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83화 (971/1,404)

#983화 마왕의 핵 (1)

결정이 나자 주저 없이 검을 들어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마왕 올펠의 가슴 정중앙에 그대로 박아 넣었다.

푸욱!!

“커어억!!”

곧 마왕 올펠의 끊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순백의 검신에서는 더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한 빛이 폭사되며 마왕 올펠을 그대로 녹여갔다.

성장형 아이템.

악 계열 몬스터나 유저를 처치할 시 성장하는 특성을 가진 천계의 검.

《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가 마왕 올펠의 격에 반응합니다. 》

《 처치 대상의 등급이 높아 라페르나의 성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의 바로 옆에 꽂혀 있는 밤하늘을 닮은 칠흑의 검이 동시에 동조했다.

새까만 검신으로 뭔가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펙트가 생성되어 마왕 올펠의 신체를 그대로 잠식해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 테르타로스가 마왕 올펠을 흡수하고자 합니다. 》

《 허락하시겠습니까? 》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나오자마자 테르타로스와 라페르나를 쥐고 있던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혹시나 이 메시지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솔직히 지금 벌인 일은 반쯤은 모험이었다.

테르타로스와 라페르나를 동시에 마왕 올펠에게 박아 넣는 행동.

두 검 모두 대상에 막타를 쳐야 해당 특성을 발휘하는 검들이었다.

그런데 항상 둘 중에 하나만을 써서 막타를 쳤기에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상태였는데.

막상 두 검 중 하나로 막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혹시 두 개의 검을 동시에 써서 막타를 쳐보면 어떨까?

어쩌면 둘 중 하나의 검의 특성만 적용될 수도 있었다.

아니.

높은 확률로 그렇게 됐을 테고.

그런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쪽의 특성이 너무 아쉬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모험을 걸었다.

둘 다 해보자.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모험은 지금 꽤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 한 쪽의 특성만 발휘되는 것이 아닌.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

마신의 파편 테르타로스.

모두의 특성이 동시에 발동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완전 사기지.

어쩌면 버그일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어느 누가 대천사의 검과 마신의 파편을 동시에 들고 이 짓을 해볼까?

내가 보기엔 그런 유저는 전 서버를 뒤져도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선.

아무도 해보지 않았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래. 흡수해.”

마치 블랙홀이 주변의 별을 빨아들이듯.

게걸스럽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마왕 올펠의 신체를 조각조각 빨아들이는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내려다보았다.

《 테르타로스가 마왕 올펠의 성질을 획득했습니다. 》

《 테르타로스가 마왕 올펠의 잔영에서 능력을 추출합니다. 》

《 마왕 올펠 LV.1의 특성 중 일부 획득 가능. 》

《 흡수한 추출 목록 중 일부를 테르타로스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

《 테르타로스의 옵션 목록에 적용할 능력과 스킬을 선택해주세요. 》

테르타로스가 마왕 올펠을 흡수하며 쭉 이어지는 시스템 메시지들.

솔직히 테르타로스로 마왕 올펠을 흡수할 때 좀 주저되는 면이 있긴 했다.

그건 다름 아닌.

레벨 1 상태인 마왕의 특성을 흡수하기 때문에.

이전에 일반 몬스터들을 죽이면서 확인해본 결과.

처음에는 레벨 1의 특성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계속 동일한 녀석을 죽이면 계속 특성 상태가 올라갔고.

아니나 다를까.

마왕을 흡수했음에도 역시나 레벨 1 상태였다.

만약 레벨 1의 마왕과 레벨 500대가 넘는 일반 몬스터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잘 모르긴 해도 마왕 레벨 1이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날 때부터 강하다고는 하나.

레벨 1은 레벨 1이다.

스탯의 성장을 위해 동일한 마왕 올펠을 계속 죽이면 또 모를까.

처음에는 그다지 볼품없는 스탯만을 가지고 올 것은 물 보듯 뻔하겠지.

똑같은 마왕을 죽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마왕을 테르타로스에 흡수해봐야 스펙상 큰 이득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차피 마왕 올펠이 다시 리젠되지 않는 이상은 이쪽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르타로스가 마왕 올펠을 흡수하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바로 레벨 1 상태의 스탯이 아닌.

마왕 올펠의 고유 스킬들.

물론 드랍 됐을 때 스킬북으로 떨어질 수도 있긴 하겠지만.

옵션으로 확실히 100%로 얻는 것과.

혹시나 떨어질지 모를 확률에 기대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어차피 기본 스탯이야 다른 몬스터들을 계속 잡아서 끌어올리면 그만인지라.

《 마왕 올펠이 사망했습니다! 》

《 마왕 올펠의 사망 소식이 마계 전체에 퍼져나갑니다. 》

《 마계의 마왕들이 마왕 올펠의 죽음을 곧 인지하게 됩니다. 》

칫.

이건 꽤 귀찮아지겠는데.

우리에게 우호적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모든 마왕들이 우리와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메시지들도 동시에 올라왔다.

《 해당 개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 한도를 넘어섰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응?

레벨이 올라?

내 몸 전체가 환하게 빛나면서 레벨업 이펙트가 함께 퍼져나갔다.

그리곤 모든 상태 이상과 체력과 마력, 상처가 회복되면서 최상의 상태로 몸이 복구되었다.

이건…….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른데?

테르타로스로 몬스터를 흡수하게 되면 경험치와 드랍 아이템을 전혀 얻을 수 없었다.

그간 계속 확인해 봤기에 경험치에 대해서는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없어져야 할 경험치가 고스란히 들어와 버렸다.

하…….

이건 역시 버그이려나?

어쩌면 원래는 함께 할 수 없는 정반대의 라페르나와 테르타로스의 설정이 동시에 발현되면서 뭔가가 꼬여버린 모양이었다.

뭐 나로서는 전혀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만세를 부를 일이지.

나와 같이 싸운 덕분인지 화련 역시도 레벨이 올라 화려한 이펙트가 몸을 감쌌다.

마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레벨이 높은 것도 있고.

화련도 레벨이 올라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저게 맞아.

아마 지금쯤 마왕과 싸웠던 모든 사람들의 레벨이 올라갔을 것이다.

재중이 형을 포함해 전신, 패황도 그럴 테고.

순간 내 시선이 반사적으로 지금은 테로타로스에 조각조각 흡수되고 라페르나의 빛에 녹아사라진 마왕 올펠의 잔해에 머물렀다.

설마.

아니겠지?

만약 이것까지 나온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정말 완벽한 사기라고.

그런 내 마음을 잘 아는 듯 늑대화된 마왕 올펠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져가며 그 녀석이 있던 바닥에 뭔가의 것들이 환한 빛을 내면서 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하. 정말 이건 미쳤네.”

나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옆에 있던 화련이 이해 안 되는 표정으로 눈썹을 모으며 물었다.

“응? 뭐가 미쳤어?”

“아……. 드랍템요. 나왔잖아요.”

내 말에 더욱 이해 안 된다는 얼굴로 화련이 답했다.

“왜? 너 싸우다 머리 다친 거 아냐? 몬스터 죽이면 아이템 나오는 건 당연한 건데. 마왕이라 안 나올 줄 알았어?”

“하하…… 그렇긴 하겠죠.”

지금 내 말의 의미를 과연 화련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절대 나오면 안 되는 아이템들이.

지금 저 바닥에 드랍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테르타로스로 죽이면 안 나오는 게 당연한데.

아마도 라페르나와 같이 막타를 쳐서 드랍템까지도 나온 모양이었다.

이게 다른 녀석들에게도 적용이 될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테르타로스의 성장과 레벨업.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

생각해 보면.

드랍템이 안 나왔을 경우엔 화련이 꽤 싫어했을 수도 있겠는데?

기껏 고생해서 마왕을 잡았는데 빈손이면…….

바로 내 멱살을 잡고 캐물었을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온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르는 듯 화련은 드랍된 아이템들을 쳐다보면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분배는 어떻게 할 거야?”

“아, 그렇죠.”

골치 아픈데?

역시 이런 분배는 문제가 된다.

그것도 이번에는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묘한 파티가 마왕 올펠을 잡는데 동원되었다.

전신과 패황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 상황인데다가.

재중이 형도 전신, 패황과 그렇게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을 테고.

아니.

오히려 나쁜 쪽에 가깝지.

화련 역시도 전신, 패황과 좋은 관계가 아니니.

거기다 큰 도움은 못 주었다고 해도 중립 연합장도 있다.

마왕 스티어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고.

“이거, 분배가 제대로 되긴 할까요?”

내가 말하는 뜻을 대번에 알아들은 화련도 바로 눈썹을 찡그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저런 표정이었지?

“그냥 우리 둘이 다 해먹을까? 안 나왔다고 하고.”

“……방금 엄청나게 혹했어요. 그런데 안 되는 건 알죠?”

내 쪽에서 그랜드 크로스를 씀과 함께 막타를 먹긴 했지만.

마왕 올펠을 잡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재중이 형과 전신, 패황도 포함되었다.

드랍템의 소유권이 온전히 나와 화련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 중에 몇 개를 우리가 가질 수야 있겠지만.

그 나머지 드랍템의 값어치가 월등히 좋다면.

안 하니만 못하게 된다.

차라리 따로 분배를 하는 편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거기다 저쪽 한편에서 패황이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화련이 그런 패황을 보고는 조금은 장난기 있는 잔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확 죽여 버릴까?”

“뭐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서로 장난인 걸 아니까 그다지 효용은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패황이 좀 인상을 찌푸릴 뿐.

패황도 결정적이진 않아도 꽤 도움을 주었다.

몸으로 때워서 그 많은 공격을 커버했으니.

잠시 기다리다가 눈길을 돌리니 구석에 중립 연합장인 그녀가 멀뚱멀뚱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 역시 레벨이 올라갔다.

걸치듯 참여만 하면 다 오른다는 거려나?

대체 저 마왕의 레벨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도 안 되네.

솔직히 지금 마왕 올펠을 잡은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휘하의 마왕 부대들은 하나도 없는데다가.

단독으로 남의 마왕성에 쳐들어와서 박살 난 케이스니까.

그리고 이쪽 역시 마왕이 하나 존재했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마왕 스티어의 부하들까지 가세했으니 전력상 아주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그랜드 크로스에 두 번이나 맞은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

보통은 이렇게 큰 스킬을 직격으로 맞추는 것 자체가 무리다.

쏘기 전에 다 피할 테니.

마왕성이라는 특수한 장소 덕을 본 것도 있겠네.

마왕 올펠이 우리를 너무 무시한 사실 역시도 포함일 테고.

우리가 쳐다보자 중립 연합장은 손을 저었다.

“따로 드랍템을 요구하진 않을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네, 그렇군요.”

“저도 염치는 있거든요. 이번엔 살아남은 걸로 만족해요.”

다른 유저들은 다 죽었고.

그녀만 살아남았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직접적으로 도움은 되지 않았으니 따로 분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곧 대전의 부서진 벽 너머로 인기척들이 들려왔다.

재중이 형과 전신이 거의 박살 난 갑옷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왔고.

“아, 마왕 새끼. 진짜 애먹이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마왕 스티어 역시 전신의 로브가 찢겨져 그 사이로 검은 기운이 물 새듯 계속 떨어져 내렸다.

데스 사이드도 반쯤은 부서져 날이 나간 상태.

장비가 완전 엉망인데?

그나마 다 레벨은 올랐는지 상태는 꽤 좋아 보였다.

재중이 형이 환한 웃음과 나와 쓰러진 마왕 올펠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결국 잡았잖아?”

“네, 운이 좋았죠.”

중간에 레벨이 올라서 잡은 건 확실히 알았을 터.

마왕 스티어는 꽤 놀란 듯 나와 화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기도 못 잡은 마왕 올펠을 잡아놨으니 뭐.

저런 반응이 당연한 거려나.

전신은 딱히 큰 반응 없이 나와 쓰러져 사라진 마왕 올펠 쪽을 쳐다보다가 물었다.

“드랍템은?”

“보시다시피?”

녀석도 내심 기대가 되지 않을까?

사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런 그들을 한 번 쭉 둘러보면서 말했다.

“휴, 모두 모였으니. 그럼 분배를 시작해 볼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