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6화 대천사의 가호 (11)
쿨타임조차 없는 딱 한 방의 광역기에 세 사람의 방어가 깨지면서 모두 바깥으로 튕겨 나오며 전투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마왕 올펠에게는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찐득한 검은 기운들이 피어 올라와 우리에게 눈을 부라렸다.
“감히……!”
마왕 스티어와 싸울 때는 그냥 같은 마왕과 싸운다는 것 때문에 몇 대의 공격을 허용해도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인 유저들에게 공격을 허용했다는 것에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듯해 보였다.
거기다 방금의 그 광역기를 쓰기 전까지는 세 사람에게 꽤 휘둘리고 있었으니.
특히 재중이 형과 전신의 합격은 마왕 올펠을 당황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파워나 출력은 확실히 마왕 올펠이 강하지만 재중이 형과 전신은 그보다 더 앞서는 전투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둘은 강한 공격은 어떻게든 흘려보내고 피해낼 것은 피해내면서 기어코 반대편의 아군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이지 녀석의 탄탄한 신체 곳곳에 상흔들이 남아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재중이 형의 스피어와 전신의 대검이 녀석의 틈을 많이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표본이었다.
화련은 딱히 제대로 된 상흔을 내진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마왕 올펠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정도로 만족했다.
후방에서 몇 개의 궤적으로 공격이 더 들어가기만 해도 시선은 자연스럽게 분산되니까.
그리고 화련은 절대 마왕 올펠과 정면으로 붙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으면 최대의 속도로 자리를 이탈하면서 겨우 녀석과 거리를 벌려냈다.
하지만 이 모든 작업들이 녀석의 한 방에 무너져 버렸다.
이래서 네임드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무서운 것이다.
단번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물론 저 스킬을 자주 쓸 순 없겠지만.
그사이 먼저 일어난 패황이 인상을 구기면서 바닥에 배틀 액스를 짚고 일어섰다.
“젠장, 체면이 말이 아니군. 짐이 되다니.”
패황이 단 한 방이라도 막아낼 거라고 자신감 있게 나섰지만, 마왕 올펠의 속도는 그것을 훨씬 상회했다.
애초에 이런 속도전에는 패황은 마왕 올펠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아군의 시야를 방해하는 용도로 쓰였다는데 자존심도 많이 상한 듯했고.
그런데 의외로 녀석의 갑주는 꽤 양호해 보였다.
저건 정말 탐나네.
마왕에게 휘둘러지고도 흠집조차 나지 않다니.
현 최강의 갑주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순 방어력만 치면 재중이 형이 입고 있는 발록 풀 플레이트 이상일 것이다.
패황이 이를 악물고는 다시 마왕 올펠에게 달려들어서 도전했다.
패기는 꽤 좋잖아?
“이번에는 밀리지 않는다.”
확실히 패황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졌다.
좀 더 이전보다 콤팩트한 느낌이랄까.
자세히 보니 배틀 액스를 조금 더 짧게 잡은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 풀 파워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건가.
제일 강력한 공격을 했음에도 마왕 올펠은 그 공격을 너무 쉽게 파훼해버렸다.
그것도 한 손으로.
똑같은 공격을 또 해봐야 다시 패대기쳐질 뿐이라는 걸 느꼈는지 바로 자세를 바꾼 건 칭찬해줄 만했다.
그리곤 이번엔 녀석에게 공격을 바로 넣는다기보다는 앞에서 배틀 액스를 짧고 빠르게 휘두르면서 녀석의 시선을 끄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어차피 패황의 공속으로는 제대로 된 유의미한 공격을 넣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아예 리빙 아머 킹의 갑주를 믿고 몸으로 때우는 걸 택한 모양이다.
마왕 올펠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텨 서려는 자세로 붙자 마왕 올펠도 그에 맞게 빠른 연격으로 두 주먹을 휘둘렀다.
쿵!!
콰앙!!
쿠웅!!
마치 샌드백이라도 된 듯 연신 두들겨지는 패황의 갑주 사이로 피어오른 푸른 불꽃이 당장이라도 사그라들 듯 흔들려 흩어졌다.
한 방, 한 방이 얼마나 강하게 두들겨 맞는지 패황의 온몸이 공중에 뜬 것처럼 들썩거렸다.
“크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끝까지 버텨냈다.
다른 사람들이 일어날 시간을 벌기라도 한다는 듯.
그런 노력이 헛되지는 않은지 곧 재중이 형과 전신, 화련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마 경직을 당해서 몸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는데 패황이 시간을 벌어주면서 겨우 경직이 풀린 듯했다.
솔직히 모두가 쓰러지는 순간.
중간에 뛰어들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어차피 모두가 쓰러지면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지금 녀석의 시선을 너무 끌어버리게 된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
곧 세 사람이 패황이 버티는 동안 다시 전장에 복귀해 마왕 올펠의 사방을 점하면서 진형을 갖추었다.
다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이 상흔을 남기려고 격하게 파고들진 않았다.
조금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의 격돌 수준을 유지했다.
물론 마왕 패황이 벗어나고자 하면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유저들 따위를 피해 자리를 움직인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듯해 보였다.
그 자리에서 발도 떼지 않는 걸 보면.
틀린 가정은 아닐 것이다.
저런 건 쓸데없이 디테일하다니까.
하지만 그런 점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찬스였다.
녀석이 적당히 우리를 무시하는.
딱 그 정도의 경계심.
그리고 아예 외곽에 있는 나와 다른 유저들에게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정도의 무관심한 녀석의 태도.
덕분에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이다.
슬쩍 옆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유저들도 네 사람이 버티는 것을 보더니 생각을 바꾼 듯 다시 돌아섰다.
어차피 밖으로 못 나간다는 건 저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싸우잖아?”
“세상에. 저게 버텨져?”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변한 길드 연합 유저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저 여자는……?
분명 중립 연합의 장이라고 했지?
길고 진한 블론드 헤어를 뒤로 질끈 묶더니 중립 연합의 장이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반항이나 해보자고요.”
아군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감을 심어준 걸까.
아니면 외부에 연락을 해도 연락이 안 된다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빠져나갈 선택지가 전혀 없는데 어떻게든 길이 보이니 그걸 잡을 것일 수도 있다.
“보조 힐 가능한 분들 전부 힐을 패황에게 몰아주세요. 보아하니 탱 역할을 맡은 모양이에요. 원거리 가능한 분들은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게 마왕 올펠의 시선을 돌리는 데만 집중해서 추가로 딜을 넣습니다. 오히려 너무 강한 공격은 시선을 끌 수 있으니 우리 편에게 시간만 벌어주세요. 그럼 알아서 할 듯하네요. 아마도 장기전이 될 테니 마나 최대한 아끼세요.”
중립 연합장의 오더에 원래 근접 공격을 하는 유저들도 지금은 전부 활을 꺼내들었다.
민첩은 좀 딸리겠지만 기본적으로 힘이 어느 정도 받쳐주면 아예 활을 못 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근접 유저들도 활 하나 정도는 예비로 꼭 가지고 다니니까.
과연 저게 방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그리고 힐이 가능한 유저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전부 패황에게 힐을 집중시켜주기 위해 자리를 잡아갔다.
전투 지점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휩쓸릴 정도가 아닌 딱 그 정도 거리에서.
다들 오랜 시간 플레이를 해서 레이드 경험은 충분한 편이라 그런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포지션을 알아서 찾아갔다.
“그리고 상인 연합 유저분들은 대형 포션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바닥에 뿌려놔 주세요. 여차하면 저들이 하나씩 가져갈 수 있게요. 다들 인벤에 꾹꾹 눌러 담아 다니죠?”
거기다 중립 연합장의 추가 주문.
어차피 이들은 마왕과 붙으면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아예 그들이 가진 포션을 미리 다 떨어뜨려 놓는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전투 중이라 포션을 전달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그리고 이렇게 하는 편이 서로가 좋았다.
부족할 때 알아서 포션을 주워 먹으면 빈틈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그 말에 상인 연합의 장이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판매하려고 모아둔 건데 말이야. 손해가…….”
“지금 그게 중요하진 않겠죠? 여기서 저들이 밀리면 이 마왕성도 끝장나는 거예요. 그러면 투자했던 돈도 전부 날릴 테고요.”
포션 가지고 쩨쩨하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아주 돌려서 말하는 중이었다.
뭐 그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마왕성이 날아가면 입는 피해가 훨씬 크다.
다른 때 같으면 씨알도 안 먹히겠지만 지금은 마왕 올펠이 이 시아트 마왕성을 그냥 둘 것 같진 않았다.
그러자 납득한 듯 바로 오더를 실행했다.
상황이 정리되자 중립 연합장이 추가로 말을 이었다.
“다른 분들. 마왕에게도 힐이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힐 가능한 분 가셔서 마왕에게 힐을 넣어줘 보세요.”
현재 마왕 스티어가 쓰러져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 자리에서 마왕 올펠과 그나마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그때 내가 그녀를 만류했다.
“힐은 안 됩니다. 오히려 피해를 가중시킬 거예요.”
“아……! 역시 힐은 신성력이라 안 되겠죠. 그러면 어떻게?”
“물약이라도 입에 들이부으면 될지도 모르죠.”
솔직히 나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마왕에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니.
내 말에 곧장 그녀가 포션을 품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마왕에게 날듯이 뛰어갔다.
행동력 하나는 최곤데?
결정이 나자마자 바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눈에 띄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확실히 마왕 스티어가 빨리 일어나주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것이다.
쩌리처럼 남아있던 유저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잡고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아주 조금씩 호전되는 것이 보였다.
패황이 힐을 받아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되었고, 간간이 들어가는 화살의 견제는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잠시 한숨 돌릴만한 시간 정도는 만들어주었다.
마왕 스티어 쪽은 어떻게 회복이 되는 건지 중립 연합장이 계속 마왕 스티어의 입에다가 포션을 들이붓고 있었다.
그런 노력에 미동도 없던 마왕 스티어가 천천히 몸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싸우느라 마왕 올펠이 그쪽을 신경 쓰지 못한 듯했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계속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냥 기본적인 성능으로는 절대 못 이겨…….
낮은 레벨.
미완성된 대천사의 검의 성능.
이것만으로는 어떻게 해도 마왕 올펠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르아 카르테가 있었다.
그동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숨어서 열심히 작업을 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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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물음표로 뜬 옵션들은 지금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옵션 중에 이것들은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 악 성향 몬스터 타격 시 치명타 대미지 2000%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2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2
그리고 이 옵션을 넣기 위해 르아 카르테에 계속 탐식을 시켰다.
《 르아 카르테가 레플리카 라페르나를 탐식합니다. 》
《 레플리카 라페르나가 소실됩니다. 》
《 레플리카 라페르나의 옵션 중 두 가지가 르아 카르테에 랜덤 포획됩니다. 》
몇 번의 시도 끝에 옵션이 확실히 흡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너무 부족했다.
다음에는 레플리카 진(眞) 토르를.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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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력+60
- 헤븐즈 스트라이크
- 광화
많이도 필요 없다.
정말 마왕을 두들겨 팰 수 있는 최적의 옵션들만.
그렇게 뽑아낸 옵션들을 모아 구성한 두 개의 아이템.
『 +15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 (유일) <정령의 가호>
/ 출혈 105(85+20) 타격 70(50+20)
- 근력 +75
- 민첩 +92
- 체력 +79
- 지력 +93
- 마력 +81
- 신성력+60
- 치명타 확률 35%
- 치명타 대미지 750%
- 악 성향 몬스터 타격 시 치명타 대미지 2000%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2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2 』
한 자루 더.
『 +15 레플리카 르아 카르테 (유일) <정령의 가호>
/ 출혈 105(85+20) 타격 70(50+20)
- 근력 +75
- 민첩 +92
- 마력 +81
- 신성력+60
- 치명타 확률 35%
- 치명타 대미지 750%
- 악 성향 몬스터 타격 시 치명타 대미지 2000%
- 스킬 : 헤븐즈 스트라이크 LV.5
- 스킬 : 광화 LV.5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2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2 』
마왕 올펠을 잡기 위한 최적화된.
내가 꺼내 들 수 있는 최고의 수.
어차피 여러 번도 필요 없다.
딱 한 번.
쏘고 난 뒤에 바로 부서져도 상관없으니까.
<주호> 형! 전 준비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