 딱히 감각에 걸려드는 게 없었다.

재중이 형 역시도 근접 거리에서는 감지 능력이 꽤 좋기 때문에 둘 다 감지해내지 못하는 경우만 빼면 특별한 위험 요소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조금 더 안심하면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의 착각이었다.

지하로 내려서자 갑자기 뭔가의 한기가 내 감각을 깊게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재중이 형도 지하로 내려서자마자 바로 프로미넌스를 꺼내들고는 어둠 속의 정면을 주시했다.

그것도 꽤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프로미넌스에 화염을 일으켜 올리지 않았다.

아.

이런 어둠 속에서는 우리 위치나 환경을 알려주는 셈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화염을 배제한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어둠 속을 노려보면서 혀를 찼다.

“쳇, 이런 녀석이 아직도 남아 있었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의 기운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자 감각이 상대적으로 약한 화련마저도 안색을 확 굳혔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진동과 함께 강렬한 압력이 우리에게 걸려왔다.

웅웅웅!!

쿠그그긍!!

“으으…… 뭐가 이렇게……!”

그러더니 갑자기 화련의 한쪽 무릎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풀썩 주저앉았다.

화련이 들고 있던 보랏빛 레이피어 주인을 보호하는 결계를 만들어 무섭게 반항을 했지만.

저 압력에 버티기는 무리였다.

동시에 내게도 전해지는 무겁게 전신을 내리누르는 듯한 감각.

신체의 아주 작은 미세한 감각들 모두가 거칠게 쭈뼛 선 채로 내게 계속 경고를 보내왔다.

정말 위험하다는.

“형, 이건…… 마왕 올펠 이상이에요.”

왜 지하를 내려오기 전까지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정도 수준의 기운이라면 멀리서 무조건 느껴졌을 텐데.

마치 정말 갈무리가 잘 된 것처럼 지하를 내려오자마자 우리를 내리 눌렀다.

“나도 알아.”

긴장으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모습.

이제껏 재중이 형이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나마 프로미넌스 역시도 결계를 만들어 저 압력을 상쇄해 주어서 버티고 있지만.

만약 그것도 없었다면 벌써 이 자리에 주저앉았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꺼내 녀석의 압력을 버티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맨몸으로 버틸 만한 압력은 아니었으니까.

최소한 이 정도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 녀석의 기운이 겨우 대항할 수 있었다.

마왕 스티어나 마왕 올펠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저 앞에 뭐가 있는 거지?

굳이 기억 속에서 비교를 하자면.

대천사의 무덤에 있던 대천사 루스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

마계에 이런 녀석이 또 있었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그런 강력한 녀석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이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죠?”

아직 시작도 못 해 봤지만.

재중이 형도 알고.

나도 안다.

지금 녀석에게 덤벼들면.

백 프로 자살이라는 걸.

어느 정도껏 상대가 강해야 게임이 되지.

붙기도 전에 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붙는 건 이미 틀린 싸움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불멸> 내가 시간을 벌어주면 빼올 수 있나?

<주호> 마신의 파편만 빼오라는 거죠?

<불멸>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자. 어차피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그거니까. 굳이 저 녀석을 잡을 각오로 싸울 필요는 없어.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불멸> 솔직히 저 정체 모를 녀석을 잡을 자신도 없고 말이야.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일 거다.

재중이 형도 시간을 버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주호> 장담할 순 없어요. 전에는 접근이 가능해서 금방 빼올 수 있었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불멸> 모험이다 이거지?

재중이 형이 이 모험의 성공 여부를 생각하는지 잠시 조용해졌다.

만약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다면.

여기서 잠시 후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발을 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봐야 했다.

곧 다른 마왕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이곳에 자리 잡을 테니까.

그때 가서는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온다.

사실상 지금이 이 마왕성에서 다른 마왕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신의 파편을 빼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거다.

잠시 고민을 하던 재중이 형이 나와 화련을 슥 보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불멸> 마신의 파편은 다른 마왕성에서 얻으면 된다지만…… 네가 여기서 죽으면 정말 답 없어.

<주호> 그럼?

<불멸> 일단은 후퇴. 저 녀석이 뭔진 몰라도 괜히 결계 같은 거 만들면 나가지도 못하니까 바로 빠지자.

재중이 형은 바로 결론을 내렸다.

나도 그 판단이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그런데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뭔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강력한 구속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차가운 목소리가.

그러면서 그 한마디가 공기를 내리누르는 무겁고 진중한 느낌까지 함께 주었다.

“마신의 파편을 찾아온 거냐.”

흠칫.

누군지 몰라도 우리의 의도를 확실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거기다 저 녀석은 적어도 이곳에 마신의 파편이 있다는 걸 확신하니까 저런 물음이 나온 것이다.

아니 사실 물음도 아니지.

그냥 확인 정도랄까.

재중이 형이 그런 녀석에게 물었다.

“넌 누구지? 마신의 파편은 어떻게 아는 거냐?”

녀석이 마신의 파편을 안다는 것 자체로 어느 정도 힌트는 들어온 셈이었다.

<주호> 형, 저 녀석 아무래도 마왕인 것 같아요.

<불멸> 그래, 그게 아니면 마신의 파편을 알 리가 없지.

마신의 파편은 말 그대로 마왕성의 비밀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말로 마왕들만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뭐 조금 더 확장을 하자면 마계 경매장의 간부 정도나 정보로 알고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지금 이곳에 와 있을 이유가 없었다.

판매자와 의뢰자의 관계이기는 한데.

마왕과 마계 경매장의 간부들이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말하기는 또 어려웠다.

특히 이런 마왕성의 지하 시설 같은 곳에 대놓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싸움을 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거기다 가장 걸리는 건.

마계 경매장에 이 수준의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을까 하는 의문.

만약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 있다면.

그냥 그 녀석이 마왕을 해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전에 마계 경매장에 갔을 때에는 이렇게 강한 녀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계 경매장은 제외.

그럼 남은 건 마왕.

혹은 또 다른 제3의 존재들인데.

아직까지는 마왕 말고는 생각나는 녀석들이 없었다.

그 물음에 녀석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녀석이 느리게 말을 꺼냈다.

다소 지루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 말투가 좀 나른한 듯 하기도 했다.

“발록의 변형 무기인가.”

어둠 속에서 재중이 형이 완전히 기척을 감추고 화염을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재중이 형이 가진 무기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이미 인지력에서 이쪽이 확연히 밀리잖아.

적어도 녀석은 우리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우리는 녀석을 확인조차 못한 상태다.

발록의 무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긴장한 것 같지도 않아.

휴.

잠시 생각해보자.

마왕이면서.

위에 있던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강한 녀석.

거기다 마왕 올펠보다 윗줄에 있을 만한 녀석이…….

그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딱 하나 생각하는 녀석이 존재했다.

<주호> 형,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은데요.

<불멸> 어, 나도 지금 그 생각 중이다.

재중이 형 역시도 눈치챈 듯했다.

마계에 이 정도로 강한 녀석은.

딱 하나밖에 없다.

아까 마왕 스티어를 쫓아나간 마왕 데미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에야.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어둠 속을 향해서 물었다.

“혹시 넌 마왕 바이카르인가?”

제발.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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