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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5화 (963/1,404)

#975화 대천사의 가호 (10)

재중이 형이 내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자 패황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기엔 못 미더워하는 표정도 섞여 있었고.

“이자는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아마 예전에 재중이 형과 붙어봤던 건지 둘 사이에서 그렇게 편한 말이 오가진 않았다.

지금 패황이 말하자고 한 건 뻔했다.

이건 내 상황을 돌려서 깐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내 복귀 시점을 미루어봤을 때의 현재 나의 레벨이 너무 낮다는 거겠지.

패황의 말이 딱히 틀린 건 아니다.

재중이 형도 애써 그것에 대해 논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보였고.

“레벨이 절대적이긴 한데. 또 그렇다고 레벨만으로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눈짓으로 지금 한창 치고받고 있는 두 마왕들을 가리켰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가속을 연속으로 내면서 연신 폭발음을 내고 있는 두 마왕의 전력.

곧장 시선을 돌려 저쪽 한편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여러 길드 연합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기회만 되면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눈치를 보는 모습들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달까.

두 마왕의 전력은 유저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저들 모두 레벨로만 따지고 보면 현재 서버 내에서 꽤 상위에 속할 것이다.

그런 이들조차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중이었다.

“저걸 레벨 좀 높다고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재중이 형의 시선을 따라간 패황이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마치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렇다고 해도 너무 낮은데……?”

“뭐 이쪽은 한 방이 있으니까.”

그 담담한 말투에 패황도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다 죽는 건 알고 있겠지?”

“어차피 안 된다 해도 다 죽는 건 똑같잖아?”

현재 마왕 스티어와 마왕 올펠이 자신들의 모든 기량을 끌어내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누가 봐도 마왕 스티어가 열세였다.

이대로 가면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마왕 스티어가 마왕 올펠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마왕 올펠에게 죽는 건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왕 스티어가 아직 여력이 있을 때 싸워야 그나마 승산이 있다.”

“……마음에 안 드는군.”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상황에 납득은 한 듯했다.

패황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듯 말을 건넸다.

“불멸을 봐서 한 번 믿어보죠.”

그런 패황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패황도 인정은 한다는 거다.

재중이 형이 헛된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전신은 눈으로 슬쩍 나를 보더니 굳이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결정이 나자 그저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무기를 꺼내들고 앞으로 나설 뿐.

누구보다 재중이 형의 전력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딱히 더 이걸로 논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화련은 내게 귓속말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화련> 대천사의 검으로 치게?

<주호> 뭐, 그렇죠.

<화련> 전에 그 미친 스킬 쓸 거지?

화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전에 내가 대천사의 검을 쓰는 걸 봐서인지 의심조차 없어 보였다.

<주호> 시간이 좀 필요한 건 알죠?

<화련> 알았어. 그거라면 해볼만 하겠네. 저 자식, 엉덩이 한 번 제대로 두들겨줘.

그간 마왕 올펠에게 당한 게 좀 있는지 그런 표현을 쓰는 화련을 보며 속으로 웃음 지었다.

어떻게 보면 겉과 속이 똑같아 보이기도 한다.

<주호> 사실 통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화련> 이씨. 지금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 아, 몰라. 됐고. 무조건 성공시켜.

그러면서 화련도 무기를 들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모두 준비가 되자 재중이 형도 역시 프로미넌스를 들고 나섰다.

“오래는 못 버틴다. 너도 알지?”

“네. 조합이 이러니까요.”

탱커 하나에 딜러만 넷.

피해를 입으면 물약으로 어떻게든 버텨준다고 해도 적은 마왕이다.

한 방에 다운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물약 자체의 회복력으로 피해를 따라잡지 못하면 다운 당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최소한 챠밍이나 막내별이 있었으면 조금은 다른 구성을 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접어두고 지금은 시선을 두 마왕에게 고정시켰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다름 아닌 저 길드 연합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익! 못 나가잖아!”

“왜 안 열려?!”

눈치만 보고 있던 중소 길드 연합의 유저들이 연회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 마왕 올펠이 유저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뭔가의 수를 쓴 모양이었다.

이전부터 마왕들은 자신만의 고유 결계 같은 것들을 펼칠 수 있었으니.

딱히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

지금 이 장소는 다른 말로 하나의 레이드 장소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을 이기기 전에는 나갈 수 없는.

그리고 그건 그만큼 현재 마왕 올펠이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었다.

마왕 스티어와 싸우면서도 이 결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거기다 이곳은 마왕 스티어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마왕 올펠의 권역이 그걸 능가해 버렸다.

격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데?

두 손을 꽉 쥐자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정말 까딱 잘못하면 여기서 죽을 수도…….

콰아앙!!

콰르릉!!

뭔가가 크게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렬한 후폭풍이 우리에게 밀려들었다.

시선이 따라간 곳엔 연회장의 한쪽 벽면이 크게 부서져 있었고.

그 벽면에는 마왕 스티어의 신체가 반쯤 파묻히듯 눌러져 형편없이 구겨 있었다.

“크윽……!”

방금의 공격으로 마왕 올펠이 마왕 스티어를 완전히 떨쳐내는 데 성공하고는 바닥으로 피가 섞인 피를 뱉어내었다.

그리곤 단단한 갑주로 된 손바닥을 툭툭 털어내었다.

“귀찮게 하기는…….”

마왕 스티어의 어둠이 일그러져 계속 꺼져 가는 데 반해 마왕 올펠은 너무 건재해 보였다.

피해를 다소 입히긴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유효타를 확실히 냈다고 보긴 어려웠다.

후.

마왕 스티어가 밀려도 너무 밀리는데.

저걸 과연 패황이 막아낼 수 있을까?

패황 역시 그 광경을 보고는 이를 꽉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크아아!!”

그리고는 온몸을 덮고 있는 리빙 아머 킹의 파란 기류를 뿜어내면서 마왕 올펠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는 예의 푸른 불꽃을 피우는 리빙 아머 킹의 배틀 액스를 휘두르며.

【 초강격! 】

스킬을 쓰자 패황의 배틀 액스에 강렬한 유형의 기운이 모여들어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불어났다.

아마 초강격 스킬을 마스터하면 저런 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돌진이 마왕 올펠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또 뭐야?”

정말 귀찮다는 듯 마왕 올펠이 한쪽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푸른 기류의 기운들을 뚫어내며 그런 패황의 배틀 액스의 거대한 날을 그대로 잡아버렸다.

콰앙!!

마왕 올펠의 한쪽 무릎이 살짝 굽혀지기는 했는데 딱 그것뿐이었다.

녀석에게 잡힌 배틀 액스의 거대한 날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온몸으로 돌진해서 두 팔에 힘을 전부 실어 공격한 건데 그런 공격을 마왕 올펠은 그냥 한 손으로 잡아버렸다.

식후 디저트를 먹듯 가벼운 느낌으로.

설마 단순히 팔을 뻗어서 자신의 공격을 막을 줄 몰랐던 패황은 오히려 인상을 확 구겼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격차가 이 정도나 난다고?

패황도 이 바닥에서는 상당한 고수였다.

가지고 있는 장비도 마찬가지고.

그때 패황의 양 뒤쪽으로 두 개의 신형이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다들 패황의 커다란 모션에 눈이 팔렸을 때 그림자들은 오히려 그걸 역이용했다.

화르륵 불붙은 재중이 형의 스피어와 순식간에 빛을 잔뜩 머금은 전신의 대검이 마왕 올펠의 양 사이드로 뻗어 나오며 각각 치명적인 일격을 노렸다.

“이건 좀 낫군.”

그런 두 사람의 날카로운 공격을 마왕 올펠이 배틀 액스를 잡은 손을 그대로 수평으로 휘둘렀다.

위잉!!

그와 함께 배틀 액스를 꽉 잡고 있던 패황의 온몸이 거대한 망치라도 되는 것처럼 재중이 형에게 날아갔다.

잡고 있던 상대를 오히려 무기로 사용하다니…….

재중이 형이 바로 추가로 신형을 날리면서 그런 패황을 피해냈는데 워낙 빠르게 휘둘러져서인지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프로미넌스의 궤적이 상당히 어긋나버렸다.

반대편의 전신에게는 마왕 올펠의 손이 대검을 그대로 쳐내버렸다.

키이잉!!

전신보다 늦게 출수했음에도 속도를 따라잡을 정도의 전력에 전신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안 끝났다.”

어느새 무너진 자세를 회복하고 패황의 몸 뒤로 숨어 신형을 숨겼다가 빠르게 파고든 재중이 형이 프로미넌스를 찔러 넣어 마왕 올펠의 허리에 미세한 생채기를 내었다.

하지만 곧장 마왕 올펠의 허리가 틀어지면서 아래에서 뻗어진 다리로 프로미넌스의 창대를 빠르게 쳐올렸다.

마왕 올펠의 다리 역시 어느새 갑주가 입혀져 있었다.

카앙!!

조금은 놀란 것 같은 표정이랄까.

화가 난 느낌도 있고.

당하지 않았어야 하는 공격을 당한 듯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재중이 형에게 시선이 팔린 사이 전신이 마왕 올펠의 뒤로 파고들어 대검의 끝으로 겨우 마왕 올펠의 등을 긁어놓을 수 있었다.

피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미미한 상처.

하지만 이들의 공격이 통하고 있다는 게 주효했다.

“이 새끼들이……!”

둘의 공격에 마왕 스티어를 눌러놓아 좋았던 기분이 싹 날아간 듯 마왕 올펠의 눈빛이 확 달아올랐다.

녀석의 좌측은 재중이 형.

우측은 전신이 연신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스피어와 대검을 빠르게 휘둘러 녀석과 교전해나갔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짜여져 있는 완벽한 합격술.

누가 봐도 저 둘의 공격은 예술과 같이 하나의 동작으로 보였다.

서로의 빈틈을 메워준다기보다는 서로가 시선을 끌며 상대의 반격을 이끌어 내면 그 사이를 파고드는 형태의 공격.

합을 수십 년을 맞춰 보면 저런 연격이 나올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긴장감 속에서도 스피어와 대검을 뻗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둘 모두 서로의 타이밍과 공격 능력을 완벽할 정도로 이해하고 있어야 저런 움직임이 나올 것이다.

같은 팀도 아닌 사람들이 이런 합을 보인다라…….

그리고 그 사이로 파고드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보랏빛 레이피어가 그 휘황한 빛을 뿜으며 빠른 연격으로 마왕 올펠의 시선을 또 분산시켜나갔다.

재중이 형과 전신의 공격들 사이로 잠시 나는 틈을 타 파고드는 실력이라…….

물론 저 보라색의 레이피어가 마왕 올펠의 공격을 상당히 눌러주는 느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일정 이상의 실력이 안 되면 이 공방은 따라가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정말 안 보는 사이 어지간히 노력한 모양이네.

이대로만 쭉 가면 좋겠지만.

상대는 마왕이었다.

“이 버러지들이!!”

쿠아아아앙!!!

갑자기 강렬한 기운이 마왕 올펠에게서 폭사되었다. 이내 세 사람은 동시에 바깥으로 튕겨지더니 피를 토해내면서 바닥으로 패대기쳐졌다.

그동안의 우위가 절대 우위가 아니었어.

젠장.

저 녀석을 정말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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