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7화 (965/1,404)
  • #977화 대천사의 가호 (12)

    마왕 올펠과 정신없이 교전을 하던 재중이 형이 녀석의 공격을 한 번 크게 쳐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과의 싸움이 생각 이상으로 부담이 되었는지 재중이 형의 눈빛에 날이 서 있었다.

    마왕과의 스펙상 확연히 밀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려면 어지간한 집중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불멸> 이제 된 거냐?

    <주호> 네, 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들을 집어넣었어요.

    현재 마왕 올펠은 재중이 형의 프로미넌스나 전신의 영웅의 무기, 화련의 마계 경매장 에디션 검, 패황의 리빙 아머 킹의 배틀 액스의 공격을 받으며 조금씩 상처를 입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확실하게 녀석을 제압할 만큼의 위력은 가지지 못한 듯 했다.

    겉에 생채기만 났지.

    정작 유효타라고 할 만한 공격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재중이 형과 전신이 몇 번 녀석이 흔들릴 만한 강력한 타격을 넣긴 했는데 그것도 얼마 지니자 않아 순식간에 복구가 되어 버렸다.

    마왕이라는 녀석의 신체가 가진 수복력이 일정 이하의 대미지는 곧장 회복해버리는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모든 것을 내게 맡긴다고 한 건.

    아마 이 때문이겠지.

    두 자루의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가 내 손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거라면.

    최소한 마왕 올펠을 한 번쯤은 제대로 누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악 성향 몬스터에 대해 이보다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무기는 아마 전 서버를 뒤져봐도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양쪽 무기 전부 신성력을 넣어둔 데다가 치명타가 터졌을 경우 대미지가 수십 배는 증폭된다.

    치명타 대미지 2000%의 옵션이 둘.

    거기에 치명타 대미지 750% 증가 옵션이 둘.

    일단 터지기만 하면…….

    아무리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물론 치명타가 터졌다라는 가정하이긴 하지만.

    그래서 치명타 확률을 옵션 중에 채워 넣긴 했다.

    무려 70%의 옵션 증가치.

    이건 혹시 몰라 넣어둔 옵션이었다.

    내 공격이 확실하게 녀석의 급소에 맞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공격을 넣은 부위가 녀석에게 완벽한 급소가 아닐 경우도 대비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남은 것은 이 모든 대미지 뻥튀기 스탯들의 중심이 되어줄 스킬.

    헤븐즈 스트라이크.

    신성력에 기반한 헤븐즈 스트라이크는 악 성향인 마왕과는 극상성에 위치하는 스킬이었다.

    거기다 그랜드 크로스.

    이건 뭐 안 봐도 뻔하다.

    대천사의 가호를 발동해야지 나가는 스킬이니 당연히 극신성의 성격을 띤 스킬이겠지.

    이런 스킬들에 대미지 증가 옵션들의 증폭을 달아 위력을 키운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야.

    문제는…….

    이걸 어떻게 녀석에게 적중시키느냐인데.

    단순히 마왕 올펠에게 유의미한 타격만 줄 거라면 언제라도 가능했다.

    그냥 정면에서 스킬을 때려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반드시 녀석의 급소에 해당하는 부위에 적중시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상정한 스킬의 위력에서 현저히 부족한 위력만이 나오게 될 것이다.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 편 넷과 마왕 올펠의 격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과연 지금 내 스펙에서 저 공방에 끼어들 수 있을까?

    지금까지야 그냥저냥 좀 스펙이 있는 유저들을 상대해서 크게 표시가 나진 않았지만.

    저건 이야기가 아예 다르다.

    내 스펙이 저들의 공방 스펙에 현저히 부족했다.

    일단 급한 대로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 두 개 모두 근력과 민첩을 채워 넣긴 했는데…….

    지력은 스킬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

    그리고 마력은 두 스킬을 모두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정 이상 필요했다.

    만약 제대로 레벨과 스펙이 갖춰져 있었다면 저 옵션들을 빼고 다른 대미지 옵션들을 더 집어넣을 수도 있었을 터.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을 계속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가진 것을 전부 활용해서 어떻게든 한 방을 먹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주호> 형, 녀석을 잠시 잡아둘 수 있을까요?

    <불멸> 농담이지?

    그 말을 하면서 힘겹게 마왕 올펠의 일격을 겨우 프로미넌스로 쳐내며 뒤로 크게 튕겨나가는 재중이 형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럴 여유는 없는 듯하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패황은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서 겨우 자리를 사수하는 중이었다.

    누가 지금 저 모습을 보고 거대 연합의 수장을 떠올릴 수 있을까.

    뒤에서 뒷짐 지고 편하게 오더를 내릴 만한 녀석이 지금은 정말 샌드백처럼 이리저리 몸이 튕겨 오르고 있었다.

    패황에게 기대하긴 무리겠고.

    반대편에선 전신도 재중이 형과 마찬가지로 꽤나 고전을 하는 모양새였다.

    그나마 셋 중에서는 그간 왕 노릇을 하며 먹은 장비와 아이템들이 좋은지 꽤 버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앞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다는 건 아니다.

    몇 수준 차이 나는 능력치 앞에서는 어차피 똑같은 처지일 뿐이다.

    놀라운 점은.

    이 공방에 화련이 끼어서 제대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재중이 형과 전신은 원래 압도적인 프로게이머의 핏줄이 흐른다고 치더라도.

    화련은 그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건.

    역시 저 무기 덕분인가?

    뭔지 모를 불길한 느낌을 주는 보랏빛 레이피어.

    그게 어지간한 마왕의 유효타를 전부 무효화시키거나 타격을 확 줄여주는 것 같았다.

    거기다 화련의 움직임 자체도 꽤나 빨라진 듯했고.

    정말 얼마나 마계 경매장에서 돈을 썼길래 저런 아이템을 뽑아온 건지…….

    모르긴 해도 화련의 무기가 전신이 들고 있는 저 영웅의 무기보다 윗줄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최소 마왕의 무구거나 마신의 파편 정도일 텐데…….

    마계 경매장 이 녀석들은 대체 뭘 팔고 있는 건지.

    나중에 다시 한 번 들리면 좀 알아봐야겠다.

    그때 마왕 스티어에게 달려갔던 중립 연합장이 헐레벌떡 날 향해 뛰어오더니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마왕 스티어가 겨우 일어났어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기절 상태가 풀렸는지 마왕 스티어가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왕이 기절하는 것도 처음 보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겨우 마왕 서열 3위와도 이렇게나 격차가 나는데 마계를 접수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니…….

    마왕 스티어의 꿈은 어쩌면 지금의 전투 한 번에 꺾였을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저쪽에서 신경 쓰지 않게 마왕 스티어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좀 드나?”

    “……큭.”

    낭패한 듯한 표정을 짓는 마왕 스티어의 입가가 꽤 쓰게 보였다.

    “이미 붙어봐서 알겠지만 네가 이 구역의 미친놈은 아니더라고.”

    “뭐……?”

    “아, 그냥 해본 소리야. 신경 쓰지 말고. 근데 원래 이렇게 남의 마왕성에서 날뛰어도 상관없나? 난 또 네가 하도 장담하길래 뭔가 안전장치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마왕 스티어가 확실히 다른 마왕들을 막아줄 수 있었다면.

    지금 이런 상황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지금쯤이면 다른 의뢰를 받아서 마음껏 사냥을 하고 있을 텐데.

    이 녀석의 오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지났다는 말이다.

    앞마당에 쳐들어오는 마왕 하나 어떻게 못 해서 이 사단이라니.

    마왕 스티어를 너무 믿었던 게 문제이려나.

    잠시 이를 꽉 깨문 마왕 스티어가 대답했다.

    “보통은…… 마왕이 속한 세력 때문에 쉽게 싸우긴 힘들지.”

    “넌 그게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초기의 마왕들에게는 유예 기간을 준다. 세력을 정비할 수 있는.”

    “어째서?”

    “너도 알 텐데? 당연히 자신의 세력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지.”

    “하긴 그렇긴 하네. 그런데 저 녀석은 그런 암묵적인 동의를 다 무시하고 저러고 있고?”

    마왕 올펠은 마왕 스티어가 말한 사실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왕 스티어도 거기에 대해선 대답하지 못했다.

    하긴 어딜 가나 물 흐르는 미친놈들이 하나씩 있으니까.

    그냥 저 녀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녀석일 것이다.

    마왕 올펠을 빤히 바라보다가 마왕 스티어에게 확답을 요구하는 말투로 물었다.

    “너, 내가 마왕 올펠을 한 번 멈춰주면 저 녀석 잡을 수 있냐?”

    “뭐?”

    “확실히 죽일 수 있냐고.”

    솔직히 내가 가진 건 딱 한 방밖에 없는 필살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것 하나만으로 마왕 올펠을 죽일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역시 무리겠지.

    단순히 스킬 한두 방 먹인다고 끝난다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된다.

    탱딜힐 다 갖추고 물약 수천 개를 먹어가면서 끝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계속 딜을 넣어야 죽여지는 게 네임드다.

    그리고.

    마왕은 그 이상의 대미지를 먹여야 겨우 죽을 텐데.

    그렇다면 역시 저 녀석의 상대는 같은 마왕인 이 녀석이 해주어야 했다.

    서로 격차가 난다고는 해도.

    어찌 됐든 이 녀석도 마왕이긴 하니까.

    “저 녀석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거냐?”

    “한 번은.”

    그리고 그 한 번에 이 녀석이 가진 필살기들을 전부 꽂아 넣을 수 있다면.

    무력화된 상태에서는 대미지가 몇 배는 더 들어가니까.

    막말로 목이라도 날려버리면 마왕이라 하더라도 그냥 죽는다.

    언데드가 아닌 이상에야.

    목이 날아가고도 살아있을 순 없다.

    그러니 승산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이게 안 되면 나도 모르겠고.

    그때는 그냥 정말 두 손 두 발 놓고 튀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러니까 녀석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스킬이 있냐고.”

    내 말에 마왕 스티어가 굳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쓰고 나면 내가 못 움직이긴 하지만. 스킬은 가지고 있다.”

    그런 마왕 스티어의 장담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이번엔 확실한 거지?”

    이놈이 자꾸 삽질을 해대니 어째 믿을 수가 있나.

    “어차피 못하면 다 죽는 것 아니었나?”

    “뭐 그렇긴 하지.”

    “그럼 믿어라. 최소한 녀석을 죽음 가까이는 몰아갈 수 있다.”

    거참…….

    마왕이 자길 믿으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다니.

    누가 보면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저 중립 연합장인 그녀도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는 중이니까.

    잠시 멍한 표정이었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정말 저 마왕 믿을 수 있는 건가요?”

    “다른 방법 있으면 지금 말해 주면 좋겠네요.”

    내 대답에 그녀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쓸 만한 아군이라고는 솔직히 몇 되지 않는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녀석이 이 마왕 스티어고.

    비록 한 번 밀렸다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패다.

    여기서 이겨서 무사히 나가려면.

    그걸 너무 잘 아는지라 그녀도 바로 동참했다.

    “물약, 있는 대로 전부 모아서 마왕에게 주면 되겠죠?”

    그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꽤 잘 돌아가네.

    효율 면에서도 우리보다는 마왕에게 물약을 몰아주는 게 훨씬 효과가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전체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싸울 정도의 수준까지는 올라와 줘야 한다.

    마왕 스티어를 보면서 말했다.

    “물약으로 최대한 회복해. 시간은 저쪽에서 벌어줄 거다.”

    그러면서 마왕 올펠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올펠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로 앞에 있음에도 놓쳐버린 패황이 눈을 부라렸지만 이내 그 시선은 뒤로 돌아갔다.

    그쪽에서 계속 비명들이 들려왔으니까.

    “끄악!”

    “악! 피해!”

    “컥! 어떻게든 막아!”

    “젠장, 어그로 잡힌 거 아니었어?”

    어느새 우리를 지원하고 있던 유저들의 앞으로 이동해간 마왕 올펠의 손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유저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애초에 이들이 버틸 만한 속도와 역량이 아니었다.

    힐을 해주던 사람들도.

    화살을 쏘고 마법을 지원하던 사람들도.

    전부 마왕 올펠의 손에서 목이 떨어져 버렸다.

    그것도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살아있는 건.

    마왕 스티어를 살린다고 그들과 떨어져 있던 나와 중립 연합장뿐이었다.

    손에 붉은 피를 잔뜩 묻힌 채 모두를 학살한 마왕 올펠이 스윽 고개를 돌리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검붉게 변한 눈빛을 내리깔며 아주 즐거운 듯 웃음 지었다.

    “아직 남았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