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4화 마왕의 핵 (2)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무려 마왕을 잡고 나온 아이템들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 아이템들에 욕심을 내지 않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문제는.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서버 내에서 이름을 날리는 꽤 잘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누구 하나 중도하차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물건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오더니 슬쩍 물었다.
“좋은 거 나왔어?”
“아직 확인을 못 해 봤어요.”
내 대답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농담하듯 말했다.
“미리 좀 빼돌리지 그랬냐.”
“그럼 저기 눈 시뻘겋게 뜨고 있는 녀석한테 뒤통수 맞았을 걸요.”
그러면서 눈짓으로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를 입고 있는 패황을 가리켰다.
분명히 아까 완전히 박살났었는데.
현재는 어느 정도까지 내구가 복구되어 있는 게 보였다.
설마 자동 복구 기능이라도 있는 거려나?
저 정도의 플레이트라면 전사 형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 패황이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를 절대 내놓을 리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녀석을 죽여서 뺏지 않는 이상에야.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 했다.
“화련도 있고 말이야.”
“음, 그 화련은 빼돌리자고 하던데요?”
“크큭, 재밌네.”
우리가 자기 이야기를 하자 화련이 눈썹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실없는 소리들은 됐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화련이 마왕 올펠을 잡고 드랍된 아이템들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전신과 패황이 우리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는 말했다.
“일단 확인부터 해봐야겠죠?”
그런데 그때 뜻밖의 존재가 앞으로 나섰다.
흠.
이건 좀.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앞에 선 건 다름 아닌 마왕 스티어.
사실 지금의 마왕 토벌에 가장 공이 큰 것은 저 마왕 스티어였다.
한동안 전투에서 쓰러져 있기는 했어도 저 녀석이 마왕 올펠에게 가장 많은 대미지를 주었다는 건 여기 있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니까.
실제로 전체 누적 대미지의 절반 이상을 저 마왕 스티어가 주었을 것이다.
나야 중간에 그랜드 크로스를 한 방 먹이고.
그다음에 마무리한 정도겠지.
기여도로 따지자면 마왕 스티어가 가장 우선 순위였다.
그런데 마왕도 드랍템에 기여도가 있는 거려나?
일단 드랍템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저가 몬스터를 잡고 나온 부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이라.
마왕은 일종의 NPC에 해당할 텐데.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혹시 마왕도 분배에 참여할까요?”
“글쎄? 일단 기다려봐야지.”
마왕 스티어의 등장에 모두가 침을 삼켰다.
이 자리에서 저 마왕 스티어가 참여하면 최소 절반에 가까운 아이템을 넘겨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저 녀석의 한 마디에 우리 몫이 확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곧 마왕 스티어가 우리를 한 번 스윽 둘러보았다.
저 입에서 좋지 않은 말은 나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데 의외로 녀석은 드랍된 아이템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대신 녀석은 마왕 올펠의 잔해가 남아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다들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마왕 스티어를 바라보았다.
마왕 올펠의 흔적에 다가간 녀석이 손을 뻗었다.
순간 마왕 올펠이 있던 자리에서 뭔가의 시커먼 기운이 회오리치듯이 퍼져 나왔다.
“저건……?”
“흐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가 본데?”
마왕 스티어의 능력을 우리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지금의 행동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왕 스티어가 뻗은 손으로 검은 기운이 뭉치더니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마왕 스티어의 주변으로 더욱 진득하게 어둠이 압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보는 게 아마 마왕 스티어의 능력이려나?
아니면 다른 마왕들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쳤는데 곧 마왕 스티어가 마왕 올펠의 흔적에서 나온 모든 어둠을 흡수하고는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들썩였다.
“하하하하! 아주 좋구나!”
마왕 스티어가 웃는 것과 동시에 폭사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기세에 몸의 감각이 경고를 보냈다.
저 녀석…….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거 같은데?
줄기차게 뿜어내는 폭발적인 기세만 봐도 이전의 마왕 올펠과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강해졌으려나?
이걸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 재중이 형과 전신, 화련, 패황 모두 표정을 굳혔다.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설마 마왕 올펠의 힘을 흡수한 걸까요?
<불멸>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피부로 찌릿찌릿 전해져 오는 날카로운 감각만 봐도 마왕 스티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실히 와 닿았다.
당장 저 녀석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지금 이곳에 있는 전력으로 녀석을 어떻게 해보기에는 무리였다.
같은 마왕이 우리 쪽에 있었으니까 그나마 마왕을 상대했던 거지.
<불멸> 여차하면 튈 준비 해.
<주호> 네,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는 바로 화련에게 말했다.
<주호> 지금 한가하게 분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내 급한 메시지에 화련도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련> 나도 알아.
그리고 전신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주호> 우리끼리 싸울 때는 아닌 것 같죠?
그 말과 함께 전신은 다시 전투 준비를 했다.
역시 이쪽도 눈치가 빠르네.
<전신> 이제 저 녀석이 적인 건가?
<주호> 높은 확률로요.
패황도 마찬가지.
<주호> 일단 분배는 나중으로 미루죠.
<패황>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군요.
한 번 더 패황이 버텨준다고 하더라도 아까와 같은 전투는 불가능했다.
지금은 마왕 스티어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야겠지.
하지만 항상 장밋빛 생각은 맞지 않는 편이다.
“크흐흐흐. 그래. 이 힘이지.”
뭔가 심취해 있는 것 같은 마왕 스티어의 기세가 지금은 우리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죽은 마왕 올펠에게서 빠져나온 검은 마력을 갈무리한 마왕 스티어가 몸을 우리에게 돌렸다.
녀석의 검은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이 우리를 한 번 쭉 훑고 지나가자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확실하다.
녀석은 지금.
마왕 올펠.
그 이상이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레벨이 올랐지만.
저 녀석이 마왕 올펠을 잡아먹고 파워업한 것에 비하면…….
정말 나릇한 표정으로 우리를 둘러보던 녀석의 입이 드디어 떨어졌다.
“우선 네 녀석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군.”
이건…….
좋지 않다.
재중이 형 역시 녀석의 말투에 표정이 굳었다.
이전만 해도 분명히 동맹이니 어쩌니 하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에게 대우를 해주는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하대를 하며 낮추어 말했다.
마치 부하에게 말을 하듯이.
그런 녀석에게 물었다.
“원하는 걸 얻었나 봐?”
“그렇지. 크크크큭. 설마 마왕 올펠을 네 녀석이 잡아줄 줄이야.”
녀석 입장에서는 다 놓친 물고기를 다시 건져 올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마왕 올펠이 날 죽이러 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빠져나갔다면 지금 저렇게 웃고 있지 못할 테니까.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르다더니.
급해 죽을 것 같을 때는 우리와 손을 합쳐 싸우더니 지금은 전에 그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도가 변했다.
그때 재중이 형이 마왕 스티어를 보면서 물었다.
“그건 네 능력인가?”
재중이 형이 묻고 싶은 건 바로 마왕 스티어가 마왕 올펠의 흔적에서 어둠을 끌어내 빨아들인 게 본인의 능력인지였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 다른 마왕들을 죽이면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지금 상황에서는 똑같겠지만.
이후에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는 명확히 갈라진다.
“그게 왜 궁금하지?”
“같이 싸운 전우끼리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지 않아?”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시선은 마왕 스티어를 보며 내게 말했다.
<불멸> 그랜드 크로스는 가능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레벨업해서 바로 쓸 수 있어요.
<불멸> 좋아. 일단 대기.
여기서 마왕 스티어를 확실하게 누를 수 있는 건 지금은 그랜드 크로스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가진 패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마왕 스티어가 그랜드 크로스를 맞아줄 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전보다 더 강해진 상태라…….
휴.
산을 넘었더니 다시 산이네.
그런 마왕 스티어를 보면서 물었다.
이전에 추측했던 녀석의 계획을.
“천계와 손을 잡을 생각이 아니었나?”
애초에 녀석은 다른 마왕들을 견제하기 위해 천계와 손을 잡을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마왕 올펠을 잡고 난 뒤 그 가능성이 보이는데 녀석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설마 내 예상이 틀린 거였나?
마왕 스티어가 크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치 내 의도를 안다는 듯.
“이젠 굳이 천계의 힘이 필요 없지.”
필요 없다……?
그러자 순간 녀석이 할 법한 생각이 스쳐갔다.
“지금 네가 충분히 강하니까?”
“크크크큭. 그렇지.”
그때 마왕 스티어와 내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정확하게는 내가 들고 있는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에.
하.
역시 녀석의 태도가 돌변한 게 이것 때문인가.
왜 나를 그렇게 경계한 건지 알겠다.
이젠 내 천계의 힘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녀석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다.
같이 싸우면서 녀석도 분명히 봤었다.
라페르나의 위력을.
거기다 마왕 올펠을 끝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진 것까지.
녀석이 보여주는 지금의 태도는.
명백히 경계였다.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만 봐도.
어쩌면 마왕에게는 사형 선고가 될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
지금 이 자리에서 녀석이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건.
바로 나다.
고개를 돌려서 화련과 전신, 패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녀석이 우릴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이미 녀석과의 동맹 관계는 깨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저렇게 강한 힘을 가지게 된 이상.
더 이상 유저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테니.
결국 전신과 패황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저들은 이번에 비공정 도크를 얻기 위해 돈을 엄청나게 썼었지.
그게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으니 표정이 고울 수가 있나.
음.
이건 좀 미안한데?
솔직히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진짜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갑자기 마왕 스티어가 변덕 부릴 걸 어떻게 알겠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싸운 전우였던 녀석이 미쳐 돌아가는데.
재중이 형이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적이 많지 않았나? 이런 식으로 하면 감당이 안 될 텐데?”
이건 다른 마왕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 마왕성에서 마왕 올펠을 같이 죽였으니.
분명히 그들에게 표적이 될 터.
그러자 마왕 스티어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좋은 핑계가 있지 않나. 천계의 힘.”
젠장.
마왕 주제에 머리를 엄청 굴렸는데?
저 녀석은 지금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을 내게 뒤집어씌울 요량이었다.
그리곤 녀석이 내게 말했다.
“그 검을 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역시 이걸 원하고 있었네.
그런 녀석을 보며 라페르나를 흔들면서 말했다.
“자신 있으면 와서 한번 가져가 보시던가?”
이젠 협상 결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