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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85화 (973/1,404)

#985화 마왕의 핵 (3)

《 마왕 스티어가 고유 결계를 시전합니다. 》

《 마왕 스티어를 처치하거나 큰 피해를 입히면 고유 결계가 해제됩니다. 》

당연하다는 듯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마왕 스티어는 마왕 벨라와는 다르다.

그걸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은 꽤 뼈아프게 돌아왔다.

물론 그 사실 역시 이전에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상황만 달라진다면.

이 녀석은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성향을 가진 녀석이다.

지금까지야 우리에게서 얻을 이득이 있으니까 협력하는 척했겠지만 애초에 마왕이라는 존재는 인간들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녀석들이 아니니까.

《 마왕 스티어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마왕 스티어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마왕 스티어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

나도 알아.

시스템 메시지가 굳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저 녀석이 우리와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너무 나쁘다.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급히 다가와 서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참. 저놈, 물에 빠진 놈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네.”

그러면서 프로미넌스를 앞으로 들고 마왕 스티어를 향해 들어올렸다.

무심결에 재중이 형의 무기를 봤는데 이상할 정도로 불꽃이 흐려져 보였다.

<주호> 괜찮겠어요?

<불멸> 아니. 전혀 안 괜찮지.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대답해 주었다.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리고는 지금 처한 상태를 알려주었다.

<불멸> 이 녀석, 내구도가 엉망이야. 한 번 더 붙으면 중간에 깨진다.

역시 그런가.

이미 프로미넌스는 마왕 올펠과의 전투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한계까지 혹사된 상태일 것이다.

지금 유독 약하게 보였던 건 내 착각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말은…….

고개를 돌려 전신이 들고 있는 무기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는 옅은 빛을 내고 있는 대검.

휴.

저쪽도 만만찮네.

패황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가 스스로 내구도를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고는 하나, 지금은 내구도 바닥에서 조금 차오른 수준일 것이다.

화련 역시 마찬가지.

보라색 레이피어가 그 힘을 다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만 봐도 내구 상태가 어떤지 너무 잘 보였다.

그나마 우리 중에서는 내가 가진 르아 카르테와 라페르나, 테르타로스 정도가 내구가 닳지 않은 무기에 속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외에는.

마왕 올펠을 흡수해서 강해진 마왕 스티어와 붙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녀석과 붙어서 이길 수 있느냐를 물어본다면…….

이건 너무 희망찬 이야기지.

거기다 문제는 단순히 마왕 올펠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 문제를 너무 잘 아는 재중이 형이 표정을 굳히면서 내게 말했다.

“이번에는 쫄따구들도 많다.”

그 말에 화련, 전신, 패황까지 모두 안색을 굳혔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자 수도 없이 많은 마왕 스티어의 부하 몬스터들이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단순히 마왕 올펠 하나만을 대상으로 싸우는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마왕 올펠이 어떻게 보면 정말 어리석었다고 해야 하나.

보통의 마왕은 자신들의 부하를 잔뜩 거느리고 다녀야 정상일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만약 마왕 올펠이 휘하의 부하들을 데리고 왔다면.

우린 절대로 마왕 올펠을 잡지 못 했을 것이다.

마왕이 위협적인 건 물론 본인이 강한 것도 있겠지만.

그 부하들의 쪽수도 포함이니까.

아무렇게나 마왕성을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저 수많은 몬스터들에 있었다.

적어도 저들을 넘어야 일단 마왕 레이드라는 게 성립될 테니.

패황이 이를 꽉 물고는 말했다.

“산 넘어 산이군.”

“딱히 부정하고 싶진 않네요.”

그때 마왕성 대전의 입구 쪽에서 뭔가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퍼엉!!

콰앙!!

“저건……?”

정문 바깥에서 뭔가가 충돌하는 것 같은 소리들.

돌격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폭격이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내 물음에 화련이 대답해 주었다.

“이제 도착한 모양이야. 우리 쪽 애들.”

분명히 중간에 결계가 해제되면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각 연합 사람들에게 연락을 넣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전사 형에게 그랬던 것처럼.

전신과 패황도 정문을 바라보는 것을 봐서는 저들 역시도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지금 저 정문 앞에는 수도 없이 많은 유저들이 모여서 농성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곳으로 진입하기 위해.

그러려면 결국 정문의 결계를 뚫어야 한다.

“바깥에서 뚫을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말은 애써 아껴두었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라는.

내 물음에 화련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혀 어림도 없다는 듯.

“마왕 올펠의 결계도 못 뚫었는데 저들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역시 그렇겠죠.”

마왕 올펠도 그렇고.

마왕 스티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저 결계를 깨지 못할 터.

결국 어떻게든 마왕 스티어를 잡아야 한다.

혹은 이전의 마왕 올펠과 같이 심대한 타격을 준다던가.

화련이 날 보면서 물었다.

“너 무슨 방법 없어?”

“네?”

“매번 뭔가 방법을 만들어내잖아.”

그렇게 기대하는 화련의 표정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요.”

“있어?”

방법이 있다는 말에 재중이 형과 전신, 패황이 모두 내게 고개를 돌렸다.

중립 연합장까지도.

“으음, 사실 잘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건 시간이 꽤 필요해요.”

“마왕 올펠 때처럼?”

“네, 좀 다르긴 해도. 어쨌든 시간이 필요한 건 맞아요.”

“그럼 해 봐. 당하고 사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저 녀석 뺨이라도 한 대 때려줘야겠어.”

음.

화련이 그간 우리에게 당한 게 꽤 될 건데…….

그때마다 저 생각을 했다면.

내 뺨은 남아나질 않았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형, 시간이 필요해요.”

“그랜드 크로스를 쓸 생각이냐?”

그 물음에 슬쩍 마왕 스티어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마왕의 모습.

그 모습이 너무나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치 이미 그물 안에 들어온 먹이라는 듯.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여기서 못 벗어난다는 걸 너무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라고 해도 그렇겠다.

무엇보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만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의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벅차다.

그런 상황이니 저런 여유가 나올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경계를 낮춘 것도 아니었다.

재중이 형의 입에서 그랜드 크로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녀석이 몸을 슬쩍 움직이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다른 건 다 몰라도 대천사의 검으로 쓰는 그랜드 크로스는 녀석이라 할지라도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런 시간을 줄 것 같나?”

마왕 스티어도 너무 잘 안다.

제대로 된 그랜드 크로스에는 준비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걸.

만약 녀석은 내가 그랜드 크로스를 시전하는 모습만 보여도 바로 이빨을 드러낼 확률이 높았다.

아니.

무조건 내게 달려들 것이다.

지금의 저 여유를 버리고.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라고.

최소한.

내가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그랜드 크로스는 절대 정답이 아니었다.

녀석이 이를 드러내자 내가 졌다는 듯 두 손을 슬쩍 들어올려 보였다.

“아아, 그랜드 크로스는 안 쓰지. 됐냐?”

그러자 녀석이 움직이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대전 끝에 위치한 마왕의 화려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말했다.

<불멸> 큭. 꼴에 마왕이라는 걸 엄청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왕 올펠에게 미친 듯이 두들겨 맞던 주제에.

<주호> 그래도 저 여유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잖아요.

재중이 형이 날 슬쩍 보면서 물었다.

<불멸> 뭔가 수가 있긴 한 거야?

그러면서 내가 들고 있는 테르타로스와 라페르나를 바라보았다.

이 두 검을 동시에 들고 있는 경우가 없어서 물어보는 거겠지.

사실 이 두 개의 검이 그다지 상성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서로 조합을 하려고 해도 딱히 좋은 패가 나오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랜드 크로스를 쓰려면.

르아 카르테와 라페르나를 들어야 하는데.

지금 이 두 개의 검을 들고 있으니까 재중이 형도 의아해할 수밖에.

<주호> 아, 두 검을 동시에 마왕 올펠에게 박아넣으니 흡수도 되고 레벨도 오르던데요?

<불멸> 호오. 그래?

그러더니 재중이 형의 시선이 마왕 올펠이 죽었던 자리로 옮겨갔다.

<불멸> 드랍도 된다 이거지?

<주호> 네.

<불멸> 그럼 대천사의 검도 더 성장했겠네. 마왕까지 잡았으면 더. 그걸로 승부를 거는 거냐?

재중이 형 말이 맞았다.

정확히는 앞의 말만.

<주호> 아뇨. 성장한 건 맞는데, 마왕을 직접 잡기에는 부족해요.

테르타로스도 마왕의 옵션을 흡수하면서 좋아졌고.

라페르나도 마왕을 잡으면서 역시 좋아졌다.

하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었다.

최소한 내 레벨이 저 녀석 근처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상은.

정면 승부로는 당장 답이 없다는 거지.

완전히 그랜드 크로스를 먹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주호> 지금은…… 준비해 둔 게 먹히길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불멸> 준비?

<주호> 네, 잘하면…… 저 녀석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아주 엄청난 빅엿을.

휴.

시간을 끌어달라고 말하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 지금 전투를 벌이면 백이면 백.

다 죽어 나갈 것이다.

딱히 그렇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고.

여기서는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어.

재중이 형에게서 시선을 떼고 마왕 스티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말한 조건. 아직도 유효하나?”

“조건?”

“대천사의 검 말이야.”

그리고는 슬쩍 라페르나를 녀석의 앞에 흔들어 보였다.

왼쪽으로 흘리자 왼쪽을.

반대편으로 흘리자 역시 그쪽으로 녀석의 시선이 돌아갔다.

어지간히도 원하는 모양이네.

“너도 알지? 우리 모험가들은 죽어도 이걸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아마 확률상 어쩌면 떨어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말에 마왕 스티어의 표정이 싹 굳었다.

과연 녀석이 유저들을 안 죽여 봤을까?

이미 꽤 죽여 봤을 것이다.

물론 녀석이 몬스터에 속하기 때문에 유저가 죽으면 꽤 높은 확률로 드랍을 하긴 하겠지만.

유저가 들고 있는 그 많은 아이템 중에 라페르나를 떨어뜨릴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녀석이 우릴 살려주는 조건으로 라페르나를 거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고.

보통 유저 입장에선 이 자리는 그냥 수많은 레이드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죽어도 다시 시도하면 되는.

하지만 난 여기서 죽으면 안 되니까.

이렇게 힘들게 돌아가는 것이다.

적어도 여긴.

내가 죽을 자린 아니다.

무엇보다 녀석이 원하는걸.

줄 수 있는 이상에야.

“대천사의 검.”

내 말에 녀석의 시선이 대천사의 검에 꽂혔다.

마왕 스티어가 이걸 절실히 바라는 이유는 너무 잘 알겠다.

녀석이 봤던.

그랜드 크로스.

그 마왕 올펠조차 한 번에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대천사의 최종기.

이것만 쓸 수 있다면.

지금 마왕 올펠을 흡수해서 강해진 녀석에게 날개를 다는 격이다.

어쩌면 마계 마왕 순위의 꼭대기에 있는 마왕 바이카르를 누르는 것도 꿈은 아닐 터.

슬쩍 인터페이스에 있는 시간을 봤다.

흐음.

이 정도면 되려나?

곧장 들고 있던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녀석이 있는 장소로 집어던졌다.

휘이익!!

콰득!!

그리곤 정확히 마왕 스티어가 앉아있던 옆의 벽에 가서 꽂혀 들었다.

설마 내가 그걸 그냥 줘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마왕 스티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달라며?”

“……음.”

“싫으면 다시 주던가.”

“아니다!”

그러더니 바로 손을 뻗어 라페르나를 손에 쥐었다.

파지직!!

뭔가 마왕의 손길에 반발하는 것 같은 스파크가 터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라페르나를 꽉 쥐었다.

그리곤 바로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구나. 대천사의 힘이!”

적의 전력을 더 올려주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패황이 날 책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신은 눈썹을 조금 꿈틀거렸고.

화련은 뭔가 생각이 있겠지 하면서 한숨을 잠시 쉬는 정도였다.

그런 그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화련이 내게 말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

“아, 지금은 웃어야 할 때라서요.”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쿠구구궁!!!

“때마침 밖에 손님들이 오셨네요.”

《 마왕 스티어의 결계가 강력한 외부의 충격으로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마왕을 때려잡으려면. 역시 마왕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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