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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81화 (969/1,404)

#981화 대천사의 가호 (16)

끼기긱!!

두 개의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에서 소름 돋는 진동과 함께 검날을 따라 연속으로 실금이 일어나더니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검날 전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텨!

적어도 마왕 올펠에게 제대로 한 방을 날리기 전까지는!

마치 그런 내 소망을 듣기라도 한 듯이 마지막 비명을 지르며 끝까지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가 부서지지 않고 그랜드 크로스의 위력을 버텨냈다.

화아아악!!

눈이 부실 정도로 아득히 눈을 가리는 맹렬하고 강렬한 빛의 파도가 두 개의 검 사이에서 터져 나와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두 개의 검신이 만들어 낸 십자 형태로.

모든 악을 찢어낼 것처럼 폭발하는 이 그랜드 크로스는 곧 마왕 올펠의 정면을 불사르며 녀석의 방어를 완전히 깨며 육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지나가는 모든 어둠을 공간 저편으로 몰아내는.

완전체에 가까운 빛의 검이 있다면 이럴까.

콰아아앙!!

마왕 올펠의 어둠과 정면으로 부딪힌 뒤 더없이 강력한 폭발을 만들어내며 녀석을 튕겨내었다.

심지어 녀석의 신체가 폭발에 튀어나가며 대전의 내벽을 박살 냈다.

한쪽 벽이 크게 무너져내림과 동시에 대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커다란 굉음을 울렸다.

쿠르르릉!!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마왕 올펠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

“크아아악!!”

이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는 듯 녀석의 계속되는 비명은 어쩐지 내겐 꽤 기분 좋은 멜로디처럼 들려왔다.

생각해 보면 이 녀석 때문에 어긋날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예전에 베르테니아 마왕성 일도 그렇고.

그 뒤에 우리 팀과 연합을 따라다니며 방해한 일.

그리고 지금.

시아트 마왕성에서의 방해까지.

이 녀석을 확실히 밟을 수 있다면.

여기서 끝내버리는 게 제일 나아.

하지만 위력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일까.

결국 두 개의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는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좋지 않은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

콰직!!

그랜드 크로스를 온전히 쓸 때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빛의 폭발이 워낙 강력해서 그런지 이곳 전당에 눈부신 빛의 기운이 가득했다.

마왕의 기운이라고는 완전히 씻겨나간 듯한.

예전에 비공정을 타고 공중에서 쓸 때는 워낙 넓은 공중이기도 하고 멀리 퍼져나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정도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폐쇄된 공간에서 썼기 때문에 체감상 훨씬 더 강하다는 느낌이 와닿았다.

그런 그랜드 크로스에 직격당한 마왕 올펠은 지금 이 대전의 한쪽 벽을 뚫다시피 처박히면서 저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그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 마왕 올펠이 감당하지 못할 피해를 입었습니다. 》

《 마왕 올펠이 일대에 펼쳐둔 마왕 전용 결계가 해제됩니다. 》

시스템 메시지가 알려온 것은 이 대전을 전부 감싸고 있던 결계가 부서졌다는 내용이었다.

안에 있던 우리가 나가지도 못하고.

반대로 바깥에 있는 존재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결계.

마왕 전용 결계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왕이 되어야만 이 정도의 결계를 펼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 그 대천사 루스도 비슷한 결계를 썼었던가?

우리가 나가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던.

이런 시스템 메시지를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 장소를 벗어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

특히 옆에 있던 중립 연합장은 그랜드 크로스의 위력에 밀려나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걸 보면.

꽤 많이 놀란 모양이다.

그리고 내뱉는 한 마디.

“세상에…….”

솔직히 나도 놀라긴 했다.

그때 비공정에서 그랜드 크로스를 썼을 때는 무기들의 스펙이 엉망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무기의 스펙을 올려놓았다.

15강인 르아 카르테에 옵션까지 죄다 악마형에 치명적인 옵션들을 집어넣었으니.

최소 못 해도 그때와 위력 면에서 수십 배는 차이 나지 않을까.

패황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곤 지금은 부서지고 사라진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의 흔적을 보며 떨리는 듯 말했다.

“완전 미친놈이었군.”

패황쯤 되면 어렴풋이 알 것이다.

지금의 이 스킬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스킬인지.

거기다 이미 벽에 처박혀 저 멀리 사라진 마왕 올펠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더욱더.

만약 상태가 괜찮았다면 벌써 일어나서 반격을 했을 터.

바로 고개를 돌려 마왕 스티어를 보며 급하게 말을 꺼냈다.

“지금 끝낼 수 있을 때 끝내야 해!”

그랜드 크로스의 대미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 마왕 올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죽었으면 이미 시스템 메시지에 뭐가 떠도 떴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뜬 내용은 그저 마왕의 결계가 부서졌다는 내용밖에 없었다.

행동 불능 정도야 예상하겠지만.

아무래도 단순히 그랜드 크로스 한 방만으로는 녀석을 잠재우기에는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쳐다보자 마왕 스티어가 힘겹게 신체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랜드 크로스의 성화에 타오르며 넝마가 된 녀석의 로브가 눈에 보였다.

“설마 너도 피해를 본 거냐?”

그러자 마왕 스티어의 로브 속 어둠이 불안하게 일렁거렸다.

직격을 당하진 않았지만 녀석도 그랜드 크로스의 영향력 안에 들어왔었다.

악 성향의 끝에 있는 녀석이니 그랜드 크로스에 피해를 안 입을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해야 해! 지금밖에 없다!”

마왕 스티어도 악을 쓰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녀석도 잘 알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 다시 마왕 올펠이 일어나면 결코 쉽진 않을 거란 것을.

곧 거대한 낫인 마왕 전용 데스 사이드를 소환해내 마왕 올펠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신형을 옮기면서 물었다.

“너는?”

“잠시만. 내 쪽도 엉망이다.”

솔직히 나도 멀쩡히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랜드 크로스를 쓰기에는 내 전반적인 모든 스펙이 낮았다.

지금 이 스킬을 쓴 것도 정말 마지막 한 발을 쥐어짠 거나 마찬가지였다.

체력, 마력 할 것 없이 모조리 바닥인 상태.

장난으로 누가 와서 툭 치기라도 하면 높은 확률로 죽지 않을까.

재중이 형이 옆으로 오더니 바닥에서 주운 물약들을 몇 개 던져 주었다.

“회복해. 뒤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

“네, 부탁해요.”

전신도 지나치는 눈길로 슬쩍 날 보더니 물었다.

“그 스킬. 혹시 한 발 더 가능합니까?”

그런 전신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력을 노출하는 셈이지만 이런 건 솔직하게 해주는 편이 좋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같이 싸우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좀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리군요.”

“그렇습니까.”

조금은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전신도 아마 지금의 싸움은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마왕 올펠과 직접 싸워 봤으니 현재 우리가 얼마나 전력에서 열세인지는 너무 잘 알고 있을 테니.

곧 고개를 돌리고 먼저 달려간 재중이 형을 따라 달려갔다.

패황은 부서진 갑옷 때문에 일단 탈락.

그리고 화련이 옆에 오더니 저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안 가요?”

“나도 힘들어.”

자세히 화련의 모습을 살펴보니 확실히 많은 부위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싸운 흔적이 보였다.

저 무기가 커버를 해주었다고 하지만.

아마 지금까지 꽤 무리를 한 모양.

솔직히 화련이 생각 이상으로 활약을 해줘서 지금 우리가 여기 서 있는 셈이었다.

“이제 1인분은 하시네요?”

어떻게 들으면 충분히 놀린다고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는데 의외로 화련은 내게 화를 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흥, 너한테 칭찬 받고 싶진 않거든?”

으음?

이게 칭찬이 되는 건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화련의 반응에 조금은 머쓱해져서 더 이상 말은 잇지 않았다.

괜히 말을 더 붙였다가 실수할까 겁나기도 했고.

화난다고 한 대 치기라도 하면 내가 죽을 판이라.

화련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입구가 보였다.

전에는 꽉 닫혀 있던 대전의 문이 지금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문이 열렸네요.”

“그러게.”

다른 말로 이젠 바깥에서 안으로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지금의 그랜드 크로스가 대전의 벽을 박살내면서 바깥으로 십자의 빛 무리가 터져 나갔을 테니.

여기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터.

곧 대전의 입구를 통해 일련의 무리들이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왕 스티어의 군대.

사신과도 같은 모습을 한 녀석들이 우르르 대전 안으로 발을 들이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누군가를 급히 찾는 듯 하다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 내게 물었다.

“마왕 스티어님은?!”

“아아, 그 양반이라면 저쪽.”

그러면서 대전이 박살 난 쪽을 가리키자 녀석들이 우르르 그쪽을 향해 날듯이 달려 나갔다.

결계가 사라진 이상 시아트 마왕성의 전력은 곧 우리의 전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지금껏 끊어져 있던 외부 메시지들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챠밍> 오빠, 무슨 일이에요?!

<이쁜소녀> 방금 폭발 뭐예요?

<방패전사> 설마 너 지금 대전 쪽이야?

아마 대전이 터져나가기 전까지는 바깥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 폭발과 함께 결계가 끊기며 자연스레 다시 연락이 되었다.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주호> 마왕 올펠과 한판 붙었어요.

<챠밍> 지금 바로 지원 갈게요.

<이쁜소녀> 금방 가요!!

<방패전사> 최대한 빨리 간다. 어떻게든 버텨!

그 말만 듣고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는 듯 급한 메시지들이 오갔다.

당연하겠지만 마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괴물인지라.

그 사이 무너진 대전 방벽 너머에서는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콰아아앙!!

쿠우웅!!

크르릉!!

건물 무너지는 소리부터 해서 폭발에 터지는 소리까지.

이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건지.

아님 서로 치고받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곧 감각을 집중하자 대전을 중심으로 주변의 소리와 진동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어 내게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하나의 정보가 내게 스치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왜 뭐가 잘못됐어?”

“……마왕 올펠이 움직이고 있네요.”

그러면서 멀리 있는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화련은 그런 날 보고는 믿기 힘든 눈빛으로 물었다.

“너 그런 탐색 스킬도 가지고 있었어?”

“아, 뭐 그렇죠.”

이건 스킬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오해를 하고 있는 화련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스킬이라고 생각해주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설명하기도 좋고.

“그래서 확실하게 쓰러진 게 아냐?”

“네, 좀 움직임이 더디긴 한데…….”

그랜드 크로스를 맞았으면 당연히 다운되었을 거라 생각했거늘.

감각이 알려주는 정보는 그와는 반대였다.

마왕 올펠 하나를 대상으로 온전치 못한 마왕 스티어와 재중이 형, 전신이 달라붙었고.

거기에 마왕 스티어의 휘하 병력들까지 죄다 달려들면서 전투는 꽤 평수를 이루는 듯했다.

다행히 마왕 올펠의 움직임은 이상할 정도로 느려져 있는 상태.

이러면 오히려 이쪽이 더 강할지도 모르지.

“하, 저놈의 마왕 질기기도 하지.”

화련도 곧 무기를 쥐고서 나서려고 하자 내가 그녀를 말렸다.

“잠시만요.”

“응? 왜?”

“마왕 올펠의 기가 이쪽으로 오고 있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왕 올펠이 대전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마 아군들을 전부 따돌리고 뭔가의 이동 스킬을 써서 온 모양인데.

마왕 올펠은 꽤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지 신체 전반에 피가 안 흐르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모습이 완전히 달랐다.

피칠갑을 한 채로 드러낸 모습은…….

아마 늑대 계열이려나?

전신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갑주를 두른 커다란 늑대 형태로 변해 있는 녀석을 보니 정말 마지막까지 몰렸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게 아마 녀석의 최종 마왕 형태일 테니까.

그리곤 벌겋게 달아 있는 찢어진 눈으로 날 노려보면서 이를 크게 드러냈다.

“이 새끼, 내가 넌 무조건 죽이고 뜬다.”

그랜드 크로스가 피해를 확실히 주긴 줬나 본데?

문제는 저 녀석이 날 어떻게든 죽이고 여길 뜨려는 모양이었다.

굳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하, 이래서 개새끼들이란…….”

순간 도발하는 내 말에 녀석이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흉측하고 거대한 이빨을 드러내며.

“죽어라!!”

물론 난 그런 녀석을 보고는 씨익 웃어 보이며 스킬을 시전했다.

사실 안 오기를 바랐지만.

혹시나 싶어서 준비했다.

“넌 여길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

녀석이 완전히 내게 달려들었을 때.

바로 두 개의 검을 꺼내들었다.

르아 카르테.

그리고.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까지.

“잘 가라.”

【 시간의 서! 】

【 그랜드 크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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